청송 신성천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안동 길안천으로 합해지는 낙동강의 상류 신성계곡.
하얀 바위 계곡이 신비로운 행성에 온 듯한 백석탄 및 구비구비 비경으로 가득한
신성계곡의 들머리에 날아갈 듯 앉아 있는 정자 방호정을 찾아 떠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퍼 옆길로 들어서니 너무나 경악스러운 철제다리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예전에 놓여 있던 녹슬고 삐걱거리는 철제궤교도 이곳의 경관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지만
일본에 사는 교포 후손이 건설했다는 이 거대하고 튼튼한 다리는
아름다운 계곡과 절벽 위에 멋스럽게 올라 앉은 방호정을 일시에 시골 유원지 필이 나게 변모시켜버렸다.
산과 물이 휘돌면서 넓게 펼쳐놓은 공간에 앉은 방호정의 경관을 가리고 들어선 철제다리라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는 하지만 이 다리가 없으면 방호정으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불평하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다리 위에서 건너편을 바라 보니 뱀처럼 굽어져 돌아가는 물줄기 속으로
주저 없이 수직 낙하하는 절벽 위에 정자가 날아갈 듯 앉아 있다.


뒷산의 바위줄기가 뻗어내리다 물속으로 뛰어들기 직전에 만들어진 절벽에 그림같은 산수정원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기와 지붕이 참 특이하다. 하나의 건물에 기와기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하고 세련된 팔작지붕과
소박함과 절제된 멋이 있는 맞배지붕이 함께 섞여있다.


다리를 건너와 방호정의 옆에 서니 물길을 내려다 보며 바위 위에 우뚝 선 모습이 호탕하고 시원스럽기도 하지만


나뭇잎을 다 떨구어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방호정은 겨울날의 쓸쓸함을 안고 있다.


방호정의 좁은 옆길을 돌아드니 아래는 수직의 절벽으로, 물길이 그대로 내려다 보인다.
철제 난간이 가설되지 않았다면 앞으로 돌아들기가 겁이 날 정도이다.


방호정(方壺亭)은 방호 조준도 선생이 조선 광해군 11년(1619) 때 지은 정자다.
저 앞 멀리에 어머니 권씨의 묘를 모시고 그곳 바라보기 좋도록 바위머리를 터로 삼아 정자를 지었다.
이곳에서는 창석 이준, 동계 조형도, 풍애 권익, 방호 조준도, 하음 신즙 선생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겼다고 한다.
  ㄱ자형의 평면으로 중심부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놓았고,
꺾여 위치한 부분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을 놓았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성현들의 제영현판이 걸려있다.


방호정은 방호정사(方壺精舍)로 불리워야 할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정(亭)'은 '놀기나 쉬기 위하여 경치나 전망이 좋은 곳에 지은 정자'라는 뜻을 갖추고 있고
'정사(精舍)'는 '학문을 가르치려고 지은 집'인데 방호정은 숙식을 위한 기숙 공간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학문을 닦고 수양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도 그 기능을 잘 갖추고 있다.


방호정 바로 옆의 건물이 방호강당인 것만 봐도 그러하다.
절경의 언덕에 들어선 정자임에도 불구하고 엄숙하고 절제된 학문의 장소로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방호정의 주변은 높은 퇴적암의 절벽층을 보여주는 산들로 둘러쌓여 있고
바로 옆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여름이나 가을에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또 북쪽으로 흘러 흘러 길안천으로 유입되는 물은 방호정 바로 위쪽에서 크게 휘돌면서 상당한 넓이의 퇴적지를 만들고
바로 앞 물길이 휘돌아나가는 곳에는 깊은 소까지 만들어져있어 여름에 물놀이하고 놀기엔 그만이다.


휘돌아드는 강물 위에는 잘 닳은 강돌들이 징검다리처럼 지천으로 쌓여있다.
강물은 얕아서 여기저기 이어져 있는 강돌을 디딤돌 삼아 강물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물이 휘돌아드는 곳에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바지를 걷고 강물을 건너 물이 돌아드는 계곡 위로 올라가서 살펴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지만
발길을 돌려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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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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