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방영된 스펀지 ZERO 국수로드 '전설의 국수를 만나다'편에서는

'경주 회국수', '구룡포 모리국수'와 함께 '안동 건진 국수'를 소개한 적이 있다.


하회탈춤 놀이마당에서 비롯되었다는 안동 건진국수는

양반가에서 여름철 손님 접대 음식으로 많이 올리는 음식인데

안동 지방 종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건진국수를 제삿상에 올리기도 할 만큼

안동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잘 알려진 별미음식이다.

 

하지만 종잇장처럼 얇게 반죽을 밀어 가늘게 썰어내고 은어로 육수를 만드는 건진국수는

그 만드는 방법이 심히 까다로워 종가집 종부들도 만들기 힘들어 하는 음식이라

지금은 안동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필자 또한 건진국수에 대한 기사를 접한 이후 한번도 맛보지 못한

안동의 전통 별미 건진국수에 대한 호기심을 잠재울 수가 없었지만

안동에 갈때 마다 살펴봐도 건진국수를 하는 곳을 쉽게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안동 부용대에 위치한 옥연정사에서

건진국수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동에 이르러 오후 늦게 옥연정사의 문을 두드렸다.

멀리서 온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 옥연정사 지킴이 김상철씨.

그분의 말로는 옥연정사에서는 건진국수를 할줄 아는 사람이 없고

부용대 마을 입구에 사는 박재숙이라는 분이 건진국수를 한다고 전화를 해 보란다.

상시로 음식을 하는 식당이 아니니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 것이 필수라는 말을 듣고

박재숙씨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저녁에 건진국수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밀어놓은 국수면이 있어 국수를 말아줄 수 있으니 조금 있다 오라고 한다.

 

 

 

 

예약해둔 일곱시가 되어 옥연정사를 나와 들어왔던 길목으로 다시 돌아나오니

박재숙 농가민박이라는 팻말을 세운 붉은 벽돌 양옥집이 부용대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입간판에 '박재숙이 직접 만든 손두부와 건진국수'라고 쓰여 있는 이집은

외관은 식당과는 거리가 멀고 그냥 농가에 흔히 있는 잘 지어진 양옥에 불과해 보인다.

 

 

 

 

모기장으로 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헉! 여기는 식당이 아니고 그냥 살림집이 아닌가?

"어서 오이소~! 거기 거실에 시원한 돗자리 위에 앉으이소~"인사한 후 다시 싱크대 앞에 서서 

준비에 바쁜 박재숙씨의 모습은 우리네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들의 정감어린 모습이다.

  

"며칠전에도 MBC에서 사유리가 와서 찍어갔다 아닌교~ 금요일 7시에 나온다니 한번 보이소~"

MBC 금요 와이드의 사유리의 식탐 여행에서 건진국수를 취재하고 간 모양이다.

스펀지에 소개된 이후 TV, 잡지 등 여러 매체에서 워낙 취재를 많이 하고 간지라

평범한 농가의 아낙 치고는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주방의 놓인 상 위에는 이미 여러가지 반찬들이 잘 차려져 있다.

국수 하나 시켰을 뿐인데 웬 반찬이 이렇게도 많은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식탁 위에 놓인 채반 위의 칼국수면이 눈에 들어온다.

전화로 예약을 할 때 국수를 미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면 반죽을 준비해 두었다가

손님 앞에서 홍두깨로 반죽을 얇디 얇게 밀어 직접 손으로 써는 모습까지 보여드리기도 한다는데

방문한 시간이 너무 늦은데다 적은 인원으로는 새로 반죽을 밀 수도 없으니 그점이 못내 아쉬었다.

그나마 낮에 썰어둔 국수면이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에 헛걸음을 안 한 것 만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건진국수의 반죽은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되, 콩가루의 비율을 밀가루보다 많이 하고 계란과 물을 섞어 완성한다.

콩가루를 넣으면밀가루만 넣었을 때보다 점성이 강해져 반죽에 힘이 들어가서 더욱 얇게 밀 수 있는데

여름에 미는 반죽은 여느때보다 반죽을 더 단단하게 해야만 반죽이 홍두깨에 덜 달라붙는다고 한다.

 박재숙씨는 논농사와 더불어 콩 농사도 직접 지어 건진국수와 손두부를 만들어 낸다니 믿을만한 국수면이다.

 

그리고 면발이 입에 들어가면 녹아버릴 정도로 얇게 써는 것이 건진국수면의 특징인데

박재숙씨가 썰어둔 국수면 또한 아주 얇게 밀어 채 썰듯 얇게 썰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되어 있는지라 기다리면서 박재숙 아주머니가 국수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는데

건진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먼저 냄비의 물이 팔팔 끓으면 국수면을 끓는 물에 탈탈 털어넣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엔 쪽파를 한 줌 쥐고 냄비 위에서 가위로 대충 쑹덩쑹덩 썰어서 넣는다.

 

 

 

 

쪽파를 썰어넣은 후에 잠시 냄비의 뚜껑을 닫고 끓이다가

 

 

 

 

국수가 우르르 끓어오르면 냄비 뚜껑을 열고 찬 물을 한 사발 휘 돌려 넣은 후 다시 팔팔 끓이면 된다.

 

 

 

 

찬물을 넣은 국숫물이 다시 우르르 끓어오르면 뒤집개를 넣어 국수를 몇번 휘휘 저어준 후

 

 

 

 

팔팔 끓는 국수를 채반에 쏟아 열기를 제거한 후 차가운 물에 서너번 헹궈낸다.

흔히 먹는 제물칼국수는 육수에 삶아서 뜨거운 국물 채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서

건진국수는 삶아서 차가운 물에 헹궈 채반에 건져 먹는 국수라고 해서 이름이 '건진국수'가 되었다.

 

 

 

 

그 다음엔 고명을 얹을 차례. 계란 지단과 오이채, 김가루를 뿌려 먹음직스럽게 한다.

 

 

 

 

그리고는 고소한 내음이 절로 풍겨나오는 국산 참깨를 듬뿍 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힌 육수를 고명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부으면 끝이다.

본래 안동 건진국수는 은어를 푹 고아 육수를 만들었다는데 

요즘엔 은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지라 

그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닭이나, 다시마, 멸치 등으로 육수를 낸다고 한다.

오늘의 육수는 멸치, 북어, 다시마, 양파, 무를 푹 고아 우려낸 것이다.

 

 

 

 

자! 이제 안동 건진국수가 완성이 되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푸짐한 것이 먹기도 전에 입에 침이 스르르 고인다.

 

 

 

 

국수를 먹으려 하니 박재숙 아주머니가 황급히 잡곡밥을 한그릇 씩 떠서 옆에다 놓아 준다.

원래 건진국수는 기장밥이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기장밥이 준비되지 못했다고 미안해 하면서.......

 

 

 

 

준비된 양념장을 한숟가락 떠서 국수 위에 놓고 시식하기 전에 사진을 한장 찍어 보았다.

이것이 안동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별미 건진국수라니 먹기도 전에 감개가 무량하다.

 

 

 

 

자! 이젠 사진도 찍었겠다.

휘이~~ 저어 양념장과 잘 섞이게 한 후 젓가락으로 걸어 올려 입 안으로 가지고 갈 차례이다.

 

 

 

 

 밀가루 보다 콩가루를 더 많이 넣고 계란을 넣어 얇디 얇게 밀어낸 건진국수면은

찬 물에 서너번 헹궈 내어 면발이 탱탱하면서도 쫄깃한데 그러면서도 목에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럽다.

멸치와 북어를 우린 육수는 전혀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고 또 시원하다.

시원한 육수와 고명 그리고 쫄깃한 국수. 그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졌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이 맛, 바로 정성이 가득한 건진국수의 맛이다.

이런 국수는 그냥 얌전히 먹을게 아니라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 맛이다.

 

 

 

 

국수와 함께 나온 반찬들도 풍성하다.

가지나물, 명이나물, 멸치조림, 오이와 풋고추, 잘 익은 김장김치, 그리고 양념장.

특히가지나물은 어쩜 이렇게도 맛나게 무쳤을까?

 

 

 

 

국수만 먹고도 이미 배가 어느 정도 불렀지만 곁들여진 잡곡밥을 안 먹어볼 수가 없다.

시원한 육수에 따끈하고 찰진 잡곡밥을 넣어 꾹꾹 말아서 육수와 함께 먹어본다.

국수 육수에 말아먹는 따끈한 밥이라니! 이것 또한 건진국수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혼자 먹기에도 양이 풍성한 건진국수를 잡곡밥을 말아 다 해치우고 나니 그냥 앉아 있는 것도 버거울 정도이다.

상 밑으로 다리를 뻗고 몸을 한껏 뒤로 제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니 제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국수를 먹는 동안 상 옆에 마주 앉은 박재숙씨(68세)는 민박 중인 아저씨들과 함께 이야기꽃이 만발이다.

스물두살에 시집 와서 68세가 되는 지금까지 꽃다운 젊음을 안동 풍천면 저우리에서 보낸

박재숙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해 주신 건진국수를 먹고 자랐다며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우리 할매가 음식 솜씨가 좋았는데 더운 여름날 저녁이면 언제나 건진국수를 해 주셨어요."

무더운 여름날 밖으로 나가 놀다가 해가 어둑어둑 질 때 쯤 돌아와 먹던 할머니의 건진국수.

무더위에 입맛이 깔깔하던 여름 저녁에도 박씨의 할머니가 해 준 건진국수는

후루룩 후루룩 잘도 넘어갔다며 옛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할머니가 해 주던 건진국수를 먹던 그 소녀가 이제는 자신도 할머니가 되어

사라져 가는 안동의 별미 건진국수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람들에게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부용대를 가면 저우리 반장 박재숙씨의 건진국수를 맛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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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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