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경주.

좀체로 눈이 오지 않던 남쪽나라 경주에 내린 눈이었던지라 눈이 온다는 기쁨의 환호성도 잠시뿐

시내 곳곳에 교통 두절과 함께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나 북새통을 이루었던 하루였지요.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 기온이 급강하하면 내렸던 눈이 그대로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며 도로에 쌓인 눈이 녹아 통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이 밟고 다니지 않은 곳과 그늘진 장소에는 하얀 눈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는데........

 

 

 

 

 

아침에 첨성대 앞 도로를 지나다가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풍경을 마주치게 되었답니다.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눈쌓인 고분들 위에 이상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뭔가 하고 자세히 보니 하얀 눈이 덮힌 고분 위에 시커먼 줄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그어져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가까이 가보았더니......역시나! 였습니다.

누군가가 고분 위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온 흔적이 역력했어요.

삐뚤삐뚤 발자국을 남기며 올라간 흔적과 함께 눈썰매를 타며 내려온 흔적이 보기싫게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도 문화재 관리인들이 지키면서 사람들이 밟고 올라가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는 고분인데

하얀 눈이 곱게 내린 고분 위에서 마구 눈썰매를 타고 내려와 시커먼 흔적을 만들어 놓다니요!

 

동그란 고분 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인데

누군가가 자신만의 추억과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여러사람이 보고 누릴 즐거움을 희생시켜 버렸군요!

하얀 고분 위에 보기 싫게 그어진 시커먼 줄들은 보는 사람의 눈쌀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풍경입니다.

 

 

 

 

혹시나 하고 다른 고분을 보았는데 여기도 역시나! 군요.

바로 앞에 올라가지 말고 문화재를 보호해달라는 팻말이 버젓이 있는데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한무리의 중국 관광객들이 고분 위 눈썰매 자국을 손가락질하며 큰 소리로 떠들며 지나갑니다.

우리나라의 좋은 것만 보고 가야할 외국인 관광객들 보기에 정말 부끄럽게 짝이 없는 광경이네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 의식은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반월성, 대릉원 근처의 모든 고분 위에는 사람들이 눈썰매 타고 내려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얀 눈이 고분 위에 곱게 쌓인 모습을 보고 싶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겐 정말로 고개 돌리고 싶은 풍경입니다.

 

 

 

 

반월성 앞을 떠나 대릉원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고분 봉황대로 가보았습니다.

'봉황대는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니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설마 눈썰매를 타기야 했을려고?'

이렇게 생각하며 봉황대로 가보았지만 여기도 마찬가지군요!

고분의 규모가 큰 만큼 봉황대에는 사방에서 올라간 흔적, 썰매 타고 내려온 흔적으로 완전 난리가 났습니다.

 

몇년전에 봉황대 위에서 스노우보드 타던 사람의 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올랐던 일이 기억나네요.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개념 말아먹은 인간이라고 욕 많이 했던걸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텐데

이곳에 올라간 사람들 역시 남들에게 욕 얻어 먹는 것 쯤이야 아랑곳하지 않는 분들인가 봅니다.

 

경주 시민들 중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 어릴적엔 고분 위에서 씨름하며 놀았고 눈오면 왕릉 위에서 비료 푸대 타고 내려오며 놀았는데 뭐 어떠나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릴적 추억처럼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그런건데 그게 뭐 나쁘냐고.......

 

맞습니다. 한 사람 쯤 고분 위에서 눈썰매 타고 내려온다고 사실 고분이 망가지는건 아니겠지요.

문화재 보호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에는 첨성대 위에 떼로 올라가 수학여행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 하나 쯤이야 하는 어때! 란 생각을 가지고 문화재를 훼손하는 일을 한다면

백년 이후 우리가 자손에게 물려 줄 문화재는 과연 얼마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까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들이 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다양한 경험과 귀중한 추억이

'고분 위에 올라가 눈썰매타는 일'이라면 그런 경험과 추억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왕릉이나 고분 위에 몰래 올라가 신나게 눈썰매 타고 놀았던 우리 아이들의 추억이

나중에는 남들에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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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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