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기행 / 박세현

날 좋네 읽던 소설 놓고 나는 가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 내려 오래 걷네
모처럼 얻은 햇살 한 줌 쥐고 북촌을 쌀쌀거리네
여기저기 저기여기 갔던 길 다시 가고 또 가고
커피도 마시고 전화도 걸고 친구도 씹고 세상도 씹고
문학도 씹고 대가도 씹고 소가도 씹고 행인들 모르게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걸어가네
사람은 악착같이 변하지 않네 변하는 것은 세월이지
정독도서관 앞에 나를 멈춘다
급조한 법정다큐를 조조할인으로 본 영화관이
눈앞에 있네 그때 관객은 딱 한 명, 나뿐이었음
화상의 무소유설법이 극장판으로 상연된 것
금년 가을 햇살 꽤 푸지네 맘에 막 달라붙네
손으로 그것을 뜯어내고 살갗에 다시 부비며
북촌 어딘가를 부지런히 기어가네
내 앞을 휙휙 지나가는 여자들
세상의 여자들은 이제 다 젊은 여자들이네
상상의 원천들이여 조금만 느리게 지나가시라
각본 연출 주연이 모두 한통속이었던 하루
북촌에서 가을을 다 살았네
나는 지금도 서촌으로 건너가고 있는 중이네

박세현 / 「저기 한 사람」 / 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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