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외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번은 외워 보았던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이지요.





충신중의 충신, 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임고서원이 영천시 임고면에 있다기에 찾아 보았습니다.

포은 정몽주의 고향은 포항시 영일군이고 그는 개성의 선죽교에서 죽었는데

왜 이곳에 정몽주를 기리는 서원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영천 부래산에 포은 부모의 묘가 있다고 하네요.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년)에 포은 부모의 묘소가 있는 부래산에 창건되어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되고 선조 36년(1603년)에 현 위치에 중건하여 재사액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임고서원은고종 8년(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5년에 복원하였으며 

1980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네요.





서원 입구에 엉뚱하게도 개성에 있어야 할 선죽교가 있더군요.

고려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일파에게 피살 된 장소가 바로 선죽교이지요.

원래는 선지교라고 불렀던 이 다리는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에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나와다고 해서 선죽교라고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선죽교에는 원래 돌난간이 없었으나 정조 4년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개성유수로 부임하여 

정몽주의 유적인 선죽교에 우마차가 다님을 안타갑게 생각해서 난간을 둘러

통행을 제한하고 바로 옆에 좁은 돌다리를 가설하였다고 해요. 





선죽교라는 돌비석의 글은 한석봉의 글로 개성 선죽교의 돌비석을 탁본하여 그대로 세웠다고 하구요. 





 정몽주가 피살된 장소란걸 떠올려주는 붉은 핏자국도 선명하게 재현을 해두었습니다.





서원 입구에는 서 있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는 부래산 서원이 있던 나무로 

임고서원이 현재로 이전해 올 때 옮겨 심은 나무라고 하네요.





서원 왼쪽의 작은 건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회철되었다가 1965년에 복원된 구서원입니다. 





현재는 문이 잠겨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새로운 임고서원의 정문 역할을 하는 영광루를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이 서원 강당인 흥문당이고 좌우에 동재와 서재, 전시각이 배치되어 있었어요.



























서원 강당인 흥문당 뒤에 제향 공간인 문충사가 있는데요. 문충사의 입구는 유정문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서원에는 강당, 동재, 서재, 고직사, 사당 등의 건물로 이루어진 것이 보통인데요.

임고서원은 포은유물관을 비롯해서 많은 건물들이 경내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서원 앞 언덕인 조용대에 올라보니 구서원과 현서원, 은행나무, 선죽교 모형까지 한눈에 훤히 다 보였는데요.

충효의 고장인 영천시가 포은 정몽주 선생, 최무선 장군, 노계 박인로 관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다른 서원에 비해 무척 잘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

역사책에서 배우던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임고서원.

배우는 아이들과 함께 현장 학습으로 다녀가기 좋은 서원이라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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