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대마도) 가장 북쪽의 마을 카미쓰시마 쵸 와니우라 뒷산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 만든 팔각정 건축물로 1997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는 서울 파고다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는데

한국 정자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곳은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의 거리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제도와 부산시의 윤곽을 육안으로 뚜렷이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국경의 섬' 임을 실감케 하며 밤이면 부산 광안대교의 불꽃이 환하게 비친다고 한다.

 

 
부산의 모습이 보이나 하여 눈을 크게 뜨고 바라 보았지만 이 날 따라 마침
흐린 날씨로 인해 부산 앞 바다의 모습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 장소라 잘 도착 했다는 안부 전화를 걸 수 있는 장소라고 하여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안테나는 뜨긴 하지만 통화는 연결되자 금방 끊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대마도 전역이 통화 가능권이었으나 2004년 우리 나라 '스펀지'에 소개될 당시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 지역은 한국땅입니다"라는 멘트가 문제가 되어

일본에서 방해 전파를 발생시켜 지금은 한국 전망대 외의 지역에선 통화가 수월치는 않다.
 

  
포구 앞쪽에 동서로 길쭉하게 보이는 섬은 '우니지마'로 우리 말로 해율도(海栗島)이다.

 

 
이곳에는 현재 일본 해상 자위대의 레이더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섬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와니우라'를 보호하고 있다.

 

 
대마도에는 우니시마의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와 오오우라(大浦)에 해상자위대가 있으며
이즈하라(嚴源)에는 육상자위대가 있어 군사적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경의 섬이다. 

 

 

한국전망대 바로 옆에는 조선역관사 순국비(朝鮮譯官使 殉國碑)가 서있다.
숙종 29년(1703년) 2월 5일(음력) 청명한 아침에 부산을 떠난 한천석 이하 108명의 조선역관 일행과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측 역관 4명이 저녁 무렵 대마도의 와니우라 입항 직전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애석하게도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 비는 이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위령비이다.

당시는 수장된 사람들의 명단을 알지 못했는데 대마도주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종가문집을 정리하던 중 사망자들의 명단이 발견되어 순국 400주년을 맞이하는 2003년 3월7일에 순국자들의 이름을 적어 추가로 건립했다. 
기단석은 112개의 돌로 쌓아 당시 희생된 112명을 추모하는 뜻이 담겨져 있으며 일본어와 한국어로  유래와  당시 사망한 112명 역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대마도 최서북단에서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의 거리....
대마도에서 일본까지의 거리에 비해 대마도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반도 안 된다.
그렇게 가까운 섬이 우리 땅이 아니고 일본 땅이라니...
남 주기 아까운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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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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