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대릉원, 불국사, 석굴암.......
국보급 유물과 유적이 넘치다 못해 발끝에 채이는 신라 천년 고도 경주.
신라 도읍지인 경주에는 의외로 조선 시대 문화 유산도 많다.

그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곳은 작년 8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 유엔국제과학문화기구)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안동 하회 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안게 된 양동마을.
그리고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강 옥산서원이다.





경주 안강읍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28번 국도에서 약간 벗어나서 옥산리로 들어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너럭바위와 그림같이 흐르는 물줄기를 거느린 유서깊은 서원 옥산서원을 만나게 된다.





옥산서원 앞에 이르니 봄햇살이 너무나 따사롭다.
고개를 들어 역락문 앞 고목을 보니 앙상하던 나뭇가지에도 이제 꽃봉오리 터질 준비가  다 되었다.






사적 제154호로 지정된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5년인 1572년에 경주 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한 서원이라고 한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을 살며시 밀어본다.
삐거억.....소리에 놀라 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다.

 




역락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앞에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누각 무변루(無邊樓)가 가로막고 있다.
문들이 다 닫혀 있어 상당히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서원 안쪽에서 보면 문이 없는 이층 누각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특이한 형태이다.





무변루 아래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나즈막한 야산을 뒤로 두르고 들어 앉은 서원의 마당이 나타난다.






정면에 자리잡은 건물은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고
좌우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은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은수재이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체인묘,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실,
이언적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경각, 판각 등이 있다.





1572년 창건한 옥산서원은 1574년에 선조대왕으로 부터 편액,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賜額)서원이 되었는데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구인당의 정면에 걸린 옥산서원의 편액(扁額)은 원래 이산해의 글씨였으나,
1839년 불에 타버린 구인당을 새로 지을 때에 추사 김정희가 다시 쓴 글씨라고 한다.




경주와 포항 사람들에게 옥산서원은 보배같은 휴식처이다. 

서원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맑은 개울물이 펼쳐지고
회재 이언적 선생이 수학하던 독락당도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오는 이를 반겨준다.

 




특히 서원 바로 앞에 넓게 펼쳐진 너럭바위 사이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는데
타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도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하면 금새 등줄기에 맺힌 땀이 다 말라버린다.




그림같이 펼쳐진 너럭바위와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옥산서원의 멋진 풍경은 
사진 동호인들이나 화가들에게 너무나 좋은 피사체이다.





이날도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을 멋진 필치로 화폭에 옮겨 담는 화가들을 만났다.




하얀 화선지 위에 슥슥슥.......붓을 움직이면 산이 펼쳐지고 서원이 세워지고 나뭇가지도 구불구불 자라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옥산서원, 그리고 화가의 예리한 붓끝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옥산서원.
경치도 그림이 되고.......그림도 경치가 되고......하나로 녹아들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사시사철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 바로 안강 옥산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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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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