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부모님을 만나뵈러 시골에 내려갔다.
아버님은 큰 수술을 하신 후라 아직도 건강이 안 좋으신데도
바쁜 일을 핑게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럽기만 하다.

집 앞에 차를 세우니 저 멀리서부터 강아지 유순이가 꼬리를 부산하게 흔든다.
자주 보지 못해도 자기 식구는 용하게 알아보는걸 보면 정말 신기하게 생각이 든다.

시댁 마당에서 기르는 강아지 유순이는 유기견을 입양하여 키운 개인데

처음에 시댁에 왔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 꺼칠하던 털도 보들보들해져서
이제야 제대로 된 강아지 꼴이 나는 것 같다. 



(포스팅에 인용한 독거견 발바리의 사진은 지난 2월의 사진인데 지금도 별로 자라지 않았다.)


현관에 들어가기 전에 마당에 주저 앉아 유순이 머리부터 쓰다듬어 주고 있으려니
앞집 개가 쪼르르.....달려와 마당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쯧쯔쯔.......손짓을 하며 불러도 겁먹은 표정으로 경계하며 좀체로 사람의 손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마당에 서 계신 아버님께 "아버님, 앞집 개는 이름이 뭐에요?" 하고 물으니
"개가 개지.....무슨 이름이 있나....."하신다.
하긴 시댁의 개도 이름도 없이 그동안 "워리~ " 라고만 불리웠는데
유기견이란 뜻으로 손자들이 '유순'이란 이름을 붙여준 정도이니 앞집 개 이름을 아실 리가 만무하다.





앞집 개 발바리는 사람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른바 <독거견>이다.
지난 설날에 왔을 때 개 혼자 앞집에 살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듣고 듣는 귀를 의심했는데
아직도 발바리는 주인이 없는 빈집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발바리가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사는 사연은 이러하다.

올해 64세가 되는 앞집 아저씨는 가족도 없이 발바리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하나 뿐인 아들은 초등학교 때 가출해 버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상태일 뿐 아니라
불화를 거듭하던 부인과도 마침애 이혼한 후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오던 아저씨는 
농사를 짓거나 노동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작년 추석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오트바이를 타고 가던 중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병원에서 한달 가량 투병하던 아저씨는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는데
이 와중에 아저씨와 단 둘이 살던 발바리는 그만 영문도 모르고 빈집에 혼자 남겨지게 된 것이다.





주인이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리자 발바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 그만 빈집에 혼자 버려지게 되었다.
시골에는 한집 건너 한집 꼴로 빈 집이 늘어가는 추세인지라 주인이 비명횡사한 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올리가 없으니.....
발바리는 주인 없는 빈집에서 혼자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 겨울을 이겨내어야 했다.





개 주인이 죽고 혼자 살고 있는 발바리를 불쌍히 여긴 동네 주민들이 먹고 남은 밥을 간혹 갖다주기는 했지만
제대로 돌봐 주기가 힘든지라 개밥을 책임지는 것은 거의 우리 어머님의 몫이 되어 버렸다.
당신이 드시는 것 보다 남 도와주는 걸 더 즐거워하시는 천성을 가지신 우리 어머님은
하루에 한번씩 앞집에 들려 개밥을 챙겨주고 개가 잘 있나 보고 가곤 했는데
올해 음력설이 지난 어느날 이 발바리는 귀여운 강아지를 7마리나 낳게 되었다.

주인없는 앞집 개의 출산을 본 아버님은 개가 추울까봐 집에 있던 헌 담요를 개집 안에다 둘러주기도 하고
어머님은 "사람도 자식 낳으면 몸을 추스리고 음식을 잘 먹어야 회복되는데
개도 새끼를 낳았으면 음식을 제대로 먹어야 젖도 잘 나지....."하시면서 
출산한 발바리가 굶주리지 않도록 매 끼니 개밥을 더 챙겨 먹이는 등 잘 돌봐 주었다고 한다.

발바리가 낳은 강아지들은 한마리 두마리....다른 곳으로 입양되어 가고 이제는 제일 비루먹은 강아지 한마리만 남았다.
사람이나 개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매한가지인지
어미 발바리는
절대로 저 먼저 밥을 먹지 않고 새끼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밥을 먹는다고 한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혼자 지낸지 이제 8개월 여..... 
집에서 기르는 개 유순이의 개밥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앞집 개밥까지 챙겨먹이기가 너무 힘에 겨웠던 어머님은
개의 목줄을 풀어놓아 자유롭게 다니도록 했다.
봄이 된 지금 발바리는 온 동네를 쏘다니며 주민들이 던져주는 음식물 찌꺼기도 얻어먹고
남의 개밥도 슬쩍슬쩍 훔쳐먹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각설이 발바리>가 된 것이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혼자 지내는 이 발바리를 보면 정말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개들이 가장 우렁차게 짖을 때가 주인이 개들과 함께 있을 때라는데

발바리는 주인과의 행복했던 지난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까?
이 발바리는 주인이 죽은 것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면 저녁 마다 주인이 올까.....하여 오늘도 동구 밖에 나가 주인을 기다리지는 않을까?
오늘도 빈집 벽에 기대어 멍하니 문밖을 응시하고 있는 발바리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측은하고 보는 사람의 가슴마져 찡해진다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을 혼자서 이겨내고 살아남은 독거견 발바리.
주인 잃고 홀로 살며 이겨내야했던 아픈 상처를 한시바삐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발바리를 입양해서 잘 보살펴줄 수 있는 새로운 주인이 한시바삐 나타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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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발바리가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주워 먹었는지
아침에 보니 구토를 하고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산짐승을 잡기 위해서 약을 친 음식물을 잘 못 먹고 탈이 났나 봐요.
좋은 집으로 입양되어 갔더라면 죽지 않았을텐데.....
주인 옆으로 간 발바리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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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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