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던 날의 일이다.
일이 없다는 해방감으로 하루종일 너무나 편안하게 소파에서 뒹굴거리다
8시가 다 되어서야 거실에다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TV를 보며 기분좋게 밥숟가락을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젯밤 일이 머리에 번득하고 떠오른다.

평소보다 늦게 돌아온 어제 저녁.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고 하니 당최 빈 자리가 없다.
길가에 위치한지라 옆 상가 사람들이 주차하는 일이 빈번해 주차난이 심각한 편인 우리 아파트.

"아! 이런.....시간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니.....지하 주차장에 넣기 귀찮은데....!"

저녁 시간에는 주차 단속을 하지 않으니 도로에 세워 두었다가 내일 아침 출근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도로에다 주차를 한후 키를 빼려고 하니 내일은 출근 안 하고 외출 계획도 없는 날이라는게 생각난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내려와 차를 다시 주차장으로 넣으면 되겠지....뭐.....이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 리. 고. 는......
차를 도로에 그대로 세워 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루종일 집 안에서 느긋하게 뒹굴거리다가 저녁밥을 차려놓고 첫술을 뜨는 순간 어제 일이 번득하고 떠오른 것이다.

"어......여보야! 나 어젯밤 도로에 차 세워두고 들어 왔는데 지금까지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네!"
"어......그래?  베란다 문 열고 한번 내려다 봐. 재수 없으면 견인해 갔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보이는 도로에 주차해 둔지라 베란다 문을 열고 고개를 쑤욱 내밀어본다.

이쪽......그리고 저쪽......두리번 두리번......
도로에 주차된 차는 많은데 아무리 살펴봐도 내 차처럼 생긴 차는 눈에 뜨지 않는다.
이. 럴. 수. 가.....!
"엄마야! 내 차 안 보이네...... 어떻게 해! 차 견인해 갔나봐!"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되며 어제 일도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갑자기 차를 어디에 세워두었는지도 당최 생각나지 않는다.
"나 술 마신거도 아닌데 왜 이러냐.....정말 황당하네. 지금 내려가서 차 찾아볼께."
황급하게 옷을 주워입고는 키를 들고 아래로 내려와 보니

어젯밤 차를 세워둔 도로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차도 없고 견인 스티커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길 바닥이나 전봇대에다 견인 스티커를 붙여놓은건 아닌가? 하고
다른 차의 아랫 부분도 살펴보았지만 스티커도 견인해간 흔적도..... 아무 것도 없다.

혹시나 지하 주차장에 넣어두곤 기억 못한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아파트 주변을 빙 돌며 이리저리 리모콘을 꾹꾹 눌러 보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 내 차!


힘없이 집으로 다시 들어와서는 경주 견인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네~ 경주 견인 대행 사무소입니다"
"아......네......혹시 제 차가 견인되어 있나 해서요."
"차 번호가 어떻게 되는데요?"
"03무 45** 인데요."
"네.....차는 여기 있는데요. 8시에 업무 종료되어 오늘은 찾아가실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찾아가세요."
"네??? 그러면 곤란한데요....ㅠㅠ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해요."
"지금은 제가 밖에 나와서 찾아가실 수 없어요. 대신 8시 이후로는 견인 수수료가 더 나오지 않게 조치해 두겠습니다."
"으윽! 그러면 제가 너무 곤란한데요. 지금 10분만에 날아서 갈께요~~~오늘 차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 드립니다~~!"
오늘 차를 찾지 못한다는데 몸이 달아버린 필자, 억지를 쓰며 마구 마구 부탁을 했다.
필자의 계속되는 간청을 뿌리치지 못한 담당 직원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그러면 제가 근처에 있어서 지금 다시 사무실로 갈테니 10분만에 꼭 오셔야 합니다."
"아......네!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휑하니 갈꼐요~!"

부랴부랴 윗옷만 걸쳐입고 남편이 모는 차를 타고 경주시 견인 사무소로 가니 담당 직원이 먼저 와 있다.
"도대체 차를 언제 끌고 간거에요? 하루종일 집에 있었는데 차 치우라는 경고 방송도 못 들었는데요."
"차는 낮 12시 쯤 견인되어 왔구요. 요즘은 경고 방송 없이 이동 카메라에 찍히기만 하면 바로 견인해 갑니다."
"그래도 어쩌면 그렇게 소식도 없이 끌고 가 버릴 수 있나요......ㅠㅠ"
"차에 연락 번호가 없고 등록 전화 번호로 전화 드리니 전화 연결 안 되던데요?  죄송합니다. 견인 수수료는 38,000원입니다."
헉.....차 견인 당하고 수수료가 38,000원이라니.....내일까지 두었으면 더 나올 뻔 했구만.
울며 겨자먹기로 결재를 하고 견인 사무소에 세워둔 차를 찾아서 앞에서 운전하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싹! 잊어 먹을 수가 있었는지......
"나 요새 왜 이러냐.....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하루 종일 생각도 안 나고 싸그리 잊어먹을 수가 있지? 나 아무래도 건망증인가 봐!"

그래도 착한 남편은 나무라지 않고 이렇게 말해준다.
"당신 요즘 한군데 너무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다른게 생각 안 나나 봐."한다.





그 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고 나와 어제 차가 서 있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봇대 아래 보도에 훼손된 채로  붙어있는 견인 스티커가 보인다.
아마 어제는 견인 스티커 위에 누가 쓰레기 봉지를 올려두어서 발견하지 못했던가 보다. 


건망증으로 이런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보니 
오래 된 TV 프로그램 "앗! 나의 실수!"에 나왔던 어떤 아주머니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귀하게 키운 딸의 결혼식날 아침, 결혼식장에 가려고 머리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미용실에 들른 아주머니.
머리를 약간 다듬고 드라이하려고 미용실 의자에 앉으니 머리를 만져본 미용사가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사모님.....머리가 많이 풀렸네요......파마할 때가 다 됐구만."
"아이구, 그래요? 그럼 파마를 해야지~ 이쁘게 말아 주세요~"
딸 아이의 결혼식에 가려고 머리하러 왔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까맣게 잊어버린 아주머니.
파마 머리를 말고.....기다리고......중화제 치고 .....감고......다시 말리고......
파마의 모든 과정을 다 마치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이구, 사모님 머리 참 이쁘게 잘 나왔네요."
"그러게요. 오늘 머리 참 맘에 드네요. 수고 하셨어요~!"

파마를 다 하고 미용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앗! 오늘 우리 딸 결혼식!!"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가니 어머니가 없는 가운데 결혼식은 이미 끝이 났더라나!

연세가 드신 분들의 건망증이야 그렇다 치고 나이가 젊은 분들도 몹쓸 건망증은 피해갈 수 없는지
30대 초반인 어떤 주부는 TV 리모콘이 없어져서 하루 종일 찾다가 할수 없이 새 리모콘을 사기까지 했는데
그 다음 날 냉동실 문을 여니 리모콘이 거기에 떠억하니 들어있더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필자도 얼마전에는 연이은 추운 날씨 때문에 밤에 전기요에 따끈하게 불을 넣고 잤는데 아침에 끄는 것을 깜빡 하고 출근해버려
저녁에 돌아와 뜨끈뜨끈해진 침대를 만지는 순간 머리털이 쮸삣했던 경험도 있는지라 
혹여 이런 증상이 심해져 <딸래미 결혼식날 파마하러 가는 무시무시한 건망증>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깜빡 하는 건망증으로 인해 견인 수수료 38,000원에 불법 주차 과태료 40,000원까지 물게 된 필자.
여러분은 건망증으로 겪은 이런 황당한 경험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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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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