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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으로 알려져 있는 대구 동산 의료원 언덕 위에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같은 기독교 순교자 묘지가 자리잡고 있으니

바로 '은혜 정원(Garden of Mercy)'이다.





의료 박물관이 된 선교사 챔니스 주택 아래편에 위치한 은혜의 정원에는 10개의 묘석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데

대구,경북 지방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가 묻혀 있다. 

찾아주는 사람 별로 없이 대구 경북 지역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를 찾아온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녀가는 외로운 묘지.

하나님의 나라와 꺼져가는 조선 땅을 위해 낯선 땅에 뼈를 묻은 선교사들과 그들의 선교 활동을 비문과 참고 글에서 찾아 소개해 본다.



처녀 순교자였던 마르타 스윗츠(Martha Switzer)선교사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뉴욕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써 
본국에서 보장된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몸 바친다는 각오로 해외선교를 자원하여
1911년 대구땅을 밟은 뒤 월급도 받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사유 재산까지 다 바쳐 가며 사역하였다.
그녀는 대구명도학원에 2천원의 거금(당시 쌀 한가마 10원)을 내고
연합회가 제일동포를 위해 전도사(강성숙)를 파송하자 남은 유산 550원마저 기부하였다.
바로 그녀가 남긴 유산으로 일본 나고야와 만주 한인촌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명예나 보수를 바라지 않은 진정한 사역자였으며 교회를 찾은 조선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헌신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대구땅에서 18년간 봉사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천하였다. 



넬리 딕(Nellie Dick Adams,탁넬니)은 대구 최초의 장로교선교사인 아담스(Adams,안의와,安義窩) 선교사의 아내이다.
그녀는 1897년 11월 1일에 3개월 된 장남 에드워드(안두화 : 계명기독대 창설)를 안고 태평양을 건너와
대구 지역에 발걸음을 디딘 첫번째 여자 선교사였다.
날마다 대구 땅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넬리 딕은 남문안 예배당(대구 제일교회)의 유년 주일 학교를 창립했고
제일교회 부인 주일학교 교장, 전도부인 담당, 부인 사경회 인도와 순회 전도, 신명학교 출강,
정규 전도 부인 강습회 출강 등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러다 1909년 10월 31일 넷째 아이의 유산 후유증으로 43세의 나이로 숨져 고국을 떠나 대구 은혜정원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넬리 딕의 쌍둥이 자매 진(Jean)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넬리 딕 선교사의 묘에는 "She is not dead but sleepeth(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니)"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도 이 땅과 이 땅에 있는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영혼은 살아서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쏘텔(Chase Cranford Sawtell,사우대)은 1881년 1월 9일에 출생하여 ,
1907년 10월 16일 신혼의 나이에 이름도 잘 몰랐던 한국땅, 그리고 대구라는 곳에 왔다.
그에겐 한 가지 꿈이 있었으니 그것은 대구 선교를 넘어 더 내륙지역이고 당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던
경북 북부 지역 안동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는 안동땅을 향해 기도하며 대구에서 그 곳으로 가기위해 준비하던 도중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죽게 되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I am going to love them." 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자신은 죽지만 여전히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죽음에 가슴 아파한 동료 선교사들은 쏘텔의 소망을 간직하고 자신들이 안동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렇듯 쏘텔은 안동땅에 복음한번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오히려 한알의 밀알이 되어 더 많은 열매를 안동땅에 맺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타 스콧 브루언(Martha Scott Bruen,부마태)선교사는 남편인 브루언(Bruen,부해리) 선교사를 따라 1902년 5월 10일 대구 땅에 왔다.
남문안 예배당 구내 초가에는 존슨의 부인 에디스 파커가 소녀들을 위한 바느질 반(sewing class)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르타 스콧 브루언은 그 소녀들을 대상으로 신명여자소학교를 설립하였다.
1907년에는 동산 위에 있던 부인용 사랑채에 신명학교를 설립하여 대구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화이트하벤에서 1875년 출생한 그녀는 
제일교회 부인주일학교 교사와 농촌교회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부인사경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1930년 10월 20일 5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르타 스캇 브루언 선교사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원래 조선을 향한 선교의 마음이 없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브루언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브루언을 도와 자신이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태평양을 건너올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사랑과 내조가 있었기에 브루언 선교사의 사역과 대구땅에 여성학교 교육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딸들도 은혜 정원에 함께 나란히 묻혔다.



은혜정원에는 대구땅과 조선을 위한 선교의 삶을 사시다 묻히신 분들 외에도 곳곳에서 작은 묘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선교사 자녀들의 무덤인데 버디 핸더슨(Buddy Henderson)은 계성학교의 교장 핸더슨(Henderson, 현거선)의 아들로
1920년 6월 5일에 출생해 1921년 9월17일로 단명했다.



루스 번스턴(Ruth Bernsten)은 구세군 대구지방관 번스턴(Brigador Arnold Bernsten)의 딸로 스웨덴 사람이다.
아버지 번스턴은 6.25 이후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웨덴 대표로 내한한바 있다.
루스 번스턴은 1918년 10월 7일 출생하여 1919년 1월 28일 사망했다.
그녀의 묘비에는 “Our Darling Rut"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바바라 챔니스 (Babara F. Chamness)는 북장로교 선교사로 1925년에서 1941년까지 대구에서 근무한
챔니스(O.Vaughan Chamness, 차미수) 션교사의 딸이다
챔니스 선교사는 애락원에서 농사와 축산을 지도했으며 애락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조엘 로버트 핸더슨(Joel Robert Henderson)은 남침례교 선교사 Willie G. Henderson의 아들로
1964년 태어나서 몇 시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헬렌 맥기 윈(Helen McGee Winn)은 북장로교 윈(Rodger E. Winn,인노절) 선교사 부부의 갓난 딸이다.
윈은 안동에서 경안노회를 창설하고 안동성경학교를 설립한 분으로 헬렌 맥기는 1913년 11월 10일에 출생하여 열흘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었던지라
선교사의 자녀들은 태어나서 채 생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가운데 죽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먼 이국 땅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가운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자녀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들, 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사랑했던 조선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 분들의 마음에 있었기에.....
그들의 삶은 계속되고 이 땅에 선교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이다.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 은혜정원 표지판의 글에서--
 
참고 포스트 : 의료 선교 박물관(http://blog.naver.com/mslee1116)
                   메디 시티 - 건강(http://blog.naver.com/msl903)
관련 포스트 : 청라 언덕이 어딘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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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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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바구™ 2009.05.22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꼭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 BlogIcon 라이너스™ 2009.05.22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비님의 포스팅을 보다보면
    대구 출신인 제가 부끄러워지네요.ㅎㅎ
    어찌나 많은곳을 아시는지^^

    • BlogIcon 루비™ 2009.05.22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부모님도 대구에서 출생하신
      순수 대구 토박이인걸요...
      라이너스님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못 하네요~ㅎ

  3. BlogIcon 세미예 2009.05.22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4. BlogIcon pennpenn 2009.05.22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의 명복을 빕니다.

  5. BlogIcon *저녁노을* 2009.05.22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듣는 곳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김천령 2009.05.22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가 있는 곳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7. BlogIcon 털보아찌 2009.05.22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국땅 멀리까지 와서 순교한 사람들도 정말 많군요.

    • BlogIcon 루비™ 2009.05.22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414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혀 있는 양화진 묘지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곳이지만
      대구 선교를 위해 뼈를 묻으신 귀한 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죠.

  8. 이선민 2009.12.05 0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전 스웨덴에 사는 이선민이라고 합니다.
    오늘 루비님의 정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루비님께서 은혜 정원에 쓰신 글과 사진을 보았습니다. 귀한 내용과 사진들 감사합니다!
    궁굼한게 있습니다. 무덤중 Rut Bernsten 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 한국에서 활동하신 스웨덴 초기 선교사님들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5년전에 한국에 가서 양화진을 방문했고, 대구에도 갔었는데, 은혜의 정원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갔을땐 대구에 묻히신 스웨덴 선교사님 무덤을 찾으러 갔었는데, 대구에 여러 순교자 묘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가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양화진을 방문했을때 알게된것은 모든 구세군 선교사님들과 자녀들의 무덤이 2000년양화진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근데, 구세군에서는 Rut Bernsten 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있었습니다. 3년전에 제가 구세군에게 정보를 알렸는데....
    구세군에서 모르고 있는것을 루비님께서 어떻게 아시는가 궁굼합니다. 은혜정원에 그런 정보가 있읍니까?
    제가 루비님의 정원을 알게된 이유는 오늘 Arnold Bernsten 선교사님 손녀딸한테서 이메일이 왔읍니다. 할아버지 이름을 google 했는데, 한국 site 에 찾아서 그 내용을 복사하여 저에게 번역해달라고....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은혜정원을 방문하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루비™ 2009.12.05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이선민님.
      먼 곳 스웨덴에서 제 블로그까지 방문해 주셨군요.

      저도 은혜 정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나
      은혜 정원을 포스팅하기 위해서 여러곳을 검색했고 특히 많이 참고를 한 사이트는
      (http://blog.naver.com/mslee1116)-의료 선교 박물관 (http://blog.naver.com/msl903)- 메디 시티 건강 사이트입니다.

      제가 조사해서 포스팅한 자료를 선교사님의 자손들이 보셨다니 보람이 있고 기분이 좋군요.
      한국 오시면 꼬옥 은혜정원에 들려보시길 바랍니다.
      위치는 위의 다음 지도에서 동산의료원이란 글씨를 누르시면 확인할 수 있답니다.

    • 이선민 2009.12.06 0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Arnold Bernsten 선교사님의 손녀따님은 은혜정원에 나온 Rut Bernsten 묘사진과 글을 선교사님의 따님께 보낸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의 따님들은 대구에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다들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이지요.... :-)
      정보와 은혜정원에 대한 귀한 사진들과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옛날에 한국서 헌신하신 선교사님들이 잊혀지지 않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지니
      기쁨니다!
      추운겨울 건강하세요!
      이선민드림

  9. tammyn0315 2010.03.01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혜정원 참 아름다운곳 입니다.. 저도 대구출신 입니다..동생,언니가 대구신명여중고를 나왔죠..
    저는 지금 미국 콜로라도에서 살고있읍니다..미국 선교사님 들이 한국인들을 위해 헌신하신 모습의 글을 보니 참
    너무감동스럽군요...이분들을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아 아멘....
    박 태임..

  10. 홍수자 2016.08.16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하세요?루비님!
    저는 대구근대골목 선교투어 해설사 홍수자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땅을 향한 선교사님의 사랑과 눈물 헌신의 사연을 간직한 은혜의 정원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분들께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스웨덴 번스턴구세군 선교사님 의 사연을 선민님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언제 다시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되면 꼭 뵙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대구의 양화진 은혜의 정원을 많은분들이 찾을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11. 권영완 2017.02.19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처럼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내친 김에 게시한 내용 중 몇 가지 수정, 보완하였으면 하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Chase Cranford Sawtell(한국 명 사우대<史佑大>, 1880∼1909)' 선교사에 대한 설명에서, 안동에 선교준비 중 별세한 것이 아니라 1908년 12월 1일, 안동에 도착하여 한 초가(현 안동교회 내에 있었음)를 사서 내외가 거처하면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이듬해 9월 전도여행 중 장티프스에 감염되었으나 참고 지내다가 위중해지자 대구로 오게 되어 동산병원에서 11월 16일, 29세 한창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유승준, 안동교회 이야기, 가나북스, 2006., 탁지일, 부산의 첫 선교사들,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7. 김승학 목사 신앙칼럼(170). 안동에서 순교한 선교 삼총사, 2017. 1. 30. , 청암 박정규 목사 고희기념논문집, 敎會와 歷史, 서울敎會史硏究所, 2009., 등 참고.
    2. ' Nelly Dick Adams'에 대한 설명에서, 묘비에 쓰인 'SHE IS NOt DEAD, BUT SLEEPTH'는 물론 설명이 틀리지는 않으나 보다 더 정확하게 밝힌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누가복음 9장 52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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