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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겠지만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어 유명한 동피랑 마을은 '동화의 마을'이 아니다. 

 재개발 지역이었다가 이 마을에 작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벽화들로 인하여 재개발이 유보된 이른바 통영의 달동네 지역이다. 

 동네 벽에 벽화가 그려진 이후부터 원근 각지에서 사진을 찍으러...또는 데이트하러...혹은 호기심으로
이 마을을 찾는 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지만 이곳은 관광지도 아니고 예술가들의 마을도 아닌
수십년간 마을을 스쳐 갔거나 또 지금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눌러 살아온 통영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동피랑 2길 9번지에서 관동대 3학년 고대연 학생이 벽화를 그리던 날.
동피랑의 골목 풍경과 벽화를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니
사진 찍지 마라..." 하시는 할머니의 불호령이 내린다.  

 흠칫 놀란 나는 곧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하며
"네, 할머니...안 찍을께요..그림 그리는 학생만 찍을거에요.."하고
고대연 학생이 벽화 그리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담은 후 학생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학생이 다시 벽화 작업을 시작하자 나는 담장에 기대어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 말을 붙여 보았다.
"할머니....참 이쁘시네요.....피부가 곱고 뽀얀 걸 보니 젊었을  때 진짜 이뻤겠다..."
하얗게 센 머리를 곱게 올백으로 넘기고 반달 눈썹을 이쁘게 문신한 이 할머니는
피부도 희고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젊었을 땐 한 인물 하셨을 것 같다.

"아이고~~다 늙어 빠진게 이뿌기는 머가 이뿌다고....내 나이가 이래 뵈도 팔십이다 ..아이가..."
"아이고~할머니 진짜 젊으시다....저는 칠십도 안 봤는데요...
팔십이신 할머니가 어찌 이리 주름살도 없으세요..?" 

나의 너스레에 할머니는 낯선 방문객에 대한 경계심이 금방 다 풀려지셨다.
"며칠 전에도 서울서 왔는 사람들이 내 사진 찍었다 아이가...
사진을 찍더이만 쪼끄만한 사진으로 금방 뽑아주데....
카메라도 코딱까리만한걸 가지고 말이다...니도 내 사진 찍어 가라"
하시면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신다.  

 "내 젊었을 때 놀러도 많이 댕기고 사진도 진짜 많이 박았다 아니가...
우리 집에 알밤(앨범)이 도대체 몇 권인지 아나..."
하시면서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 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포즈를 잡으신다. 

  "할머니...카메라 보고 웃어보세요~'하니 약간 어색하게 씨익 웃으시던 할머니... 
사진을 찍고 난 후 일어나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지난 번에 서울 사람들이 와서 찍어주고 갔다는 포라로이드 사진을 찾아와서 보여 주신다.
"아이구...할머니 되게 이쁘게 나오셨네요.
제가 찍은 할머니 사진 부쳐드릴께요...주소 가르쳐 주세요"하니
"토영시(통영을 토영이라 한다...여기선) 태펑로 ***번지....이맹연(이명연)...'
하며 낭랑하게 주소를 불러 주신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작별하여 돌아서려는 나를 이명연 할머니께서 붙드신다.
"우리 집 옥상에 함 올라가 봐라... 동네 잘 보이서 사진 찍기도 얼마나 좋타고.....
토영이 한눈에 다 뷘다...아니가...."

 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잠시 관심을 보이며 말을 붙였을 뿐인 낯선 방문객에게 할머니는
선뜻 자신의 집 옥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옥상에 오르니 할머니의 모습이 바로 아래로 보인다. 

이 동네에 몇 명 없는 어린이도 먹을 것을 질겅거리며 지나가고... 

 바로 옆집을 칠하는 고대연 학생이 옥상 위 물 탱크까지도 페인트칠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맞은 편 집 지붕 위 물탱크 옆의 이 정체 불명의 철상자는 머리 위 돌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손녀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는 이웃 아주머니와 인사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늘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른다.   

 옥상에 서서 허리를 펴고 앞을 바라 보니 할머니가 옥상 위에 올라가 보라는 이유를 알것만 같다.
통영의 강구안이 그대로 다 보이고 저 멀리 미륵산까지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에 자리잡은 동피랑.  

 해지는 쪽에 자리잡은 서피랑도 한눈에 다 들어 온다.  
노을 지는 것도 보기 좋고 야경도 기가 막히게 좋으니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영의 야경까지 찍어가라고 할머니는 연신 자랑을 늘어 놓으신다.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듯한 할머니에게 "할머니...저 동네 한바퀴 돌아보고 올께요~"말씀드리고
가파른 골목을 걸어 올라가니 대문 앞 여기저기에 동네 어른들이 앉아 계신다.
인사를 깍듯이 드린 후에 "그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으시죠.."하고 물으니
"아이구...말도 마이쏘~ 전번에는 사진 찍는다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남의 집 담에 막 올라가고 계량기 뚜껑 위에 올라가서 디뎌서 다 부셔놓고는
미안하다 하지도 않고 가버리데요.."하고 불평들이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그냥 얌전히 사진만 찍고 가면 얼마나 좋겠노..."하는 말씀들에서 주민들의 고충이 피부로 전해졌다. 

 골목을 더 올라가니 동백꽃이 이쁘게 수놓인 집 문 앞에
"어여쁜 황두리 할무이 항상 건강하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벽에 그려진 동백꽃을 찍고 있으니 마침 동피랑의 유명 인사 황두리(80) 할머니가 나오신다.
처음 보는 내가 고개 숙여 인사하니 할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인사를 받으시는데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우셔서 한 눈에도 정이 많으신 분이심이 느껴졌다. 

 동피랑을 찾는 방문객들의 사진의 또 하나의 대상은 주민들의 생활상인데
집 앞 골목에 수많은 방문객이 드나들어도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면서 할아버지와 투닥거리는 모습을 다 보여줄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방문객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겁게 사진을 찍고...
한쪽에는 어르신들의 힘든 일상의 삶이 이어진다. 

 황두리 할머니 댁 바로 옆집 대문 앞에는 머리가 하얗게 다 센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다. 

 하루가 가는 것이 지루한  엄현업 할머니의 연세는 무려 97세이시다. 

 다 이사 가버리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집 문 앞에 앉으셔서 오고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이 소일거리시다. 

 꼭대기 집까지 힘겹게 짐을 지고 올라가던 할아버지의 안부 인사가 할머니의 얼굴을 활짝 피게 한다. 

 할머니가 앉아계시는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은영, 은옥 쌍둥이 자매의 집이다. 

 "저 제일 안쪽의 꽃 그려진 집이 우리 딸집이다."하시는 엄현업 할머니댁의 말씀을 듣고 막다른 집으로 가니 거기도 이쁜 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 집 주인인 76세의 김필수 할머니의 별명은 이 동네 '암행 어사'인데
자기 집에 그려준 꽃이 황두리 할머니댁의 꽃과 다르다고 약간 투덜댔다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명연 할머니 댁으로 돌아오니
그 때까지 골목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반가워 하신다. 
이미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해서 사진 찍을 시간도 별로 안 남았지만
난 할머니의 말씀을 더 듣기로 하고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더니 "내 알밤을 보이줄끼니까 집에 들어와봐라..."
하면서 내 손을 이끌고 방 안으로 인도하더니
이쁜 보자기에 소중하게 싸여 있던 사진첩을 벽장에서 꺼내 오신다.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는 사진첩 안의 할머니는 옷도 이쁘게 입으시고 고운 모습을 하고 계셨다. 

 "여긴 **이고...또 여긴 **를 갔을 때이고....이 사람은 **이고....."
사진첩을 펴서 예전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때야말로
할머니가 한창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귀중한 시간인데
이 사진첩을 보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할머니는 더욱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신다. 

 "내가 젊었을 때는 저 아래 시내에서 장사를 크게 했는기라...
그래서 노는 날만 되면 온 동네 사람을 계를 모아가지고 버스를 빌려서
우리나라 방방곡곡 천지에 안 가본데가 없지...내가...제주도도 가고...설악산도 가고...." 

"와...진짜 할머니...안 가본데가 없으시네요...이렇게 아는 것도 많으시고
세상 구경도 많이 하시고...할머니 정말 인텔리세요...."하니
"하모....이 동네에서야 내가 제일 인테리지"하고 자랑스럽게 되받으신다. 

 할머니 댁을 나오면서 나는 할머니의 얌전하게 앉으신 모습을 다시 한번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내년 여름에 다시 올께요..그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그 때 와서 할머니 댁에 얼마나 이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볼께요.."
할머니도 서운하신 듯 여러번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저께 할머니의 사진을 인화해서 할머니 댁으로 부쳐드렸다.
내 카메라에 담긴 다른 할머니들의 사진도 같이 넣어서...
할머니의 귀중한 보물인 사진첩에 내가 찍은 사진도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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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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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angdante 2009.10.07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비님!~
    멋진 동네에서
    정말 멋진 모델을 섭외하셨네요...
    상큼한 아침입니다.. ^.^

  2. BlogIcon 이규빈 2009.10.07 0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연 할머니, 황두리 할머니.. 아 기억납니다^^! 반가운 얼굴 다시보니 좋은걸요!
    지난 여름에 갔던 동피랑을 여기서 생생하게 다시 보게 되는군요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 한마디한마디가 그립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BlogIcon 루비™ 2009.10.08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명연 할머니도 이쁘고...
      특히 황두리 할머니는 유명 인사지요.
      할머니들이 요즘도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오래 사셔야 할텐데...

  3. BlogIcon pennpenn 2009.10.07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피랑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수고하셨습니다.

  4.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10.07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우리의 정겨운 이웃들이 살고 있네요 ^^

  5. BlogIcon 달곰이 2009.10.07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가 정말 80같지 않으시네요.. 젊게 사시는 듯^^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담는건 참 힘든 작업인데, 붙임성있게 참 잘하시네요..
    첨보는 인물에게 다가가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좋은 사진 잘 보고 가구요, 통영의 동피랑 마을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 BlogIcon 루비™ 2009.10.08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젊어서부터 맹렬히 사회활동을 하신 덕에 젊음을 유지하고 계시나 봅니다.
      저도 낯을 마니 가리는 편이지만 그런 좋은 기회를 낯가림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말을 붙여 보았답니다.

  6. BlogIcon 털보아찌 2009.10.07 1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만 듣던 동피랑이군요.
    분위기가 아주 멋지네요.

  7. BlogIcon 딸기우유! 2009.10.07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본 블로그 글들 중 가장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진도 멋지지만 여행을 진정 즐기시는 분같아서 부럽네요
    동피랑....한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 BlogIcon 루비™ 2009.10.08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딸기우유님.
      즐겁게 읽으셨다니 너무 기분이 좋은데요?
      동피랑...마을의 벽화도 좋지만 동피랑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통영항도 좋으니
      꼬옥 한번 다녀오시길요~!

  8. BlogIcon 낭만인생 2009.10.10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영 정말 멋진 곳이죠..
    저도 몇년 동안 살았는데..
    동피랑.. 벽화의 마을? 정말 멋집니다.
    시간되면 처가에 가면서 들러야 할 것 같네요.

  9. BlogIcon 악의축 2010.01.29 1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사실 동피랑은 푸른통영21이라는 단체에서 사라질뻔한 동피랑의 산동네를 저렇게 바꾸어놓았지요.

    2007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는데요. 저도 2007년 당시 참여를 했었답니다.

    뭐 지금 동피랑 정상의 집들이 다 무너져 폐허가 되었고 빈집은 예술가들에게 내어주고 있어 아직까진 살아있는 동네지만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네요.

    루비님의 포스팅을 보고있으니 참 다양한 느낌들을 가지게 하는군요. 조만간 서피랑도 동피랑처럼 벽화가 들어설지도 모르는데요.


    이게 과연 좋은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전국의 마을들을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동피랑과 같은 위치에 처한 마을이 너무나 많더군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볼거리들이 많네요. 새로운 정보들도 많구요.

    • BlogIcon 루비™ 2010.01.29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악의 축님도 벽화 작업에 참여를 하셨군요..
      많이 알려진 동피랑이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저기서 자기네들의 추억 담기에만 열중했구요.
      주민들이 불편하게 느끼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더군요.
      악의 축님도 다니시다가 좋은 곳 있으면 많이 소개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10. BlogIcon 주영이아빠 2011.06.10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군요.
    사진을 보아하니 이때는 한참 벽화가 진행중이던 때인가 보지요?
    물탱크 옆에 있느 정체불명의 철상자는 기름보일러의 기름탱크인것 같습니다. ^^
    중앙시장 주변은 어릴때부터 종종 다니던 곳인데 오랜만에 동피랑에 가보니 많이 바뀌었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니 좋은점도 있습니다만 추억속의 모습이 자꾸 바뀌어 가는것 같아서 좋다고만 할수도 없네요.
    이번엔 못가봤지만 다음에 통영에 가게도면 서피랑에도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어머니하고 이모님 고향이기도 하니 한번 모시고 갈수도 있겠네요.
    글 너무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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