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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거듭될수록 박진감을 더해가는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장면을 떠올릴까...?

아마 많은 분들이 2회 방영분에서 미실이 유리잔을 연주하던 장면을 베스트로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황후가 되기 위해 여러가지 계략을 꾸미던 미실, 그녀의 야심은 생각 외로 쉽게 채워지지 않는데...
마야 부인이 쌍둥이를 출산할 것 같다는 비밀을 입수한 그녀.
미실궁의 자기 방에서 유리잔에 물을 하나 하나 채우고는 유리잔 연주를 하는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청아하고 아름다운 음색의 유리잔 연주가 울려 퍼져 나가는 장면과 마야 부인의 진통 장면이 엇갈리면서
출산의 진통이 더해 가면 갈수록 음악의 템포도 점점 빨라지고 긴박감은 더더욱 고조된다.
그러다 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자 미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혀 연주를 멈춘다.



이 장면을 보시는 시청자들 중에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된다.
"아니...저건 와인잔 아냐? 신라 시대에 무슨 유리잔이 있었다고 저런 장면을 삽입한거야?" 하고...
하지만 대답은 "있을 수 있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신라 고분 출토품에는 많은 유리잔이 보이는데 이 유리잔들은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모두 수입품이다.
이 유리잔들은 '로만 글라스'라고 불리웠는데 '로마에서 수입한 유리'라는 뜻이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지중해 연안에서 만들어져서 페르시아(파사,지금의 이란)를 통해 수입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금보다 더 귀한 물건이 로만 글라스였기 때문에
극중 미실의 템포 빠른 로만 글라스 연주를 통해서 마야부인의 출산 장면을 긴박감있게 표현하고
미실의 막강했던 권력과 함께 그녀가 얼마나 부유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베스트 샷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유리는 팔찌와 목걸이용의 장신구, 그리고 의식기나 사리장치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중 유리잔은 주로 신라의 대형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경주 금관총에서는 2점의 유리잔이, 금령총에서는 2점의 유리 주발이,
서봉총에서는 암청색의 반투명 기포유리로 된 유리주발과 유리제 팔찌가 발견되었다.
또한 천마총에서도 유리잔과 유리그릇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남대총에서는 무려 10점의 유리그릇이 출토되기도 했다.


고분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이나 경주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유리 그릇들을 잠시 살펴보면......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은 전체적으로 연한 녹색을 띠고 있으며
길쭉한 몸체는 목 부분이 가늘고 입술부분이 다시 넓어진 형태로
마치 새의 입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봉수형병(鳳首形甁)이라 부른다.
손잡이에는 금실이 감겨져 있었는데 이는 무덤에 넣기 전에 이미 손상되어 수리를 한 듯 보여
당시 신라 사회에서 이러한 유리 용기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학처럼 고고한 봉수형병의 자태는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역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잔은 봉수형 유리병과 가까운 곳에서 출토되어 한세트로 추정이 되는데
봉수형병과 같이 연녹색 유리를 사용했고, 위는 넓고 밑은 좁아진 컵 모양을 하고 있다.
아가리 주위는 속이 빈 관 모양으로 돌리고, 그 위에 청색 유리띠를 한 줄 둘렀다.
몸체의 윗쪽에는 청색 유리로 물결무늬를 두르고, 밑쪽에는 격자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이 유리잔의 세련된 색감과 무늬는 현대의 식탁 위에 놓여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황남 대총 출토 유리제 바리는 겉면을 얇게 잘라내어 3단으로 2줄씩의 거북등껍질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투명한 유리잔으로 깨진 것을 접합하였으나, 잔의 1/3가량이 깨지고 없어진 상태이다.
잔의 두께는 불규칙하며, 겉면에 닳은 흔적이 있다.




황남대총 출토 유리제 바리는 완전히 깨진 것을 접합한 것으로 전체의 1/3가량이 파손된 상태이다.
불투명한 청색의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색감 또한 인상적이다.




황남대총 출토 유리제대부배(유리제 굽받침잔)는 황갈색의 투명한 유리잔으로 완전히 파손된 것을 접합한 상태이다.
잔 전체에 물결 무늬가 들어가 있으며 아래부분에 나팔모양으로 벌어지는 받침을 붙였다.
요즘 제품으로 출시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미가 넘친다.



역시 황남대총 출토 유리잔은 둘 다 연녹색이고 아가리가 넓다.
오른쪽 유리잔 아가리 주위는 관 모양이고 위와 아래에는 약간 청색을 띠고 있다.



금령총 출토 유리잔의 오묘한 빛깔과 아름다운 문양 또한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천마총에서 나온 청색 투명한 유리잔의 표면 윗부분에는 굵은 세로선을 그어 올리고
아래에는 부정형의 원형 무늬를 연속으로 장식했는데
이 무늬는 깎아낸 것이 아니라 만들 때 굳어지기 전에 눌러서 만든 것이다.




도쿄대학 오리엔트 박물관에 소장된 이란 출토 유리잔과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정말 한 사람의 장인이 만든 것처럼 흡사하지 않은가...
지금으로 부터 약 1500년 전 신라인들이 페르시아와 교역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5~6 세기 동아시아에서 보이는 많은 유리 장식품과 유리 그릇들은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매우활발했음을 보여주는데
신라 역시 당시 국제적인 교역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다양한 외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했음을 출토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수입 유리로 만든 목걸이와 금장 장식품을 몸에 지니고 로만 글라스에 술을 부어 마셨던 신라 여인들.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화려했던 신라인의 세련된 문화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드라마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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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덕만 아역 남지현 촬영장서 직접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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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본 14면 주사위 '주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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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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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라오니스 2009.06.13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때면 거의 1300년전 전인데,
    로마의 것이라고는 하나 유리가 있었고, 그것으로 뭔가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작품성도 좋은데요...와우~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logIcon 루비™ 2009.06.14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당시 로만글라스가 지금에 비해서 약간 두텁긴 하지만
      그래도 완성도나 세련미에 있어서 지금보더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군요.
      하나 가지고 싶은 마음...ㅎ
      휴일 잘 보내세요~

  2. BlogIcon blue paper 2009.06.13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리잔을 근거로 페르시아와 신라가 같은 계열이라는 주장도 봤었는데 ㅋㅎ
    잘 보고 갑니다 ~^^

  3. BlogIcon 유머나라 2009.06.13 1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그렇군요. 역사를 새로이 배우게 되네요, 여기서.

    • BlogIcon 루비™ 2009.06.14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리잔을 페르시아를 통해 수입할 만큼
      신라가 외부 문물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는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지요..

  4. BlogIcon 사이팔사 2009.06.13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옛날에 저런걸 만들었다니 정말 우리선조들은 대단한거 같습니다....
    갈수록 우리는 왜 이렇지요?.....^^

  5. dream 2009.06.13 1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스트 글쓰기가 됐다 안됐다 이건 뭔일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6. jinpiano 2009.06.13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입니다.
    역사 공부하러 자꾸 와야 하는데...^^
    잘 계시죠?
    요즘 날이 더운 여름 같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면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이
    루비님께는 주어지겠죠?

    루비님이
    안 계셔도 제 친구 책이 반겨주니 기분 엄청 좋네요!

    건강하시고
    좋은 사진들 많이 남기시기를...

    • BlogIcon 루비™ 2009.06.14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jinpiano님..
      제가 여유가 없는 가운데 블로그를 두개 운영하다보니
      답글도 빨리 못 스고 이웃 나들이도 소원했네요.
      조만간 시간내서 나들이를 나가야겠어요.
      공부하러 오는 블로그가 아니고 편히 쉬다 가는 정원이 되는게 목표인데...
      가끔 자꾸 공부하는 듯한 글을 올리게 되니..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휴일 보내세요~

  7.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6.13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대단하네요
    당시에도 무역은 있었겠지만...
    하긴 생각해보니 무역의 대상이 결국 사치품 위주가 많았겠지만 저런잔들도 들어 왔다니 정말 대단 합니다.
    교육이 참 중요한데 전 어릴때 매일 토기, 도자기 이런것만 보고 배우고 자라서리..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제 블로그는 뜸 하신 거에요?
    전 매일 오는데 ^^

    즐거운 주말되세요 ^^

    • BlogIcon 루비™ 2009.06.14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여유가 부족한 가운데 블로깅을 하다 보니
      글만 올리고 답글이나 답방이 뜸했군요..
      제가 자주 못 가보아서 죄송합니다.
      자주 가서 댓글도 쓰고 그럴께요~^^
      좋은 시간 되시구요~!

  8. 싸이렌 2009.06.13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 잘 보내시고요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9. BlogIcon 검도쉐프 2009.06.14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모르던 많은 것들을 재현하고 보여줘서 우리 역사를 더 잘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10. BlogIcon 비바리 2009.06.15 0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비님 포스팅은 정말 대단한 정성이 들어감을 느낍니다.
    모르는 역사공부까지 덤으로 하게 되니
    일석삼조 같아요..
    월~~화분도 기대가 큽니다.
    루비님 정성스런 기사 잘 보았습니다.

    • BlogIcon 루비™ 2009.06.15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성이랄거까지는 없지만
      어떨 땐 포스팅 하나에 일주일 이상 고심하며 쓰기도 합니다.
      제 포스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 분을 위하여...
      덕택에 저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답니다..^^

  11. BlogIcon mami5 2009.06.15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어진 유리잔이지만 정말 아름답네요..
    어찌 이런 포스팅을 하시는지
    정말 대단합니다..
    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둣합니다..^^*

    • BlogIcon 루비™ 2009.06.15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 드라마가 경주를 배경으로 쓰여지니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것이 제 포스팅 재료가 됩니다.
      문화재 관련하여 찍어놓은 사진도 많구요.
      덕택에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며 열심히 보고 있지요..^^

  12.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06.15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엌 저시대에도 .. 저런 멋진 유리잔이.. 우어..
    어제 고속버스 타고 오다가 휴게소 에서 선덕여왕 촬영 버스를 딱 마주쳤는데 카메라를 꺼내려고 다시 버스에 오르는 순간.. 아저씨가 문을 닫고 출발~ㅡㅡ
    우리 버스에 딱 5명 밖에 없어서 그냥 일찍 출발 하신듯 ㅡ.ㅡ;;

    • BlogIcon 루비™ 2009.06.15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시대 고분에서 나온 유리잔이
      오늘날의 유리잔에 비해서 세련미나 완성도가 전혀 뒤떨어지지가 않더군요.
      어제 만나신 촬영 버스...와우..
      운 좋았으면 특종 건질 뻔 하셨겠는데요?

  13. 우아한미씨 2009.06.17 2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이장면 무척 인상깊었네요... 소리가 넘 이뻐서...ㅋㅋ 사진도 글도 넘 좋네요...^^

  14. BlogIcon ftdmontreal 2009.06.18 0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유리잔들도 그 당시엔 상당히 이뻣겠네여

  15. 민트 2009.06.18 0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장면 보면서 상당히 재밌었답니다+_+ 제작진이 많이 노력했구나 싶었어요.
    신라시대에 유리잔을 수입해서 썼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진 얘기는 아니니까요;ㅁ;..
    인터넷중에 우연히 흘러들어왔답니다... 포스팅 잘 봤어요ㅎㅎ

  16. 아롱 2009.06.23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시대에 로마제국이라면 동로마제국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던데요.
    동로마제국은 우리들이 비잔티움 제국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콘스탄티노플이 수도였습니다.
    페르시아등 아시아지역과의 교류가 많아서 저런 사치품들이 상당히
    유행했다고 합니다.

    • BlogIcon 루비™ 2009.06.24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멸망했고
      비잔틴제국은 330~1453년까지 존속했으니 저 때 로마는 동로마인 것이 확실하지요.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17. 할리 2009.06.25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1000년 전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이 좋네요 정말 님 말대로 현대 식탁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만한 유리잔들이 많아요^^

  18. 아디오스 2016.03.11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는 13대 미추이사금 이전 부터 교역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라 합니다.
    일반인들의 생활사를 알 수 있던건 미추니금기 때 부터지만 이미 그 이전인 파사니금 부터 들어나기 시작했지요 백성들에게 금은주옥 사치품을 금하고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습관을 실천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파사니금 그 자신도 검소하고 얇고 폭이 커 바람에 쉬 펄럭이는 흰색의 옷을 입고다녔다
    하여 羽佐王 이라 불렀다죠 신라가 역대 나라중 가장 긴 세월을 버틴 이유가 바로 국가제정이 튼튼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신라가 건국되면서 부터 관리를
    엄격히 하였고 쌀과 옷감은 국고에 저장하여 흉년이 들거나 재해가 발생시 구휼의 수단으로 썼으며 곡식이 부족하면 왕실에서 특별히 나눠주던 관리들
    대신들의 곡식을 일정량 다시 국가에 환수토록 하여 백성을 구휼했던 제도가 있었지요 따라서 먹을것에 대한 걱정은 왕실에게 맏겨두고 백성들은
    생업 부업에 종사할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신라시대만의 독특하고 고유적인 기술력이 발달되었고 이를 통한 무역거래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겠지요
    금이 매우 흔하여 신라의 개들은 개 목걸이 조차 금이더라는 말 도 있지요
    전대 신라는 지금의 현대모습과 비춰보면 두 성인이 나라를 다스린다 하여 남녀의 사회적 지휘와 권위가 남성에게만 존재하지 않았고 여성에게도
    똑같이 이뤄졌습니다. 황실에서의 부부싸움은 지마니금 시절 1차례 있을 뻔한 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황후가 밥을 먹지 않거나 아무말을 않거나 하면
    제황은 황후를 달래주느라 몇일이고 조례를 하지 않는다 했으니까요 권력의 배분이 이토록 난감해지자 본격적인 김씨왕족 나밀(내물) 부터 인듯
    권력의 중심이 서서히 남성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신라의 여인은 미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미실과 같은 여인은 종종 있었지요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여인들은 10세 이상이 되면 가사일 누애 양잠
    삼베를 짜는 일 부터 술과 성교육(주색)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전대 사회적 배경이 그래왔으니 미실 훨씬 이전에도 미실 같은 여인은
    종종 있어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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