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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영되기 전까지 신라시대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유신이었다.
화랑정신을 자라는 청소년에게 강력히 심어주고 싶었던 박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는지
국사책에서도 중점적으로 나오곤 했는데...

경주 지역에 와서도 지금껏 관심받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자취보다는 김유신의 자취를 찾는 것이 더 쉽다.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인터뷰하는 김유신 엄태웅

                                                    
드라마 선덕여왕 '김유신' 관련 포스트 : 미리 가본 김유신 화랑 산채   ☜ 클릭
                                           
'선덕여왕' 촬영장, 싸인해주는 유신 엄태웅  ☜ 클릭   



경주 톨게이트에 세워진 동상은 물론 

경주 시민의 휴식처 황성공원 언덕에도 김유신 동상이 서 있어 밤에도 환하게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낭산 깊숙히 들어앉아 드라마 방영 전까지는 경주시민들조차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선덕여왕릉에 비해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김유신장군묘는 사당인 숭덕전을 비롯해서
금산교육관, 금산재 등 여러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무덤에도 무덤을 보호하는 호석(둘레돌)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 그 화려하고 당당함이 그 어느 왕릉에 못지 않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공로가 컸으므로 그가 죽은 뒤 문무왕은
채백(彩帛) 1,000필, 조(租) 2,000석을 내리고 군악고취(軍樂鼓吹) 100명을 보내어 장사지내게 했다고 한다.



그후 비를 세워 공적을 새기며 사람을 배정해 무덤을 수호하게 했으며



뒤에 흥덕왕 때 그를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하여 무덤의 양식은 왕릉이나 다름이 없다.



원형분인 봉분의 둘레에는 무덤을 보호하는 둘레돌(호석,護石)을 돌리고 
12방위의 둘레돌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겨 위엄을 더했다.



경주의 다른 왕릉에도 지신상이 있지만 조각의 우수함이나 모습의 거대함은 이 무덤의 것이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지신상의 크기는 각각 세로 96㎝, 가로 61㎝정도인데 모두 문관복을 입고
발을 양옆으로 벌린 정면상이나 몸과 머리는 오른쪽으로 향한 측면상이다.
얼굴은 방향에 따라 해당되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손에는 삼지창이나 검 또는 도끼 등의 무기를 들고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십이지신상의 모습을 하나 하나 살펴본다면.....
 


 
                                       쥐                                                                                소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또 봉분 앞에는

동서로 두 개의 비석이 마주보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김유신이 죽은 후 문무왕은 예를 극진히 갖추어 장례를 치른 후 묘비를 세웠지만 
그 묘비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두 기의 묘비는 후대에 세운 비석이다.



서쪽에 보이는 비석은 비문과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조선
조선 숙종36년에 당시 부윤이던 남지훈이 세운 비석이다.



앞면에는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 뒷면에는 崇禎紀元周甲後庚寅(숭정기원주갑후경인)라고 적혀 있다.

 


동편의 묘비는 1970년대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 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라고 적혀 있다.




서편 비석의 묘비와 동편 비석의 묘비를 비교해 보는데 동편 비석 아랫 부분 마지막 글자가 이상하게 보인다.
開國公純忠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렬흥무왕릉)이란 비명의 제일 마지막 글자가 다른 글자와 겹쳐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비가 오면 비석의 글자가 릉(陵)에서 묘(墓)로 바뀐다는 바로 그 비석이다.



경주 문화재 지킴이인 솔뫼님을 만났을 때 비 오는 날 김유신장군묘의 비석을 한번 살펴보라고 하던 것이 생각나서
비가 오는 날 다시 김유신장군묘에 가보았는데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지 않아서 그런지 글자가 다소 선명치 않다.
할 수 없이 땅바닥에 고인 물을 손으로 퍼서 글자를 적셔 보았더니 묘(墓)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마술같이 신기한 현상은 솔뫼님께 문의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는데

솔뫼님의 허락을 받아 '토함산 솔이파리(
http://blog.daum.net/kinhj4801)'에 게재된 글에서 일부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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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의 묘 앞에는 동서로 두 개의 비석이 마주보고 있다.
김유신장군이 돌아가시자 문무왕은 예를 극진히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하였으며, 유사에게 명하여 묘비를 세우게 하였다.
그러나 그 묘비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두 기의 묘비는 후대에 세운 비석이다.
 

서쪽에 보이는 비석은 비문과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앞면에는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 , 뒷면에는 崇禎紀元周甲後庚寅(崇禎기원주갑후경인)라고 적혀 있어
조선중엽에 세웠음을
알 수 있는데
조선 숙종36년에 당시 부윤이던 남지훈이 세웠다.
동편의 묘비는 1970년대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 開國公純忠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렬흥무왕릉)라고 적혀 있다 



서편의 묘비

                                                                                                        

동편의 묘비
 

장마가 시작된다는 6월 18일, 퇴근 후에 간단한 차림으로 김유신 장군묘에 올랐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우산을 받쳐들고 묘역을 둘러보는데 아뿔
사!  묘비에 큼직히 씌여진 낙서!
동편의 묘비에 
누군가가 진하게 붓으로 글씨를 써 놓았다.
동편에 있는 묘비의 '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의 '릉'자 위에 새까만 글씨로
"묘"자가 적혀 있는 것이다.  

'陵'자 위에 겹쳐 드러나는 "墓"라는 글씨 

 맑은 날의 비석 

먹물로 쓴듯이 새까맣게 드러나는 "묘'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릉'자 위에 뚜렷이 나타난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것은 낙서가 아니다.
분명히 과학이다.
과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조각해 놓았다.
비가 오거나 물이 묻으면 새까맣게 드러나게 만든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조작해 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맑은 날에만 다녀보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맑은 날에는 분명히 '왕릉"으로 적혀있고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소의 이 글씨가 물에 젖으면 아래처럼 된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현싱이 일어날까?
자세히 살펴보았다. 
  

 '陵'자 위에 까맣게 드러난 '墓'자 

능이라는 글자가 있는 부분에 묘자를 새겨 파내고 파낸 부분에 돌가루(?) 를 때워 놓았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포샵으로 만들어 보았다. 

 1.  본래의 비석 

 2. '릉'자 위에  '묘'자를 쓴다. 

 3. 쓴 부분(흰부분)을 파낸다. 

 4. 돌가루를 채워 넣는다. 

 조각한 형태를 옆에서 보면 

  

글씨 전체를 파내었는데 '릉'자에서 오목하게 음각된 부분은 더 깊게 파서 돌가루를 채워넣었다.
위의 그림에서 회색부분이 돌가루를 채워 넣은 부분이다.
그럼 홈을 채워넣은 물질은 무엇일까?
마른 상태에서 색깔은 대리석과 거의 흡사하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처음엔 시멘트를 섞은 몰타르가 아닐까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시멘트는 아니다. 시멘트는 물이 묻어도 이렇게 진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아마 물에 젖으면 아주 진하게 색이 변하는 특수한 성질의 돌을 가루로 만들어 접착제와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원 안을 자세히 보면 파내고 다른 물질을 메운 흔적이 있는데 쉽게 구분이 안된다. 

물에 젖어도 색의 변화가 적은 대리석과
물에 젖으면 색이 진하게 변하는 물체와의 오묘한 조화를 이용하여 비석을 조작한 이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왕이 아니면서 왕의 칭호를 받은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비하하고 천시하려는 이의 소행임이 아닐까? 

문화재 해설사의 말로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이렇게 만들었는데 왕이 아니기 때문에 묘로 고친것이다" 라고 하지만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 비석은 1970년대 김유신장군묘를 정비할 때 만들어진 비석이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이렇게 조작을 하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요즘은 장마철, 비오는 날이 많으므로 한번 찾아가 보자.
맑은 날이면 한컵의 물만 부어보아도 확연히 '墓'자가 드러나는 마술같은 비석이다.  

(참고)

5,60대 중후반의 어르신 중에서 어린 시절을 경주에서 보낸 분들은
"내가 어렸을 때 김유신장군묘에 가면 묘의 양쪽으로 석인상이 있었는데 지금 어디로 갔지?"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석상은 일본 강점기때 만들어 세운 것으로 조각이 조잡하고 역사적 사실과 맞지않는다하여 1
970년대김유신장군묘를 정비할 때에 철거를 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없다

<2008년 11월22일자 스폰지 2,0에 방송된 내용의 반론> 

2008년 11월22일 KBS 2 방송의 '스폰지'에 위의 내용이 방송되었다.
방송에서는 "후손들이 흥무왕으로 추대된 것을 모르고 묘로 썼다가 나중에 릉으로 고쳤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석이 세워진 것은 불과 40년이 되지않는 1970년대에 세운 것이다.
지금의 후손들이 그 유명한 선대가 흥무왕이라 봉해진 것을 모를리가 있으랴...
 

필자가 보기에는 그 반대이다. 릉으로 쓰여진 것을 묘로 고친 것이다.

그 이유는

첫번째 글씨체를 살펴보면 '릉'자와 '묘'자의 글씨체가 완연히 다르다.
그 위의 글씨(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와 비교해보면 '묘'자는 완연히 다른체이며 '릉'자와 같은 글씨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처음부터 '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묘'라고 썼다면 일부러 '묘'자만 다르게 썼다는 말인가?
뒤에 '릉'자로 고쳤다면 처음 비문을 쓴 사람에게 다시 '릉'자 글씨를 받았을까?
위의 글씨(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와 '릉'자는 한치의 빈틈없이 조화롭지만 '묘'자는 획이 날카로우면서 그 크기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묘'자를 메우고 그 위에 '릉'자를 썼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릉'자의 파인 부분에도 까맣게 글씨가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에 메우고 '릉'자를 새겼다면 메운 부분이 드러나지 않게 좀 더 깊이 파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번째  '묘'를 메우려면 돌가루(어떤 성분의 돌가루인지 화학약품의 가루인지  필자는모름)를 반죽하여야 메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죽을 하였을때 벌써 지금과 같이 검은 색이 틀림없었을텐데 그대로 사용하였을까?
물이 묻을 때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였을까?

지금의 비석은 일반 석물제작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대리석이다.
만약 '묘'라고 쓰여진 부분을 메울 생각이었다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대리석의 가루를 사용해야 함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 가루는 젖어도 비석과 같이 젖어 차이가 나지 않을텐데...... 

누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릉'자 위에 '묘'자가 쓰여진 것이 틀림이 없음을 믿는다.

(이상 솔뫼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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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비석의 묘비명이 마술같이 바뀌는 김유신묘.
누가 무슨 이유로 비석의 묘비명을 바꾸어 놓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 현상은 김유신묘를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재미을 주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에 경주에 와서 김유신장군묘를 찾는 분은 이 재미있는 비석의 글씨를 더 잘 관찰할 수 있겠지만
혹 맑은 날 방문했다 하더라도 문화 해설사 분들께서 비석에 물을 부어가며 재미있게 해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다가오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선덕여왕과 관련된 경주 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심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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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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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털보아찌 2009.10.26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울산에서 경주로 이동하면서
    선덕여왕묘 표지판을 보니까, 루비님 생각이 나더군요,
    돌아보고 싶었지만, 차는 꽉 밀리고 5시간 걸려서 한밤중에 귀가했지요.

  3.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10.26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이건 정말 특종감인데요? ^^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새로운 한주도 늘 행복하세요~!!

    • BlogIcon 루비™ 2009.10.26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신기하지요?
      맑은 날에는 릉, 비오는 날에는 묘라...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분명히 누군가가 했읉텐데...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군요.

  4. BlogIcon Bacon 2009.10.26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이거 정말 신기한데요. @_@
    잘 보고 갑니다.

  5. BlogIcon 김천령 2009.10.26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묘에 가본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신기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6. BlogIcon 바람꽃과 솔나리 2009.10.26 1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관찰력이시군요~
    솔나리에게도 꼭 보여줘야겠습니다.
    요즘 김유신묘를 많이 찾으시더군요..
    어떤 분은 큰절까지 올리는 걸 보았습니다^^*

    • BlogIcon 루비™ 2009.10.26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드라마의 영향인지
      그전에는 찾지 않던 선덕여왕릉과 김유신묘에 탐방객이 유달리 많답니다.
      언제 솔나리님과 함께 경주 나들이 하시죠..

  7. BlogIcon 해피아름드리 2009.10.26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이런 포스팅은 너무너무 좋아요^^
    제가 닮아야 하는 부분 ㅎㅎㅎ..
    저의 날림 포스팅에 반성하고 갑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8. BlogIcon *저녁노을* 2009.10.26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들어보긴 했어도 이렇게 자세히 보긴 첨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9. BlogIcon 라오니스 2009.10.26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방송에서 일핏 보기는 했는데...
    루비님이 친절한 설명을 해주시니.. 더 자세히 보게 됩니다...

    • BlogIcon 루비™ 2009.10.26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못 보았는데 의외로 방송을 보신 분이 많군요.
      비록 제가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솔뫼님의 해박하신 설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10. 물망초 2009.10.26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너무 좋아유. 김유신장군묘 다시 가 봐야 겠네요. ㄳ ^^*

  11.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10.26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신기하군요. +_+ 역시 여행은 알고 다녀야 그 재미가 더한다니까요.
    나중에 가면 아는척좀 해야 겠습니다..ㅋ

  12. BlogIcon 블루버스 2009.10.26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신기하네요. 왜 저렇게 했을까요. 궁금하네요.
    다음에 갈 일있음 자세히 봐야겠습니다.
    괜히 물을 뿌려볼 거 같습니다.^^;

  13. BlogIcon 달곰이 2009.10.26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기하군요..
    단 한번도 저럴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스펀지에도 나왔다고 하니.. 더욱 더 궁금해 집니다.
    이유가 뭘까요?

    • BlogIcon 루비™ 2009.10.26 1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비석의 글씨를 바꾼 사람은 정말 깊은 연구 끝에
      남들이 모르는 한밤중에 와서 저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다 했을텐데...놀랍기만 합니다.

  14. BlogIcon merongrong 2009.10.26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기하네요, 그리고 무슨 뒷배경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저는 처음에 무슨 으스스한 호러 이야기인줄 알고
    두근두근하면서 글 읽었답니다.

    음.. 엄태웅의 멋진 자태에 두근하기도 하구요 ㅋㅋㅋ

    • BlogIcon 루비™ 2009.10.26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ㅎㅎ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고 왕의 대우를 한데 대해
      못 마땅하게 여기는 어떤 부류의 사람이 한 일이라 추청은 하지만....
      직접 거기다 새겨넣은 사람만이 그 사실을 알겠지요?

  15. BlogIcon 악랄가츠 2009.10.27 0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어렸을때, 가족끼리 가볍게 드라이브로 하러 자주 갔었답니다 ㅎㅎㅎ
    요즘에는 앞으로만 지나가면서, 정작 안쪽으로는 안갔네요 ㄷㄷㄷ
    사진 찍으러 한번 가봐야겠어요! >.<
    후훗.. 즐거운 하루 되세요!

  16. BlogIcon 도꾸리 2009.10.27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저도 가보고 싶어요~~

    즐거운 한 주의 시작되세요~

  17. BlogIcon 소나기♪ 2009.10.27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신기하네요.^^
    그런데 또 다시 증폭되는 루비님의 정체 ㅎㅎ

  18. BlogIcon 비바리 2009.10.27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그렇군요~~
    알고 봤으면 좋았을것을..
    루비님 덕분에 또 귀한 자료 알게 되네요

  19. BlogIcon mami5 2009.10.27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정말 신기하군요..
    예전 갖을땐 예사로 봤는데..^^
    좋은 자료 잘 보고갑니다..^^

  20. BlogIcon 수위조절 2009.11.01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6년 전에 다녀왔던 적이 있는데요. 저는 위의 사실까지는 몰랐고 단지 민족의 대영웅의 릉치고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주변 산세-좌,우청룡,안산등의 배열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는 점이었습니다(그래서 12지신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왕으로 추존은하지만 후손의 발복을 원치않은 이들의 음모(?)가 릉 건립 당시에도 있지않았나 싶더라구요. 그러나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1000년도 더 지난 역사인데 근래에와서까지 이런 일이있다니..
    그런 정신으로 자식들 잘 키우고 남북통일에 힘썼으면,,, 릉 주변상가가 잘 발달 정비돼어 있던데 환경과 상관없이 대영웅의 그늘은 1000 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깊게 드리워져 여러사람들을 먹여살리고 우리들의 관심도 불러일으키는것 같습니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어떠한 위인도 그만한 이가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규모의 크기와 후대에 끼친 영향이라는 잣대에서요(삼한수습).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곧 다시 가보고 싶네요.

  21. BlogIcon 호련 2009.11.02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저런게 있다니;;
    처음엔 누가 글을 써놨나 했어요 'ㅂ';;;

    신기하네요 ㅎ

    경주가고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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