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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포스를 물리치고 단연 인기를 끌고 있는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랑.
알천(閼川, 577~686)은 역사적으로도 선덕,진덕여왕 시대 최고의 무장이며
신라 최고 의정 기관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을 역임할 정도로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mbc.com/broad/tv/drama/seonduk

알천랑은 신라를 건국한 공신인 소벌공의 25대손으로 '알천'은 젊은 시절 이름이고 본명은 '소경'이다.
(성씨는 진주 소씨로 소지섭의 조상님이 되신다는...^^)

한 세대를 주름잡았던 알천의 업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 5년(636)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는 이야기를 선덕여왕이 듣고
두꺼비의 성난 눈의 모습은 병사의 모습이므로 나라의 서남쪽 변경에 있는 옥문곡에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을 예지하고
이에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는데
마침 백제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 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그들을 쳐서 모두 죽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선덕여왕 7년 겨울 10월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의 칠중성을 침공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놀라고 동요하여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왕이 대장군 알천에게 명하여 그들을 안정시키게 하였으며
'11월에 알천이 고구려 군과 칠중성 밖에서 싸워 이겨, 죽이고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진덕여왕 당시 술종,·임종,·호림, 염장, 유신
등과 함께
나라 일을 논의하기 위해 남산 우지암이란 곳에서 회의를 연일이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호랑이가 좌석으로 달려들어 참석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피하였지만
알천은 그자리에 태연하게 앉아있었을 뿐만 아니아 호랑이 꼬리를 잡아 땅바닥에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알천의 담력과 용맹은 당대 최강이었을 듯.....

그는 선덕여왕 7년(638)에 이찬 등을 지낸 뒤 각간(角干)에 올랐고
당시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회의 의
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천이 화백회의 의장이었을 당시,
회의의 구성원은 술종, 임종, 호림, 염장, 유신
등이었다.
647년에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진덕여왕 1년(6
47)에는 반란으로 죽은 비담
의 뒤를 이어 상대등에 취임하였으니
알천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실력자라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mbc.com/broad/tv/drama/seonduk

진덕여왕이 사망하자 알천은 화백회의에서 섭정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스스로 나이가 늙고 덕행이 없다고 하며 김춘추에게 양위하여
그를 왕으로 추대하니 김춘추(유승호)는 바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태종 무열왕
(太宗武烈王)이다.

당시에는 성골에서 왕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에 화백회의의 추대에 따라 의장인 상대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상례였다.
알천이 정치적인 욕심이 있었더라면 왕위를 한번 노려볼만도 한 일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배경에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신흥귀족세력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
치적 책략이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다.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만난 알천

이후 무열왕 3년(656년) 무열왕은 신라개국공신인 소벌도리에게 문열왕(文烈王)의 시호를 내렸는데
일설에는 왕위를 양보한 알천에게 보은하기 위하여 그의 선조인 소벌공을 문열왕으로 추봉하였다고도 한다.
그후 알천은 늦도록 손자가 없다가 꿈에 선조 소벌도리가 지목한대로
660년 3월 2일 금성에서 진주 도사곡으로 이사하였는데 그뒤 며느리 석씨가 손자 복서를 낳았다.
이에 손자가 태어난 기쁨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천에서 경(慶)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알천은 581년에 태어나 69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110세로 보기 드문 장수를 누린 인물이다.



알천랑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알천'이란 이름은 그저 생소한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이승효의 열연으로 우리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경주 사람들에게 '알천'이란 이름은 경주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는 너무나 친근한 이름이다.



경주 시내에서 보문단지를 가려면 보문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변을 따라서 보문단지로 들어가게 되는데
덕동댐에서 시작하여 보문호수에 고였다가 경주시내를 관통하여 서천(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주의 중심을 흐르는 이 강이 바로 '북쳔(北川)'으로도 불리우는 '알천(閼川)'이다.



경주에서는 알천의 이름을 가진 지명을 강 인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알천을 따라 뻗은 북쪽 도로의 이름은 알천 북로이며 



알천의 북쪽 수직으로 뻗은 도로는 알천길이다.



주소에서도 알천길이라는 명칭을 찾을 수 있는데



이 동네에서는 수퍼 이름도 알천 수퍼이다.



알천에 가로놓인 교량은 4개가 있는데 그중 교육청과 소방서를 연결하는 교량의 이름은 알천교이다.



특히 알천변의 고수부지에는 테니스장, 정구장, 족구장, 게이트볼장 등 체육시설과
인라인, 자전거, 산책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멀티풀 산책로가 갖추어져 있어 경주 시민의 휴식처가 되는데



그중에서도 보문 입구에서부터 공설운동장 입구 경주축구공원까지 10개소에 이르는 잔디 축구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해마다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를 비롯하여 국가 대표 축구팀의 단골 전지 훈련 장소로 쓰이고 있는 경주의 자랑거리이다.



알천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경주의 알천과 관련된 지명을 소개하니
경주 알천이 알천랑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가...... 하고 오해하는 분도 계신 듯 하다.
하지만 알천의 역사는 육부촌 시절의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오히려 경주를 흐르는 중심 강인 알천의 이름을 따서 '알천(閼川)'이라고 이름 지어졌을 가능성이 더 많을 듯 하다.
그 점 오해 없으시길 바라고....


경주 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이 알천으로 인해 역사가 바뀐 사건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신라 38대 원성왕 김경신은 왕이 되기 전에 복두(모자)를 벗고 흰 삿갓을 쓰고는 12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는데 삼국유사는 이 꿈에 전혀 다른 두 해몽을 기록해 놓았다.
김경신은 "복두를 벗은 것은 직책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든 것은 칼집을 쓸 조짐이며,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조짐입니다"라는
불길한 꿈 해몽을 듣고 불안해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럴 때 여삼이라는 사람이 만나기를 거듭 청하여
"이는 길몽입니다. 공께서 만약 왕위에 올라 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공을 위해 해몽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여삼은 "복두를 벗는 것은 그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고, 흰 삿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입니다.
또한 12현의 가야금을 지닌 것은 12손(원성왕은 내물왕의 12세손)이 왕위를 전해 받을 징조이고,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좋은 징조입니다" 라고 전혀 다르게 해몽했다.



이후 36대 혜공왕을 죽이고 왕이 된 선덕왕이 아들이 없이 죽어버리자 
궁궐에서는 무열왕계 왕족 중에서 왕위 계승 1순위인 김주원을 맞아들여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 때 김주원의 집은 알천(북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김주원이 알천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왕위 계승 2순위인 김경신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제 38대 원성왕이 된다.
이때 알천을 건너지 못하는 바람에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의 아들은 바로 김헌창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오늘날에는 덕동댐과 보문호수가 세워져 치수 관리를 하는 바람에 알천의 물이 줄어들었지만
신라시대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장마가 나서 알천 양쪽 마을 전체를 다 덮칠 만큼 큰 강물이었으니
만약에 그때 비가 오지 않았고 알천물이 불어나지 않았더라면 김주원이 왕이 되었을 것이고 신라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또 신라 통일의 주역이 된 화랑이 생겨난 배경에도 알천과 얽힌 이야기가 있으니....
신라 24대 진흥왕 원년인 540년, 
삼산공의 딸인 준정(俊貞)이 원화(源花,화랑의 전신)가 되었는데 그녀는 수하에 많은 낭도를 두고 있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남모공주(南毛公主) 또한 뛰어난 미인이었는데 
미진부(법흥왕의 외손인데 법흥왕의 후궁 묘도부인과의 사이에서 미실,미생을 낳음, 2세 풍월주)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녀의 이복자매인 지소태후 역시 미진부를 사랑하였으므로 남모를 도와 그녀를 원화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자 준정은 남모가 원화가 되려는 것을 막고 자신이 계속 원화로 남아 있으려 하였으나
지소태후가 남모에게 낭도가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위화공(1세 풍월주)의 낭도를 그녀에게 더하여 주기까지 하니 준정은 투기를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남모공주가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는데 따르던 낭도들은 그녀의 행방을 찾느라 서라벌 곳곳을 뒤지다가 
궁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준정이 남모공주를 집으로 꾀어 술을 먹였다네
준정이 공주를 시기하고 있었다네
술 취한 공주를 강물에 빠뜨렸다네
공주는 돌밑에 깔려 죽었다네
불쌍한 공주는 아직도 물속 바위 밑에 누워있다네…

궁 밖에서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를 궁 안에 살던 왕족의 아이들이 배워 부르면서 뛰어다닌 것인데
이는 사건의 내막을 아는 누군가가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것이다.
진흥왕의 황후 지소태후는 준정을 잡아들여 추국하니 정말 남모의 시체는 노래에 나오는것처럼 알천 바위 아래에서 나왔다. 
준정은 남모에게 술을 먹여 쓰러지게 한 후 자신의 낭도들을 시켜 남모를 죽여 알천에 버렸던 것이었다.
이에 지소태후는 바로 준정을 사형에 처하고 원화 제도를 페지하고 선화(仙花,국선화랑)를 화랑으로 삼았으니 
그 무리를 일러 풍월(風月)이라 하였고 그 우두머리를 일러 풍월주(風月主)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미녀인 준정과 남모, 2명을 원화로 뽑았으나 두 여자가 아름다움을 서로 질투하여 마침내 준정이 남모를 살해했다'고
단순히 준정이 자신보다 미모가 빼어난 공주의 아름다움을 시기해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화랑세기 2세 풍월주 미진부편을 보면 지소태후가 남모의 낭도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위화공(원화가 폐지되자 1세 풍월주가 됨)으로 하여금 그 수를 갑절로 늘리도록 하자
세력에서 열세에 몰린 준정이 이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다 공주를 유인해 술을 먹여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최대의 정치 단체인 '화랑도'의 탄생 배경에는 여성들의 이같은 세력 다툼이 숨어있었고 그 배경에 알천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의 알천

알천과 관련해 북쪽인 동천마을과 남쪽인 구황마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도 하나 덧붙여 본다.
동천마을(새주소로 알천길)에는 신라 41대 헌덕왕릉이 있고 구황마을에는 분황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암곡 가내골 등 험준한 여러 계곡에서 급경사로 흘러내리는 알천의 물은 해마다 여름이면 두 마을을 덮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 수 없어 동천사람은 헌덕왕릉에 빌고 구황사람들은 분황사 부처에게  빌었다.

구황마을의 기도가 세어지면 큰 홍수 때 알천물길이 북쪽으로 흐르게 되어 동천마을의 피해가 크고 헌덕왕릉이 훼손됐다.
동천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헌덕왕릉에 빌면 알천물길이 반대로 흘렀다.
그래서 물길이 북쪽으로 치우쳐 흐르면 헌덕왕릉의 석상과 비석에서 땀이 흘렀고
남쪽으로 치우쳐 흐를 때는 분황사 부처가 땀을 흘렸다.

헌덕왕의 영혼과 분황사 부처가 치열하게 싸우자 알천 냇물의 홍수는 마침내
남쪽으로도 못가고 북쪽으로도 못가고 하늘로 치솟아 홍수가 사라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



우유빛깔 알천랑이 떠오르는 알천, 남모공주가 물속에 잠겨 죽었다는 알천, 김주원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한 알천(북천)은
신라시대 당시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가 날만큼 큰 냇물이었다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물이 거의 줄어 든 상태이다.
경주시에서는 2010년 이후 형산강 물을 보문호수로 끌어올려 알천물이 사계절 가득 흐르게 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주의 상징 '알천'을 느긋이 산책하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드라마 관련 포스트**


'선덕여왕' 이요원 촬영장서 만났어요.
'선덕여왕' 미실 고현정 촬영장 직찍
양다리의 결정판, 두 여인을 사랑한 김춘추
덕만 배신한 비담의 난 근거지 명활산성
신라 최고의 플레이보이 '미생' 정웅인
 알천길, 알천구장, 경주에선 친숙한 알천
'선덕여왕' 촬영장, 싸인해 주는 엄태웅
'선덕여왕' 덕만 아역 남지현 촬영장서 직접 보니
'선덕여왕' 감칠맛 나는 콤비 이문식과 류담
유신에게 풍월주 물려준 호재 고윤후
미실 호위 무사 화랑 '대남보'는 누구?
'선덕여왕' 김유신 아역 이현우 촬영장 직찍
'선덕여왕' 최고의 미소년 화랑 '시열' 아역 신태훈
'선덕여왕' 미실궁 직접 가보니
미리 가본 '선덕여왕' 김유신 화랑 산채

'선덕여왕'에서 본 14면 주사위 '주령구'

'선덕여왕' 미실이 연주한 유리잔 '로만 글라스'
비오면 비석 이름 바뀌는 신기한 김유신묘
선덕여왕에서 본 신라인의 장신구 패션
선덕여왕 촬영장, 생생 스케치
선덕여왕 드라마 순례여행 떠나기
'꽃남' 윤지후 한옥 실제로 가보니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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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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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재미있네요^^ 2009.09.18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사랑하는 시청자 중 한 명이라, 관련있는 블로그는 무조건 방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의 말씀처럼 알천랑과 경주의 알천은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지요ㅋ

    드라마에서는 알천 지역(신라 6부촌)의 가장 유력한 집안으로 알천랑의 가문을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대본과 시놉 상에서요)

    애초에 알천이라는 이름은 훨씬 전에 붙여졌고 진주 소씨와도 무관하게 생겨났겠지만,

    알천랑의 가문에서 어린 시절의 알천이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세력이 미치던 지역에서 따왔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워낙 자료가 미약한 시대의 이야기라 이리저리 추측할 뿐입니다.

    이 드라마의 가치는 고대사 지역으로 일반 사람들의 관심을 확대시켰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루비™ 2009.09.18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본과 시놉상에서 그렇게 설정되었다면
      제작진에서도 상당히 신경쓴 부분인데요?
      많지도 않는 고대사의 자료들을 가지고 방대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건 애시당초 정확한 고증이 어려운것 같습니다.
      다만 이 드라마를 계기로 신라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가치가 있겠지요.

  3. 2009.09.18 1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라벌을 관통하는 큰 내가 알천이니 알천의 부모님이 아이 이름을 알천이라고 지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4. 알천포스. 2009.09.18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포스 ~! 조자룡포스~~

  5. BlogIcon skagns 2009.09.18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주에 하이킹도 하고 시간나면 자주 놀러갔었는데 알천이라는 곳이 있었군요. ㅎㅎ
    잘 보고 갑니다. ^^

  6. 2009.09.18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SAGESSE 2009.09.19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 처음 들어요~ 루비님 덕분에 이제는 친근한 이름이 되겠네요~
    경주도 가보고 싶고...가야 할 곳이 넘 많아져요~~ 편안한 주말 되세요! 루비님.

  8.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09.19 0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정말 대단해요~ 알천~ 저도 루비님 덕에 친숙한 이름이 되겠습니다.
    블로그 타이틀 이미지가 바뀌었내요? 가을분위기가 물씬 나는것이 참 예뻐요~

  9. BlogIcon 홍콩달팽맘 2009.09.19 0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렇게 다양하게 지명으로 쓰고 있다니.. ^^
    저 알천 팬인데~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루비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10. BlogIcon 백두 대간 2009.09.19 0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쨌든 경주로서는 알천랑을 경주 홍보대사에서 배제하면 안되겠는데요? ^^

  11. BlogIcon 쏠로울프 2009.09.19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알천에 대해 알게되었고 기사를 통해 소지섭氏의 조상님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자세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올 봄에 경주여행을 하면서도 몰랐던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루비™ 2009.09.19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올봄에 경주를 다녀가셨군요.
      좋은 여행이 되셨는지요.
      드라마의 전개와 함께 경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2. 어신려울 2009.09.19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사책에서도 알천은 배우지를 않았는데.처음들어 봅니다. ㅎㅎ
    멋진 주말 행복하시길요~~~~~~~`````

    • BlogIcon 루비™ 2009.09.19 2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유신,무열왕,문무왕...정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알천까지 학교 고과서에 다루진 않았지요.
      이번 선덕여왕 드라마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게 된 알천입니다.

  13.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09.19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여, 경주에는 정말 알천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군여

  14. BlogIcon 알천 2009.09.19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에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이 새(닭인가?)부리같이 생겨서 "알천"에가서 씻기니 주둥이가 떨어졌다고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 알천이 저 알천인듯해요. 읽은지 오래되서 뒤죽박죽이긴 한데 그여자이이가 알영이고 혁거세의 부인이됩니다. 혁거세 집안과 알천사는 토호족의 혼맥이었겠죠? 그러니 선덕왕때는 김씨로 왕위가 물려졌을지 모르지만 알천도 분명 왕위권자로서의 자격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혁거세도 알지고, 후대의 김알지도 알지고... 왕통을 정당화하기위한 전략인것같네요.

  15. BlogIcon 알천 2009.09.19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의 이름은 이름으로 남고 알천의 이름은 지명으로 남았네요 ^^ 아무튼 그지역을 대표하는 알천을 가져다 이름으로 쓸만큼 대표적인 그지역 권력자라고 생각됩니다.

    • BlogIcon 루비™ 2009.09.21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선덕여왕 이전에는 알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답니다.
      선덕여왕으로 인해 조명받은 후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더랬지요..^^

  16. 칼스버그 2009.09.20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주에 정말 알천이란 이름이 많군요..
    그 당시에 110세까지 살았다면....정말
    멋진 알천입니다...

    • BlogIcon 루비™ 2009.09.21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주의 중심을 오래 동안 흐르며 함께 했던 강이라서
      더욱 시민들에게는 친근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110세까지 살았다니..
      정말 장수했더군요..깜딱 놀랐답니다...ㅎ

  17. 선덕여왕 짱이에요 2009.09.20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열혈시청자입니다. 조금 아시운건 현재 경주의 동천동지역의 알천이랑 지명(거리명이나 다리등..)은 신라이전의 사로6촌(육부촌)의 하나인 알천양산촌(촌장:알평공/경주이씨 시조)의 지명을 따 붙인겁니다. 신라이전의 알천양산촌이 현재의 경주북천(동천동)일대입니다. 사진들의 알천은 선덕여왕에 나오는 알천랑의 알천과는 전혀 무관하다는걸 말하고 싶네요. 댓글보니 한분이 언급해주셨네요-.,-; 언급한 댓글보고 추가한 글내용도 봤네요. 뻘줌하다는.ㅎㅎ

    • BlogIcon 루비™ 2009.09.21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알천랑에서 연관해서 글을 썼을 뿐이지...
      알천이 알천랑의 이름을 따서 붙인거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모두 오해 하시는 듯 합니다..^^

  18. BlogIcon leedam 2009.09.20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로그인 두번하다 컴이 다운이 되는군요 ㅎ~~

  19. BlogIcon 소나기♪ 2009.09.22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주는 자주 가는 곳인데 저런 곳이 있는 줄 몰랐었네요.ㅎ
    알천은 눈썹그리면서 조금 어색했는데 요즘은 눈에 익어 괜찮네요.ㅎㅎ

  20. BlogIcon Happyrea 2009.10.30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경주에는 알천이란 제목이 참 많이도 있었네요.
    이렇게 자세하게 사진과 함께(아주 멋진 사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21. 제루기 2009.12.24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이 대장군으로 있을때는 신라의 수호신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상대등이 되어 정치판에 입문했을 때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지요. 김춘추가 비담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후 자신이 직접 상대등이 되기엔 눈치보이는게 많아 정파를 초월한 인망을 얻고 있는 알천에게 상대등 자리를 내줬고 때문에 알천은 7년 동안 허울뿐인 재상의 직책을 수행하느라 상당히 고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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