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감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02 동양의 피사탑 소주 호구탑을 가다 29
  2. 2010.02.27 단칼에 쪼개버린 소주 호구의 바위 시검석 21


 소주 북서쪽에 있는 '호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이곳은 춘추시대 오왕 '합려'가 행궁을 지었고
합려가 죽은 뒤에 그 아들 '부차'가 아버지를 묻은 곳.

그런데 기이하게도 장례를 치른 삼일 뒤에
흰 호랑이가 무덤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호구(虎丘)'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무덤이기 보다는 작은 언덕 같이 보이는

높이40m의 호구의 정상에는 소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호구탑이 서 있다. 

20ha나 되는 광대한 호구의 묘역을 돌계단을 통해 오르면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물인 감감천이 나오고
 오왕(吳王) 합려(闔閭)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차 내리쳤더니 돌이 무우 베듯 갈라졌고
보검은 하나의 흠집도 없이 완전무결하였다는 '시검석(試劒石)'을 지나
 '천인석(千人石)'이라는 넓적하고 평평한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는 합려의 무덤이 완성되고 그 아래 명검과 보물들을 숨겨두고는
 그 비밀을 지키기위해 공사에 참여한 인부 1천명을 이곳에서 죽였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하고 
 양대(梁代)에 유명한 고승인 '도생'이 이곳에서 설법을 하자 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도 있는 바위이다. 

천인석 앞 절벽 사이에도 샘이 솟아나 사철 마르지 않는 연못이 있는데
오왕 합려를 장사 지낼 때에 이 곳에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된 
보검 삼천 자루를 매장했다고 하는 사실을 안 월왕 구천과 진시황, 손권 등 
수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중에도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지시했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지금은 이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르게 되었다. 

 검지의 벽면에는 크고 작은 글씨들이 쓰여져 있었는데 그 중에
'풍학운천(風壑雲泉)'이라고 쓴 큰 글씨는 송나라의 유명한 서법가인 '미불'의 필체라고 한다.  

 그 중에도  '호구검지(虎丘劒池)'라고 커다랗게 쓴 붉은 글씨가 제일 눈에 띄는데 

  '호구검지'의 네 글자 중에 '검지(劍池)'라는 두 글자는 안진경의 필적이고 앞의 '호구(虎丘)' 두 글자는 후대 사람들이 썼다고 한다.
그래서 '가호구(假虎丘) 진검지(眞劍池)'라는 말이 전한다고 한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한 사람의 필체 같이 보인다. 

 검지를 지나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쌍정교(雙井橋)를 지난다. 

 계곡 위 높이 솟은 다리 가운데 구멍을 통해 저 아래에 흐르는 물을 보니 저절로 다리가 오그라든다. 

 소주에는 '호구'가 제일 높은 산이다.
산의 높이는 해발 40m, 이쯤이면 산이라 하기보단 언덕이라고 해야겠지만
평평한 지대인 소주에선 제일 높은 산일 뿐 아니라 그 위에 47.5m의 탑이 서 있으니
호구탑은 그야말로 소주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팔각형 모양의 7층 호구탑은 북송 건륭 2년(961년)에 완공되어 수 차례의 전란과 더불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는데
현재 우리가 보는 호구탑은 대부분 청 말기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호구탑은 몇 차례의 보수 공사에도 불구하고 북서쪽으로 약 2.48도 기울어져 있어서 '동양의 피사탑'이라고도 불린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호구탑 밑에 합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어
무덤이 탑을 지탱하기 힘들어 지반 침하가 일어나면서 탑이 기울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15층 아파트와 거의 맞먹는 높이이니 탑 바로 아래서 보면 목이 아플 정도이고
뒤로 물러가서 찍어도 탑의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소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안전 문제로 인해 호구탑 내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어 아쉬운 점이었다. 

 소주의 상징과도 같은 호구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꽃축제와 단풍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호구를 가고자 한다면 봄이나 가을에 방문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호구의 주위는 숲과 운하가 매우 아름답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이렇게 가마를 타고 황후가 된듯한 호사를 누리는 것도 꼭 해보아야 할 일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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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도시','동양의 베니스' 라고 불리는 소주에서 4대 명원과 대운하를 돌아보았으면
이제 서북쪽에 있는 '호구'에 올라 보아야 한다. 

 

송대 시인인 소동파는 "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 라고 했는데
이는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뜻인 만큼
호구의 경치는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오왕 합려의 무덤인 '호구'는 정상이 40m 정도 되는 작은 언덕에 조성되었는데 
이 호구산은 이 근방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호구의 주요 볼거리는 호구탑,단양전,감감천,시검석, 검지....등이 있는데
돌계단을 통해 호구를 올라 얼마 가지 않으면 조그만 샘이 나타난다. 

 

 

샘은 이름하여  감감천(憨憨泉).
이 샘물은 양대(梁代)의 고승인 감감(憨憨)이 샘물을 얻으려고 맨손으로 샘물을 파는
정성에 감동한 하늘이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을 내려 주었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단다. 

 

 

 

 

계절 마르지 않은 감감천 샘물은 수질이 아주 좋다고 하며
눈 먼 사람이 이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을 뜨게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 온다.

감감천 샘을 지나자 오른쪽에 '시검석(試劍石)'이라는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 나온다.
바위 덩어리는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중간이 쩍 갈라져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전한다.  

 

 

 

 

 

춘추전국시대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평소에 보검을 갖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라이벌이었던 이웃 월(越)나라에는 천하의 명검을 만들기로 유명한

구야자(歐冶子)가 살고 있었기에 더 더욱 합려의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러던 중 소주 성내에 간장(干將)이라고 하는 대장장이에게 천하 제일가는 가장 좋은 보검을 만들 것을 지시하게 된다.

간장은 왕명을 받들어 정선된 청동만으로 칼을 주조하기 시작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청동이 3년이지나도 녹지 않는 것이었다.

왕의 독촉은 매일 매일 계속되고, 청동은 녹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청동을 하루 속히 녹여 칼을 만들 수 있을까를 염려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 막야(莫耶)가 청동을 녹일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부부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용광로에 넣고 소녀 3백명이 풀무질을 하는 것이었다.
과연 막야의 말대로 하자 과연 청동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하의 보검이 만들어지자 한 자루에는 막야(莫耶)라는 이름을 새겼고, 또 다른 한 자루에는 간장(干將)이라고 새겼다. 

 

그러나 막야(莫耶)는 이 보검이 햡려의 손에 들어가면
이런 보검이 또 다시 만들어질 것을 두려워한
합려가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마침 임신을 하고 있던 부인에게 간장검(干將劍)을 주어 피신시키는 대신

합려에게는 간장검이 아닌 막야검(莫耶劍)을 바쳤다.
그때 마침 호구를 걷고 있던 합려는 천하의 명검을 얻었다는 기쁨에 그 칼로 옆에 있는 큰 돌을 치니

돌이 무우 베듯 갈라졌고 보검은 하나의 흠집도 없이 완전무결하였다.
이것이 호구산의 시검석(試劒石)의 유래이다.

 

 

 

그러나 간장(干將)이 우려했던대로 천하 명검을 얻은 오왕은
이와 같은 훌륭한 보검이 또 다시 세상에 만들어질 수 없도록 간장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간장막야(干將莫耶)'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만든 칼이란 뜻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명검 혹은 보검을 비유한다.  

 

결국 남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장이 비명횡사한 지 18년이 지난 어느 날,
합려는 복수를 위해 간장검을 차고 온 간장의 아들이 휘두른 간장검(干將劍)에 의해 죽고

간장검과 막야검은 청룡과 적룡으로 변해 청년은 청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만이 남아있다.
(이야기 출처:

http://cafe.daum.net/mhcc

 

 

과연 이 바윗덩어리가 오왕이 단칼에 내리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천하의 명검을 손에 얻기 위해 그 검을 만든 사람을 죽이고 다시 그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현장에 서니
단칼에 쪼개 버릴 것은 바위가 아니고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과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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