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반성당과 더불어 비엔나(빈, Wien)를 더욱 비엔나답게 만드는 곳.
비엔나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손꼽히는 쇤브룬 궁전(Schloss Schoenbrunn).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남서쪽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 쇤브룬궁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견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다.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유서 깊은 궁전은 
황제 요제프 1세를 위하여 피셔 폰 에르라흐가 1696년경 설계하여 1700년경에 완성하였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 니콜라우스 파카시가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는데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나폴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쇤브룬 궁전으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크기의 건물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해 버린다.
바로크식으로 지은 이 궁전은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인데 실내는 로코코 양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방이 무려 1,441개나 된다는 거대한 궁전은 길이도 너무 길어서 한 앵글에 다 잡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누어서 몇장 찍어보았지만 역광인 관계로 건물의 모습이 너무나 어둡게 표현되었다.





궁전 입구에서 보면 건물의 엄청난 크기에 비해서 앞 정원이 썰렁하도록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듣기로는 
옛 합스부르크왕가의 황제들이나 황족들은 비엔나시민들의 눈을 많이 의식해서 
황제와 황족들이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궁전의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공랭식 난방 장치와 베르사유에는 없던 수세식 화장실도 비치했으며
화려하게 꾸민 방들에는 촛불을 담당한 하인만도 무려 4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방 중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45개의 방을 통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했던 과거를 엿볼 수 있다는데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
남아메리카산 장미 나무 뿌리로 꾸민 방 등 어느 곳이든 일반인의 눈에 호사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며 
사방이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의 방은 여섯 살 된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입구에서 궁전 건물 쪽으로 가까이 가니 궁전 앞에는 여러가지 자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어지럽기 짝이 없다.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기 위한 준비이다.
마켓이 문을 열면 화려한 장식품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쓰일 물건을 팔고 사고 즐기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이게 된다.
그런데 세계 문화 유산인 쇤브룬궁 안에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니....!
우리 같으면 경복궁 안 뜰에 북적거리는 야시장이 들어선거나 마찬가지일 듯.....





쇤브룬 궁전 내부를 관람하는데는 관람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궁전의 정원만 돌아보는데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궁전 정원을 돌아본 후 언덕 위의 글로리에테에서 차 한잔 마시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궁전 정원으로 향한다.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식 정원으로 들어서니 이미 겨울인지라 
화단과 분수, 정교한 조각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은 다 어디로 가고......꽃이 있던 자리에는 거름더미만 한가득.....썰
렁함만 감돈다.
정원 가장자리의아름다운 조각상들도 추울까봐(?) 하얀 천으로 다 가려놓았다. 석상이 추위를 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놓는건지....
1.7㎢에 달하는 광대한 정원이라지만 볼것이 별로 없어 궁전 맞은편 언덕으로 향한다.




넓디 넓은 정원을 한참이나 걸어가서 뒤로 돌아보니 부드럽게 빛나는 노란색 외벽의 궁전이 너무나 따스한 느낌을 준다.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쇤브룬 궁전의 이 찬란한 노란색을
“마리아 테레지아 엘로우”라고 부른다고.....




정원의 끝에 있는 넵튠의 샘(Neptune Well)도 겨울인지라 분수는 중지되었고 썰렁함만 감돌고 있다.
쇤브룬 궁전(Schloss Schoenbrunn)의 슐로스(Schloss) 는 궁전이나 성을 뜻 하며
쇤(Schoen)은 아름다운 또 브룬(Brunn)은 샘물이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그러니까 슐로스 쇤브룬은 '아름다운 샘물이 있는 궁전'이니 이 샘물은 궁전 이름의 유래가 된 샘물이라 볼 수 있다. 
 




한참이나 걸어 정원을 지나 언덕에 다다르니 보기에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는 언덕이 올라보니 장난이 아니다.
등에 땀이 흥건하도록 헉헉거리며 언덕 위에 올라서 아래를 보니 우와.....!
아름다운 정원과 노란색으로 빛나는 궁전이 훤히 보일 뿐만 아니라 저멀리 비엔나 시내 전경도 한눈에 다 보인다.
비엔나 사람들이 여름 별궁인 쇤브룬궁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언덕 위에서 보는 환상적인 전망 때문이 아닐까?



이 멋진 언덕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단연 글로리에테(Gloriette)이다.
쇤브룬궁의 언덕 위에 이 장엄하고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글로리에테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1757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전몰자 위령의 목적으로 세운 일종의 개선문이다.




시내에서 바라보는 글로리에테는 마치 쇤브룬 궁전위에 왕관을 올려놓은 것 같다고 하니 그것 또한 장관이리라.

아치형의 주랑과 정교한 조각이 일품인 그리스 신전풍의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건물 뒤로 지는 석양의 모습도 너무나 아름답다.





석양이 내리깔리는 글로리에테를 한바퀴 돌아본 후 글로리에테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개선문으로 지어진 이 글로리에테는 지금 시민들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카페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50년이 넘은 귀중한 문화 유산을 카페로 쓰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줄 쳐놓고 올라가지도 못 하게 할텐데.....정말 비엔나 시민이 부럽기만 하다. 

카페 안은 새롭게 리모델링한 듯 깔끔하고 산뜻하다. 




화이트와 골드 베이지 칼라로 된 인테리어는 화려하면서도 세련미가 풍긴다.




케이크와 함께 멜랑쥬 한잔을 마시며 잠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가 된 기분에 젖어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리며 창 밖 하늘이 짙푸른 색으로 변한다.






바로 매직아워가 아닌가.....! 이렇게 앉아서 차만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니 너무나 환한 조명이 글로리에테의 주랑을 환하게 비춘다.





전체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한참 뒤로 물러가서 보니 너무나도 파아란 밤 하늘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글로리에테.
이건 완전히 황금 면류관이 아닌가.....!





황금 면류관은 바로 아래 물에도 있다. 이런 환상적인 반영이라니......!
여행 중에 이런 멋진 야경을 만나기는 정말 쉽지가 않은 일인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셔터를 누르니 오리 한마리가 유유히 지나가며 반영을 흐트린다.

 



다시 한번 더 시도해서 반영과 함께 황금 면류관 같은 글로리에테의 야경 사진을 담는데 성공했다.
NEX-5의 '삼각대 없이 야경 찍기 모드'를 사용해서 찍었는데 비록 삼각대를 사용한 사진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글로리에테의 야경을 찍은 후 어두워진 언덕에서 내려와 궁전 앞으로 오니  아.....! 여기도 너무나 환상적인 야경이 연출된다.
낮에 보던 쇤브룬도 정말 아름답지만 밤의 쇤브룬은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네처럼 황금빛의 궁전으로 새로 태어난다.






거기다 여인네의 눈썹같은 초승달까지 궁전 머리에 아름답게 걸려 있으니 멋진 야경에 운치까지 더해준다.





시간이 부족하여 쇤브룬궁의 화려한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긴 했지만 
오후에 도착하여 쇤브룬의 노을지는 모습과 환상적인 야경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와 쇤브룬궁의 거울의 방을 거닐며 마리아 테레지아의 숨결을 느껴볼 날이 있겠지.....
기약없는 기대를 해보며 어둠이 드리워지는 쇤브룬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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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중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대 및 현대 도시 고린도(코린트,Corinth). 
이 도시는 구 고린도와 신 고린도로 나뉘는데 고대 도시 유적은 구 고린도에 있다.
 
 

고린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고린도 운하.
이 운하는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있는 운하인데 서쪽 바다인 이오이나해와 동쪽 바다인 에게해를 연결한다.
길이 6.3km, 폭 25m(바닥의 폭은 21m) 의 규모인데 다리에서 수면까지의 높이가 약 80m인지라
다리 위에서 보면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일만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운하 양 쪽 바다 풍광도 아주 아름답다.

AD 67년, 로마의 네로 황제는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자기 스스로 첫 삽질을 하여 운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듬해에 네로 황제가 죽자 이어 즉위한 가르바 황제가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지한 이후
1881년 다시 시작하여 1893년에 완성하였으니 운하를 만드는데 거의 180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운하 안에 갑문이 없는 수평식 운하이며 양쪽 만의 간만 시간차 때문에 강한 조류가 일어나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다리 위에선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심한 바람이 불어 운하 구경하는데도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곳이다.

운하를 가로질러 놓인 도로 표지판에 쓰인 낙서가 눈에 뜨인다. 어디든 낙서하고 싶은 심리는 만국 공통인 듯....

운하를 지나면 나타나는 구 고린도에는 고대 도시 유적지가 있다.
이 고대 도시는 지브롤터처럼 돌출한 아크로코린토스 언덕(해발 575m)의 성채 아래에서 성장했다.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채는 고대 도시의 위로 가파르게 솟아 있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가는 육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에
옛날 고린도는 전략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닌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BC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나 BC 8세기초에 고린도 도시국가가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고린도의 정치적 영향력은 주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증대되었다.
그 당시 고린도의 인구가 자유인이 25만, 노예가 40만이었다고 하니 인구 3만 정도인 오늘날의 고린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의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신전 중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의 숭배자들은
종교적인 매음 행위를 자행했고
한 때는 1000명의 선발된 창녀들이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봉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고린도의 부도덕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인과 같이 행한다'는 말은 '성적 부도덕을 행한다'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고린도의 폐허의 아폴로 신전은 BC 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원래 38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반복되는 지진으로 인해 지금은 7개 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신전은 주전 6세기경에 세워진 그리스의 신전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아식(Doric style)기둥이며 기둥이 하나로 된 통기둥인데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 신전의 남아 있는 고린도식 열주가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고대 고린도시의 유적은 아크로코린토스 언덕의 정북쪽에 있으며 그 도시와 언덕은 둘레 약 10㎞의 원형 성벽으로 결합되어 있다.
중요 유적은 대부분 로마 시대의 것들이지만 아고라가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BC 4세기의 일이라고...

아고라(시장)지역의 건물이 화려한 걸로 보아서 고린도 사람들의 생활은 대단히 화려하였다고 짐작되며 이곳은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한 도시였다고 전해 온다.

그밖의 신전, 별장, 극장, 상점, 공중목욕탕, 도기제조소, 단련장, 거대한 개선문,
기타 건물들의 유적이 점점이 들어서 있는 아고라 일대는 1896년부터 대대적으로 발굴되었다.

바울의 재판터(Bema)는 광장 중앙에 쌓여 있는 돌더미로 본래 아고라의 중앙에 자리자잡고 있었으며
가이오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들의 고소로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았단 자리이다(사도행전 18:12~17).
5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인들이 이 곳을 교회로 변형하여 사용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우물 피레네 샘터는 정원과 6개의 물저장소가 서로 유통되도록 되어 있고 한 시간에 11000리터의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곳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화에 의하면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피레네)의 애절한 사랑이 오늘도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고 전한다.

그 당시 길가의 각 상점에서는 우물을 파서 포도주나 육류를 우물 속에 매달아서 냉장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팔았다.

대극장 유적은 에베소 유적지의 대극장에 비해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다.

고대의 고린도 시가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1858년 그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신 고린도 시가 건설되었다.

한때 65만의 인구를 자랑했던 고린도의 현재 인구는 약 3만 정도이며 
신 고린도는 그리스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지만 여행자가 보기엔 한적한 소읍 같은 도시이다.

신 고린도 중앙에 위치한 '신 고린도 바울 교회'의 왼쪽에는 베드로 사도 오른쪽은 바울 사도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교회 입구 우측면에 위치한 대리석판에 흔히들 '사랑장(章)'이라고 부르는 고린도 전서 13장 1~8절의 말씀이 헬라어(그리스어)로기록되어 있다.

신고린도 교회 벽면에는 또한 역대 교역자의 명단이 벽에 적혀 있는데
1대 바울, 2대 아볼로, 3대 실라....이렇게 이어 내려와 현재는 88대 교역자가 시무하고 있다.

AD 50~52년에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자신의 본업인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안식일 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강론하였다.
고대 고린도는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숭상하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는데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인들의 음행을 꾸짖으며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는
고린도서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어서 권유하였다.

이천년전 고린도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말씀....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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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파리 드골 공항까지는 약 2시간.


비행기는 파리 상공으로 진입하더니 도시 위를 아주 낮게 날기 시작했다.


장난감 같은 집들이 쭈욱 펼쳐지고 눈에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방사선으로 쭈욱 뻗은 도로와 그 주변의 집들......개선문이었다!

 

파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도로가 뻗어 있다던


사회 공부 시간의 학습 내용을 
눈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에펠탑도 보이고 세느강도 눈에 바로 들어왔다.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가며 프랑스의 수도 파리 중심지를 훑어 볼 수 있다니.....

 

흥분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창에 매달려 파리를 살펴보고 있는데......  

 

 

도착한 곳은 파리의 관문 샤를 드골 공항.

 

공항의 모습도, 공항의 사무처리도 낭만적인 도시 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일처리 느리고 착오가 많기로 유럽에서도 악명 높은 드골 공항.....

 

여러 항공 편을 섞어 수속을 하다 보니 승객의 짐이 엉뚱하게 다른 항공기로 가는 경우도 많고

 

잦은 파업으로 짐이 한꺼번에 쌓여 짐찾는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프랑스인의 사무 처리는 이미 에어 프랑스에서 실감을 한지라
공항 일 처리도 그러려니 하고 아예 체념을 해버렸다.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짐을 찾고 차에 오르니 파리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텁텁하다.  

 

졸린 눈으로 공항을 지나 시내를 들어가니 조금씩 다가오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상가나 아파트로 쓰고 있는 건물들도 오래 된 듯 빛 바랜 색을 하고 있는 것이

 

이제야 파리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파리의 일반적인 길가의 건물들은
오래된 듯한 고풍 스러운 건물들이 많고 5층 이상의 건물이 잘 없었다.

보통 1층은 상가이고 2층 이상은 아파트로 쓰이는데

건물 외부는 개조를 하지 못하는 지역이 많지만 실내는 최첨단 시설로 개조한다고 한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지 거리에는 노점도 있고 횡단보도 건너는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 발견한 프랑스 월드컵 경기장이다.



생 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이름도 길다).....

 

프랑스 월드컵이 여기서 열렸고 이 때 프랑스는 우승의 영광을 안게되었으니

 

프랑스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기장이다.
 

 

 

 

 


생 마리 마들렌 교회의 뒷편으로 돌아가며 찍은 사진이다.

이 교회는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 방향으로 서면 오른 쪽으로 보이는 교회이다.

고대 그리스 신전 풍의 외관과(파리에 있는 유일한 그리스풍의 건축이다) 19세기 조각들로 유명한 교회라고 한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나가다가 건물이 이뻐서 담아 보았다.

 






시내의 평범한 건물도 벽에는 예술 작품과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거리 자체가 살아 있는 미술관인 파리에 이제 도착한 것이다...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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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날까......?

성베드로 성당....?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로마' 라는 말을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게 

로마 시대의 영화에 나오는 검투사.....그리고 콜로세움이었다. 

쿠오바디스나 글레디에이터같은 영화에 보면 빠짐없이 원형 경기장이 나오게 되는데 

원형 경기장 중의 베스트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을 소개한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적이지만 이 콜로세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가히 로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정식 명칭은 플라비아누스 원형 경기장이다.

 

AD 72년 베스피아노 황제가 착공하여 AD 80년 티토 황제가 완성하였고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다른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높이 50m로 72,000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고 전해진다.


 

앞에 가서 보니 그 규모가 실로 엄청 났고 작은 컴팩트 디카로는 카메라 앵글 안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뒤로 뒤로 물러가 서서 간신히 어느 정도 찍을 수가 있었다.

 

곳곳이 보수 공사가 행해지고 있었지만

 

전쟁 중 생긴 총탄 자국 등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한 바퀴 다 돌아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선문을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로마시대의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나타나더니

 

남편의 목을 휘어잡고 칼을 겨눈 후 포즈를 취한다.

 

급하게 사진을 찍었더니 돈을 달랜다....^^

2유로를 주었더니 갑자기
중얼중얼 욕을 하면서 돈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이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있다가 땅에 떨어진 2유로를 주워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우쒸.....2유로가 어딘데..... 

 

 

 

 

 

 

 

콜로세움의 바로 옆에는 개선문이 있었는데 이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의 원형이다.

 

개선문은 도시 성문이나 성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립적 구조물이었으며   

 

아주 중요하고 명예로운 일을 기념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 로마 시대의 개선문은 3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콜로세움의 바로 오른 쪽에 있는 유적들이다.

 

 

 

 

 

 

 

로마의 여름 날씨는 강한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 쪼인다.

 

고대 로마 도시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금방 지치게 되어

 

콜로세움 근처 잔디에 몸을 누이고 단잠을 청하기도 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로마의 가로수는 소나무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소나무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는 잔 가지 하나 없이 쭈욱 뻗어있고 위는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강한 햇빛에 지친 길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그늘을 만들어준다.



 

로마로 들어올 때에 고대 로마 시대의 길인 압비아 가도를 보게 되었는데

 

2차선 도로같이 쭈욱 길게 뻗은 길 양가에 가로수가 우산처럼 서로 맞닿아 있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였듯이 로마는 정복 전쟁을 위한 길을 사방으로 많이 내었는데

 

군사들이 행진해 갈 때에 가로수가 머리 위에 우산이 되어주어 더운 날에도 쉬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고 하니

 

로마의 영토 확장에 이 소나무들도 큰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포로 로마노는 수백년을 내려온 로마정치의 1번지이다.



신전과 원로원이 있고, 로마 시민의 흔적이 모두 거기에 있다. 

 

 

현재 수많은 유적이 아직 발굴 중이어서 로마를 찾는 사람들은 포로 로마노에서 옛로마의 영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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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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