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의지할 식량이라고는 가축 뿐인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몽골인들은 서구인들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유제품이며 고기는 부족한 유제품을 보충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우유로 치즈나 버터는 물론이고 아이락, 타라크, 으름, 아롤.....등

 10여가지의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하루 평균 가축의 젖을 30~40리터 정도 채유하는데

이는 일가족이 마시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므로 

모든 가축의 젖은 장기보관과 소독을 겸해 끓이거나 발효를 시킨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건조된 우유 과자는 '아롤(Aruul)'이라고 하는데

초원의 게르에서 아롤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제일 먼저 우유나 양유, 염소젖을 솥에다 담고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인다.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바가지로 끓고 있는 우유를 한바가지  떠서 위에서 아래로 주르륵~따르기를 계속한다.

 

 

 

 

이때 우유를 따르는 바가지를 한껏 높이 들어 높은 곳에서 우유를 주르르~~ 떨어지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만들어진 아롤이 더 쫄깃해진다고......

 

   

 

 

우유를 오래 끓여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지면 

물기가 빠진 우유 덩어리를 큰 그릇에 담고 손으로 칼국수 반죽하듯 여러번 주물러 덩어리를 만든다.

 

 

 

 

덩어리가 된 우유 덩어리는 베 주머니에 넣어 흩어지지 않도록 꾸욱꾹 눌러서 잘  응고시킨 후

 

 

 

 

가는 실을 이용해서 우유 덩어리를 세심하게 잘라내는데

칼로 자르는 것 보다 이렇게 실로 잘라내면 흩어지지 않고 더 깔끔하게 잘라진다.

 

 

 

 

실을 사용해서 잘라낸 우유 덩어리를 다시 깍둑썰기하여 햇빛에 말리면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영양 간식 우유과자 아롤이 되는 것이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잘 마른 아롤은 엄청 딱딱한데 입에 넣고 베어물면 너무 딱딱하여 이가 아플 정도이다.

딱딱하게 굳은 아롤은 입 안에 넣고 침으로 녹여 먹어야 한다는데

일부 몽골인들은 아롤을 씹어 먹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아이들에게 계속 먹인다고 한다.

아롤 중에서도 설탕을 뿌려 말린 아롤은 어린이의 간식으로 최고 인기라고......

 

 

 

 

여름철 초원에서는 게르마다 지붕 위에서 아롤을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있다는데

몽골인들은 아롤이 널려 있는 지붕을 쳐다보면서 멀리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릴적 추억을 되살린다고 한다.

 

 

 

 

초원의 게르 안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던 아롤은 요즘은 공장에서 편하게 만들어져서

어느 집을 가든지 손님 대접상에서 아롤이 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투브 초원에서 맛본 아롤이 생각나 몽골을 떠나던 날 수퍼마켓에서 아롤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완제품으로 나온 아롤은 집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아롤보다는 덜 딱딱하고 크기가 작아서 먹기도 쉬웠다.

하지만 게르 안 화덕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순수 우유과자 아롤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수도 없이 우유를 높이 떠서 따르고 우유 덩어리를 주물러  직접 손으로 잘라 말리던 그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투브 초원 게르 안에서 베어물던 고소한 아롤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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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올려드린 포스트에서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1시간 만에 게르(Ger) 한채를 후딱 짓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다.

그러면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투브(Tov)아이막의 초원에서

양과 말을 방목하고 있는 한 가정의 게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초원에서 살던 몽골인들은 기후 여건에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므로

이동이 간편하고 보온이 잘 되는 게르를 전통적인 주거수단으로 삼아 왔는데

영구성이나 외적  보호기능보다는 일시적인 추위와 햇빛, 그리고 비바람을 차단하는 차양이 주목적이다.

 

비교적 간단하고 어설퍼 보이는 이 게르도 의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하는데

몽골에서 제대로 된 게르 하나를 세우러면 우리 돈으로 150~2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게르 하나를 새로 만들려면 온 가족이 몇년전부터 틈틈이 재료를 다듬고 모아서 준비한다고.......

 

 

 

 

몽골의 게르에 들어가려면 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게르에서 멀리 떨어져서 주인을 불러야 하는데 무작정 집 가까이 다가가면 오해받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약탈이나 습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르에 개를 카우지 않더라도고 손님은 멀리서 "개를 불러들이시오." 또는 "날씨가 참 좋군요."등

아무말이나 혼자 크게 지껄이면 주인이 게르 안에서 옷을 차려입고 나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손님이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은 여름에는 아이락을, 그외의 계절에는 수테차를 권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받쳐들어 손님에게 권한다.

차와 동시에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권하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는데 

"건강하세요~(에롤 벵흐 바이가라)",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며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 엄지 손톱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바퀴 씩 돌려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게르는 난로를 중심으로 남성구역, 여성구역, 그리고 신성구역......이렇게  세구역으로 나뉜다.

좁은 공간에서 웬 남녀칠세부동석이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게르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가 어느 곳에 앉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한다.

남성은 게르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여성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남성구역은 하늘이 보호하고 여성 구역은 태양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남쪽으로 난 게르 문의 반대쪽인 북쪽은 신성한 구역인데 

가문의 최고 연장자가 사용하는 무기와 모린호르(마두금), 말재갈 등을 놓아두는 곳이다.

옷이나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옷장인 밝은 오렌지색의 아브다르도 이곳에 자리잡는데

가족사진이나 정부로 받은 훈장, 불상, 라디오 등이 그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칭기즈칸의 초상도 신성구역에 걸려 있는데

칭기즈칸의 초상은 어느 집 어느 게르를 가더라도 빠짐없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의 서쪽인 왼쪽은 남성구역으로 이곳에는 말안장과 고삐, 아이락 주머니 등

남자주인의 소지품들이 걸리게 되고 손님용 침대나 카페트도 이곳에 놓이게 된다.

 

 

 

 

주인 내외의 침대는 오른쪽인 여성구역의 벽에 붙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으면

침대가 거의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모의 발치 바닥에 양탄자나 양가죽을 깔고 잠을 잔다고 한다.

사진에서 게르의 천막 아랫부분이 살짝 들어올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바깥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상당히 시원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르의 동쪽인 오른쪽에는 안주인의 주방용구와 생활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집의 안주인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자수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주방용구가 비치되어 있는 게르의 오른쪽 문 입구에는 이렇게 고기를 줄에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는데

 이렇게 실내에서 고기를 말리는 이유는 밖에 두면 야생짐승들이 언제 물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린 고기는 갈거나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미숫가루같은 이 고깃가루를 '보르츠'라고 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영양도 만점인 비상식량 보르츠는 뜨거운 물에 서너 숟가락 퍼 넣고

 2~3분 기다리면 금방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고.....

 

 

 

 

원형의 게르의 제일 가운데에는 이렇게 난로가 놓여 있는데 취사는 물론 게르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나무가 자라는 지역에서는 난로에 나무를 때지만 그 외의 지방에서는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게르의 난로에 불을 지피면 게르 내부는 금방 더워지고 그 열기는 비교적 오랫동안 간직된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난로를 신성시여기는데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는 것과

난로를 타 넘는 것은 물론 난로에 발을 쪼이는 것도 금기시된다.

난로를 모독하는 모든 행동은 최악이며 주인을 모독하는 것으므로 조심해야 할 일......

 

 

 

 

멀리 한국에서 몽골의 초원까지 온 이방인을 위해 안주인이 몽골 전통 의상 델을 입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어 우리나라의 두루마기와 모양새가 비슷한 델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

단추의 숫자가 많고 화려하면 여성용, 모양이 단순하면 남성용이라고 한다.

남성용 델은 장식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는데

일하거나 말을 탈 때에는 몸을 보호하고 밤에는 담요대용으로 보온에 한몫을 했다.

변화의 물결이 빌어닥친 요즈음 델은 오리털 파커로 바뀌었고

긴 소매의 델로 감추었던 손에는 두툼한 스키 장갑이 끼워지게 되었다.

 

 

 

 

게르를 방문한 기념으로 투브 초원의 이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한장 찍어주기로 했다.

게르의 문 앞에 서서 두 아이를 안고 선 부부의 얼굴에는 순박하고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갔더라면 즉석에서 사진을 출력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점 아쉬운 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진을 출력해서 게르 주인의 이름을 적은 메모와 함께 투브 아이막으로 부쳐 주었다.

가축들이 먹을 풀이 다 없어지면 게르를 분해하여 또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초원의 유목민 가족에게 이 사진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부디 이 사진도 게르의 신성구역의 액자 안에 함께 걸리게 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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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갔을 때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Tov) 초원에서 일정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생활을 일부분이나마 체험한 일이 있었다.

  

  투브에서 체험한 유목민의 생활은 게르짓기, 말타기, 염소젖짜기,

양잡기, 말똥 모으기, 그리고 전통 음식인 호르헉과 아롤 만들기 등이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아 왔으나 너무 방대한 사진양으로 인하여 

사진 편집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하드에 묵혀 놓은지 오래이다.

     

그동안 산발적인 포스팅을 통하여 몽골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드리긴 했지만  

막상 몽골 여행의 핵심이라할 초원의 삶에 대해서는 미쳐 소개해 드지 못한지라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몽골 초원 유목민들의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소개해 드릴까 한다. 

 

 

 

 

초원 생활 편에서 가장 먼저 소개해 드릴 것은 게르짓기이다. 

많은 몽골인들은 아직도 천막집 게르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게르가 몽골인의 유목 생활 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주거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위, 바람, 햇볕에 잘 견딜 수 있는 게르는 1시간 이내에 세우고 분해할 수 있어서

  가축이 먹을 풀을 찾아서 이주하는데 불편이 없는 이동식 주택이다.

       

몽골 게르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카나(khana)'라 불리는 나무벽(외관)과  

나무기둥 윗부분인 '유니(uni)', 중간 지지대 부분인 두 기둥으로 이루어진 '바가나(bagana)',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원형으로 된 굴뚝 '터너(toono)'이다. 

  게르를 지을 때는 먼저 터를 잡고 그 위에 아코디온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벽인 카나를 세운다. 

카나를 몇개 세우는가에 따라 게르의 규모가 정해지는데

  일반인들은 보통 카나 5개 정도의 집을, 귀족들은 카나 10~12개를 사용해서 짓기도 했다고 한다.

 

 

 

 

 

   맨처음 카나와 문을 동그랗게 똑바로 세워 긴 줄로 묶은 후

바가나와 두 나무 기둥을 터너에 묶고 원의 중심에 똑바로 세운다.

 

 

 

 

 

터너는 직경이 약 약 1~1.5m로 흡사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형태인데 

터너가 놓이는 곳이 게르의 중심이며 아래는 난로가 놓여 음식을 만들고 난방도 하게 된다. 

원형 굴뚝인 터너와 아코디언벽인 카나를 연결하는 막대기를 유니라고 하는데  

유니는 게르의 규모가 작으면 45개 정도, 규모가 크면 1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게르의 골격을 다 만들었으면 양모를 압축시킨 펠트로 카나의 겉을 덧대어 비와 눈으로부터 집을 보호한다.

 

 

 

 

 

  그리고 내부에도 나무골격인 카나를 천으로 가리는데 이 게르는 유목민의 주생활공간이 아니라  

보조 생활 공간이라서 세심한 인테리어(?)도 없고 부자재도 심히 소박하다.

 

 

 

 

   

벽을 가린 후에 게르의 지붕을 여러겹으로 감싸는데 이는 몽골 초원의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함이다. 

 

 

 

 

   

제일 먼저 커다란 낙하산같은 하얀 천을 게르 지붕에 올리고 

 

 

 

 

 

끝을 맞추어 게르에다 잘 고정시킨다.

   

 

 

 

 

긴 막대기인 유니의 끝에도 묶어서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하얀 속덮개 위에 다시 양털을 넣어 누빈 덮개를 씌우는데 마치 두터운 누비 이불같은 느낌이다.

 

 

 

 

   

덮개가 크고 바람이 불면 펄럭거리기 때문에 혼자서 덮개를 덮는 것은 불가능하여 

아이를 포함해서 온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게르를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 덮개를 씌우고 장대로 잘 펴고 하는 동안에 좀 떨어진 곳에서 놀러온 이웃들도 이렇게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덮개의 한쪽을 잡고 있는 것만 해도 큰 힘을 보태주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 남은 부분의 누비 덮개를 펴기 위한 손길도 분주하다.

이미 오래 써서 그런지 너덜너덜해진 덮개가 인상적이다.

 

 

 

 

  

많이 헤어져서 너덜너덜해진 덮개지만 비바람을 막고 온기를 더해주는데는 그만이다.

 

 

 

 

   

제일 윗부분에 덮는 펠트커버는 하얀 색인데 가장자리에는 푸른색천이 덧대어져 있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바람에 날리지 않게 3개의 끈으로 펠트와 천막 커버를 꽉 묶는다.

지금은 여름이라 통풍이 잘 되게 게르 아래를 들추어 놓지만 여름이 지나면

게르 아랫 부분을 길고 가는 펠트 벨트(30cm)로 묶어 바람이 게르안으로 못 들어가게 한다.

 

 

 

 

   

가장 위쪽의 굴뚝 구멍은 직사각형 펠트 커버로 부분적으로 덮이게 한다.

이 구멍은 평상시에는 하늘이 보이게 열어놓지만 날이 추워지거나 밤이 되면 전체를 다 덮을 수 있게 한다.

게르의 천은 여름에는 외부의 열기를 차단하고 태양빛을 가려 시원함을 유지하는데

게르의 아랫쪽을 걷어올리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고 밤에는 추위마져 느껴질 정도이다.

또 게르는 낮고 둥글어서 강한 바람을 잘 이겨내는데 외부가 눈비에 젖어도 게르의 천은 금방 마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채 1시간도 안 되어 게르 하나가 후딱 지어졌다. 

사진에서 바로 앞에 있는 게르는 투브 초원에 거주하는 유목민 가족이 실제 거주하는 게르이고 

방금 세운 뒷편의 게르는 식량등을 넣어두는 보조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게르이다.

 

  두 게르의 문은 모두 남쪽으로 내었는데 이는 햇빛을 잘 받고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몽골사람들은 꼭 바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랜 관습 때문에 문을 남향으로 내기도 한다.

 

  지금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주택이 대도시에 지어져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도 하지만 

아직도 초원에 사는 유목민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게르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란바타르같은 대도시의 외곽지역에도 게르가 빼곡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몽골의 전통 천막집인 게르를 세우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는데 

다음에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게르 내부와 초원에서의 생활을 소개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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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과 황무지만 계속될 것 같은 몽골. 이런 몽골에도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울창한 수목 사이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항헨티 산기슭에 있는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 1993년, 몽골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테를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는 몽골의 자랑거리이다. 일전에 몽골에 다녀온 분들이 찍은 사진이나 여행 가이드북에서 테를지를 처음 보았을 때 몽골스럽지 않은 의외의 풍경에  "와....몽골에도 이런 곳이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눈이 부시도록 파아란 하늘 아래 우거진 침엽수림과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유럽의 어느 나라인 것 처럼 착각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날씨 운이 없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몽골이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아침부터 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이 귀한 몽골 사람에게야 반갑기 그지없는 비이지만 어렵게 찾아간 여행자에게 비는 여행을 힘들게 하는 자연현상이므로 시작부터 힘이 빠지게 하고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테를지를 찍어봐야지.....하는 욕심은 살포시 접어두어야 했다.



누가 이곳을 몽골이라 했던가..... 끝없이 펼쳐지는 전나무 숲을 한참이나 달리던 버스가 숲길에서 느닷없이 멈춘다.
저쪽을 보라는 기사의 손짓을 따라서 올려다보니 저 멀리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합장하는 스님의 모습이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 바위를 향하여 절을 하고 사진찍기를 마치니 버스는 다시 빗 속을 덜컹덜컹 달리기 시작한다.


테를지를 향해 한참을 가다보니 길 가에 차량들이 여기저기 정차해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한쪽에는 소방차도 보인다. 
어...무슨 일이지? 교통사고가 난건가?


알고보니 울란바타르 방송(UBS)에서 드라마를 찍으러 온 것이라고 한다. 오....이곳까지 와서 드라마 찍는 현장을 만나다니....

로 지나가면서 언뜻 보니 여배우가 아주 예쁘다. 좀 더 자세히 보게 고개 좀 들어보세요.....


한참을 달려 테를지 국립공원 매표소 앞에 이르니 앞에 이르니 잠시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찌뿌드드......시야는 뿌옇고 어둡기만 하다.
매표소 좌우에는 캠프촌들이 자리잡고 있고 마주 보이는 산세는 국립공원답게 웅장하게 보인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이렇게 말을 대여해주고 있다.
말을 타고 테를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몽골의 말들은 아라비아말들에 비해서 체구가 그리 크지 않다. 우리나라 조랑말보다 약간 더 큰 정도.....


테를지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비를 머금은 흙들은 붉은 황토빛을 머금고 있는데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거친 길을 한참이나 달려온 버스. 드디어 고장이 나 버렸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고장난 차를 수리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곳에 이르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몽골 관련 책자나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 바로 '거북바위'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쳐들고 있는 머리, 등을 덮은 등딱지, 엎드린 형상이 영락없는 거북의 형상이다.


거북바위만 멋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도 빼어나기 이를데 없다. 사진의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하얀 건물이 하나 보이는 데 이곳은 이 주변에 위치한 유일한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문이 전혀 없으므로 볼일을 보면서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세계최고 경관(?)의 화장실이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쭉쭉 뻗은 침엽수림을 보면 마치 알프스 중턱의 어느 마을같다. 하얀 게르만 없다면......


주차장(?)에 가까운 곳에도 올망졸망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어 심심치 않다.


맑은 날씨였다면 파아란 하늘 아래 이런 멋진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정말 아쉽다.
 


그래도 간만에 내린 비로 인해 주변 산의 나무들이 푸르름으로 가득해서 너무나 보기가 좋다.


중생대 화강암지대에 융기된 암산이 오랜 세월 바람과 비에 침식되어 형성된 높은 암벽과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 나지막한 계곡과 푸른 초원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테를지의 지명은 이곳에 많이 자라고 있는 식물이름 '테를지'(우리말로 '각시 석남')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테를지는 몽골인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몽골 최고의 휴양지이다.
거북바위를 지나 테를지국립공원 안으로 쑥 들아가서 만난 아름다운 톨강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창한 삼림은 다음편에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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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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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그의 본명은 테무친이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후엘룬 우진은 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타르가 약탈해 온 여자였다.
후엘룬은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가
이수게이의 형제들에게 발각되어 적장인 이수게이의 부인이 된다.

후엘룬은 잡혀와서 10 달 만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수게이는 고민 끝에 아이를 친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테무친이라 하였다.
자신이 타타르족의 테무친 우게의 목을 벤 날에 태어났으므로 적장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준 것이다.

뒤에 칸(Khan,왕이란 뜻)으로 추대된 그는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고 1,227 년에 세상을 떠났다.





칭기즈칸.....몽골의 역사는 그 이름과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몽골족 가운데는 몽골계 외에도 투르크나 탕구드계 등 여러 언어 집단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3 세기 초, 테무친이 칭기즈칸에 추대되고 몽골 제국을 창건하면서 '칭기즈칸'과 '몽골'이 갖는 카리스마로 인해
다른 소수 부족의 언어와 의식은 모두 철저히 몽골에 동화되고 만다.
이로써 오늘날 몽골족 대부분이 칭기즈칸을 자신들의 시조로 생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몽골 울란바타르에 내리니 칭기즈칸 공항이라는 붉은 네온이 여행자를 맞아 준다.




공항에 한 벽면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관광 기념품점에는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상품들이 진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칭기즈칸 열쇠 고리는 기본이고.....

화폐에도 색깔과 액면가만 다르지 칭기즈칸의 초상 일색이다.

(10,000 투그릭은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10,000원 정도이다.

500 투그릭에도 칭기즈칸...1,000 투그릭....역시 칭기즈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상점이나 음식점의 가장 중심이 되는 벽면에도 이렇게 칭기즈칸의 초상이 붙어 있고





몽골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초상화나 





칭기즈칸을 새긴 카페트가 떡하니 게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울란바타르의 중심인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중심에도





칭기즈칸의 동상이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울란바타르 남쪽 산등성이에 새겨진 칭기즈칸의 대형 형상은 몽골 사람들의 자부심을 더욱 고취시켜주는데
이 형상은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한지 800년 되는 지난 2006년에 만들어졌다.




몽골 사람들은 최고라는 의미가 없는 곳에는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칭기즈칸 공항, 칭기즈칸 호텔, 칭기즈칸 보드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것이 아니면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나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칭기즈칸이란 명칭을 함부러 사용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테러 당할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칭기즈칸이 죽은지 780 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몽골에는 칭기즈칸이 살아 있음을 본다.
몽골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는 살아있는 칭기즈칸은 
각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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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서쪽에 위치한 바얀골 지역(Bayangol District) 적십자 지부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차를 돌려 말 박물관으로 향한다.


차에서 내려 앞을 보니 엄청나게 큰 말동상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건물 바로 아래 선 사람과 비교해보면 말 동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실 것이다.


어마어마한 말 동상이 방문자의 시선을 한몸에 모으는 이 말 박물관은 2009년 5월에 개관했는데
50명의 독일, 중국의 기술자들이 힘을 합친 이 공사에는 무려 250톤의 철이 소요되었다고...


세계 제일의 크기를 자랑하는 말 동상의 높이는 무려 40m 인데 말의 높이만 해도 30m에 달한다고 한다.


동상이 서 있는 건물은 완공되었으나 아직 기반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주변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거대한 정문과 진입로도 아직 공사중이라 주변 경관은 다소 어수선하기까지 하다.


으리으리한 로비로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봉 위에 채찍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칭기즈칸이 15세 때에 황금 채찍을 찾은 장소에 칭기즈칸과 그의 말 동상을 세웠다고 하는데 봉 위에 놓인 채찍은 아마 재현품인 듯.....


말에 대한 다른 전시관이 있나 싶어 물어보니 어이없게도 1층에 있는 전시품은 이게 전부라고 한다.
말 박물관이라서 여러 종류의 말이나 말 관련 유적 및 전시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크기의 말 동상이 전부라고 하니 약간은 실망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 말 박물관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말 속으로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아랫층 로비에서  말 꼬리를 통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말의 뱃속으로 들어간 후 
말 뱃속에 있는 영상실에서 3분 정도의 말 박물관 건립 과정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하고 다시 계단을 통해 
말머리로 올라가게 되면 말머리 끝 부분에 아주 협소하긴 하지만 전망대가 위치해 있어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에서 말 갈기 부분에 사람 세명이 서 있는 것을 점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말 동상과 그 크기가 비교된다.


말 뱃속에 있는 영상실은 한 십여평 규모로 47인치 정도의 TV가 낮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
의자에 앉으면 뒤의 사람은 화면이 보이지도 않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스하고 바로 전망대로 올라간다.
 


영상실을 나와 계단을 통해 전망대로 올라가 뒤로 돌아보니 헉....위엄에 가득 찬 칭기즈칸의 얼굴이 노려보고 있다.


얼마나 크기가 큰지 아무리 뒤로 물러서도 카메라에 반도 채 잡히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크기의 동상을 바로 앞에서 찍는건 광각 렌즈로도 안 되고 어안 렌즈라야 제대로 될까....?


할수 없이 부분 부분 닥치는 대로 카메라에 남아 보았으니 보시는 분들이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조합하시기 부탁드린다.


칭기즈칸의 왼쪽 팔뚝 아래에 늘어선 게르들이 이채롭다.


앞으로 게르 200여채를 주위에 더 세워 이곳을 관광의 기지로 삼을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도 주변이 많이 어설픈지라 잘 정비된 관광지로 자리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 하다.


칭기즈칸 말 박물관.....전시품은 없고 겉모습만 웅장한 박물관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말 동상이 있는 박물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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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머무는 동안 밤의 몽골을 느껴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다운타운 한가운데 엄청나게 큰 게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골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식 이동주택인 게르가 시내 한복판에도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민의 거의 반 정도가 게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전 포스트  아파트와 섞여 있는 몽골 천막집 게르 에서 자세히 말씀드린바 있다.



가까이 가보니 이 엄청난 규모의 게르는 다름아닌 갤러리였다.


'Welcome to our Gallery' 라고 쓰여진 게르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았다.


아.....! 소박하기 그지없는 외관에 비해 내부는 엄청나게 넓었고 분위기 또한 아주 아늑했다.


넓기만 한게 아니라 유니(uni,나무기둥 윗부분)가 2중으로 되어 있고
보통은 2개 뿐인 게르의 중심 기둥 바가나(bagana)도 4개로써  
천정까지의 높이도 엄청 높은 거의 호화 주택 수준의 게르였다. 


지붕의 둥근 천정인 터너(toono)도 엄청나게 큰 사이즈인데 한쪽 부분은 열어두어서 컴컴한 밤 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벽에는 소품을 비롯해서 상당한 크기까지 많은 미술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몽골의 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림 아래에 쓰여진 글자에 눈이 갔는데 이 글자는  위구르 문자를 개량한 몽골의 전통 문자로서 한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쓰는게 특징이다.
몽골은 이렇게 몽골 전통 글자를 쓰다가 공산화 이후 현재는 키릴문자(Cyrillic=러시아어 표기에 쓰임)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그림 중에는 말을 형상화한 추상적인 그림으로부터  


사실적인 그림까지 말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데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다고 할만큼 몽골인들의 삶은 말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교통 수단이다.


몽골의 파란 하늘 아래 낙타의 무리가 떼지어가는 아주 시원한 그림도 있는데 


아라비아 낙타가 혹이 하나인데 반해 고비사막의 낙타는 혹이 두개이라서 혹 속의 지방질로 열악한 환경을 잘 견딜 수 있다.


 '루브즈'라는 방한모를 쓴 남자가 연주하는 악기는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 '모린호르(morin khuur)로써
 악기의 머리에 말머리를 조각했을 뿐 아니라 말총을 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두금(馬頭琴)이라고 부른다.
모습과 소리는 우리나라 해금과 흡사하여 애절한 느낌이 든다.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양털을 두들겨 손질하고 있는데 양털은 옷은 물론이고 양탄자에서 게르를 덮는 직물까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는 필수품이다.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말을 달리는 그림에서는 유라시아를 평정한 몽골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몽골의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사진을 찍는 경험도 해볼 수가 있다.


아주 큰 사이즈로 그려진 몽골 씨름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체급 구분과 경기 시간 제한이 없는 몽골 씨름은 상대방의 무릎이나 팔꿈치등을 먼저 땅에 닿게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데
최후의 승자는 나담 축제(7월 11~13일)기간 중 시합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몽골 대통령에게 푸짐한 선물을 받는다.

 선수들은 시합이 개시되기 전이나 승리하고 나서는 이와 같이 '잔진 말드가이'라는 모자를 쓰고
'가루다(전설 속의 동쪽 새)' 모형 주위를 돌며 날갯짓을 흉내낸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칭호는 매, 코끼리, 사자,거인인데 '거인'은 나담 축제 연승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이다.


아이는 몽골인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이다.
태아숭배사상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는 귀하게 대접받으며 임산부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용서받는다.
교육열도 엄청 높아서 교육을 국가 정책의 우선 과제로 생각하며 
몽골인의 가장 큰 소망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몽골 민속의상은 지금도 남녀 구분이 없이 언제나 애용되는 옷이다.
 델(deel)이라고 부르는 이 옷은 위아래가 하나로 된 소매가 달린 헐렁한 가운인데
칼라가 있고 앞부분이 크게 겹쳐져 허리띠로 졸라매게 되어 있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말드가이(모자)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갤러리 안의 그림을 다 돌아본 후 몽골 전통 의상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몽골 소녀 앞에 서서 눈을 맞추어 보았다.
눈이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크롭한 구도로 인해 그녀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드러내 표현한 것보다 더 과감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소녀의 모습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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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라면 파아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그 초원을 가로지르는 양떼와 말들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몽골의 전부가 아니니.....
몽골에도 산이 있고 호수가 있고 침엽수 우거진 아름다운 숲도 있다.

지난 번 울란바타르 인근의 나이람달 캠프장 게르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캠프장을 둘러 싸고 있는 산 중턱에 하얀 자작나무 숲이 눈에 뜨였다.
소녀 시절 읽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로 인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던 자작나무.
무언가에 모를 향수에 이끌려 일어나자 마자 아침 햇살 머금은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로버트 포로스트의 '자작나무'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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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몽골인의 손님 대접은 아주 극진하다.
길 가다 늦어 아무 집에나 가서 잠자리를 청하면 재워주는 것은 당연하고
떠날 때는 음식까지 싸주며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 준다.





전통적으로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게르의 상석에 앉은 사람이 아이락이나 수태차를 권하던지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방문객에게 건네는데
코담배를 건네면서 "건강하세요~!(에롤 멩흐 바이가라)"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한 후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면서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며,무슨 일로 길을 나서게 되었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뚜껑에 달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어 엄지 손톰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눈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코담배를 상대방에게 줄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며
조금 꺼내어  코담배를 받은 사람은 코담배를 코에 대어 냄새를 맡은 후 그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데

이것은 게르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만약에 거부하면 그것은 무례한 일로써 주인을 쳐다보기도 싫다는 뜻이 된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바퀴 돌아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게 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준다.

코담배통은 몽골에서는 필수품으로 다양한 크기와 재질이 있는데
어떤 것은 금으로 장식한 것도 있어서 그 사람이 가진 코담배통으로 그 사람의 부와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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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꼬옥 들리는 관광 명소가 있으니
그것은 울란바타르 남쪽 벅드산 정상에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 자이승 전승 기념탑이다.



승전탑 아래 주차장에 내려서 고개를 들어보면
몽골 국기에 새겨져 있던 전통 문양 모양의 조형물 뒤로 엄청나게 큰 승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들어서 보면.....승전탑이 위치한 언덕의 높이가 장난이 아닌지라 보기만 해도 전의가 상실될 지경이다.



언덕 입구 광장에는 이렇게 기념 부조가 있고 거기에 쓰인 글은
"소련사의 기억은 하늘의 태양처럼 영원하고 대지를 태우는 불처럼 신성하다."라는 뜻이라고.....
(문자만 보고 몽골이 러시아어를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몽골은 엄연히 몽골만의 언어가 있고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개량한 글자를 쓰다가 공산화 이후 키릴문자(Cyrillic)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광장 앞에는 또 이렇게 전차 한대가 덩그러니 올라가 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2차 대전 당시 몽골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소련에게 기증한 전차로써 실제로 베를린 진군에도 참여했던 전차라고 한다.

혹자는 2차 대전 당시 몽골의 국가 재정상 전차를 소련에게 기증할리가 없다고도 하는데
이전에 중국 및 일본과의 전쟁에서 소련의 도움을 많이 받은 몽골로서는 
전차 대금의 전체가 아니었더라도 상징적인 자금이나마 소련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270개가 넘는 계단을 순전히 도보로만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한 사람들은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게 된다.



점점 가까워지는 승전탑을 올려다보면 엄청난 규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아래 선 사람들과 비교하면 승전탑의 높이가 짐작이 되실 듯 하다.



자이승 전승 기념탑(Zaisan tolgoi)은 1938년과 1945년 두차례에 걸친 일본과의 전쟁에서
러시아와 연합하여 막아냄으로써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과 전사자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탑은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맞는 1971년에 소련의 기증으로 세워졌는데 



높이 솟은 기념탑의 전면에는 한손에는 총을 들고 한손에는 깃발을 높이 세워들고 있는 장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바다와 같이 짙푸른 몽골의 하늘 아래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장병의 모습에서
유라시아 제국을 평정했던 몽골인의 굳건한 기상이 느껴진다. 



깃발을 든 장병의 조형물 아래 반지처럼 둥근 구조물 또한 인상적인데



환형 구조물의 외부에는 몽골 혁명 영웅들의 얼굴이 부조로 새개져 있는데 몽골 공산 혁명의 영웅 '수흐바토르'도 그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포스트 : 몽골 여행의 시작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



환형 구조물의 중앙에는 봉화단 같이 생긴 향로가 있고



안쪽 벽면은 러시아와의 연합으로 일본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그린 모자이크 벽화로 둘러싸여 있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 침공을 위해 중일 전쟁 승리 후 곧바로 러시아 침공을 하게 되는데



그때 마주친 몽골군과의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연합한 몽골군에게 패하게 됨으로 대륙 침공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몽골은 이 당시 러시아와의 연합을 통하여 2차 대전 참전국이 되고 



몽골 공산화는 더욱 가속화되니 몽골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사회주의국가가 된 나라이다.



특히 소련 군사와 몽골 군사의 앞에 나치의 깃발이 땅에 내팽겨져지는 장면과



일본 제국의 깃발을 땅에 내동댕이쳐서 짓밟고 서있는 모자이크화가 가장 인상적이고 속 시원한 부분이다.



조형물 전체의 그림은 소련과 힘을 합쳐 몽골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과감한 모자이크화로 표현하였는데



그들의 얼굴엔 당시 중국도 물리치지 못한 일본을 물리치고 몽골 사회주의 정부를 이룩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몽골의 상징 자이승 승전탑은 또한 몽골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원하게 탁 트여 울란바타르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울란바타르 최고의 데이트 명소이기 때문이다.



승전탑 앞에 서면 울란바타르 중심 구역은 물론 울란바타르 전체가 한장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지는데



멀리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야산에 빽빽이 들어선 집들을 자세히 보면 판잣집과 게르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섞여져 있어서
울란바타르 270만 시민의 반이 게르에 살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몽골의 강남이라 불리는 자이승 지구에는 이렇게 고급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백평이 넘는 아파트도 즐비한 자이승지구는 싱그러운 숲 사이로  푸른 톨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몽골의 아파트들은 한국의 아파트보다 더 화려한 색깔로 칠하는 것이 보통이라 도시의 풍경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 눈부신 조화를 이룬다.



승전탑 계단 아래 보이는 이 건물들은 북한 소유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한참을 보고 있어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승전탑 동편 가파른 민둥산 능선에 무언가 하얗고 까만 점들이 움직이기에 자세히 보니



많은 양과 염소 떼들이 몰려서 내려오는게 보인다.
도시 안에서도 많은 수의 가축들이 방목되고 있는 곳...이곳이 몽골이라는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몽골 최고의 데이트 장소답게 승전탑을 오르내리는 계단 옆 바위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낙서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쓰여져 있는데



그중에서는 한글 낙서도 심심찮게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보이는대로 카메라에 담았지만
찍어온 한글 낙서 사진을 글에 삽입해? 말어? 를 한참이나 고심한 끝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어린 여행자들이 멀리 몽골까지 와서 소속과 이름까지 밝히며 써놓은 낙서를 인터넷에 공개해서
새로운 마녀 사냥꺼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으로 떠나는 우리 자녀들이 외국의 유적지에다 한글 낙서를 남기고 오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을 잘 시켜 출국시켜 달라고 부모님이나 단체의 지도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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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차로 약 20분정도 떨어져있는 
'손기노-카이르칸(Songino-Khairkhan)'지역을 방문하는 날이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야산에는 산중턱까지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곳이 많은데 이 지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손기노-카이르칸 지구 입구로 들어서니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이고 여기저기에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쌓여 있는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혀 포장되지 않은 넓은 도로는 여기저기에 물이 고여 있어 악취가 나고 사람들은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 걸어다니고 있었다.



좀 더 가니 판자로 구획되어진 집들 사이로 울퉁불퉁한 골목길이 보이는데 바닥이 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물웅덩이가 있는 도로를 우리와 꼭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도 눈에 뜨였다.



짓다가 만 집인지....아님 다 부서져 가는 집인지....출입구에 판자로 가로질러 놓은 집이 보였는데 그 뒤의 집도 형편이 비슷했다.



마을 중간쯤 길에는 아예 큰 웅덩이가 생겨서 사람들은 가장자리로 피해서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물웅덩이 옆에 앉아서 놀고 있기도 했다.



동네 중심 지역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차들은 택시 영업을 하는 차.
몽골에서는 개인 승용차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사진의 차들은 대부분 한국 중고차이다.



70년대의 우리나라 달동네처럼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울란바타르 지역의 인구의 거의 1/5에 해당되는 52,770 가구에 232,326명의 인구가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이 건물에서 지역 적십자사 직원을 차에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간 흔적이 있어서 궁금해 했더니 바로 7월 21일에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에 이 마을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둥그렇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은 게르(몽골 전통 주택)가 있던 곳인데 단 30분 정도 내린 집중호우에 갑자기 물이 불어 넘쳐 많은 게르가 떠내려 간 것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단 30분 내린 비에도 물은 넘쳐 흘러 도로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이 지역에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게르를 휩쓸어 그들의 전 재산을 날려 버렸다.


 
마을 옆에 위치하고 있던 군부대의 강당으로 인도되어 자세한 그 당시의 홍수 상황을 사진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7월 21일 갑자기 내린 집중 호우는 울란바타르에 내린 43년만의 최악의 홍수였는데
몽골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1,000여채 이상의 게르가 물에 떠내려가고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상황을 브리핑하던 적십자 책임자는 호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선처를 해줄 것을 호소하며 또한 이 지역에 사는 
편부모이거나 고아인 아이들
중에서는 쓰레기나 비닐봉지를 모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으며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으로 이사온 가정이 많아서 주민등록이 없는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 또한 교육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말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원래  우리 단원들은 손기노 지역 어린이들에게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을 비롯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러 간 것이었는데
현장에 가서 몽골에 내린 최악의 홍수에 대해서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작은 힘이나마 성금을 모아 선물과 함께 손기노 카이르칸 적십자사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혹자는 말한다.
거기까지 가는 그 돈으로 선물이나 성금을 부쳐 주면 되지
별거 아닌 봉사를 하러 비싼 항공료 물어가며 거기까지 가느냐고...
별로 보탬이 되지도 않는 선물 나부랑이를 들고 가서 생색만 내고 사진 찍고 오는게 아니냐고...

단원들이 전달하고 돌아온 얼마 되지 않는 정성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6.25 이후 우리가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다른 세계로 되돌려줄 때는.....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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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볼 수 있는 곳은...?

정답은 '민속촌'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옥은 이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라고 말하는게 더 합당할 듯 하다.

그럼 몽골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집은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
학교다닐 때 사회책에선 '파오'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은 중국어 'bao(包)'에서 기인된 말이고
영어로는 유르트(Yurt), 몽골어로는 게르(Ger)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도시에 초가집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로
아무리 몽골이라도 도시에는 현대식 건물이 있고 멀리 떨어진 초원에 가면 게르를 볼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 어긋나버렸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시내 한복판에 게르가 즐비하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선 나즈막한 야산에 온통 게르 천지다.
현대적인 아파트 앞에도 게르, 차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길가에도 게르, 심지어는 빌딩의 옥상에도 게르가 올라 앉아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주민의 반이 게르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몽골은 온통 게르천지여서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은 울란바타르 인근에서 돌아다니며 찍은 <게르 풍경>을 소개해 드린다.
게르 짓는 과정과 게르의 내부 구조....등 게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회에 다시 자세히 설명드리기로 하고...



울란바타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에 올라서 시내를 본 풍경이다.
저 멀리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산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찬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집들의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당겨 자세히 보니 헉...울란바타르 산중턱에 있는 건물의 반이 게르다.



판자로 울타리를 친 구역 안에 게르가 한두채 씩 자리잡고 있다.



자이승 전망대의 남쪽에는 이렇게 게르 집단촌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나 캠프촌이 아닐까...추측을 해 본다.



손기노-카이르칸 지역의 주택들. 2층 양옥과 게르가 한 동네에 섞여 있다.



게르는 초원에 가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건 완전 오산. 아파트 앞에 게르가 있다.



이렇게 관공서 앞 마당에도 버젓히 게르가 있고



공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게르가 빠지지 않는다.



달동네의 앞의 게르...



가게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게르 앞에 간판이 있는 걸로 보아 상점의 용도로 쓰이는 듯 하다.



때로는 옥상 위에 이렇게 버젓이 올라앉아 게스트 하우스로 쓰이기도 한다.



다운 타운의 고급 아파트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런 게르는 대부분 영업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게르 갤러리도 있는데 엄청나게 규모가 큰 게르 갤러리의 안에는 수준 높은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게르의 모양과 게르를 둘러싼 울타리는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모습이다.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게르나...



민가가 별로 없는 길가에 자리잡은 게르나 다 판자로 담을 둘렀다.



담장은 판자로 , 대문은 함석으로 된 곳이 많이 보인다.



때로는 이렇게 컬러풀하게 담을 장식한 집도 보인다.



물론 초원 한가운데서 사는 유목민들에게야 구역을 정하는 담이야 필요조차 필요가 없겠지만
도시 변두리에 사는 주민들의 게르 주변은 담을 판자로 둘러친 모습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울란바타르의 휴양지구인 나이람달로 가는 길목에도 별장들과 게르가 섞여 있다.
몽골 사람들은 조금만 살만 하면 누구나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부자들은 여름 별장, 겨울 별장도 따로 있다고 한다.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 본 풍경. 웅장한 산 아래 게르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나이람달 캠프장의 게르. 몽골에도 이렇게 멋진 숲이 있고 이런 곳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개울도 있다.



이런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별도.... 달도....은하수도 고스란히 게르 위로 쏟아진다.



몽골에는  울란바타르와 테를지 단 2곳에 골프장이 있다는데.......골프장의 게스트 하우스도 게르다.



부족의 깃발이 나부끼는 이렇게 멋진 게르 안에서는 당장이라도 칭기즈칸이 칼을 차고 나올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게르라면 역시 이렇게 초원의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제격이다.
파아란 하늘과 눈부신 초원의 푸르름 속에 있는 게르의 하얀 색은 초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게르 앞에 이렇게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몽골의 초원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초원의 게르 주변 풍경들은 몽골을 떠나온 여행자의 마음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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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게 개인 날,
버스에 올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nnbataar)의 남쪽 외곽지역으로 향한다.




울란바타르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 지부(Khan -Uul District Red Cross Branch)'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칸-울 지역은 14개 구역에 약 9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달동네와 같은 지역이다.



수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가옥 또한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나 대충 지어진 판잣집이 많고 도시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매우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4일 나담 축제 기간에는 화재가 일어나서 게르 14채가 불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7월 21일 ,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해 게르 1,000여채가 떠내려 가고 사상자도 났으며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칸-울 지구에 물이 차 올라 사람들이 걷거나 차가 운행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길 곳곳에는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어서 길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칸-울지구의 건강과 구호 활동을 위해 봉사하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를 찾아가는데 거리에 고인 흙탕물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걸어 가야 했다.



조그만 판자문을 통해 들어간 좁은 공간에는 벽돌집 한동과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Ger) 두채가 있었다.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는 2001년도에 적십자사에서 건립했는데 우리를 맞아준 게르는 EU에서 지어준 것이다.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몇 분이 먼저 오셔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 RCY 일행들은 준비해 간 우정의 선물 일부를 칸-울 지역에 전달했는데 우정의 선물은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들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이 이분들에게 귀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어 복지 센터로 쓰이는 게르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는데



밝은 외부에서 게르의 실내로 처음 들어가면 갑자기 너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게르의 둥근 천정(터너)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살로 인해 곧 눈이 밝아지고 모든게 익숙해진다.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칭기즈 칸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역대 칸-울지구 적십자 책임자인 듯한(?)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게르의 중앙에는 귀한 생수와 사탕이 전통식 탁자 위에 베풀어져 있었고



 몽골 전통 우유과자인 '아롤(aaruul)' 도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몽골에서 한국을 이르는 말)'에서 온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칸-울지구 적십자 지부장과  자원봉사자 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한국측 대표의 인사와
가지고 간 우정의 선물 및 대한 적십자사 총재의 선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환영해 주신 분들 중에서 녹색 '델(Deel,몽골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1955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자원봉사를 하셨다는데
가슴에는 여러개의 기념 뱃지와 훈장이 빛나고 있어 할머니의 활동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내어주는 자원 봉사를 하셨기 때문일까?
올해 86세라고 하시는데 그 태도는 배우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주색 델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70년 동안 적십자 자원 봉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몽골 적십자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면 이 할머니는 거의 몽골 적십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 델을 입으신 라마승은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통 예절을 교욱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이 지역 노인들이 나와서 멀리서 온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장기 자랑 공연'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을 하러 갔는데 노인들에게 도리어 '위문 공연'을 받은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치는 이 노인들에게는
멀리서 온 방문자들에게 자기들의 숨어 있던 실력을 보여준다는게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생각하며 기분좋게 들으면서 박수도 신나게 칠 수 있었다.



노래의 반주로 아코디언과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는 이어서 기타 독주, 하모니카 독주까지 한다.
한곡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지고......^^
젊었을 때에 한가락 날리고도 남았을 이 할아버지의 끼는 이날 완전 날개를 달았다.



칸-울지부 적십자사 복지센터에서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과 식사 등을 제공하는 등의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날 한국에서 방문한 일행은 노인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는 외에 몽골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마사지 봉사를 했다.



라마승 또한 한국에서 온 사이비 마사지사(?)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함을 즐겼다.
발에 신은 특이한 부츠는 '고탈(Gutul)'이라고 하는데 가죽으로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무신처럼 앞코가 살짝 들리고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마사지 후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이쁘게 문신 스티커를 붙여 드리니 너도 나도 와서 팔뚝을 내미셨다.



살며시 스티커를 떼어 문신이 나타나면 "오~~!" 하면서 너무 즐거워 하셨다.



화장을 곱게 하고 몽골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던 이분도 문신이 아주 맘에 드셨나 보다.



요술 풍선으로 만든 꽃 한 송이를 흔들며 웃으시기도 하고....



풍선 왕관에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이쁜 손길로 주물러주는 마사지까지 받으니 만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별 것 아닌 봉사에도 너무나 좋아하고 기분 좋아 하시던 어르신들은 우리의 마사지 봉사를 다 받고 나시더니 
이번엔 수고한 한국 방문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놀라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손사레를 치고 여러번 거절한 후에야 간신히 그분들의 마사지 시도를 막을 수가 있었다. 




몽골 어르신들은 특히 사진 찍히기를 즐거워 하셨는데....



적십자 뱃지를 단 라마 승려는 최고의 모델이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들에 뺨에 연신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하시는 할머니는 오늘의 히로인이다.



필자는 우리를 환영해 주신 분들의 사진을 한분 한분 다 찍어 드렸는데



특히 이 멋쟁이 할머니는 사진 찍는걸 너무나 좋아해서 수십컷의 사진을 찍었다.



포라로이드 카메라가 있다면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서 드렸으련만.....
미쳐 가져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사진을 인화지로 현상해서 몽골 적십자사로 우송해 주려고 한다.



선물 전달과 마사지 봉사를 마치고 나니 칸-울 지사에서는 방문한 일행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내놓는다.
아니...이런....
봉사받는 분들이 선물을 준비하다니....이런 경우도 있나....ㅠㅠ
우리는 극구 만류했지만 이분들은 자신들이 정성이라며 조그만 민속 악기 모형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몽골을 대표하는 민속 악기의 이름은 '모린호르(morin khuur,馬頭琴)'인데



모린호르의 음색이나 연주하는 영상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몇 시간 머무르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은 헤어짐을 너무나 서운해 하셨다.
초원의 거친 삶 속에서 한번 헤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었던 것처럼 솔롱고스의 방문객들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계속 손을 흔들며....



'바야르태(Баяртай, 안녕히 가세요)'! 를 말하면서도 손을 쉽게 놓지 못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은 모두를 찡하게 했다.



할머니는 들어가시라는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귀 도로까지 따라 나오며 손을 계속 흔드셨다.



어렵게 사는 몽골의 달동네에 가서 건네 주고 온 선물은 별 것 아닌 생활 필수품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관심과 사랑은 전해 준 선물보다 더욱 크고 귀한 것이었다.
힘들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준 그 어르신들을 보니
우리가 과연 그들을 도와주러 갔던건가.....생각되어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졌다.

몽골 가서 무엇을 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주러 갔다가 더 많이 받고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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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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