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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1 '선덕여왕'에서 본 14면 주사위 주령구 30


평소에 드라마를 잘 안 보지 않던 필자, 
요즘 [닥.본.사]하고 있는 드라마는 바로 선덕여왕.

선덕여왕의 주 무대인 경주에 살고 있는 필자인지라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모두 너무나 친근하기만 하다.

선덕여왕 6회에는 진평왕이 연회에서 여흥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진평왕이 "자~! 이제는 내 차례구나..주령구를 던져라!" 고 명하니 시녀는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를 왕 앞에서 굴린다.
시녀가 주사위를 굴리자 나온 글씨는 '음진대소 (飮盡大笑)'.


"음진대소라... 하하하....자, 모두 잔에 술을 따라라 !"
진평왕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다 마시곤 껄껄 소리내어 크게 웃자 좌중의 신하들도 따라서 크게 웃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희한한 모양새의 주사위는 바로 '주령구(酒令具)'이다.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시에 출토된 참나무 주령구에는 
14면 각각에 술 마실 때의 다양한 벌칙이 쓰여져 있어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주령구를 보는 박물관 관람객들은 특이한 모양새와 면마다 적힌 벌칙을 보고 신기해 하는데
왜 하필 주사위를 14면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은 기존 주사위가 6면 밖에 없으니 좀 더 많은 면이 나오도록 궁리하다
정육면체의 모서리 8개도 각각 면이 되게 깎아서 14개의 면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
정육면체 주사위를 가지고 수많이 던져 놀다가 닳아버린 모서리들에 각각 면을 만들어 글자를 써넣다보니
6+8=14 이렇게 14면을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주령구의 각면에는 쓰인 다양한 벌칙들을 보면 그 당시 신라인들의 풍류적인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4각형인 여섯면에 쓰인 벌칙을 보면.....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소리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술 한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5.유범공과 (有犯空過) : 덤벼드는 사람이나 별난 짓으로 골려도 가만히 있기
6.자창자음 (自唱自飮) :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또한 재미있기 그지 없다. 


7.곡비즉진 (曲臂則盡) :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얼굴 간질러도 꼼짝 않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월경 한 곡조 부르기 (달이란 여자에 관한 내용일 듯..)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술 두 잔이면 즉각 마시기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스스로 괴래만(밤 늦게 곤드레 되어 들어오는 모양새)으로 부르기


이 주령구를 던지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신라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날에도 이런 14면체 주사위를 만들어 던지며 술자리를 한다면 얼마나 풍류가 깃든 모임이 될까...
14개의 벌칙을 오늘날에 맞게 현대적으로 살짝 바꿔서 친구들과 한잔 하실 때 써보시길 바란다.

[현대판 주령구 벌칙]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음악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옆 사람한테 코맞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원샷'하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석잔 '원샷'
5.유범공과 (有犯空過) : 통과
6.자창자음 (自唱自飮) : 노래 부르고 '원샷'
7.곡비즉진 (曲臂則盡) : 옆사람과 '러브샷'하기
8.농면공과 (弄面孔過) : 간지럼 참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다른 사람 노래 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달 들어가는 노래 한곡 부르기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 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받은 술잔 남겨놓지 말고 빨리 돌리라.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못난이 흉내내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최신 유행가 부르기






신라인의 풍류와 놀이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귀한 유물 '주령구'
현재 경주 국립 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주령구는 사실 '복제품'이다.
1975년 출토된 진품은 '안타깝게도' 유물 보존 처리도중 전기 과열로 일순간에 불타 버렸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출토된 적 없는 단 하나의 주령구.....
단 한순간의 실수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유물을 잃어 버리다니....
천년 이상 안압지의 뻘 속에서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가 출토되자 마자 소실되어 버린 이일은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존 수준을 다시 한번 짐작케 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천만 다행으로 발굴 직후 남겨둔 전개도와 컴퓨터 단층 촬영,정밀 사진을 통해 재현을 해내어 다시 박물관에 전시하긴 했지만
숭례문의 예처럼 한번 소실되어 복원된 문화재는 더 이상 조상의 손때가 묻은 귀한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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