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이효석, 현진건 그리고 김유정의 단편문학을

그림으로 그대로 살려낸 '메밀꽃,운수좋은날, 그리고 봄봄'.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이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어주는 귀한 영화인데

경북에서는 안동을 제외하고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다....ㅠㅠ

부산에도 딱 두군데. 부산 영화의 전당하고 국도예술관 뿐이다.

영화의 전당은 시간이 안 맞아 국도예술관으로 예약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출발

한참이나 도로에서 밀린 끝에 겨우 시간 내에 도착했는데......근데 국도예술관이 대체 어디 있는거야

네비는 분명히 안내를 종료한다고 하는데......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이 골목, 저골목......한참이나 찾아헤맨 끝에 드디어 발견! 

부산문화회관 앞 모짜르트 레스토랑 바로 아랫쪽에 꼭꼭 숨어 자리잡고 있다.





황당하게도 간판은 국도예술관이 아니라 가람 아트홀....ㅠㅠ





들어가는 입구도 여기가 영화관이 맞나 싶다. 





이건 뭐, 꽃집 입구인지 영화관 입구인지...... 

그나마 여기가 영화관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포스터 몇장 붙은 게시판이 전부이다.



 



벽에는 언제 붙였는지도 모를 입장 가격표가 붙어 있다. 입장료는 모두 000원이다...ㅋㅋ

저 아래 지하로 내려가야 하나 보다. 지하로 내려가는 영화관은 난생 처음이네.....--;;





아이비가 우거진 담벼락 안의 포스터들이 너무나 소박해 보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자유의 언덕' 포스터도 보인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일반 영화관에서 정말 보기가 힘든데 여기서 상영하고 있구나!

가람 아트홀이라고 쓰인 좁은 입구를 통해 내려가 본다.



하아......^^;; 영화관 로비 정말 코딱지만 하다....ㅎㅎ

노트북 하나 펴 놓고 프린터로 출력해서 오려낸 티켓을 발권해 준다. 바로 옆에는 조그만 매점.

과자 봉지는 소리 난다고 들어가면 바로 압수 조치. 소리 나지 않는 그릇에 담아 들어가야 한다.

독립영화를 우직하게 상영하는 철학이 느껴지는 영화관이다. 갑자기 믿음이 가기 시작한다.





입구는 심하게 협소했지만 들어가보니 내부는 의외로 넓고 쾌적하다.

영화 뿐 아니라 연극 등 공연을 해도 손색없는 공간이다.





20대의 풋풋한 사랑, 60대의 아련한 추억, 그리고 눈물 흘리게 만든 40대의 처절한 현실.......

어릴적 읽었던 단편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보다 보니 어느덧 영화가 끝났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어른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안재훈, 한헤진 감독과 모든 스텝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거대 배급사에 밀려 정말 좋은 영화가 발표되어도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요즘같은 현실에 .

흥행을 생각지 않고 좋은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는 국도예술관 같은 영화관이 주변에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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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날 아침, 문득 차를 몰고 봉화로 향했다.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출발, 탁 트인 7번 국도를 시원하게 달리다가 영해면에서 영양으로 가는 918번 지방도로 들어서니

간간히 오고 가는 몇대의 차가 눈에 뜨일 뿐 오고 가는 길이 너무나 한가롭다.

2차선으로 된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숨가쁜 고개를 넘어서니 드디어 봉화읍이다. 

 

읍내라고 하지만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 지나가는 행인조차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시장 앞 거리.

기웃기웃 요기할 곳을 찾다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문을 밀고 들어섰다. 식당 안 역시 한산하다.

식사를 시켜놓고 봉화읍 지도를 펴 살펴보고 있으려니 친절한 주인이 어디를 가보실 예정이냐고 묻는다.

워낭소리 할아버지댁을 가보려 한다고 하니 주인이 난색을 표하며

"거기 가 봤자 별로 볼 것도 없을텐데요. 그 할배 지금 집에도 없고 병원에 계시는데 오늘 내일..... 한다던데요?"한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3시간 반이나 차를 몰아 봉화까지 온 것은 단지 최원균 할아버지를 만나보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현재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집에는 아무도 없다니......

음료수라도 한통 사 들고 찾아가서 영화 정말 감동적으로 보았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근황을 살피고 오려고 했는데......

안 계신다니 발걸음을 돌려야 하나.....생각하다가 그래도 영화에 나왔던 집이라도 먼발치에서 한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원래 계획대로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란 네비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워낭소리 주연 최원균, 이삼순 부부의 집 200m>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인 300만의 관객을 모은 영화 '워낭소리' 주촬영지인 이곳. 봉화군에서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명소가 되어 버린 할아버지의 집 앞은 워낭소리공원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워낭소리공원은 영화 장면을 담은 포토월이 반원 형태로 둘러져 있고

공원 가운데에는 할아버지와 늙은소 누렁이의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포토월에는 영화의 스틸 사진과 함께 영화 '워낭소리'를 보지 않은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까지 곁들여져 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이야 "아이구....번듯하게 잘 해놨네.."하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워낭소리 영화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다리가 불편하신 최원균할아버지는 항상 늙은소 누렁이가 끄는 달구지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녔는데

달구지 조형물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이 흥겨운지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이다.

 

 

 

 

워낭소리공원을 뒤로 하고 할아버지댁으로 가기 위해 약간 경사진 언덕으로 올라가본다.

누렁이가 할아버지를 태운 달구지를 힘겹게 끌고 올라가던 장면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집 입구 길에는 이렇게 워낭소리 영화 이후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장승들도 눈에 뜨인다.

영화 촬영지를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타나 보인다.

 

 

 

 

그런데 집앞에 이르니 영화에는 안 보이던 녹색 철문이 새로 생겼다. 영화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철문에는 '부모님 건강상 이유로 집을 당분간 개방 못 함.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식당 주인의 말대로 할아버지께서 정말 많이 편찮으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문 앞에 서서 철문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집 내부는 영화에 나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집안에 늙은소 누렁이의 동상도 세워져 있고 장승도 세워져 있는 등 집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영화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여기도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변모시켜 버린 것일까?

 

 

 

 

질퍽하고 어수선하던 마당은 번듯하게 포장이 되고 사시던 집도 일부 보수를 한 듯한 모습이다.

 

 

 

 

철문 앞을 떠나 경사진 길로 내려오니 눈에 많이 익은 나무가 앞에 서 있다.

누렁이가 죽은 후 할아버지께서 누렁이와 항상 함께 하던 워낭을 들고 앉아 허탈하게 들판만 바라 보던 바로 그  나무이다.

 

 

 

 

주변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죽은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영화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여서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 앞 밭의 꼴이 말이 아니다. 수백평에 이르는 밭 전체가 수박밭인데 수박이 모두 말라죽어가고 있다.

 

 

 

 

따지도 않은 수천개의 수박은 가지에 달린채로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고 있고 한곳에는 깨지고 터진 수박들이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올여름 남부지방을 강타한 최악의 가뭄으로 수박들이 다 말라죽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수박을 가꾸던 할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쓰러져 입원하셨기 때문에 돌볼 사람이 없어 폐기된 것일까?

잘 자라던 수천개의 수박이 전부 내동댕이쳐져 썩어가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병환 소식 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할아버지댁을 나와 워낭소리공원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누렁이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포크레인으로 파서 매장한 후 둥그렇게 봉분을 해놓았던 누렁이의 무덤은 기념비와 함께 꽃밭처럼 단장되어 있었다. 

 

 

 

 

'누렁이(1967~2008)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이 30년을 부려온 소.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이 소의 나이는 무려 40살까지 살다 갔다.

소와 인간의 교감과 진심이 빚어낸 울림은삶의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었던 소, 누렁이 여기에 잠들다.'

 

 

얼마전까지도 시간만 나면 누렁이의 무덤 앞에서 한참이나 앉아 있다 갔다는 최원균 할아버지.

"이 소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거여...."하던 할아버지는 이제 그토록 사랑하던 누렁이를 따라 갈 준비가 되신걸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먼산을 바라보았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종이던 최원균 할아버지께서

2013년 10월 1일 향년 85세로 임종하셨습니다.

고인의 빈소는 봉화해성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10월 4일 오전 9시입니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뜻에 따라 먼저 간 누렁이의 곁에 나란히 묻힌다고 하는데

누렁이는 별세 3일전 9월 28일 워낭소리 공원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삼순 씨(82)와 9남매가 있습니다.

 

비록 할아버지는 영면에 드셨지만 워낭소리 영화와 함께

최원균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할아버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 입니다.

사랑하던 누렁이와 함께.....

삼가 최원균 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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