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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7 보물 제 904호는 Made in Greece 12
  2. 2009.04.03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 독일 하이델베르크 18


우리나라의 보물 제 904호는 Made in Korea 가 아니다.

외국의 문화재가 국보나 보물이 되는 경우가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물로 지정된 외국 문화재는 10 여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는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경기대회 마라톤 경주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것인데....


바로 이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국내 최초로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겨 버린 일제강점기인지라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는 태극기 대신 부끄러운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지만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소식은

국민들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긍심과 피 끓는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등극하였을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인 것이다. 
 

 



이 높이 21.5㎝의 청동 투구는 기원전 6 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해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서 발굴되었다.






형태를 보면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으며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완전히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눈과 입의 노출을 위해 도려낸 부분과 목과 접촉하는 부분에는 윤곽선을 따라 실을 꿸 수 있도록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투구 안쪽에 천을 대어 머리에 썼을 때 완충 효과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코린트식의 투구는 머리를 완전히 덮고 있기 때문에 명령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결정적인 결점을 지녔고

또한 무겁고 무더워서 여름철에 부적합한 약점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후의 그리스의 투구는 귀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손기정 선수의 전리품이자 우리 국민의 희망이었던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는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 탓에 오랜 기간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베를린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1986년, 그리스 부라딘 신문사의 주선으로
독일 정부는 청동 투구를 우리나라에 반납하게 되었으니 50여 년 만에 드디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강대국 박물관의 소장품 중 많은 유물은 식민지 시대에 부당한 방법으로 긁어 모은 것이 많으나

우리의 이 청동 투구는 자랑스런 전리품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보물 904호가 된 것이니

국립 박물관을 관람할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꼭 이 그리스 청동 투구를 마주 대하여 서서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손기정 선수의 위대한 투혼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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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붉은 고성이 자리잡고 있는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도시.

바로 독일 하이델베르크이다.

도시는 동화 속의 집 같은 붉은 지붕의 고택들로 가득 차 마치 풍경화 같은 느낌을 준다.






하이델베르크는 교육의 도시로 불리운다.

1300년대 후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설립되었고,

이 대학 출신자 7명이 노벨상을 받은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싼 담조차 없이 시내 곳곳의 가옥들 사이에 학교 건물이 배치되어

학교는 그야말로 대학인가 싶을 정도로 작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런 대학에서 수상자가 7명이나 나왔다고 하니 겉모습에 치중하는 우리나라 대학들과는 비교가 되었다.

학교의 재정을 학교 꾸미기나 학교 재산 늘리기에는 당최 쓰이지 않는 듯 하였다.


대학 건물 사이 사이로 가정집도 상가 건물도 자리잡고 있는데

거리마다 여행객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와 들뜬 분위기로 인해

과연 이곳에서 공부가 될까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하이델베르크성에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른 길을 걷거나,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오르는 길 사이 사이 뒤로, 그리고 옆으로 마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지붕 위로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성은

붉은 빛이 진하고 강렬하여 특이하지만  거의 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 듯한 분위기였다.


사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거나, 화려한 궁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0년 전쟁과 나폴레옹의 침략 등으로 여기저기 무너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함 대신 세월과 역사의 사건들로 무너져버린 또 다른 역사를 볼 수 있다.



성의 가장 중심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사방으로 건물이 둘러서 있다.

화창한 햇살 아래 두 채의 건물이 가장 눈에 뜨이는데

하나는 중세의 인물로 보이는 듯한 조각상이 건물 사이 사이에 자리잡은 화려하고 정교한 프리드리히 궁이고,

그 옆으로 네모난 창으로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보이는 오토하인리히 궁이다.


프리드리히 궁 외벽에 있는 인물은 16세기 당시 신성로마 제국의 제후들인데 이름이 같이 새겨져 있고

프리드리히 궁의 지하로 가면 두 개의 술통이 있는데

더 안쪽에 있는 큰 술통은 2층 높이의 건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다.

그래서 술통 옆의 계단을 올라 술통 위로 올라갈 수 있고 뒤로 한 바퀴 돌아서 나올 수 있다.

술통의 용량은 약 22만 리터로 상상하기도 힘든 크기,

아래로 내려오면 술통을 마주보는 병사 모양의 인형이 있는데 술통을 지키던 병사를 형상화 해 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포도주가 세금이었다고 하니 지키고 거두어 들여야 할 병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옆으로 보이는 오토하인리히 궁의 외부 벽은 신화 속의 인물이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의약 박물관이 있다. 



성에는 거대한 술통을 비롯해 불가사의 하다고 전해지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엘리자베스 문이다.

프리드리히 5세가 자신의 아내였던 영국에서 온 엘리자베스의 생일 선물로 만든 것으로

불가사의 하다고 하는 이유는 하룻밤 만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성 중앙의 광장을 벗어나면 전쟁으로 무너진 성의 흔적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정원 쪽으로 돌아가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참히 무너진 화약탑인데,

일그러진 건물의 잔해가 포탄을 맞을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성 안의 정원은 한적하게 산책하기에 좋고, 성 어디에서나 하이델베르그 시내를 조망하기에 좋다.





성의 테라스에 서면 멀리 산과 강, 강에 놓인 다리, 빼곡한 빨간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나라 항공사 CF에 자주 등장하던 그 낯익은 경치이다.

놓칠새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몇 장 찍었지만

조그만 카메라의 앵글 안에다 다 담긴 역부족이었다.



성을 내려와 하이델베르크 대학 바로 코 앞에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되었던 맥주집이 있다.




안에 들어가서 영화의 분위기를 맛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하고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다시 한번 학생 시절로 돌아가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는 공부조차 낭만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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