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집에서 휴일을 즐기면서 1박2일을 본방으로 보았다.
12월 5일 분 1박2일은 대한민국 6대 광역시를 하루에 돌아보아야 하는 주먹을 부르는 특집.

강호동,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 김종민 멤버 5명이 각각 대구, 부산, 울산, 인천, 광주로 흩어져 
제일 먼저 시작한 대구 미션에 성공하면 다음 멤버들에게  미션을 전하는 릴레이방식.

제한 시간 7시까지 마지막 멤버가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과제인데
시간내에 완수하지 못하면 대전 번화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한다는 비인간적인 미션!

1박2일 멤버의 불행은 시청자들의 행복이니....멤버들이 고생을 하면 할수록 더 즐겁기만 한데
대체 이 많은 미션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보고 있노라니.....

나영석 PD와 함께 대구에 도착한 릴레이 미션 1번 주자 강호동이 수행해야 하는 미션은 바로
"100년전 대구의 사진을 찍어라!"

100년전의 모습을 건직한 대구의 근대 문화 유산을 찾아 3장의 사진을찍는 것이다.

미션의 첫번째 대상은 3.1운동 계단, 두번째는 선교사 챔니스의 집, 세번째는 정소아과 의원이다.


지금이야 경주에 살고 있는 필자이지만 대구가 고향인지라
강호동이 찾아서 사진 찍어야 하는 곳은 필자가 너무나 잘 알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던 곳.
직접 뛰어놀기도 하고 자주 발로 딛고 다니던 곳이 TV에는 어떻게 비칠까 궁금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3.1운동 계단과 챔니스 주택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대구 동산 의료원 뒷동산에 자리잡은 청라언덕을 찾아가야 한다.

청라언덕에는 100년이 된 선교사 주택 3채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 건물들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100년 된 3채의 주택 중 스윗즈 선교사 주택은 현재 선교 박물관이 되어 있고





역시 1910년에 건립된 블레어 주택은 현재 교육 역사 박룰관이며






강호동이 미션으로 찾아야 하는 선교사 챔니스 주택은 현재 의료 박물관이 되어 있다.





191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미 캘리포니아에서 유행하던 방갈로풍으로 지어졌는데 지금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집이다.






이 집들의 담벼락엔 하나같이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아 오르는 고풍스런 멋을 자랑해서 '청라 언덕'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중고교 시절 음악책의 유명한 가곡 '동무 생각(思友)'에서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친구야"하는 가사의 청라 언덕이 바로 이곳!
청라 언덕은 필자가 어릴 때부터 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라고 혼자 점찍어둔 곳이기도 하다.



또 이 청라언덕에는 머나먼 조선까지 와서 목숨을 바쳐 선교 활동을 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묻혀있는 무덤인 은혜정원도 있다.
비록 서울의 양화진보다는 규모가 작으나 묘비들로 둘러싸인 이곳에 서면 저절로 옷깃이 여미어지게 된다.



챔니스 주택 바로 옆,  청라언덕에서 계산 성당 쪽으로 내려가는 제일 교회 옆 계단은 

대구 독립 운동 당시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대구 학생들이 헌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한 길로써  3.1운동 계단으로 불리운다.





계단은 모두 90개로 3.1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90계단 양 옆을 장식하고 있는데
대구에서도 아는 사람만 알던 이길은 대구 골목 투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지금은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연인들이 조용히 데이트를 즐기거나 혼자 사색에 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인데
1박2일에 소개되어 버렸으니 사람들로 붐비게 되어 이곳 특유의 낭만과 고즈녁함을 잃을거 같아 걱정이 앞선다.,

3.1운동계단을 내려가 길을 건너면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이 나타나는데 바로 대구 계산 성당이다.





1902년에 첫 미사를 드렸으니 올해로 108년이 된 이 성당은 대구에서 제일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이 지은 이 성당은 지금도 더 잘 지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기 이를데 없다.
성당 바로 옆 뽕나무 골목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국채 보상 운동을 일으킨 서상돈 고택들도 자리잡고 있다.





계산 성당을 지나 바로 옆 약전 골목으로 들어서면 초입부터 한약재 냄새가 온 골목을 진동하는데 이 골목은 바로 대구 명물 약전 골목.
1,658년부터 약령시가 열리던 이곳은 지금도 한약방과 한의원 등 한약 관련 업소 300여개가 성업중이다.

약전 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고풍스런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대구 제일교회 구예배당이다.





112년의 역사를 지닌 대구 제일교회의 구예배당은 고딕 양식으로 1933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는 청라 언덕 위로 예배당을 이전하였기 때문에 구건물은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구 제일 교회와 계산 성당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은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강호동의 마지막 미션은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에 등장하는 대구 최초의 주택 정소아과의 간판을 찍는 것.
진골목(긴 골목)에 자리잡은 2층 양옥 정소아과는 대구부자 달성 서씨의 저택으로 1937년에 건립되었다.
1947년에 소아과가 들어선 이후 내외부 수리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일제시대 상류층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지금은 진료를 하지 않고 문이 잠겨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정소아과의 사진은 미쳐 찍어놓지 못한지라 스샷으로 대신하는 점이 아쉬운데
가까운 시일에 정소아과를 비롯한 대구 진골목 기행을 다녀와서 여러분들께 공개해 드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호동의 대구 여행 마지막은 강호동과 양준엽이 함께 한 대구 대표 음식 기행.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은 막창, 닭모래집.....납닥 만두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1박2일에는 동인동 찜갈비가 소개되는데
필자는 바로 지난주에 동인동 찜갈비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간단하나마 1박 2일 6대 광역시 특집에 나온 대구의 근대 문화 명소들을 소개해 보았다.
자세한 사진과 해설은 관련 상세 포스트의 링크를 눌러 확인하시길 바라오며....
다음 주에 이어질 다른 광역시 기행도 은근 슬쩍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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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지도에 소개되었군요. 감사합니다. ^^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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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으로 알려져 있는 대구 동산 의료원 언덕 위에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같은 기독교 순교자 묘지가 자리잡고 있으니 

바로 '은혜 정원(Garden of Mercy)'이다.

 

 

의료 박물관이 된 선교사 챔니스 주택 아래편에 위치한 은혜의 정원에는 10개의 묘석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데

대구,경북 지방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가 묻혀 있다.

찾아주는 사람 별로 없이 대구 경북 지역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를 찾아온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녀가는 외로운 묘지.

하나님의 나라와 꺼져가는 조선 땅을 위해 낯선 땅에 뼈를 묻은 선교사들과

그들의 선교 활동을 비문과 참고 글에서 찾아 소개해 본다.

 

 

처녀 순교자였던 마르타 스윗츠(Martha Switzer)선교사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뉴욕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써

본국에서 보장된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몸 바친다는 각오로 해외선교를 자원하여

1911년 대구땅을 밟은 뒤 월급도 받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사유 재산까지 다 바쳐 가며 사역하였다.

그녀는 대구명도학원에 2천원의 거금(당시 쌀 한가마 10)을 내고

연합회가 제일동포를 위해 전도사(강성숙)를 파송하자 남은 유산 550원마저 기부하였다.

바로 그녀가 남긴 유산으로 일본 나고야와 만주 한인촌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명예나 보수를 바라지 않은 진정한 사역자였으며

교회를 찾은 조선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헌신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대구땅에서 18년간 봉사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천하였다.

 

 

넬리 딕(Nellie Dick Adams,탁넬니)은 대구 최초의 장로교선교사인 아담스(Adams,안의와,安義窩) 선교사의 아내이다.

그녀는 1897111일에 3개월 된 장남 에드워드(안두화 : 계명기독대 창설)를 안고 태평양을 건너와

대구 지역에 발걸음을 디딘 첫번째 여자 선교사였다.

날마다 대구 땅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넬리 딕은

남문안 예배당(대구 제일교회)의 유년 주일 학교를 창립했고

제일교회 부인 주일학교 교장, 전도부인 담당, 부인 사경회 인도와 순회 전도, 신명학교 출강,

정규 전도 부인 강습회 출강 등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러다 19091031일 넷째 아이의 유산 후유증으로 43세의 나이로 숨져

고국을 떠나 대구 은혜정원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넬리 딕의 쌍둥이 자매 진(Jean)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넬리 딕 선교사의 묘에는 "She is not dead but sleepeth(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니)"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도 이 땅과 이 땅에 있는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영혼은 살아서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쏘텔(Chase Cranford Sawtell,사우대)188119일에 출생하여 ,

19071016일 신혼의 나이에 이름도 잘 몰랐던 한국땅, 그리고 대구라는 곳에 왔다.

그에겐 한 가지 꿈이 있었으니 그것은 대구 선교를 넘어 더 내륙지역이고 당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던

경북 북부 지역 안동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는 안동땅을 향해 기도하며 대구에서 그 곳으로 가기위해 준비하던 도중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죽게 되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I am going to love them." 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자신은 죽지만 여전히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죽음에 가슴 아파한 동료 선교사들은 쏘텔의 소망을 간직하고 자신들이 안동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렇듯 쏘텔은 안동땅에 복음한번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오히려 한알의 밀알이 되어 더 많은 열매를 안동땅에 맺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타 스콧 브루언(Martha Scott Bruen,부마태)선교사는

남편인 브루언(Bruen,부해리) 선교사를 따라 1902510일 대구 땅에 왔다.

남문안 예배당 구내 초가에는 존슨의 부인 에디스 파커가 소녀들을 위한 바느질 반(sewing class)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르타 스콧 브루언은 그 소녀들을 대상으로 신명여자소학교를 설립하였다.

1907년에는 동산 위에 있던 부인용 사랑채에 신명학교를 설립하여 대구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화이트하벤에서 1875년 출생한 그녀는

제일교회 부인주일학교 교사와 농촌교회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부인사경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193010205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르타 스캇 브루언 선교사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원래 조선을 향한 선교의 마음이 없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브루언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브루언을 도와 자신이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태평양을 건너올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사랑과 내조가 있었기에 브루언 선교사의 사역과 대구땅에 여성학교 교육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딸들도 은혜 정원에 함께 나란히 묻혔다.

 

 

은혜정원에는 대구땅과 조선을 위한 선교의 삶을 사시다 묻히신 분들 외에도 곳곳에서 작은 묘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선교사 자녀들의 무덤인데 버디 핸더슨(Buddy Henderson)은 계성학교의 교장 핸더슨(Henderson, 현거선)의 아들로

192065일에 출생해 1921917일로 단명했다.

 

 

루스 번스턴(Ruth Bernsten)은 구세군 대구지방관 번스턴(Brigador Arnold Bernsten)의 딸로 스웨덴 사람이다.

아버지 번스턴은 6.25 이후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웨덴 대표로 내한한바 있다.

루스 번스턴은 1918107일 출생하여 1919128일 사망했다.

그녀의 묘비에는 “Our Darling Rut"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바바라 챔니스 (Babara F. Chamness)는 북장로교 선교사로 1925년에서 1941년까지 대구에서 근무한

챔니스(O.Vaughan Chamness, 차미수) 션교사의 딸이다

챔니스 선교사는 애락원에서 농사와 축산을 지도했으며 애락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조엘 로버트 핸더슨(Joel Robert Henderson)은 남침례교 선교사 Willie G. Henderson의 아들로

1964년 태어나서 몇 시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헬렌 맥기 윈(Helen McGee Winn)은 북장로교 윈(Rodger E. Winn,인노절) 선교사 부부의 갓난 딸이다.

윈은 안동에서 경안노회를 창설하고 안동성경학교를 설립한 분으로 헬렌 맥기는 19131110일에 출생하여 열흘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었던지라

선교사의 자녀들은 태어나서 채 생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가운데 죽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먼 이국 땅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가운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자녀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들, 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사랑했던 조선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 분들의 마음에 있었기에.....

그들의 삶은 계속되고 이 땅에 선교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이다.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 은혜정원 표지판의 글에서--

 

참고 포스트 : 의료 선교 박물관(http://blog.naver.com/mslee1116)

메디 시티 - 건강(http://blog.naver.com/msl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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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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