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낡고 오래된 집들이 헐릴 위기에 처해 있다가
마을의 벽에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게 됨으로 재개발 계획이 유보되고
전국에서 찾는 방문객으로 연일 북적이게 된 통영의 동피랑 마을.

울산에도 동피랑과 같은 벽화마을이 생겼다는 소식을 이웃 skypark님의 블로그에서 접하고
언제 한번 가봐야 할텐데......생각하고 있던 중에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날 오후 문득 집을 나서 울산 '신화마을'으로 향한다.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신화마을'은
1960년대 당시 매암동 일대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형성된 철거 이주민촌이다..

장생포와 매암동 일대에서 고래잡이로 생활을 꾸려가던 주민들은
석유화학공단 조성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현재의 야음장생포동으로 이주하였다.

1980년대 초에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되고
신화마을에는 현재 약 34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가려 철저히 소외된 신화마을의 주거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는데
재개발을 하지 못하여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있거나 
보일러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은 신화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고래를 주제로 한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가파른 마을 중앙길의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시멘트 담장과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는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지고 
골목길에는 신화의 골목, 암각화의 골목, 동화의 골목, 착시의 골목, 시의 골목, 꿈꾸는 골목 등 각각 다른 테마의 그림이 그려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인적이 드물었던 마을은 이제 주말이면 방방곡곡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행지로 변신했다.
사진애호가들에게는 꼭 한번 찾아볼만한 이색적인 출사지 '신화마을'을 몇장의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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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을 옆에 끼고 까마득한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 섬처럼 폭...꺼져 있는 마을, 대구 삼덕동.
일제시대부터 이십여년전까지는 유력한 인물이 많이 살던 대구 최고의 부촌이었다.
아파트로 주거 형태가 바뀌고 사람들이 하나 둘...이 마을을 떠나면서부터
동네의 집들은 비워지고 저소득층이 사는 마을로 변모해갔는데
한사람의 제안으로 담장허물기 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 마을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골목 문화'가 이곳의 적산 가옥인
'빛살 미술관'을 중심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고 있다.



재개발 바람이 불어 사라질 뻔 했지만 이제는 대구의 골목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삼덕동,
미쳐 담장을 허물지 않은 집들은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찾는 이들을 반겨준다.
골목 전체가 오픈 갤러리인 삼덕동에는 주민센터에조차 멋진 벽화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끄는데
오늘은 주민 주민센터 벽에 그려진 멋진 벽화와 정크 아트 자전거 거치대를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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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침전 동쪽 터에 자리한 자경전(慈慶殿)은
고종 4년(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되어서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은 것이다. 

 

  멀리서 보면 길게 행각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남행각 서쪽에서 여덟째칸과 아홉째칸 두칸이 출입문인 만세문(萬歲門)이다.  

 

 문은 각각 네짝씩 당판문을 달아 여자들이 가볍게 여닫기 쉽게 하였다. 

 

 너른 마당의 오른쪽으로는 협경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마흔 네간의 자경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중앙의 자경전은 대비가 낮시간에 거처하는 공간이고 

 서북쪽에는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침방인 복안당이, 동남쪽에는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다락집 청연루가 있으며
 이어 오른쪽으로 열두간의 협경당이 부설되어 있다.   

 

 자경전의 뒤뜰로 돌아가보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유리 지붕으로 덧씌운 꽃담이 나오는데 

 

 바로 보물 810호로 지정된 자경전 십장생 굴뚝이다. 

 

 자경전은 왕실 최고의 여자 어른인 대비의 침전이므로 많은 온돌방이 마련되었고
그 방들에서 나온 여러개의 굴뚝을 모아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들었다.
전 벽돌 담장의 일부를 한 단 앞으로 내밀어 생긴 벽 사이의 공간은 연기의 길이 된다.  
 

 굴뚝 벽면 중앙에는 큰 화면을 만들어 여러 모습들을 조형적으로 조각했다. 

 

 이 화면에는 장수를 주제로 삼아  

 

 솔,거북,사슴,불로초등 오래 사는 십장생들을 묘사했다.   

 아래 위로 작은 화면들을 만들어 여러 동물들을 배열했는데 학은 장수를, 박쥐는 부귀를,나티와 불가사리는 악귀를 막는 의미이다.
이 굴뚝은 나이 많은 여주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한 폭의 정교한 벽화라고 할 수 있다.  

 

 뒤뜰에서 나와 서쪽으로 난 출입문으로 나오면 주황색 벽돌로 축조한 꽃담에 눈길이 가는데  

  담 내벽에는 만수의 문자와 격자문, 육각문, 오얏꽃 등이 정교하게 장식되었고,
외벽에는 매화, 천도(天桃),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이 든 조형전(造形塼)으로 구워 배치하였다.

 

조선 시대 꽃담의 높은 수준을 사진으로 살짝 감상해보면.....   

  

 

 

 

 

 

 

 

 

 

 선왕이 승하하여 왕세자가 보위에 오르게 되면 왕의 모후인 대비는 자연히 대비전으로 물러앉게 되는데
 나이 많은 대비가 일반적이었겠으나 때로는 스물대여섯 나이에 대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밖으로는 화려해 보이나 내적으로는 외롭기만 했던 대비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그녀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하였을 꽃담.
자경전의 주인은 이미 가고 없으나 지금도 꽃담은 그 자리에서 고고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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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 칭송받는 터키 카파도키아.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카파도키아를 한번에 소개해 드리기는 힘들어
에센테페, 괴뢰메, 데브렌트, 파샤바....등 몇 지역으로 나누어서 포스팅하고 있으니
이미 올려진 카파도키아의 에센테페와 괴뢰메, 데브렌트의 풍경은 아래 포스트를 살짝 눌러 확인하시길 바라며
카파도키아 편 마지막으로 젤베 야외 박물관과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우는 파샤바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위르굽과 아바노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젤베 야외박물관 역시 괴뢰메 야외박물관처럼 입장권을 사서 관람해야 한다.


카파도키아에서도 젤베 협곡은 아마도 카파도키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했던 종합 도시였을 것이다.


이 곳 역시 화산과 침식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 지형에 암굴을 파고 사람이 거주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암굴의 규모나 여러가지 시설 면에서 다른 곳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이다.


그들은 거주지는 물론이고 교회,방앗간,물 저장 탱크 등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실제로 1950년대까지만해도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풍우와 지진 때문에 바위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져 지금은 근처로 이주했다고 한다.


벽화가 있는 몇 개의 동굴과 협곡은 산과 산을 잇는 가느다란 터널로 되어 있고
내부에는 곳곳에 사다리가 걸려있으며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도 있다.


동굴 안에는 내부가 연결되어 2~3층으로 되어 있어 생각보다 넓다.

 

주거와 저장 창고 외에도 교회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젤베는 기독교 수도사의 은둔 지역이었으며 기독교도와 이슬람 교도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는데


아래는 교회인데 위에는 모스크의 뾰족한 첨탑이 서 있는 동굴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동굴 교회의 벽화에는 인물 대신에 사슴,포도,십자가 등의 상징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교회 안에서 창문을 통해 본 젤베 계곡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길 가다 차를 세우고 돌아볼 수도 있는 파샤바(파샤바흐체)는


커다란 송이 버섯을 연상시키는 바위와 3개의 버섯 모양의 바위가 연속해서 붙어있는 요상한 골짜기.


파샤바의 버섯 바위를 현지 사람들은 '요정이 춤추는 바위'로 부르는데 이는 바위 속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믿은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세상을 등지고 산과 바위로 숨어 들어가 신앙 생활을 할 것을 주장한
고대 수도사 성 시메온이 거처한 바위가 있다고 해서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불리운단다. 


외계의 도시같이 특이한 이 곳은 특히 '스타워즈1'의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1981년 미국에서 TV 에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스머프’에 등장하는 버섯집 또한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파아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요정의 굴뚝들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스머프들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 옆에 서 있는 성화 같은 바위도 눈길을 끄는 바위 중의 하나이다.

유럽의 세련된 관광지와 달리 터키 대부분의 관광지는 우리나라 관광지 앞과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한데 어설픈 상점들이긴 하지만
이 지방에서 나온 여러가지 원석들과 금속 공예품, 질좋은 도자기 제품들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특히 아라베스크 무늬의 여러가지 쟁반들과 접시, 냄비 받침들은 카파도키아 최고의 기념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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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새미 우물의 물을 길어 숨차게 올라가던 골목길.
동편 벼랑 꼭대기에 오르면 하늘도 바다도 푸르름으로 다가 온다.

 숨죽이고 있던 벽들이 새롭게 태어나 우리에게 속삭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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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graffiti)는  벽이나 지하철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휘갈겨 쓴 글씨 또는 그림을 이르는데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에서 유래했고
고대의 동굴 벽화,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그라피티는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이
뉴욕의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와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힙합(hip-hop) 문화와 결합하면서 확대, 발전되었다.
그라피티를 다른 말로 태깅(Tagging)이라고도 하는데,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완성한 뒤
자신들의 이름이나 별칭을 그려넣은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라피티는 초기에 인종주의· 고립· 환경오염· 정체성 상실 같은 사회 비판에 뿌리를 두었지만,
최근에는 신변 잡기적인 부분에까지 작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라피티는 뒷골목 범죄자들의 낙서로 폄하되던 지위를 벗고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친숙한 거리 미술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전에 유럽 여행 중에도 고속도로나 도시 곳곳에 그라피티가 자리잡고 있는걸 수없이 많이 보았는데
이렇듯 그라피티가 예술로서 뿌리를 내린 데는 미국 태생의 세계적인 화가 장 바스키야의 공이 컸다.
(장 미셀 바스키야 관련 포스트 : 28세에 요절한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야)

  그러나 아직도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을 롸이터(Writer,낙서쟁이)라고 부르는 등
크라임 형태로. 또는 미술계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고 있으며
안티 그라피티(Anti-Graffiti)도 있을 정도로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그라피티 문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라피티는 소수 마니아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래 사진은 한적한 시골 국도변 나들목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
지방에서 보기 힘든 그라피티라...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담아 보았다.
아직 미완성작인지 휘갈기다 치운 그림도 많았는데....
이 그림을 보시는 여러분에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라피티.....낙서인가? 예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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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덕동의 골목 벽화는 하나 하나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완성도가 높고 지속성이 있는 벽화를 만들기 위해 

타일이나 병뚜껑, 항아리조각 등이 모두 동원되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벽화 작품을 만들었다.



보는 사람이나 집 주인들에게도 애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게 정성이 깃든 삼덕동의 벽화.

앞으로도 수준높은 벽화가 많이 그려지길 기대하며 삼덕동 벽화 순례를 떠나 본다.










































 




















삼덕동 골목.....참 좋지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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