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자가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 것을 하나 들라면 바로 섹시하고 요염한 춤으로 알려진 벨리 댄스가 아닐까.....벨리 댄스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 춤추는 모습이 묘사되어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몸통(belly)과 허리를 흔들거나 비트는 춤은 사막지대에 사는 민족에게 특히 두드러지는데 뛰거나 발장단을 칠 만큼 단단한 지면이 아닌 모래땅에서는 발이나 손의 동작이 제한되므로 발밑을 고정시키고 몸통의 동작에 중점을 두는 춤을 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집트를 비롯한 중근동 각지에서 흔하게 벨리 댄스를 추어왔었지만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여성의 노출도가 많은 춤이 경원시되면서 차차 그 화려함을 잃어가게 되었는데 비교적 계율이 엄격하지 않은 터키는 오스만 시대에 전래된 이후로 벨리 댄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사실 벨리 댄스를 직업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시베르 잔'같은 가수들이 벨리 댄스를 통해 스타덤에 오르기도 함으로써 현재는 벨리 댄서 지망자들이 많아졌다고.....

 

 

터키에서도 유명한 관광 온천지역인 파묵칼레의 호텔 히에라폴리스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한 벨리 댄스 공연이 저녁마다 펼쳐진다. 호첼 정원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아라베스크 풍의 음악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댄서가 무대로 등장하였는데 신비감을 주기 위해서일까...? 머리를 검은 두건으로 가리고 입장했다.

잠시 두건을 쓴 채 춤을 추다가 두건을 벗는데 보니 예상보다 미모가 돋보이는 벨리 댄서다. 영화나 TV에서 본 벨리 댄서들은 대부분 살집이 좀 있고 허리가  튼실한 여자들이던데 이 벨리댄서는 허리도 날씬하고 아랫배도 거의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슴이 풍만하고 키까지 큰 아주 바람직한 몸매와 용모의 소유자였다. 

 

 

요염한 몸 동작, 배꼽을 드러낸 아슬아슬한 복장을 입고 골반 아래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벨리댄스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춤이 아닐까? 무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멋진 춤을 선보이는 벨리 댄서는 춤추는 내내 관중석을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기까지 하니 남자 관객들의 마음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다. 양손에 케스터네츠를 들고 아라베스크 음악에 맞춰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는데 우리나라의 아마츄어 벨리 댄서들의 허리만 열심히 돌려대던 댄스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이 댄서는 완전 몸이 각각의 부위 별로 따로 노는 것이었다. 목을 흔들면 몸의 다른 부분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만 왔다 갔다 하고
가슴을 흔들면 다른 부분은 가만히 둔 채 가슴만 흔들고 배를 흔들면 배 아래 위는 가만히 있고 배만 신기하게 흔들어지는 것이었다.

 

 

벨리 댄스의 절정은 이 댄서의 가슴 흔들기.....신체의 모든 부분은 움직이지 않고 가슴만 요동치며 움직이는데 더 놀라운 것은 양쪽 가슴이 상.하.좌.우로 각각 흔들어지는 것이다. 가슴을 따로 흔드는 이 묘기에서 남자 관객들의 괴성과 함께 우뢰같은 박수가 쏟아졌다...는건 두말하면 잔소리...^^

 

 

무대에서의 공연은 다 끝나고 이제 관객들에게로 댄서가 내려왔다. 이제 부터가 관객 서비스의 시작.....^^ 주로 남자 손님들이 많은 테이블을 찾아가 가슴 흔들기....배꼽 흔들기 들의 기교를 선보인다. 그러면 관객은 팁을 주는데 이 댄서는 받은 팁을 브라 안에 잘 갈무리 해두었다.(주머니가 없으니 가장 안전한 곳인 듯 하다..^^)

 

 

팁을 많이 받은 벨리 댄서......더욱 흥이 나서 케스터네츠를 흔들며 서비스로 배꼽 흔들기도 추가해서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남자들은 즐거워 죽을 지경인데 반해 동행인 여자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매우 띠꺼워하기도 하고 어떤 여자들은 벨리 댄서가 자기 앞으로 올 때에 남편의 손을 억지로 끌고 일어나 자리를 뜨기도 했다.


벨리 댄서의 독무가 있은 후에는 무대 위로 관객을 불러내었는데 서양과 동양 남녀가 각각 5명씩 불려나왔다. 그런데 서양 여자나 남자들은 제 나름대로 열심히 춤을 추는데 반해 동양인들은 쮸삣쮸삣하면서 수줍음을 타느라고 엉덩이 한번 제대로 못 흔들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유럽인,미국인,동양인.......한 사람씩 벨리 댄스를 흉내 낼 수 있도록 시간이 주어진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불러내었는데 터키 남자인 듯 했다. 조명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깨까지 길러 늘어뜨린 머리, 적당한 콧수염, 탄탄한 근육의 20대 후반의 멋진 꽃미남이 앞으로 나오자 여인네들의 눈이 반짝이기 사작했다. 

이 남자를 '핫산'이라고 부르겠는데(핫산은 우리 나라로 치면 '철수'정도의 이름?) 이 핫산의 춤 솜씨는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벨리 댄서가 어떤 동작을 하던 멋지게 따라할 뿐만 아니라 아라베스크 음악에 맞춰 너무나 섹시하고도 살짝 끈적한 댄스 동작을 우리에게 선보여주었다. 우리 나라는 남자 댄스 가수의 춤이 섹시함 보단 파워풀한 것을 중시하는데 비해 터키의 뮤비를 보면 남자의 춤도 어찌 그리 섹시한지.....핥을 듯 쳐다보며 허리를 꼬는 춤이 거의 여자의 춤이나 매 한가지인데.....이 핫산의 춤도 마치 그것과 같아서 여자 관객들의 시선을 한 눈에 모아버렸다. 

이 핫산의 벨리 댄스는 갈수록 절정에 달하여 음악에 몸을 싣고 흔들다 더워진(?) 이 남자....나중엔 웃도리까지 벗어 던졌는데 그 몸매가 가히 예술.....(몸이 그 정도니 과감하게 옷을 벗지.....^^ ) 나중엔 뒤로 허리를 완전히 꺾어서 춤추다  거의 바닥에 누워서 섹시한 동작의 춤을 추기까지했는데 그 때에 여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호텔 정원을 떠나 보낼 듯하였다. 환상의 춤 솜씨를 선보인 후 벨리 댄서와 함께 손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한 핫산.....관중들의 우뢰같은 박수와 함께  관중석으로 퇴장했는데 저 남자가 도대체 어디서 온 남자야....하면서 여자들의 웅성거림이 한동안 계속되었다는........^^  


이와 같이 터키에서 벨리 댄스를 관람하는 도중에는 반드시 관중을 불러내어 함께 춤추는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터키에서는 벨리 댄스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젊은이들이 가는 디스코텍에서나 결혼식의 축하연 자리에서도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터키 남성들은 즉시 춤추러 나오곤 한다.

이후에 혹시 터키에서 가셔서 벨리 댄스를 관람하실 때에 댄서가 여러분을 지목하여 부른다면 어떻게 하실지....혹시 공연 때에 '하디.하디(자,자)' 라는 권유의 말을 하며 여러분에게 춤추기를 권유하면 망설이지 말고 무대로 올라가서 춤을 추어 보심이 어떠한지......
당최 춤을 출줄 모르신다고.....? 당신이 댄서의 벨리 댄스 흉내를 내든지 자신만의 막춤을 추든지 어떤 춤을 추더라도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혼자 노는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즐기는 것. 그것이 터키식 놀이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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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누구에게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단 하나, 바로 '아야 소피아 (터키어,Ayasofya)',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Αγία Σοφία)'라고 불리우는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 중 최대의 걸작으로 AD537년에 완공되었다.
교회가 건축된 이후로 제국의 멸망까지 새로운 많은 건축 기술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야 소피아를 능가할 수 있는 어떤 건축물도 건축되지 못했으므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오르기도 했다.

  

 

이 건물은 537년에 건설되어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916년간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1453년부터 1934년까지 481년 동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대규모의 복구 사업을 거친 후에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던 시절에 회칠하여 사라졌던 비잔틴 모자이크들이 빛을 보게 되었으며
1935년에 교회도,이슬람 사원도 아닌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써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아야 소피아를 방문하기 위해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라고 쓰인 입구로 들어선다.

3개의 돔이 예배당인 아야 소피아는 돔 형식으로 만들어진 첫번째 건축물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섯개의 돔 건축중의 하나이다. 

 아야 소피아의 구조를 보면 중앙 돔 정점까지의 높이는 56.6m 이니 무려 15층 건물의 높이에 해당된다. 

건물의 전체 길이는 100m이고 내부 공간의 크기는 75m X 70m로 내부 넓이는 7,570 평방미터(2,300평)에 이른다. 

 

 

 외랑 벽에는 아야 소피아의 역사를 알려주는 설명 판넬이 여러개 붙어 있다.
 현재의 아야 소피아는 사실 이 자리에 세워진 세번째 건물인데 AD 360년에 비잔틴 황제 콘스탄틴이
메갈로 에클레시아(거대한 교회)라는 목조 건물을 세웠지만 404년에 발생한 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416년에 다시 지어진 교회는 532년에 니카 혁명 기간 동안 반란군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두번째 교회의 토대와 계단,부서진 박공 부분은 현 '아야 소피아'입구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외랑의 한 부분에는 아라베스크 무늬의 작품들과 걸개,소형 액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외랑을 거쳐 내랑으로 들어서면 길이가 60m, 넓이가 11m인 내랑의 천정은
완전히 금색 모자이크로 덮여 있고 
벽들은 모두 대리석과 아름다운 돌조각으로 장식되었다.  

내랑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9개가 있는데 9개의 문 중 맨 끝의 3개씩 6개의 문은 일반인이 드나드는 문이다.
 한가운데의 문은 황제만 드나들 수 있고 황제의 문 보다 조금 낮은 2개의 문은  고위관직자,사제,대신들이 사용하였다.
황제의 문에 붙어 있던 금판과 대신의 문에 붙어 있던 은판은 라틴군에 의해 도난당했다.  


 

 황제의 문 위 박공 머리에는 9세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가 있는데
가운데 보좌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비잔틴 황제 레오 6세가 무릎을 꿇고 있고
양 원 안에는 성모 마리아, 대천사 가브리엘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본당으로 들어가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엄청나게 거대한 돔이다.
동서로 31m, 남북으로 33m인 중앙 돔에는 40개의 창문이 있는데 이 창으로 빛이 들어와 실내를 밝혀 준다.
당시에는 유리가 없었으므로 대리석 투조판(透彫板)을 사용하여 창을 만들었단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4개의 창은 빛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10세기경에 보수할 때 파손되어 채광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대리석 판을 얇게 잘랐으면 돌판을 통하여 빛이 비칠까...

 돔의 한가운데는 원래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수님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오스만 터키의 정복 이후 이 그림은 코란의 문구로 덮이게 되었다. 

 

 

본당의 후진의 반원 돔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젊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있다.
이층의 왼쪽 끝에 가면 더 잘 보이는 이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는 그림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고
 옆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모자이크도 있다.

 

 

 돔 옆 네 코너에는 3개의 날개가 달린 체루빔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천사의 얼굴은 각각 사자,황소,독수리 ,그리고 천사의 모습이었으나
역시 오스만 제국 이후 다각형의 별 모양으로 덮여 버렸다.

 

 
중앙 안 쪽 부분에는 금색으로 장식된 '미흐랍(Mihrab)'이 있다.
미흐랍이란 '이슬람 중심지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움푹 패인 곳'을 말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할 때 엎드리는 방향을 표시하는 것인데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에 이곳에 미흐랍이 설치되었다.

 

 

미흐랍의 오른편에는 이슬람 예배의 설교단이 있는데 이슬람의 설교자인'이맘'이 금요일에 설교했던 곳이며
미흐랍의 왼쪽에는 1849년에 만든 오스만 술탄의 화려한 옥좌가 있다.

 

 

벽과 코너에는 8개의 거대한 원판이 걸려 있는데 이슬람 지도자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미흐랍의 오른쪽의 판은 알라, 왼쪽에는 무하메드,
그리고 나머지 판들에는 이슬람 초기 칼리프(종교지도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직경 7.5m의 이 둥근 판들은 이슬람 세계의 가장 훌륭한 달필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아 문자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인지 그림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아야 소피아를 짓기 위해 5년간 100명의 기술자와 10,000명의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는데
 내부에 사용된 대리석들은 지중해에 있는 국가와 소아시아의 대리석 석광에서 가져 왔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와 수학자가 함께 설계해서 세운 이 건물은 가장 자리로 107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본당에는 40개,위층 갤러리에는 67개가 있고  돔 형식으로 된 이 건물의 한 가운데에는 전혀 기둥이 없다.

 

 

이 기둥들은 에페스의 항구 체육관,레바논의 아폴로 신전 등에서 가져 온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벼운 자재로 거대한 돔을 만들기 위해서 로도스섬에서 특별한 타일과 벽돌이 운반되었다.
기둥과 벽의 대리석의 문양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자연스럽다.

 

 
하트 모양이 너무나 귀여운 기둥 앞에서 아야 소피아 경비원의 모습을 사진에 같이 담아 보았다.
눈웃음치기를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이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때엔 좀 근엄한 자세를 보인다.
그래야 더 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그렇지만 이 직원의 굳게 다문 입에도 미소가 서려 있는걸 볼 수 있다.

 

 

 아야 소피아 안에는 이렇듯 고양이가 제 세상인양 돌아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슬람 국가는 거의 고양이 천국이랄 수 있는데 무슬림들의 고양이 사랑은 이슬람 예언자 무하메드가
자신의 옷자락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옷자락을 잘랐다는 얘기에서 기인한다.
반면 개는 아주 천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서 그런 것일 듯....

 

 

 '눈물 기둥, 혹은 땀흘리는 기둥(Weeping Column)'라는 기둥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기둥의 물에 닿는 것만으로 병이 나으며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기둥인데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기 때문에
현재는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판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한가운데 뚫린 구멍에 엄지를 넣고는 손을 떼지 않고 한 바퀴 돌릴 수 있으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너도 나도 엄지를 넣고 돌려 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바퀴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입구의 오른 쪽과 왼쪽에 놓여 있는 1,250 리터의 거대한 대리석 항아리는 16세기에 페르가몬의 고대 도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거에는 문 밖에 놓여 있어서 이슬람 교도들이 물로 몸을 청결케 하는데 사용했다는데
발굴 당시 이 엄청나게 큰 항아리 안에 보물이 가득 들어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2층 갤러리는 여성들이 예배를 보는 장소이자 종교회의 때 사용되던 곳이다.
갤러리란 건축물에서 벽을 따라 그 길이만큼 만든 좁은 발코니,또는 플랫폼을 말하는데
화랑(畵廊)을 뜻하는 '아트 갤러리'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갤러리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아니고 비탈길인데 그 이유는 다른 여성들이 가마를 타고 올 때에
기도하고 있는 여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갤러리의 한쪽 부분은 그야말로 '화랑'으로의 구실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현대 타일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 갤러리에서 아래 층을 내려다 보니 사람이 자그마하게 보이는게 아찔하기 보이며 높이가 실감이 난다.

 

 

 갤러리 오른쪽의 입구에 있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면 비잔틴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디시스(Deesis)'불리는 이 모자이크의 내용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것인데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인간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표정은 선명하고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다.

 모자이크를 보면 아랫부분이 회칠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술탄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자
무슬림의 성전(聖戰) 관습에 따라 3일간의 콘스탄티노플 약탈이 허용되었지만
아야 소피아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메흐메드 2세는 이 건물을 파괴치 말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건물은 보존될 수 있었지만 비잔틴 제국의 교회는 이슬람 사원이 되었고 모자이크로 된 아름다운 기독교 성화들은 회칠로 뒤덮여졌다.
그리고 아야 소피아 건물 바깥에 네개의 미나레트(이슬람 첨탑)도 그 때 세워지게 된다.
1930년대 미국인 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성화 복원 작업으로 회칠로 뒤덮인 성화들은 이제 하나하나 옛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른쪽 복도 안쪽 벽에 있는 모자이크는 요하네스 콤네소스 2세와 이레네 황후가
아들인 알렉시우스와 함께 (알렉시우스는 꺾어진 벽쪽에 있어서 사진에 담아지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 예수께 헌금을 봉헌하는 장면이다.

 

 

왼쪽에 있는 모자이크는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여제(女帝) 조에와 그의 세번째 남편 콘스탄틴 모노마쿠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제 조에는 세번 결혼했는데 처음 이 모자이크에는 그의 첫남편인 로마노스 3세가 그려져 있었으나
결혼할 때마다 모자이크에서 남편의 얼굴과 머리 위에 쓰인 문구를 바꾸었다.
72세로 죽은 조에의 얼굴만이 젊은 시절 얼굴 모습 그대로이다.

 

 

갤러리에서 내려와 출구인 남쪽 입구문으로 나가는 통로의 벽과 천정의 타일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아야 소피아의 내부를 다 관람한 후 나오는 마지막 남쪽 출구문 외벽 위에는 
두 명의 황제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오른쪽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을 예수께 왼쪽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소피아를 손에 들고 예수께 봉헌하고 있어 시선을 끈다.

아야 소피아에서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바라본 아야 소피아는 석양 무렵의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는데
때마침 정원에 서 있던 검은 차도르의 두 여인과 함께 어울려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도대체 그 시대에 어쩌면 저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건축 기술로도 따라잡기 힘든 노하우가 자리잡고 있었을 듯 하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던 비잔틴 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1500년 이상 한 자리에 서서 이스탄불의 흥망 성쇠를 바라본 건축물....
 아야 소피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역사의 흐름을 말없이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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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 칭송받는 터키 카파도키아.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카파도키아를 한번에 소개해 드리기는 힘들어
에센테페, 괴뢰메, 데브렌트, 파샤바....등 몇 지역으로 나누어서 포스팅하고 있으니
이미 올려진 카파도키아의 에센테페와 괴뢰메, 데브렌트의 풍경은 아래 포스트를 살짝 눌러 확인하시길 바라며
카파도키아 편 마지막으로 젤베 야외 박물관과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우는 파샤바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위르굽과 아바노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젤베 야외박물관 역시 괴뢰메 야외박물관처럼 입장권을 사서 관람해야 한다.


카파도키아에서도 젤베 협곡은 아마도 카파도키아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했던 종합 도시였을 것이다.


이 곳 역시 화산과 침식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 지형에 암굴을 파고 사람이 거주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암굴의 규모나 여러가지 시설 면에서 다른 곳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이다.


그들은 거주지는 물론이고 교회,방앗간,물 저장 탱크 등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실제로 1950년대까지만해도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풍우와 지진 때문에 바위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져 지금은 근처로 이주했다고 한다.


벽화가 있는 몇 개의 동굴과 협곡은 산과 산을 잇는 가느다란 터널로 되어 있고
내부에는 곳곳에 사다리가 걸려있으며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도 있다.


동굴 안에는 내부가 연결되어 2~3층으로 되어 있어 생각보다 넓다.

 

주거와 저장 창고 외에도 교회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젤베는 기독교 수도사의 은둔 지역이었으며 기독교도와 이슬람 교도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는데


아래는 교회인데 위에는 모스크의 뾰족한 첨탑이 서 있는 동굴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동굴 교회의 벽화에는 인물 대신에 사슴,포도,십자가 등의 상징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교회 안에서 창문을 통해 본 젤베 계곡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길 가다 차를 세우고 돌아볼 수도 있는 파샤바(파샤바흐체)는


커다란 송이 버섯을 연상시키는 바위와 3개의 버섯 모양의 바위가 연속해서 붙어있는 요상한 골짜기.


파샤바의 버섯 바위를 현지 사람들은 '요정이 춤추는 바위'로 부르는데 이는 바위 속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믿은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세상을 등지고 산과 바위로 숨어 들어가 신앙 생활을 할 것을 주장한
고대 수도사 성 시메온이 거처한 바위가 있다고 해서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불리운단다. 


외계의 도시같이 특이한 이 곳은 특히 '스타워즈1'의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1981년 미국에서 TV 에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스머프’에 등장하는 버섯집 또한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파아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요정의 굴뚝들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스머프들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 옆에 서 있는 성화 같은 바위도 눈길을 끄는 바위 중의 하나이다.

유럽의 세련된 관광지와 달리 터키 대부분의 관광지는 우리나라 관광지 앞과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한데 어설픈 상점들이긴 하지만
이 지방에서 나온 여러가지 원석들과 금속 공예품, 질좋은 도자기 제품들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특히 아라베스크 무늬의 여러가지 쟁반들과 접시, 냄비 받침들은 카파도키아 최고의 기념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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