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을 안 가보신 분은 별로 없을 정도로 이곳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 하는 곳이다.

 

하회마을을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보다가 마을 끝부분에 위치한 솔숲에 이르면

낙동강 건너편에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절벽인 부용대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부용대의 위용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부용대 양쪽 숲속에 날아갈 듯 들어앉은 고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용대 왼쪽에 있는 고택은 겸암정사, 오른쪽에 있는 고택은 옥연정사와 화천서원인데

오늘은 부용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를 잠시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옥연정사를 방문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번째 방법은 하회마을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한 방법은 하회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풍천면 사무소 맞은편으로 난 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안동 풍천면사무소를 지나 광덕교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여 좁은 길로 약500m 정도 가면 된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류성룡 선생의 형님 류운용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화천서원을 지나 

강변을 따라 약 100m를 걸어서 들어가면 옥연정사에 이르게 된다.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코스를 택하면 옥연정사의 왼쪽으로 난 문인 간죽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간죽문(看竹門). 대나무를 보는 문이라니...... 참으로 낭만적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간죽문을 통하여 옥연정사의 마당에 들어서니 담장 아래 하얗게 핀 옥잠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꽃봉오리 모양이 마치 비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옥잠화는 향기가 좋아 향수의 원료로도 쓰인다고 하는데

이런 고택의 담장과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꽃이다.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실학의 대가이자 명재상으로 이름난 서애 류성룡 선생이 거처하던 가옥이다

대가족의 살림과 사당이 있는 종택과는 달리 서애 선생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인 옥연정사는 

1576(선조9)에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가난하여 집 지을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홍(誕弘)이란 스님이 그 뜻을 알고 건축을 맡고 재력을 부담하겠다고 자원하여 10년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집은 대문채와 함께 각각 안채(완심재), 별당(원락재), 사랑채(세심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인 완심재는 서애선생을 위해 10년 시주로 이곳을 지어준 탄홍스임이 기거하시던 공간으로

현재는 옥연정사지기 김상철씨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다.

 

 

 

 

 

별당채인 원락재는 큰 방 1개와 마루로 이루어진 독채인데 이곳에 서애 선생이 주로 기거하셨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두개의 방으로 보이는 원락재는 문을 열고 보면 두칸 규모의 방 하나인데 

방 안에는 족자 두개와 이불을 얹을 수 있는 선반만 걸려 있을 뿐 아주 단촐하다.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이 집의 이름을 원락재(遠樂齋)라 하였는데

이것은 논어 중에서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 옥연정사는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원락재와 세심재를 오픈하고 있는데

세심재 한칸의 대여료는 2인 기준 12만원이고 서애 선생이 직접 기거하셨던 원락재 방한칸의 대여료는 2인 기준 20만원이라고 한다.

고택체험료가 다소 높은 가격이긴 하지만 서애 류성룡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락재에서의 하룻밤은

여느 고택에서 묵는 하룻밤과는 비교가 안 되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하물며 담장 너머로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펼쳐지는 이곳 옥연정사에서의 하룻밤이라면.....

 

1605(선조38) 낙동강에 대홍수가 일어나 하회마을에 있던 살림집을 잃게 되자 

이 방에서 은거하며 임진난을 회고하여 '징비록(국보 132호, 2010년 8월 1일 세계문화유산 등재)'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징비록'의 '징비'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인데 이책은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기록한 책으로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의 중요한 사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중요민속자료 88. 국보 132호)

 

 

 

 

원락재 왼쪽에 위치한 서당채의 이름은 세심재(洗心齋)이니 마음을 닦고 씻는다는 뜻이다.

 

 

 

 

 세심재는 감록헌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1칸이 있으며 서애 선생께서는 이곳을 서당으로 쓰시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마당 담장 옆에는 분재와 같이 구불구불하게 자란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애 선생이 심으신 나무라고 하니 그 수령이 무려 400년이 넘은 나무이다.

  

 

옥연정사에 가면 언제나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옥연정사지기 김상철씨를 만날 수 있다.

충효당(서애선생의 종택) 종손 어른의 허락으로 421년만에 옥연정사의 문을 활짝 열고

징비록의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한 김상철씨의 이야기는 인간극장 등 각종 매체에서 만날 수 있다.

 

 

 

 

강 건너편 하회마을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항상 북적이지만 이곳 옥연정사는 언제나 조용하다.

마을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외로움을 즐기고 싶었던 것일까?

서애 선생은 호를 서애(西厓:서쪽 벼랑)로 짓고 배를 타고 가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집을 지었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임진왜란을 어렵게 치룬 서애 선생의 삶과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 옥연정사.

조용한 우리 가족만의 휴가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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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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