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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6 육지 속의 섬 영양의 감추어진 보석, 서석지 23


 교통이 불편하고 낙후되어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우던 경북 영양.

내륙 깊숙이 자리 잡아 고추와 반딧불이 밖에는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영양에는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으로 불리우는 정원인 서석지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연못 속에 수많은 돌들이 있어 ‘상서러운 돌들의 연못’이라 불리우는

서석지(瑞石池)를 찾아서 경북 영양으로 출발한 차는

네비 아가씨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인도를 받아 911번 지방도로 들어선다.

한참을 가도 마주 오는 차도 별로 안 보이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니

오른쪽에 서석지라 쓰인 조그만 팻말이 눈 앞에 나타난다.

네비 아가씨의 말로는 아직 백여m 더 가야 한다는데!

스쳐 지나려던 차를 급하게 한쪽에 세우고 서석지 입구로 내려서본다.

 

 

 

 

서석지로 들어가는 널찍한 길 초입에 비가 하나 세워져 있어 보니

바로 석문 정영방 선생을 기리는 석문정선생사적비(石門鄭先生事蹟碑)이다.

서석지를 조성한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1577∼1650)은 퇴계 이황 - 서애 유성룡 - 우복 정경세로 이어지는

퇴계학파 삼전(三傳)의 제자로 알려진 분으로 성리학과 시에 능하였으며,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실정과 당파싸움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한다.

 

 

 

 

사적비를 살펴보고 고개를 돌리니 서석지의 전경과 함께 엄청나게 큰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서석지의 상징과도 같은 400년 묵은 은행나무 고목이다.

그런데......! 은행잎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목만 남아 있다.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힌 서석지를 마음에 두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을 때 왔더라면 너무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을텐데.....

같은 경북지방에서도 남쪽과 북쪽의 기후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게 새삼 실감이 났다.

 

 

 

 

대문 앞으로 올라서니 바닥은 떨어져 겹겹이 쌓인 은행잎으로 흙이 안 보일 정도이다.

붉은 흙담과 잘 어우러진 노란 은행잎 카페트를 사뿐히 즈려밟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본다.

 

 

 

 

담장과 90도로 꺾어진 문 안으로 들어서니

아! 눈 앞에 펼쳐지는 서석지의 단아한 모습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석지의 전체적인 공간 구성은 공경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강학처인 경정과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등 선비의 네가지 벗을 심어놓은 사우단,

한가지뜻을 받드는 서재인 주일재, 경정 뒤편 담너머에 자리잡은 자양재와 서고인 장판각,

연못 앞에 400년 된 은행나무, 그리고 약 90여개의 상서러운 돌로 채워진 연당이 있다. 

 

 

 

 

 정자인 경정 앞에 자리잡은 요(凹)자형 연못의 규모는 가로 13,4m, 세로 11.2m 정도인데

경정과 맞은편 주일재를 오가는 통로 외에는 연못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서석지는 연못이 마당이고 마당이 곧 연못인 셈이다. 

 

 

 

 

서석지라(瑞石池)라는 이름은 연못 안에 약 90여개의 상서러운 돌이 있어 붙여졌는데

연못 속의 돌들에게 붙여진 철학적이고 심오한 이름은 무려 19개나 된다.

‘경정잡영’에서 석문선생은 서석지의 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읊었는데

서석지를 읊은 '경정잡영' 中' 상경석'이란 시를 보면 그의 깊고도 심오한 학문이 느껴진다.

 

돌은 안으로 아름다운 글을 머금고도

오히려 그 있음을 나타내기 꺼리는데

사람은 어찌 실속에 힘쓰지 않고

명예만 얻으려고 급급하는가

 

 

 

 

요(凹)자형  연못의 튀어나온 부분에는 선비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를 심어 ‘사우단’이라고 불렀는데  

연못의 동북쪽에 있는 주인의 거처인 주일재는 연못을 바라보게 지은 것이 아니라 이 사우단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연못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강학당인 경정은 사방에 부연을 달고 사면에는 계자난간을 돌렸는데

여름날 연꽃이 필 때 경당 계자난간에 기대어 연꽃의 향기를 맡는 것은 가히 신선놀음이라고 한다.

 

 

 

 

 

‘경정(敬亭)’이라는 편액이 걸린 정자의 마루는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너무 운치가 있다.

 

 

 

 

 경정 뒤켠으로 돌아 정자의 뒷문을 열고 보니 문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가히 한폭의 그림이다.

누마루에 앉아 서석지와 은행나무의 풍광을 즐기며 시를 짓던 석문선생과 그 벗들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 하다.

 

 

 

 

 

 경정을 거쳐 주일재 옆으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두채의 수직사(守直舍)가 나오는데 

 

 

 

 

큰채에는 자양재(紫陽齋)라 쓴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자양재의 서편에는 장판각이 있는데 장판각이란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니 오늘날의 도서관과 같은 곳이다.

 

 

 

 

 장판각을 거치면 이렇게 다시 흙담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인데

한바퀴 도는데 몇십 걸음이면 될만큼 규모는 아담하지만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으로 불리우고 있다.

 

 

 

 

연당 안의 연꽃이 활짝 피어 보는 이들을 설레이게 하는 여름철을 비롯하여

대문 옆 400년 묵은 은행나무가 모두 물들어 그 노란 손을 흔들 때는 물론이고

겨울철 함박눈이 내린 모습 또한 절경이라는 영양 서석지.

연꽃도 다 시들어 대궁이만 남고 은행나무도 다 떨어져버린 늦은 가을날에 찾아오다니......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텐데......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년 가을을 기약해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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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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