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오죽헌, 선교장......강릉여행에서 돌아보아야 할 곳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들려야 할 필수 코스를 들어보라면

세계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오디오 박물관 '참소리박물관'을 꼽을 수 있겠다.

 

십여년전인가 참소리박물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에

좁은 공간에 빼곡이 들어찬 희귀한 소장품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티맵에 참소리박물관을 입력하고  상냥하게 인도하는 아가씨의 고운목소리에 이끌려가니

예전에 있던 송정동 쪽이 아닌 경포 호수 옆으로 앞길을 인도한다.

송정동 솔밭 옆에 있던 예전의 참소리박물관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경포호 옆으로 옮겨진 박물관은 훨씬 더 커진 규모로 간만에 찾아온 여행객을 맞이한다.

 

 

 

 

1992년에 개관했다고 하니 올해로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참소리 박물관.

정확한 명칭은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박물관'이다.

 

 

 

 

입장권의 가격을 보니 성인이 7,000원. 상당히 센 가격이다.

입장료 가격을 본 일행 중 한명이 "뭐 볼거 있다고 이렇게 입장료가 비싸노..."하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일전의 경험으로 비추어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곳이라고 생각된 필자.

일행을 권유하여 입장권을 구입한 후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본다.

 

매년 50만명 이상의 내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는데 얼마전 1박2일 강릉편에서

은지원이 이곳을 다녀간 이후로는 찾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인산인해가 날 정도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몰려오는 통에

 큐레이터들 중에는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해 사표를 제출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박물관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박물관 두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두건물이 계단과 회랑 등으로 서로 이어져 있어 한쪽으로 입장하면 두 박물관을 구분없이 관람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관람해도 되지만 매시간 진행되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에디슨 최초의 축음기 틴포일(가운데)

 

 

이곳에는 축음기 발명전의 다양한 뮤직박스로부터 시작하여 에디슨 최초의 축음기인 틴포일,

세계에서 하나 뿐인 아메리칸 포노그래프(전세계 6대 중 유일하게 현존),

17개국에서 만든 축음기 4,000여 점 가운데 1,400여 점의 축음기와 음반 15만 장

 8,000여 점의 음악 관련 도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어 100년 소리의 역사를 한곳에서 볼 수 있고

탄소 전구, 전기 자동차, 영사기, 계산기, 커피포트, 재봉틀, 타자기, 선풍기, 다리미......등 

에디슨이 생전에 발명한 각종 생활 용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세계 오디오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대한 소장품은 모두 손성목씨 혼자 수집한 것이다.

손성목 관장은 여섯 살 때인 1948년 아버지로부터 컬럼비아 축음기 G241을 선물받았는데

1.4후퇴시에 월남할 때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축음기를 등에 짊어지고 월남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강릉에 정착한 그는 건설회사에 취직해 중동파견 근무를 하고

이어서 국내로 돌아와 아파트 건설과 임대사업을 해서 벌어들인 돈을

거의 몽땅 축음기, 백열전구, 영사기, 촬영기 등의 수집에 쏟아부었다.

2000년 1월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서 온 집안에 빨간 경매딱지가 붙었을 때에도

국제전화로 축음기 경매에 나섰을만큼 미친 사람처럼 축음기 수집에 열을 올린 그는

결국 수많은 축음기와 백열전구, 촬영기와 영사기 등을 수집하여

워싱턴에 있는 에디슨박물관보다도 더 많은 에디슨 축음기 진품들을 소장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헉 소리날 정도로 많은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어 슬쩍 돌아보는데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욕심으로는 하나하나 다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라 몇장의 사진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린다.

 

 

 

 

서커스 오르간

 

 

 

 

폴리폰 뮤직박스

 

 

 

 

스텔라 17인치 뮤직박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축음기 레코드(가운데 까만 동그라미 모양)

영국 동전 페니만 하다고 해서 '페니 레코드'이다.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king'이 20초간 수록되어 있는

세계에서 몇장 안 남아 있는 레코드라고.......

 

 

 

 

클링저

 

 

 

 

레지나 뮤직박스

 

 

 

 

모양이 너무 예쁜 나팔형 축음기들.

 

 

 

 

너무 귀여운 세계각국의 턴테이블 카트리지 박스

 

 

 

 

수많은 에디슨 전구들.

 

 

 

 

에디슨 포틀랜드 주식회사 주식 원부

1899~1931년까지 주식 발행, 이동 등등 회사의 주식 변동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에디슨 일렉트릭 배터리카(1913년) 1913년에 전기자동차를 만들어내었다니......

 

 

 

 

수많은 에디슨 영사기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써 다시 한번 에디슨에게 감사드리며.....^^

 

 

 

 

초창기 계산기(1905)

 

 

 

 

에디슨 전기 재봉틀(1910)

 

 

 

 

수동형 세탁기(1820)

 

 

 

 

수많은 재봉틀, 다리미. 전기 청소기.......

 

 

 

 

에디슨 전기 오븐

 

 

 

 

에디슨 헤어 컬링기

 

 

 

 

에디슨 커피 포트 및 토스터기

 

 

 

 

에디슨 녹음기(1930)

 

 

 

 

에디슨 등사기

 

 

 

 

에디슨 전화기(1930)

 

 

 

 

에디슨 전기 다리미(1910)

 

 

 

 

오일 선풍기(1878)

수공제작한 현대 선풍기의 전신으로 전셰계에 몇대밖에 없다.

 

 

 

 

에디슨 와플기(1915)

 

 

 

 

에디크래프트 오토매틱 토스터(1920)

 

 

 

 

휴대용 축음기들.

 

 

 

 

1920~80년대까지 다양한 라디오, TV가 전시된 본관 2층

 

 

 

 

전 세계에 단 2대 뿐인 세계 최초 텔레비젼  베어드 30라인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젼 금성사 VD-191(1966)

 

 

 

 

축음기 소리부터 CD, DVD 까지 소리 역사 100년의 발전을 수억원짜리 스피커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음악감상실.

 

 

 

 

휴게실에 전시된 수백대의 고급 카메라들. 카메라덕후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곳.

 

 

cnr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 박물관...... 5,000여점의 전시품을

 세세히 살펴보고 나니 머리가 띵해지고 방대한 규모에 살짝 멀미까지 나려고 한다.

들어갈 땐 입장료가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헉 소리나는 소장품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나니

전시품의 희귀성에 비하여 7,000원의 입장료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명을 위한, 발명에 의한, 발명의 삶을 살았던 에디슨은 무려 1,093종에 달하는 특허를 출원했다.

평생 동안 계산하면 보름에 한번 꼴로 특허를 낸 꼴이라고 하니 놀랄 정도이다.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된 전등, 오디오, 녹음기. 다리미, 계산기........등등

생각없이 쓰고 있던 문명의 이기들이 거의 에디슨의 발명품이었단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감사할 수 있었고

이 무수한 에디슨의 발명품을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손성목 관장의 집념 또한 놀라울 뿐이었다.

강릉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들려보아야 할 곳은

바로 세계 최고의 오디오 박물관, 강릉 참소리 박물관이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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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경북 예천편 '추억의 타임머신레이스'에서  제시된 한자를 받아 쓰는 '과거시험 미션'을 치를 때

 한자사전에도 없는 엉터리 한자를 써서 시청자들의 폭소와 쓴 웃음를 자아내던 곳을 기억하시는지?

       과거시험을 치르던 바로 그 장소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예천군 삼강 주막이다.

 삼강주막은 사극에서 보던 '주막'가운데서 실제로 남아 있는 최후의 주막이라고 하여 찾아 보았다. 

 

 

예천군 용궁면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삼강교를 지나 풍양면에 이르면

세개의 강이 흐르는 가운데 지점에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서 흘러오는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함께 만나는 마을의 이름은 삼강마을이라 하고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지어진 주막의 이름을 예로부터 삼강주막이라고 불렀다.

 

 

1900년대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10여년이 넘은 삼강주막은 아직도 주막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막 내에는 1900년대에 지어진 주막과 함께 사공 숙소, 보부상 숙소, 원두막과 평상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어 

주막을 찾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토리묵, 두부 등을 안주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예전에는 주모가 한상 차려서 손님 상에 일일이 가져다 주었던 삼강주막,

요즘은 손님이 직접 음식을 주문해서 가지고 가는 셀프 주막이 되었다는 점이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원래 이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사공 숙소와 보부상 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었는데

보부상과 길손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낯 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 숙소이며

 

 

보부상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들을 실어나르느라 기꺼이 노를 찹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 두 건물은 갑술년 (1934년) 대홍수로 멸실되었으나

2008년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현재 삼강주막 내의 대부분 건물들은 민박 체험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민박하는 사람들은

110여년 전 주막에서 하룻밤 묵던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어 좋다.

 

 

강둑을 따라 주막 바로 옆에는 이렇게 커다란 '들돌'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들이 장성하여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들돌은 상당히 커서 웬만한 장정들은 들어올리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큰 들돌로 힘을 측정한 것은 예전의 장정들이 힘이 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장정들이 힘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그점이 궁금하다.

 

 

삼강주막 내 많은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지만

다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건물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다.

 

 

경상북도 민속 자료 제 134호로 지정된 삼강주막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작고 다소 초라하기까지 하다.

 

 

건물은 방 2간, 부엌 1간, 마루 1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주막의 기능에는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삼강주막의 중심인 부엌 문으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안에는 소박한 찬장이 하나 놓여 있고 부엌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마솥 하나 가득 끓여진 국밥은 이 주막에 머물다 간 많은 사람들의 속을 따끈하게 덮여주었겠지......

 

 

부엌 흙벽에는 이렇게 주막 주인이었던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 장부로 그은 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렇게 금을 그어놓은 것만으로 누가 얼마나 외상으로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낼까?

아마도 유옥연 할머니 만이 풀 수 있는 신비로운 수수께끼인 듯 하다.

 

 

그런데 주막엔 외부, 내부 할것없이 수많은 낙서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장부였던 흙벽의 수많은 금들도 이렇게 유리를 씌워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훼손되어 없어졌을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 한다.

삼강나루의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로는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사용되던 삼강주막.

세월은 흘러 이곳을 기점으로 오가던 행인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이 스쳐간 흔적은 남아 오래된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의 평상에 걸터앉아 옛 행인들처럼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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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수중릉으로 알려진 곳이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대왕은 통일 후에도 불안정한 국가를 걱정하여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겠다고 했는데
문무대왕의 사후 유해를 낭산에서 화장한 후 양북리 앞 바다 큰 바위에 장례를 치렀고 사람들은 이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1박2일에서 문무대왕릉이라 잘못 표기한 대왕암 공원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에 위치한 약 93만㎡에 이르는 넓은 공원이다.
이 지역은 옛 선비들이 해금강이라 일컬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인데 조선시대에는 목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대왕암, 용굴, 탕건암 등의 기암 괴석과 함께 수령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해송 15,000그루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바로 앞에는 1906년에 설치된 울기등대가 있어서 한동안 울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2004년에 이르러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특히 용추암, 또는 댕바위라고도 불리는 대왕암은
신라시대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하여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부창부수라고.....문무대왕이 죽어 수중릉에 장사되니 그의 왕비도 이곳 울산의 대왕암에 묻혀 함께 용이 되기를 원했을까......?
이왕이면 문무대왕의 유골이 뿌려진 경주 봉길리 대왕암에 함께 묻히지 왜 경주에서 이렇게 먼 곳에 묻혔을까.....하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문무대왕비릉으로 전하는 대왕암은 육지에 있는 바위와 철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철교를 지나 수십개의 계단을 올라 대왕암 정상에 오르면 의외로 정상의 공간이 협소함에 놀라게 된다.
십여명이 서면 금방 자리가 부족해지는 이곳은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거의 날아갈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정상에서 눈을 들어 앞을 보면 탁 트인 바다가 펼쳐져 가슴이 다 시원해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주변 바다의 물빛은 너무나 푸르고 주변에 둘러싼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대왕암 주변에는 남근바위, 탕건바위, 자살바위, 처녀봉, 용굴 등으로 이름지어진 기암괴석이 있어 가히 해금강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위험천만한 벼랑 끝에 서서 낚시를 하는 모습들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장관인데 주변에는 간이 횟집들도 성업 중이다.




정상의 울타리에는 많은 사랑의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는데 소금기가 많은 바닷바람으로 인해 거의 녹슬어 있는 모습을 본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와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연인들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녹슨 자물쇠들이 미관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바다에 던져진 열쇠들은 바다를 오염시키게 되니 부디 삼가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 이런 낙서들도 군데 군데 쓰여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이곳 대왕암은 일출 명소로도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출이 빠른 곳이 대왕암이냐 간절곶이냐를 두고 3년간 분석한 결과
총 조사시간 108일 가운데 대왕암에서 해가 먼저 뜬 날이 94일(87%)이었으며 간절곶은 7일(6.5%)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월초와 12월말에는 간절곶이 1초 정도 해가 더 빨리 떠오른다고 해서
대왕암은 간절곶에게 새해 일출 명소의 영예를 물려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왕암 일출이 간절곶 일출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은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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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압지 상설 공연'이 10월 24일을 마지막으로 올해의 공연을 마감했다.
매주 토요일 천년고도의 왕궁 안압지에서 이루어진 이 공연은
지금까지 총 141회 공연에 연인원 12만명의 관람 기록을 세웠는데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오래 된 유적지 내에서 상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
안압지 입장료만 내면 국악, 클래식, 재즈, 가요 등 다양한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데다
경주시민에게는 입장료도 없는 무료 공연의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유명 연예인의 공연이 있을 때도 귀차니즘으로 인하여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올해 마지막 공연에 체리필터, 김태우가 온다기에 얼른 카메라를 챙겨 안압지로 향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최근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를 반증이나 하듯이
선덕여왕께서 무대에 오르시고 행차 재현팀의 무술 공연이 이루어진 후
(선덕여왕 행차 관련 포스트 : 선덕여왕 그 화려한 부활 ☜ 클릭)
경주 시립합창단, 가야랑, 시크릿, 김태우, 체리필터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3년간의 공백을 깨고 우리 곁에 돌아온 김태우.
아이돌 그룹 출신의 문희준이나 은지원 등이 솔로 데뷔 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것에 비해
SBS 인기가요, KBS 2TV 뮤직뱅크에서 '사랑비'로 1위를 차지하는 등 보란 듯이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는데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써는 제대로 발산하지 못했던 김태우의 탄탄한 가창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듯 하다.

그 중 지금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T-Virus'의 타이틀곡 '사랑비'는
세련된 편곡,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해 보았을 이별에 대한 그리움이 
'사랑'이라는 주문을 빌어 하늘에 전해지면 비가 되어 그 비가 떠나간 이에게 내려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가사가
김태우의 가슴을 파고 드는 듯한 절절한 목소리와 잘 어우러져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곡이다.

솔로 가수가 맥을 추지 못하고 걸그룹 일색이던 현 가요계의 판도가 김태우의 성공으로 인해
진정한  실력을 갖춘 가수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길 기대하며......
 타이틀곡 사랑비를 비롯하여 god 시절의 히트곡까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가을밤의 무대를 장식해준 김태우의 환상적인 공연을 몇장의 무대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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