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의 끝,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화진포는 

 바다의 일부가 외해(外海)와 분리된 석호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천혜의 명승지이다. 



이 곳은 또한 대한민국 설립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곳인데 
김일성 별장인 '화진포의 성'과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이 지척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이승만 별장이 있고 바로 뒤에 이승만 기념관이 2007년에 개관하였다. 



이승만 별장은 1954년 지어진 작은 집인데 이대통령의 하야 전까지 별장으로 사용했고
이 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가 되었으나 1997년에 현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마치 6,70년 대의 시골 동네 구멍 가게 같이 생긴 건물은 별장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의 규모인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별장으로는 소박함을 넘어 초라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하지만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이 별장의 넓지 않은 마당에 서면 화진포를 한눈으로 가슴에 안을 수 있으니
별장의 위치 조건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순 없을 순 없을 것 같다.
'지자요수(智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하더니 이박사께서 지척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별장을 짓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는 곳에 집을 지은 이유를 별장 앞 마당에 서서 호수를 바라 보니 그 맘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도르레가 달린 미닫이문을 드르륵.....밀고 들어가니 휑~한 거실 하나...쬐끄만 방 두개가 전부인 20평이 될까 말까한 조그마한 집이다.
거실 한 가운데 쓰시던 의자 위에 두 분의 모습을 쏙 빼닮은 밀랍 인형이 앉아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박사께서 앉아 책을 읽던 일인용 소파와 무릎 담요...그리고 발등상은 세월의 흔적으로 색이 많이 바래었다.
 


앞쪽 방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쓰던 화장대.서랍장,옷장들이 진열되어 있는 침실인데
손때 묻은 가구들이 무척이나 소박해 보인다..


 

직접 쓰던 좁고 딱딱한 침대와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불이 눈에 들어온다.
당대 최고 권력자가 쓰던 침대와 이불이 이처럼 초라하다니....
가구와 침구에서도 그 당시 우리 나라의 어려웠던 경제 사정이 미루어 짐작되어진다. 



한쪽에는 직접 입었던 평상복과 고름이 없는 개량 두루마기가 금방 벗어놓은 것 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여행 때 쓰던 이박사의 가방이 방 한켠에 얌전하게 놓여있다. 

 


달랑 방 두개에 하나는 침실..하나는 서재로 썼던 듯 뒷편 방에는 별장에서 쓰던 책상과 의자,
라디오, 타자기, 손때 묻은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읽던 성경은 펼쳐진 채로 책상 앞에 놓여 있다.



홑문으로 된 거실 유리창은 문을 닫아도 싸늘한 냉기가 문 틈으로 들어와서 방문자의 코트 자락을 여미게 한다. 
거실 문을 통해서 보는 화진포는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프도록 서글픈 느낌이 드는걸까? 



별장 옆 빈터에는 생전의 휘호를 새겨놓은 비들을 돌아보고 바로 위에 있는 '이승만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원래의 별장이 있던 자리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기념관인데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 정식 명칭이다.
 


안에는 이박사의 어린 시절, 망명 시절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고......



 대통령으로 집무하던 시절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외에 생전에 쓰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친필 휘호가 쓰여진 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경무대에서 쓰던 놋그릇과 은수저.....



의사봉과 워싱턴 시장으로 부터 받은 행운의 열쇠, 돋보기, 만년필, 회중시계,낚시 도구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명성왕후 시해범 처단 방문(친필 복사본)등의 자료와 



이승만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선출했음을 알리는 임명장등의 귀중한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33세 때 제네바에서
58세의 저명한 동양인 이승만을 만나 사랑에 빠져 날계란 하나 사과 한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평생을 조국통일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독립 운동가의 아내가 되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이 살며 늘 한복을 입고 살았던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이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복은 검소함으로 본이 되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해준다.




낡아빠진 그녀의 앞치마, 다 떨어질 때까지 사용하던 방석 커버도 보인다. 


 

십자수가 놓인 식탁보 옆에 더 꿰멜 데 없도록 낡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장갑을 보니 
영부인조차도 꿰맨 장갑을 껴야 할만큼 가난에 찌들렸던 우리나라의 힘들었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보인다.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당대 최고 권력자의 별장과 전시관은 암울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아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화진포는 오늘도 무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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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 되면 눈 덮인 화진포가 나를 부른다.
처음 화진포에 갔던 몇 년 전 겨울.....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들판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새하얀 눈밭으로 뒤덮여 눈 앞에 펼쳐지던 추억 속의 화진포.

동해안 최북단의 화진포는 둘레가 약 16㎞나 되는 아름다운 드넓은 석호이다.
주위에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해당화가 붉게 피어
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이곳은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데
바로 옆의 화진포 해수욕장은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명사십리에도 비견되기도 하는 바다이다.



화진포는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또한 유명한데 

호수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의 환상적인 경치를 접해보면 

대한 민국 초기 남북의 최고 권력자들이 왜 이곳을 여름 휴양지로 삼았는지 절로 이해가 간다.


최근에 와서 화진포는 '가을 동화'촬영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근 속초의 청초호 부근 아바이 마을이 가을 동화의 주촬영지였는데
화진포는 어린 시절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해변에서 모래 그림을 그리면서 추억을 쌓던 장면과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 - 준서가 은서를 등에 업고 해변을 거닐다 은서가 숨을 거두는
라스트씬을 촬영한 곳이어서 연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장소가 되었다.  



화진포 바다에서 보면 언덕 위에 하얀 집이 눈에 뜨이는데 바로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우는 김일성 별장이다.
"김일성 별장이 왜 남한에 있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에게 사족을 붙인다면
한국 전쟁 이전엔 이곳이 38선 이북, 즉 북한 땅이었다는 것을 기억시켜 드리고
지금도 이곳은 군사 통제 지역인지라 이 지역의 상황은 지도에서 스카이뷰로 확인할 수 없다.  
 


이 건물이 처음부터 김일성 별장이었던 것은 아닌데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비행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강제 철거키로 결정하고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당시 선교사였던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는 히틀러를 피해 망명해 왔던 독일 건축가 베버(H.Weber)에게
예배당으로 사용할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면한 암벽 위에 짓게 하였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원통형 2층 건물을 현 위치에 지었는데
화진포 해안 절벽 위의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잡은 하얀  외관으로 인해 '화진포의 성(城)'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5년 이후 이곳을 점령한 북한은 화진포의 성을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1948년부터 김일성의 가족들은 경관이 매우 뛰어난 화진포의 성을 여름 휴양지로 이용하였고
실제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김정일 형제가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화진포의 성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계단에 그 당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힌하게 된다.



계단 중간 쯤에 어린 김정일과 그의 여동생이 집 앞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었던 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계단 바로 옆 축대에 그 당시 사진의 사본이 걸려져 있어 '화진포의 성'의 원래 모습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누군지 손톱으로 긁적거려 김정일의 얼굴을 훼손시켜 놓았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 화진포의 성 마당에 이르니 수심이 깊지 않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위치한 집이라 마당은 그다지 넓지 않다. 



이 건물은 전쟁 중 훼손되어 1964년 재건축하였는데 외관은 처음과 변함이 없으나
실내는 현재 안보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는게 매우 유감이다.
  전시관 벽에는 한국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가 있었는데 대부분 건성건성 다 지나치고
건축물의 유래...김일성 정권의 수립 과정...등이 있으나 자세히 읽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그 당시 방의 모습을 재현한 소품들만이 눈에 띌 뿐인데... 



그 당시 의복과 제니스 라디오에 눈길이 가고.....
 


천정에 달려 있던 램프도 방문객의 시선을 잡는다. 



2층 전시실의 원형 방에 이르면 모두 다 "와아~~~"하고 탄성을 지르게 되는데 창문을 통해 바다 풍경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절경'이라는건 바로 이런 경치를 두고 말하는게 아닐까?
창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곳이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옥상으로 연결이 된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오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 볼 수도 있다.



건물의 벽 사이로 내다 보고 싶은데 두께가 있어서 쉽지가 않아 벤치 위에서 바다를 바라 보았다. 



화진포성 위에서 내려다 보니 왼쪽의 호수와 오른쪽의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호수의 하늘빛 고요함과 대비되는 황홀한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데
 이 해변의 모래는 조개 껍질과 바위가 오랫 동안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즈 성분으로 되어 있어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가 나고 개미가 살지 못 하는 모래라고 한다. 



앞에는 화진포 바다.....뒤에는 석호인 화진포 호수.....그 가운데 화진포 콘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콘도는 군인 시설이라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꼼짝않고 슈팅 자세를 잡고 서 있는 아저씨 발견.
아마 바다 한 가운데 섬 '금구도'를 찍는 듯 한데....
박격포 만한 엄청난 망원 렌즈와 무지 비싼 삼각대에 기가 죽은 필자는 몇 장 찍고 얼른 내려 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앞 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섬 금구도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 온다.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는 광개토대왕릉이라고 한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394년) 8월경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광개토대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 축조 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광개토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장수왕 3년(414년) 9월 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했는데
이곳에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있었다고 하며
문자명왕 2년에는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거북섬 성은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정상부인 약 45m 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하여 석축으로 축조하고
성벽 상단은 삭토하여 환도를 개설한 흔적이 200여m 가량 뚜렷이 남아 있으며
산정 부근의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는 사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 북쪽의 암석 저지대는 석축 보호벽과 방파성이 약 60m, 높이 170~230m, 3개 구간에 남아 있다.
앞으로 고성군에서는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을 통해 원형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자신의 유해를 화장하여 동해안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동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을 것이라고 했던 문무왕처럼
광개토대왕도 자신의 숙원이던 남하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이곳에다 자신의 무덤을 쓰게 한 것일까...?
눈 앞에 서 있는 조그만 섬 금구도가 광개토왕릉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섬을 바라보니
감포 앞 바다에 서서 문무대왕 수중릉을 바라 볼 때와 같은 격한 감격이 가슴 속에서부터 물밀 듯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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