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Fukuoka,福岡)에 이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 '하카타 포트 타워.

 

 

 

 

'하카타 포트 타워(博多ポ-トタワ)'는  하카다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어 

 승선 시간이 남을 때 들리면 좋은 장소이다.

 

 

 

 

타워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철탑의 붉은 골조가 파아란 하늘과 어울려 화사하게 조화를 이룬다.

후쿠오카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1964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제 막 50년이 된 철탑 구조물이다.

타워의 설계자는 일본의 내진공학의 선구자로 와세다대학 교수인 '나이토 다추(內藤多仲)'로

그는 나고야 타워, 오사카 스텐가쿠, 벳부타워, 삿포로 타워,도쿄 타워, 하카타 타워를 잇달아 설계했다.

일본 사람들은 나이토 다추 박사가 설계한 이 타워들을 '6형제'라 부른다고......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라 불리우는 하카타 포트 타워지만 규모는 크지 않고 실로 아담한 규모이다.

103m에 이르는 높이라니 타워 치고는 조금 낮다고 생각되지만

이곳에 오르면 하카타항과 함께 후쿠오카 전경을 둘러 볼 수 있어 좋다.

 

 

 

 

타워의 입장료는 무료이고 오후 9시 40분까지는 언제든지 둘러볼 수 있어 주경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70m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후쿠오카시를 둘러볼 수 있다.

 

 

 

 

1층 하카다항 홍보관에 있는 후쿠오카시 전도를 통하여 후쿠오카시의 전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시의 이름은 후쿠오카인데 왜 하카다항구라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실 것이다.

1889년까지 이 도시는 나카가와를 중심으로 정치의 중심지인 서쪽은 후쿠오카(Fukuoka,福岡),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인 동쪽은 하카타(博多, Hakata)라는 도시였다.

그런데1889년 두 도시가 통합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로 부르게 되고 

철도역과 항구의 이름은 그대로 하카타(하카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망대로 한발을 내딛으니 아뿔사! 여기도 철조망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파리 에펠탑 전망대에 올랐을 때 눈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에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겠지만 모처럼 경관을 즐기러 올라온 여행자들에게는

시야를 가로막는 철조망이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느껴진다.

 

 

 

 

아쉬운 사진이나마 철조망과 함께 타워에서 보이는 경관을 한컷 한컷 담아보았다.

 

 

 

 

부두에 우리가 타고 온 뉴 카멜리아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카멜리아호야! 반갑다.

 

 

 

 

폭 24m, 길이 170m에 총 톤수가 19,961톤, 5층에 이르는 뉴 카멜리아는

화물 220TEU, 승용차 41대, 승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호화여객선이다.

뉴 카멜리아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뉴 카멜리아호 관련 포스트 : 뉴 카멜리아 라인으로 떠난 후쿠오카 여행

 

 

 

 

하카다 포트 타워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전경을 상세 설명없이 올려 드리자면......

 

 

 

 

 

 

 

 

 

 

후쿠오카의 랜드마크인 하카타 포트 타워는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도착하거나 배를 타고 떠날 때 짧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입장료 없이 돌아볼 수 있는 관광지치고는 꽤나 괜찮은 뷰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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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의 사오자키(棹岐)공원은 '일본국 최서북단'이란 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와 최단거리로 부산까지의 거리는 49.5km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본 본토으와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까지가 132km이니
부산과 대마도와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은 대한해협에서 쓰시마해협으로 돌아 들어오는 곳으로 
쓰시마 난류의 분기점이라 해류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사오자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 표지판이 있고
조금 오르면 포대, 탄약고 등 2차 대전 당시 군사 시설의 흔적이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곳에 방위와 해상운송 호위를 목적으로 1개중대 130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4문의 포를 갖추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포대의 일부를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전쟁의 흔적 위에 평화의 탑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평화의 탑 바로 옆에는 등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소화 42년에 세운 사오자키 등대이다.
 

 

등대 위에서는 솔매 한 마리가 나래를 편 채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오랫동안 비행을 즐기고 있는데
대마도의 하늘에는 유난히 솔매와 까마귀가 많다.

 

대마도 최북서단임을 알리는 조형물 아래에는 방위 표시 또한 선명하다.

"부산이 저렇게 가까운데 여기가 우리 땅이 아니란 말여?"

사진 촬영을 부탁한 후에 부산 쪽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으시는 노신사의 표정에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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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 되면 눈 덮인 화진포가 나를 부른다.
처음 화진포에 갔던 몇 년 전 겨울.....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들판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새하얀 눈밭으로 뒤덮여 눈 앞에 펼쳐지던 추억 속의 화진포.

동해안 최북단의 화진포는 둘레가 약 16㎞나 되는 아름다운 드넓은 석호이다.
주위에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해당화가 붉게 피어
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이곳은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데
바로 옆의 화진포 해수욕장은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명사십리에도 비견되기도 하는 바다이다.



화진포는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또한 유명한데 

호수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의 환상적인 경치를 접해보면 

대한 민국 초기 남북의 최고 권력자들이 왜 이곳을 여름 휴양지로 삼았는지 절로 이해가 간다.


최근에 와서 화진포는 '가을 동화'촬영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근 속초의 청초호 부근 아바이 마을이 가을 동화의 주촬영지였는데
화진포는 어린 시절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해변에서 모래 그림을 그리면서 추억을 쌓던 장면과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 - 준서가 은서를 등에 업고 해변을 거닐다 은서가 숨을 거두는
라스트씬을 촬영한 곳이어서 연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장소가 되었다.  



화진포 바다에서 보면 언덕 위에 하얀 집이 눈에 뜨이는데 바로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우는 김일성 별장이다.
"김일성 별장이 왜 남한에 있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에게 사족을 붙인다면
한국 전쟁 이전엔 이곳이 38선 이북, 즉 북한 땅이었다는 것을 기억시켜 드리고
지금도 이곳은 군사 통제 지역인지라 이 지역의 상황은 지도에서 스카이뷰로 확인할 수 없다.  
 


이 건물이 처음부터 김일성 별장이었던 것은 아닌데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비행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강제 철거키로 결정하고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당시 선교사였던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는 히틀러를 피해 망명해 왔던 독일 건축가 베버(H.Weber)에게
예배당으로 사용할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면한 암벽 위에 짓게 하였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원통형 2층 건물을 현 위치에 지었는데
화진포 해안 절벽 위의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잡은 하얀  외관으로 인해 '화진포의 성(城)'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5년 이후 이곳을 점령한 북한은 화진포의 성을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1948년부터 김일성의 가족들은 경관이 매우 뛰어난 화진포의 성을 여름 휴양지로 이용하였고
실제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김정일 형제가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화진포의 성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계단에 그 당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힌하게 된다.



계단 중간 쯤에 어린 김정일과 그의 여동생이 집 앞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었던 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계단 바로 옆 축대에 그 당시 사진의 사본이 걸려져 있어 '화진포의 성'의 원래 모습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누군지 손톱으로 긁적거려 김정일의 얼굴을 훼손시켜 놓았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 화진포의 성 마당에 이르니 수심이 깊지 않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위치한 집이라 마당은 그다지 넓지 않다. 



이 건물은 전쟁 중 훼손되어 1964년 재건축하였는데 외관은 처음과 변함이 없으나
실내는 현재 안보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는게 매우 유감이다.
  전시관 벽에는 한국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가 있었는데 대부분 건성건성 다 지나치고
건축물의 유래...김일성 정권의 수립 과정...등이 있으나 자세히 읽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그 당시 방의 모습을 재현한 소품들만이 눈에 띌 뿐인데... 



그 당시 의복과 제니스 라디오에 눈길이 가고.....
 


천정에 달려 있던 램프도 방문객의 시선을 잡는다. 



2층 전시실의 원형 방에 이르면 모두 다 "와아~~~"하고 탄성을 지르게 되는데 창문을 통해 바다 풍경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절경'이라는건 바로 이런 경치를 두고 말하는게 아닐까?
창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곳이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옥상으로 연결이 된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오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 볼 수도 있다.



건물의 벽 사이로 내다 보고 싶은데 두께가 있어서 쉽지가 않아 벤치 위에서 바다를 바라 보았다. 



화진포성 위에서 내려다 보니 왼쪽의 호수와 오른쪽의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호수의 하늘빛 고요함과 대비되는 황홀한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데
 이 해변의 모래는 조개 껍질과 바위가 오랫 동안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즈 성분으로 되어 있어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가 나고 개미가 살지 못 하는 모래라고 한다. 



앞에는 화진포 바다.....뒤에는 석호인 화진포 호수.....그 가운데 화진포 콘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콘도는 군인 시설이라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꼼짝않고 슈팅 자세를 잡고 서 있는 아저씨 발견.
아마 바다 한 가운데 섬 '금구도'를 찍는 듯 한데....
박격포 만한 엄청난 망원 렌즈와 무지 비싼 삼각대에 기가 죽은 필자는 몇 장 찍고 얼른 내려 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앞 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섬 금구도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 온다.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는 광개토대왕릉이라고 한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394년) 8월경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광개토대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 축조 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광개토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장수왕 3년(414년) 9월 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했는데
이곳에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있었다고 하며
문자명왕 2년에는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거북섬 성은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정상부인 약 45m 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하여 석축으로 축조하고
성벽 상단은 삭토하여 환도를 개설한 흔적이 200여m 가량 뚜렷이 남아 있으며
산정 부근의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는 사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 북쪽의 암석 저지대는 석축 보호벽과 방파성이 약 60m, 높이 170~230m, 3개 구간에 남아 있다.
앞으로 고성군에서는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을 통해 원형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자신의 유해를 화장하여 동해안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동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을 것이라고 했던 문무왕처럼
광개토대왕도 자신의 숙원이던 남하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이곳에다 자신의 무덤을 쓰게 한 것일까...?
눈 앞에 서 있는 조그만 섬 금구도가 광개토왕릉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섬을 바라보니
감포 앞 바다에 서서 문무대왕 수중릉을 바라 볼 때와 같은 격한 감격이 가슴 속에서부터 물밀 듯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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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天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 해서 이름 지어진 천진 (天津,텐진)은 
북경, 상해, 중경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중의 하나이자, 북방 최대의 무역 항구 도시이다.
천진은 우리에게는 1885년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이권을 놓고
자기네끼리 멋대로 맺은 텐진 조약으로
유명한 곳.
중국의 발달된 면모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중국 최대의 산업 경제도시로서
우리나라와는 많은 경제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뿌옇게 흐린 바다를 지나 천진 땅으로 들어서면
구획정리가 잘 된 반듯반듯한  공업 구역들이 끝도 없이 성냥갑처럼 늘어선다.

4대 직할시라는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국제 공항 또한 살짝 구질구질하며 좁고 답답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천진의 엄청나게 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하늘도 회색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다.

공항 맞은 편 건물 옥상탑의 '우리의 중국을 사랑합시다!'란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북경이나 천진은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비싼 고급 수입차가 많다.
중국에서의 자동차 가격은 엄청난데 그랜져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을 아무런 구애 없이 물 쓰듯 쓰는 부자가 중국 인구의 약 10%인지라(일억 오천에 이른다...!)
길거리에는 완전 고물이 된 차와 벤츠,아우디가 한데 섞여서 다니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으러 공항 앞 식당에 들렸는데 에어콘이나 선풍기도 변변치 않은 식당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 탓에 온 몸에 열이 나는데 앉으니 펄펄 끓는 차를 먼저 내 온다.
중국 사람들은 전혀 찬 물을 먹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 비해 수질이 좋지 않아서 일찍부터 차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찬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가 쉽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여행 오는 중국인들은 식당에서 더운 물을 주지 않고 생수를 주는 것에 많은 불평을 한다고 하니
물 하나 먹는 것도 이렇게 풍습이 다른것에 실소가 머금어졌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한여름에 뜨거운 차와 함께 나온 뜨거운 중국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나중엔 별로 덥지도 않고 음식의 맛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인구 천만의 도시 천진에는 고문화 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 명소가 거의 없는 편이고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천진의 상징 천탑(天塔,텐타)이 유명하다.
탑의 높이는 415.2m로 미터로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로 높으며 TV,방송 수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248미터-278미터 사이의 탑루 내에는 전망대와 2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다.
2층의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있어 반경 백리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고 하나
늘 흐리고 안개 낀 천진의 날씨로는 시내 조망이 어려워 실제 올라가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시내에는 특이한 모양의 빌딩도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데
중국 사람들은 건물 외부 장식에 아주 치중을 하는데 대부분의 건물 내부의 시설은 엉망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마다 어김없이 옥상과 건물에 화려한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데
U.F.O착륙지 같이 멋진 야간 조명 장식을 한 아파트 안에 들어서면
복도와 가정의 조명은 바깥과는 다르게 매우 침침하였다.
  

 
중국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천진도 자전거의 천국이다.
  
상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륜차가 많았는데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오트바이 택시이다.

오트바이 택시 너머로 보이는 우리나라 다마스같은 조그만 승합차도 역시 택시인데 
천진사람들은 이런 차를 식빵같이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른다.

  
프라이드를 연상케 하는 택시는 앞 좌석과 뒷 좌석 사이가 창살로 가려져있다.

 
운전자를 택시 강도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살벌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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