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여행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

포르투갈어로 '의회'라는 뜻의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의 공식적인 행사나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물결이 치는 듯한 무늬의 모자이크 바닥 '깔사다(Calcada)'로 덮힌 세나도 광장은

포르투갈풍의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싸여 볼 거리를 더하고 있는데

주변 건물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건물은 뭐니 뭐니 해도 '릴 세나도 빌딩'이다.

  

마카오 정부 청사로 지어진 '릴 세나도 빌딩( Edificio do Leal Senado, 民政總署大樓)'은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된 현재는 '마카오 특별 행정구 행정청 및 의회' 역할을 하는 곳.

1784년에 남유럽 건축 양식의 색깔을 띄고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 이후 많은 수난을 거쳤는데 지금의 건물은 1874년에 재건된 것이라 한다. 

 

 

 

 

세나도 광장 주변의 건물들이 대부분 환한 개나리색이거나 핑크, 라이트그린인데 반해

릴 세나도 빌딩은 세나도 광장 제일 중심부에 순백색으로 서 있어 더욱 고고하고 당당해 보인다. 

 

 

 

 

빌딩 입구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 바로 앞에는 이렇게 조그만 기념품 코너로 마련되어 있어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르투갈에 있는 콘벤토 드 마프라 도서관을 모방해 1929년에 개관했다는 1층 도서관은

많은 고가구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돌아보지는 못 했다.

이곳에는 17세기에서 1950년대를 망라하는 외국 서적들,

특히 아프리카와 극동에서의 포르투갈의 역할을 다룬 많은 문서들이 보관되고 있는데 

중국의 첫 포르투갈어 복사본인 <아 아벨하 다 차이나(A Abelha da China)가 소장된 곳이란다.

  

 

 

 

포르투갈풍으로 지어진 릴 세나도 빌딩도 역시 안쪽 벽면은 '아줄레주'로 되어 있어 너무 아름답다.

아줄레주(Ajulejo)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포르투갈왕 마누엘 1세가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 방문했을 때

이슬람문화에서 전해진 타일 양식에 매료되어 돌아온 후 자신의 왕궁을 아줄레주로 장식했다고 한다.

이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해서 포르투갈 문화와 시대에 따라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아줄레주가 만들어졌고 포르투갈의 문화적 창작물로 자리잡았는데

400여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서도 곳곳에서 이런 아줄레주를 만날 수 있다.

 

 

 

 

몇명의 사람들이 2층 의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슬쩍 따라서 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붉은 휘장이 드리운 창으로 둘러싸인 장방형의 홀에는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홀의 맨 앞부분에 '민정총서(民政總署, 의회)'라는 현수막과 함께 마카오 깃발이 걸려 있어

이곳이 마카오 특별 행정구 행정청 및 의회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마카오 의회에 들어와 보다니 영광인데?'이렇게 생각하며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으니

놀란 직원이 황급하게 두손을 저으며 안 된다고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한 뒤에 나왔지만 이미 볼 건 다 보고 사진도 찍은터라 느긋하게 밖으로 나왔다. 

2층 의회홀은 일반인 출입 금지지만 후원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정원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이라길래 내심 약간의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이건 작아도 너~~무 작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정도를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넓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오산!

역시나 땅덩어리 좁은 마카오인지라 의회 정원도 정말 소박하고 아담하다.

 

 

 

 

정원 한켠에 세워진 자그마한 흉상이 특이하길래 명판을 읽어보니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국민 시인으로 알려진 루이스 데 까모에스(Luis de Camoes)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영향을 오래 받은 마카오라 그런지 마카오에는 까모에스 공원도 있다.

이래저래 까모에스라는 사람은 포르투갈 뿐 아니라 마카오에서도 추앙을 받는 인물인가 보다.

 

 

 

 

작고 귀여운 분수, 벤치 몇개가 전부인 소박한 정원이지만 의외로 편안하고 조용하다.

건물 바로 앞은 마카오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과 도로가 자리잡고 있지만

뒷편 정원은 새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곳이라 여행에 지친 다리를 한참이나 쉬어갈 수 있었다.

 

 

 

 

마카오를 여행하는 동안 릴 세나도 빌딩 앞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호텔 셔틀을 타고 릴 세나도 빌딩 앞에서 내려서 걸어다니거나 택시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도시 마카오에 알맞는 자그마한 의회 건물, 릴 세나도 빌딩.

마카오 여행자들이 이정표처럼 생각하고 지나는 마카오의 대표적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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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소주에 이르니 
 잔뜩 흐려 있던 무거운 하늘이 끝내는 비로 변해서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를 반겨 준다.
 


 

 

 소주는 인구 약 574만 명(1997)의 도시로 시내에 운하망이 발달되어  '물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고
옛 관료, 지주들이 꾸민 정원들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시가지는 둘레 2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성 안쪽과 그 바깥의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특히 구시가지는 하얀 회벽과 검은 기와 지붕의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다.  

 



 

신축 중인 연립 주택들도 전통적인 가옥의 형태를 유지한 가운데 도시의 미관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건립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했고
시가지 한가운데 유명 브랜드의 고층 아파트들이 쑥쑥 올라가는

우리 경주의 현실과 상당한 비교가 되어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소주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졸정원(拙政园)은

소주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졸정원은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히는 곳인데  

 중국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이 정원은 원래 당나라의 시인 육귀몽의 집이었던 것을
어사였던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때 개축한 것이다. 

 조정에서 물러난 왕헌신은 원나라 때 다홍사라는 절이었던 이곳을 인수하여 개인 정원으로 바꾸었다.  

 이곳을 개조할 때, 문정명이라는 명대의 유명한 예술가가 참여를 하였다고 한다. 

 왕헌신은 몇년 후 다시 이곳을 팔게 되는데,
그는 비단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비단장수 왕서방의 원조가 되었다. 

 

졸정원(拙政园)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반악이 쓴 글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영어로 졸정원

을 'Humble Administrator's Garden(미천한 행정가의 정원)'이라고 번역 하기도 한단다.  

 명대 후기의 건축물인 졸정원은  청나라  강희제 때까지 방치되었다가
 다시 한번 개축을 거치고  건륭제 때는 서원으로 바뀌게 되는데....  

 초기의 흔적보다는 후기의 양식이 훨씬 더 두드러진 오늘날의 졸정원은  

 1997년  '쑤저우 고전 원림' 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졸정원 내부는 동원, 중원, 서원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핵심은 중원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빽빽히 들어선 비파원 등이 건축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건축물은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면적 약 5만 평방 미터의 너른 졸정원의 3/5 정도는 연못이 차지하고 있어서 

 연못 주변으로 누각과 정자 등이 여기저기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졸정원의 포인트인데 
비가 간간이 뿌리는 가운데 돌아보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못의 반영이 제대로 안 나타난 점이 실로 아쉽기만 하다. 


 

이 정원은 후손이 하룻밤에 마작으로 날려버렸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 당시에도 발지압이 성행했던 듯...정원의 앞 마당은 크고 작은 조약돌로 장식되어 있어서
차가운 겨울비가 아니었더라면 맨발로 디디며 여행에 지친 발의 피로를 달래었으리라...  

 아름다운 정원의 풍광을 감하게 한 흐린 하늘과 잿빛 연못이 못내 아쉬워
1달러 짜리 핑크빛 우산으로 인공적인 화사함을 살포시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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