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부터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 바서>의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내년 3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열리게 되는 이 전시에는

그의 작품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를 포함한 회화 63점,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건축 모형 작품 8점,
수공으로 제작 된 태피스트리 5점,

오리지널 그래픽 작품 26점, 오리지널 스탬프, 사진, 영상 등

총 120 여 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응....? 이런 예술가도 있었나....?" 했었다.

필자의 미술 전반에 관한 지식이 얄팍하기 그지없었는데다가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대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지만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생소하기도 한 이름인데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디자인한 작가라는 말을 들으니

"아하!"하며 그의 작품 스타일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 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그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아리안이었으며 어머니는 유태인이었다.

태어난 그 이듬해 1929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당시는 히틀러가 서서히 정권을 장악하고 반 유대주의 정책을 펴기 시작한 시기라

그는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불우한 유년을 보내어야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로 하여금 평화와 공존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평화주의적, 환경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예술학교에 3개월간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습작기를 거치며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 것은 파리 여행을 하면서부터인데

그는 이때 클림트나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색채의 마법사'라 불리울만큼 강력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였는데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들을 구사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색채 뿐 아니라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불기운에 구부러진 자를 들고 다녔으며 직선이 배제된 그림을 그리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그림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주조적인 이미지는 곡선의 이미지인데

둥글고 유기적인 형태, 원들과 나선은 그가 선호하던 형태들이었다.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만들어 신고 다닌 신발


훈데르트바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거꾸로 생각해보고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차림표에 없는 것,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을 원했는데

옷, 모자, 신발 등 몸에 걸치는 것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었으며 양말은 언제나 양쪽을 다른 색으로 신고 다녔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이름을 개명했는데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에 대한 사랑은 평생 훈데르트바서를 떠나지 않았고 언제나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려고 애썼으며

자연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연에 동화된 건물을 지으려고 힘썼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이며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행복한 집과 다채로운 집을 꿈꾸던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비엔나 시영아파트 건축 디자인 공모에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데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다양한 창문과  풍성한 나무들은 보기만해도 행복한 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도시 주택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는 문구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의 첫 문구에  실제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블루마우 리조트


훈데르트바서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에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루마우 리조트


이런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낸 블루마우 리조트에 잘 나타나있는데

이 리조트의 모든 건물은 옥상 지붕이 온통 식물들로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그 위를 걷고 돌아다닐 수가 있게 되어있다.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블루마우의 객실은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유선형 지붕은 땅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언덕이 되고,  2200개의 창문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블루마우.

이 작은 마을은 훈데르트바서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은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라운 '동화의 나라'이다.



                                                                                                                     세인트 바바라 교회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심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만 하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게 된 이후 비엔나 시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상낙원을 향한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전문가와 함께 직접 건축 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그 웅장한 스케일은 실제 건축물 앞에 서는 것과 흡사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진정한 예술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매혹적인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자연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그의 건축물 모형은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의 환상적인 작품들은 현재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0년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열리는 
훈데르트바서 한국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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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를 누르면 전시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www.hundertwasser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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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有天堂下有蘇杭)' 라는 말로 항주를 묘사한다.
마르코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한 항주.

중국 북부 지역에 비해 상해, 소주, 항주를 비롯한
중국 남부 지역은 날씨가 온화하여 사람이 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도 비교적 윤택하여 도로 주변의 농가들도 하나같이 규모가 크고 번듯하다.
거기다 항주의 자랑인 서호 주변에는 부호들의 별장과
리조트, 골프장과 공원,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너무나 여유롭고 부유한 도시 풍경에 여기가 과연 중국인가...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중국 내에는 '서호'라고 불리우는 호수가 약 800 여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항주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호수  '서호(西湖)'는 도시 서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항주에 서호가 없다면 항주를 갈 이유가 없다.' 할 정도로 서호의 아름다움이 주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서호는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리운다.
춘추 전국 말기 월나라 여인인 서시는 어느 날 강변에 서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니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오왕 부차에게 패한 월왕 구천은 보복을 위해 당대 최고의 미인 서시에게 예능을 가르쳐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바쳤는데 
부차는 구천의 계략대로 서시의 미모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월나라에게 패망하고 만다.
서시는 중국 역사상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힌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선착장에서 중국풍이 물씬 풍기는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둘레 15km, 면적이 6.3㎢ 에 이르는 방대한 호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수로 인한 토사가 점차 쌓이면서  완전한 호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호수는 백제,소제라는 두개의 제방에 의해 외호, 악호, 서리호, 남호, 북리호의 5개의 호수로 나뉘는데
 백제는 당나라때 지사로 부임한 시인 백거이가 축조했으며, 소제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축조했다고 한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소제춘효, 단교잔설, 뇌봉석조....등 '서호 10경'이 있는데 


서호 10경은 비단 장소의 아름다움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하루의 특정 시기, 주변의 풍치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를 말하므로  
서호에서 살지 않는 이상 그 진수를 제대로 맛보기란 어렵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서호를 돌아보는 방법 외에 '뇌봉탑'에서 서호를 조망하는 방법도 있다.

뇌봉탑은 북송 때인 975년 오월(吳越)의 왕 전홍숙이 사랑하는 황비 황씨가 아들을 낳은 것을 경축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여
황비탑이라 불렀으며 건립 당시 성의 서관 밖에 있다 하여 서관전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탑은 서호의 10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뇌봉석조(雷峰夕照)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는 석양 무렵 호수 맞은편에서 바라본 뇌봉탑의 신비로운 경관을 이름이다. 
뇌봉탑에는 백사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이는 유명한 경극의 희곡인 '백사전(白蛇傳)'의 토대가 되었다.


원래 뇌봉탑은 벽돌과 목재를 병용한 전목탑으로서 탑신은 벽돌로 축조하였고, 탑 처마와 평좌, 회랑과 난간 등은 목조였다.
 이후 명나라 가정제 때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서 탑신만 남게 되는데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거나 도굴을 목적으로 탑을 훼손하여 1924년 9월에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이후 80 년 가까이 유적지로만 남아 있다가 2002년 10월에 이르러 완전히 복원하였는데 
전체 높이가 71.67m인 새 뇌봉탑은 기초 부위를 보존하고 8각형과 5층으로 원탑의 형태를 재현하기는 하였으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탑체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추는 등
엄밀한 의미에서 복원이라고 하기 어렵고 다만 1
층에 원탑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역사적 의미는 깊은 곳이나 완전히 신식탑이라고 할 수 있는 뇌봉탑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뇌봉탑 제일 위 전망대에서는 근처에 위치한 공원과 리조트, 식당가들이 한눈에 보이고
서호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과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등 3개의 섬도 손에 잡을 듯 조망할 수 있다.


소동파는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다 아름답다 했고 위원은 비 오는 날도 좋지만 눈 오는 날이 더 좋다고 했다.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의 서호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맑고 화창한 겨울 한낮에 뇌봉탑에 올라 서호를 바라보아도 이 또한 좋은 것을....
심호흡 한번 하고 잠시 서시가 되어 춘추전국시대로 시간 이동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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