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의 중국.....화교들의 집단 거주지 '인천 차이나 타운'.
'화교(華僑)'는 '중국 국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그 나라에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 나라에 화교들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는 청나라에 근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때 약 30여명의 상인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공식적으로 화교의 유입이 시작되었는데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고 지금의 인천 북성동 일대 오천여평에
화교들의 거주지역이 생기니  이 곳을 '청관거리(현 차이나 타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화교 1세들은 고유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았다고 하는데
중국의 큰 명절인 춘절(설날)과 원소절(보름날)사이의 15일 동안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 였으며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글을 빨간 종이에 써서 붙이고 색등을 걸어 놓고
해가 저물면 긴 장대 끝에 폭죽을 수 백개씩 달아 놓고 불꽃놀이를 즐겨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현재 화교 2·3세들이 170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는 이 곳 '인천 차이나타운'은
한국 속에서 중국의 옛모습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이색 지대이다. 

낮의 차이나 타운은 지저분하고 한편 처량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밤에는 또 다른 모습이 된다.
낮과는 또 다른 얼굴로써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는 화려한 불빛.
병들어 야윈 몸 위에 분칠하고 붉게 입술을 바른 차이나타운의 야경은 더욱 애처롭게 느껴지는데.......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며 군데 군데 찍은 이미지들을 무작정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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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다면 중국인도 중추절음식으로 '월병(月餠)'을 즐긴다.
중국의 중추절에는 가족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월병을 나눠 먹으며 무병 장수를 비는데
옛 문헌에 '중추절 달을 깨물어 먹듯 작은 떡을 먹는다(小餠如嚼月)'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 역사가 짐작된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원나라 전복을 위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할 때다.
그는 8월 15일을 결전의 날로 잡았다.
문제는 원나라 감시망을 피해 각 지역에 어떻게 군령을 전하느냐였다.
고심 끝에 '8월 15일 밤 봉기(八月十五日夜起義)'라고 적힌 쪽지를 '월병(月餠)'속에 넣어 선물이라며 돌렸다.
군령은 신속하게 전달됐고 봉기는 성공했다.
이것이 중국인이 중추절 때 월병을 선물로 돌리게 된 유래다.



송편이 반달 모양인 데 비해 월병은 보름달 형태이다.
월병의 둥근 모양은 다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맛과 재료에 따라 수백여 종으로 나뉘고 그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속을 넣어서 만든다는 점은 송편이나 월병이나 비슷한 점인데
월병의 속으로는 팥, 복숭아, 살구, 땅콩, 깨, 연밥, 야자 열매, 오리알, 계란 노른자 등 다양하기 이를데 없으며
최근에는 과일, 야채, 아이스크림, 초콜릿, 해산물 등을 넣은 신개념 월병들까지 생산되고 있다.



중추절에 월병을 주고 받는 문화는 중국인들에게는 이제 관습처럼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렇게 보편화된 풍습이 아니었다.
중추절의 월병 문화는 상업주의에 의해 부활됐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의 월병 문화는 중국의 부정 부패의 단면을 비춰 주기도 한다.
황금으로 만든 월병이 등장하는가 하면 월병 세트에 보석을 끼워 돌리기도 하는 등.... 모두 다 청탁이 그 목적인데......
과거 이민족 타도라는 애국적 대의를 위해 봉사했던 월병 선물은 이젠 중국 사회를 갉아먹는 뇌물로 전락해 버렸다.
개혁,개방 이후 '돈이 최고의 가치'인 중국인들의 씁쓸한 자화상이 월병에서 배어난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갔을 때 중국제과점에서 월병을 팔기에 몇 개 사서 먹어보았다.
여러 가지 채소가 다져진 채로 들어있는 월병이었는데 처음 접해 보는 월병은 의외로 맛이 별로였다.
너무 물기가 없고 파스락하여 한 개를 제대로 씹어 넘기기가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역시나 우리네 입맛에는 우리 송편이 최고의 추석 음식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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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고 물으면
우리 나라 사람은 대부분 스스럼없이 '자장면'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요즘은 전화 한 통만 하면 누구나 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이지만
예전에는 자장면 먹기가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 있어서
성적 올리면 자장면 사 준다는 말씀에 현혹되어 밤새워 공부하던 기억,
졸업식 날이면 가득 차 있던 자장면 집 풍경의 기억은
30대 이후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나 역시 자장면이라고 하면 우리 집 바로 건너 건너에 위치했던 '충후반점'이 떠오른다.
대만 출신이었던 중국인 부부의 음식점 안에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고
교사 출신이었다는 소문의 '충후 반점' 아주머니의 아주 자그마한 체구와
그가 입었던 비단옷과 수가 예쁘게 놓인 꽃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본토에 가면 오히려 자장면을 맛보기가 힘든다고 한다.
그것은 자장면이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청나라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식 퓨전 중국요리이기 때문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는 청나라에 근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때 약 30여명의 상인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공식적으로 청인의 유입이 시작되었는데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고 지금의 인천 북성동 일대 오천여평에
청인들의 거주지역이 생기니  이 곳을 '청관거리(현 차이나 타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05년 청관 거리에는 '산동회관'이 들어서서 중국 요리를 맛보이게 되는데
1912년에는 그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이라고 개칭하게 된다.
이 때 중국의 대중 음식인 청요리를 처음으로 접했던 우리 서민들은
그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라게 되었으며 이어 청요리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자
청인들은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옛터를 찾아 보았다.
최고급 청요리로 명망을 높였던 공화춘은 새로운 외식 산업의 흐름에 밀려 1984년에는 폐업을 하게 되고
지금은 폐허가 된 채 차이나 타운의 한복판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뀐 100년 동안 공화춘을 대표해왔던 간판은 일부가 삭아서 떨어져 나가 글씨조차도 알아먹기가 힘이 든다.
앞으로 이 곳에 자장면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옛모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낡은 부분만 잘 보수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업 후 20년이 지난 2004년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공화춘이 문을 열게 되었다. 

정통 중국요리 '공화춘'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니
원조 자장면을 맛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어 공화춘의 문을 열고 들어서 본다.

 안의 모습은 일반적인 중국요리점과 크게 다를바 없다. 

앉자 마자 종업원이 내어오는 찻잔에는 '공화춘'이란 글씨가 얌전히 쓰여져 있었다. 

자장면과 공화춘....차이나 타운의 역사가 쓰여진 종이 매트가 깔려져 있고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메뉴판도 같이 나왔다. 
자장면 본래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자장면과 삼선 짬뽕을 시켰다. 

 조금 기다리니 삼선 짬뽕이 나왔다..
국물이 얼~큰~한것이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 맞다.

드디어 자장면도 나왔다.
원조 자장면을 원조 청요리점에서 대하니 감개무량이다.
자장면의 표면적인 모습은 다른 중국요리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장면은 현재의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작장면(炸醬麵)'이라고 읽혀진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자장미엔' 또는 '짜장미엔'이라고 읽혀지며
'작'의 중국어 발음이 한국어의 '자'를 발음하듯 하며 듣는이에 따라 '짜'로 들리기도 하니
우리가 쓰는 '자장면'은 한국식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혼합되어 불리어 지는 것이다.

이 때.....
작(炸)은 '물에 튀기다'라는 뜻이며
장(醬)은 된장 등의 발효식품 등을 뜻하고
면(麵)은 밀가루, 국수라는 뜻이다.  



자...이제 자장면이 나왔으니
자장면의 어원 풀이를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얼른 사정없이 비벼야 한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어떻게 비벼대던지... 비비는 테크닉은 각자가 알아서 구사할 일이다. 

신나게 회오리로 저어서 비벼 봐도 끝장나게 잼있다.

 

원조 자장면의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윤기흐르는 고탄력 면발을 보시기만 해도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왜 원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이 기막힌 맛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이 포스트를 한 밤중에 열어 보시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원조 자장면으로 인해 여러분의 건실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제동이 걸리는 불상사가
오늘 저녁 생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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