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논(다랑논)은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오래전 옛날에야 산골짜기나 경작지가 좁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게 다랭이논이었지만 경지 정리를 해서 대부분의 논이 넓고 반듯해진 요즈음에 다랭이논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부 다랭이논 중에서 통영 야소골 다랭이논, 남해 가천 다랭이논, 고성 다랭이논 등은 푸른 바다와 연둣빛, 황금빛 다랭이논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인해 사진 동호인들의 출사지로 각광받고 있는데 경주 학동마을에도 다랭이논이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휴일을 이용하여 찾아보았다.

경주시 내남면 비지리 학동마을에 위치한 다랭이논의 전경을 조망하고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는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에 위치한 'OK그린 청소년수련원'으로 찾아가야 한다.
'오케이목장'으로도 불리우는 OK그린 청소년수련원은 첩첩산중에 들어앉은 수련시설로써
수려한 주변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요즈음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찾는 이도 그다지 많지 않다.

억새와 잡풀이 무릎까지 우거진 야산으로 올라 다랭이논이 내려다 보이는 뷰 포인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히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황금빛 조각보가 활짝 펼쳐졌다.
황금색이라고 다 같은 황금색이 아니다.
어떤 곳은 어린 병아리처럼 노란 빛을 발하고 어떤 곳은 더욱 진한 황금빛이다.

벼논들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구부러지고 뒤틀려졌지만 모양과 색감의 조화가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하고
옹기종기 들어앉은 마을의 붉고 푸른 지붕들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레고마을같기도 하다.

가을날의 학동마을 다랭이논이 황금빛 조각보라면 봄날의 다랭이논은 또 어떤 모습일까?
봄에는 이 다랭이논에 하늘을 담은 물이 가득 채워지고 연둣빛 모판이 수를 놓는 등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고 한다.
계절마다 그 색깔을 바꾸는 아름다운 조각보, 학동마을 다랭이논의 돌아올 봄날을 기약해 본다.






 















하늘에서 본 학동마을 다랭이논의 모습(네이버 스카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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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릴레이가 블로거들 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필자에게도 릴레이의 배턴이 돌아 왔다.

이번 글쓰기 릴레이의 주제는 '편견 타파'.

[편견타파 릴레이]
1. 자신의 직종이나 전공때문에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를 써주세요.
2. 다음 주자 3분께 바톤을 넘겨주세요.
3. 마감기한은 7월 31일까지 입니다.
릴레이 규칙 퍼가시려면 ☞  임시로 복사 허용하기


다음 번에는 필자에게 릴레이의 배턴이 돌아오지 않길 '간절히' 기원하며....
직종이나 전공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요즘 필자의 최고 관심사인 '사진에 관한 편견 타파'에 대해서 몇 마디 주절주절해 본다.



요즘 어딜 가든지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든 사람이 가득하다.
폰카, 디카, DSLR 카메라, 그리고 아주 드물게 필카까지도....

실제로 삼청동 같은 곳은 주말에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반은 DSLR을 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DSLR 카메라가 대중화되어 있고 필자가 살고 있는 경주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필자 또한 2007년 11월에 DSLR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으니 이제 1년 육개월이 조금 넘은 햇병아리.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는 필자인지라 거의 혼자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지만
아주 간간히 지인들과 함께 출사를 나갈 때도 있었는데
이분들은 한결 같이 보급형으로 나온 나의 저급한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다.

"사진은 장비가 좋아야 하는데.....카메라가 너무 후지네요....카메라를 업그레이드 하세요..
렌즈 하나로 배기다니요....꽃을 찍으려면 접사 렌즈, 풍경에는 광각 렌즈, 그리고 망원 렌즈를 갖추세요.
오토로 찍으면 절대로 사진이 늘지 않습니다.....M 모드로 사진 찍는걸 연습하세요..."
이런 말을 매번 듣다 보니 사진 찍으러 같이 나가면 괜히 주눅만 들었고
남들이 시키는대로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결국은 아무데도 쓸모없는 사진을 만들게 되는 일이 허다했고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사진 실력 또한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사진이 늘지 않으니 사진에 대한 흥미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던 필자에게 사진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을 깨뜨리게 하고
없던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게 해 준 것은 바로 유명 사진 작가들의 사진 관련 수필집이었는데 그 책에는
사진을 찍으며 깨닫게 된 그들만의 생각으로 "사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는 내용이 한결같이 실려 있었다.

여러 사진 작가들이 사진 관련 책자에서 한결 같이 주장하는'사진에 대한 편견 타파'를 간단히 몇 자로 <요약>해 본다.

     1. 사진은 장비가 좋아야 잘 찍힌다는 편견을 버려라.

장래가 촉망되는 화가 지망생에게 그림 대신 사진을 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그림은 그림 도구가 좋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좋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진으로 성공하려면 좋은 사진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인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적게는 수백,많게는 수천이 드는 사진 장비를 갖출 재력이 없어서 사진을 전공으로 삼는 것을 일치감치 접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 사진은 장비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장비가 다는 아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값비싼 고급 카메라라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의 화질을 결정하는 것은 렌즈의 성능이지, 카메라 본체의 성능은 아니라고 한다.
고급 카메라란 좀 더 전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고급 사용자를 위한 장치를 덧붙인 것..
촛점영역이 많아서 촛점을 더 빠르고 손쉽게 맞출 수 있거나 어두운데서도 쉽게 찍을 수 있도록 ISO를 더 높일 수 있거나
초당 연사 속도가 높아지거나 혹한에나 우천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구성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기능들을 다 갖춘 고급 카메라는 크고.... 무겁고 ....무지 비싸다!

전문 사진가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면 고급 카메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백 수천 짜리 장비를 등에 메거나 대포만한 렌즈를 목에 걸고 산 위에 힘들게 올라가서
남들이 다 찍는 운해나 일출을 찍는다면 그것은 주목받지 못 하는 사진이 된다.
이미 다른 유명 작가가 다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비록 보급형 디카나 DSLR을 가지고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사진,
남다른 시각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그 사진은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사진이 좋지 않는 것을 장비 탓으로 돌리지 말자.
내 사진이 좋지 않은 것은 카메라가 허접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찍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부족한 때문이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라야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아니다!

     2. 사진은 수동 모드로 찍어야 잘 찍는다는 편견을 버려라.

사진을 수동으로 찍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수동으로 찍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예전엔 수동 기어로 차를 운전해야 운전하는 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은 거의 대부분이 오토매틱 기어차를 운전하는걸로 안다.
필자 또한 자동차의 매카니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도 시동을 걸고는 액셀레이터를 밟고 운전을 한다.
자동차를 몰며 순간 순간 속도에 대응하면서 기어를 수동으로 넣는 등의 신경을 쓰지않고 즐겁게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운전하면 된다.
그만큼 오토매틱 기어는 운전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해주어서 운전자를 안전하고 즐거운 운전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이 발전되어 셔터만 누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해주는 최첨단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면서
소위 말하는 작품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수동노출로 조작을 해야 한다는 편견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후배 중 한명이 얼마 전에 DSLR 카메라를 샀다고 해서 사진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처음 카메라를 산 이 친구....제법 값 나가는 바디에 단렌즈. 줌렌즈, 망원 렌즈를 다 갖추었다고 자랑하면서
자기는 초보지만 다 수동(M 모드)으로 찍는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M 모드로만 찍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래야 사진 찍는 맛이 나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사진의 선배들은 사진을 가르쳐 주면서 뇌출계(머리 속으로 판단하는 노출)로 찍어야 진정한 실력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수동 모드로 어렵게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위대한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그저 잘 된 작품을 감상할 뿐이지 무슨 모드로 찍었냐를 물어보지 않는다.
(하긴 가끔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그러면 자랑스럽게 오토모드나 P 모드로 찍었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정작 상업 사진작가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사진 찍어주는 자동 노출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번거롭게 카메라 조작을 하는 즐거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일이다.
멋진 장면이 나타났을 때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조합하느라고 꾸물거리는 동안에 이미 버스는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M 모드로 사진을 찍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M 모드로 사진을 찍은 후 P 모드나 A모드로  한번 더 셔터를 눌러 놓으시길...
그러면 최악의 실수는 면할 수 있다.

    3.  사진은 최고의 포인트에서 찍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

SLR 클럽 같은데 가보면 수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분초를 다투며 올리는 수많은 사진을 보게 된다.
최고의 출사 포인트에서 최고로 멋진 사진들을 찍어서 올려 놓는다.
어디 하나 구도상으로 빈 틈이 없는 선명하고 완벽한 사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진을 보면 감흥이 없다.
"참 잘 찍었구나..." 그 뿐이다.

필자 또한 얼마전 사진 포인트로 잘 알려진 곳에 가서 수많은 사진 애호가들 곁에 삼각대를 벌려 놓고 찍어본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기다리며 사진에 담아보았지만 결코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사진을 연구하고 그 장소를 수십번 가본 사람의 사진에는 결코 비견될 수 없고
이미 다른 유명 사진 작가들이 그 장소에서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사진은 다 찍어 공개해 버렸다.

아무도 찍지 않아서 비교할 수 없는 사진을 찍으려면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남과 다른 시각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관광지의 엽서와 다를 바가 없는 사진만 찍게 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최고의 시진 포인트에 가지 않더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일상에서 사진의 소재를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필자를 보고 반문할 것이다.
"너는 사진에 대한 이런 편견을 다 버렸냐?"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편견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편견을 깨고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일 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뷰 파인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보는 것이다.
사진에 대한 여러가지 편견은 멀리 던져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나서서 새로운 빛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다음 주자]
1. 펜펜님 : 등산과 여행에 대한 최고의 정보와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로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최강 블로거님.
2. 저녁 노을님 : 잔잔한 일상 속에서 발 밑에 떨어진 행복을 주워 맛깔스러운 글로 우리들에게 전파해 주시는 베스트 블로거님.

3. 파르르님 : 제주의 숨겨진 비경과 맛집, 아름다운 이야기를 현장감있게 전해 주어 우리에게 제주병을 앓게 해주시는 베스트 블로거님.
   펜펜님, 저녁 노을님, 파르르님.....받아 주실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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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고 푸르른 하늘 아래 파아란 연못.





이제 막 올라오는 조그만 연잎.

 한가로운 휴일 오후.

서출지 연못에는
하늘도 ...산도...구름도 다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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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봄꽃들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겨우 내내 추운 것을 핑게로 카메라에 바람을 자주 쐬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봄꽃이나 한번 찍으러 가볼까....하여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았다.

 

봄꽃 출사지로 유명한 곳을 알아보니 지금 한창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날 철이란다.

넓은 백사장과 매화가 잘 어우러지기로 유명한 섬진강 매화 마을이 그 중에 1순위로 떠올랐으나

경주에서 출발해서 돌아보고 오기엔 너무 일정이 빡빡한지라 양산에 위치한 순매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순매원은 낙동강 하구를 따라 아름답게 피어난 매실농원 옆으로 KTX가 지나가는 풍경을 담기 위해

주말이면 수많은 사진 동호인들이 찾는 곳이다.

사진 전문가이신 이웃 블로거님의 멋진 사진을 보고 항상 탄복해온지라

나도 이번 기회에 그분과 비슷한 멋진 사진을 한번 담아보리라 생각하고 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꽃샘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3월 중순에 때아닌 한파 주의보까지 내린 상황이란다.

가지말까....?

잠시 고민되었지만 이번 주말을 넘기면 또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 때까지 매화들이 얌전히 날 기다려줄지가 의문이라

옷깃을 파고들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순매원으로 향했다.

 

순매원에 당도하니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사진 포인트는 두 곳. 1번과 2번 포인트이다.

KTX가 산허리를 돌아서 순매원 옆을 지나가며 S라인을 그리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1번 포인트는

막상 장소에 도착해보니  아침 나절에는 역광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낙동강을 왼쪽에 끼고 철로가 직선으로 뻗어있는 반대편 2번 포인트로 가보았다.

 

벌써부터 삼각대를 벌리고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진사님들....

좁은 언덕배기에는 내 삼각대를 놓을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가족들은 주차장에 있으라고 하고 진사님들의 바로 옆을 비집고 들어가

눈치를 보며 살짝 삼각대를 펼쳐 놓았다.

 

카메라를 켜고 세팅을 하려고 하는데 KTX 한대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지라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기차는 자주 오고 가니깐....하면서 세팅을 마치고 기차를 기다려 보았다. 

 

 

렌즈를 이리 저리 돌려보아도 파인더에 잡히는 경치가 영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서고 싶은 좋은 장소는 다른 분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지라 

할 수 없이 연습하는 셈치고 서있던 자리에서 찍어보기로 했다.

 

내 옆에는 니콘 D-700을 비롯해서 으리으리한 장비를 벌려놓은 아저씨 몇 명이 서 있어서

저급한 카메라를 버티어 놓고 있던 나는 약간은 기가 죽기도 했는데... 

내 옆에 있던 아저씨, 지루했던지 인사도 없이 내 카메라 뷰 파인더를 스윽...들여다 본다.

아니...이건 대체 뭥미..?

구도 잘 못 잡았다고 한 수 가르쳐 주려나...하고 기다렸더니

그 아저씨....아무 말도 안 하고 자기의 망원 렌즈를 빼더니 백에서 다른 렌즈를 슬그머니 꺼내 다시 장착을 한다...^^;;

 

막상 기다리고 있으니 이십분 이상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애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기차 온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니 모두 황급히 스탠바이한다. 

 

 

 기차는 갑자기 눈 앞을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작렬을 하는데

"거...앞에 있는 아저씨~~ 빨랑 비키소~~!!"

앞에서 눈치 없이(?) 얼쩡대다 앵글에 잡힌 한 진사분에게 질책이 쏟아진다. 

 

 

 헉.....하며 사태를 파악하신 아저씨, 총알같이 허리를 수그리고....

카메라들의 셔터 소리는 더욱 세게 작렬한다. 

 

 

 길다고 느껴지던 기타의 끝머리가 나타난다.

"에이~ 똥구멍이잖아..."

ㅎㅎㅎ 모두가 허탈해한다.

앞이나 뒤가 다 슬림하게 빠진 KTX가 아닌 뒷부분이 뭉툭한 열차라서 모두가 실망을 하고는

다시 카메라를 세팅하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삼십분 정도 기다리고 서 있으려니 불어오는 칼바람과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봄 추위가 추워본들 얼마나 추우리...하고 방심하고 방한 차림을 안 했던게 잘못이었다.

언덕배기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입고 있던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시려서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기다리고 서 있으니 기차는 어찌 그리 안 오는지....지루하기만 하고 추워서 제 정신이 아니다.

볼은 얼어터질 것만 같고 눈에는 눈물이 주르르...볼을 타고 내린다.

 

아...씨...그냥 가 버려...?  다시 기다려...?

기차 하나만 더 찍어 보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추위에 약한 내게는 고문이 따로 없다.   

 

 

 다시 "기차 온다~~!!!" 하는 외침에 모두가 셔터를 누른다.

이번에는 멋지게 잘 빠진 KTX다. 

 

 

 "오~예~!"

멋지게 한번 찍어 보리라 하고 셔터를 연사로 길게 누른다.

여기저기서 "찰칵,찰칵,찰칵...." 기차 소리와 셔터 소리가 함께 작렬을 한다. 

 

 

 끝머리가 잘 찍히면 한장의 사진은 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셔터를 열심히 누르고 있는데 더 이상 눌러지지가 않는다.

헉스~! 이런 난감한 일이..... 

 

 

사태를 파악하고 다시 셔터를 눌러서 간신히 기차의 머리를 담는데 성공했다.

근데 모니터로 확인해보니 가운에 와 있어야 할 KTX의 머리가 너무 멀게 위치해 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다. 

 

 

 

 삼각대를 거두어 순매원을 뜨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반대편 1번 포인트에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반대편은 언덕배기의 장소가 더욱 협소하여 삼각대를 펼칠 공간도 없었다.

역광이라 빛이 영 살아나지 않는 것이 흠이었지만 오후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남이 삼각대를 펼쳐 놓은 앞의 좁은 공간에 카메라를 들고 쭈그리고 앉았다. 

 

 음지였던 이전의 포인트와는 달리 서있는 곳이 따스해서 기다릴 만 했는데

쭈구리고 앉아 있으니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얼마 안 기다려서 다시 "기차 온다~!!"란 외침이 들리고 모두 다 생기있게 셔터를 눌러 대었다. 

 이번에도 앞머리가 뭉툭한 기차였다.

 

 

 에이~~ 이번엔 금방 꽁무니가 나타난다.

앞도 뒤도 뭉툭한 7량 짜리 통근 열차였다.

기차가 길어야 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멋진 S라인이 펼쳐질텐데....

이건 뭐 유치원 아이에게 S라인을 바라는 격이다.

 

옆에 있던 다른 진사님들은 기차가 오는 기회를 다시 기다리고 있는데 

난 카메라를 접고 그들의 사이를 빠져나왔다.

차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남들 다 해보는 포인트 출사를 한번 해본 것으로 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달력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최고의 사진들.

최적의 시간대에 최고의 포인트에서 찍은 사진은 많은 사진작가들의 기다림과 발품의 소산물인 것이다.

나처럼 어쩌다 한번 가서 들이댄다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이미 전문가들이 찍어놓은 멋진 사진을 그 자리에 가서 그대로 모방해서 꼭 같은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창작품이 아니라 단지 복사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남에게 보여주지는 못 하더라도

작고 소박한 자신의 표현 욕구나 관심을 그저 <자기의 방식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결과물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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