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때가 되었으므로 호텔에서 식사를 한 후
이스탄불 중의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 지구'의 밤 풍경을 돌아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여자들이 낯선 외국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생각되시겠지만
저녁만 먹으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암흑으로 변하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터키의 밤 거리는 늦게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 뿐만 아니라 의외로 안전한 편이어서
늦은 저녁 식사에도 불구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술탄 아흐멧 지구는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 토프카프 궁전, 지하 궁전, 그랜드 바자르...가 밀집해 있는
올드 이스탄불....그러니까 이스탄불 중의 이스탄불이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오니 트램 정류장이 있고 사람들은 앉거나 서서 트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램(Tramvay)은 바크르쿄이라는 이스탄불 서부 지구부터 카바타쉬라는 베쉭타쉬 지역까지 연결하고 있다.
트램은 5~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차내는 청결하고 에어컨 상태도 좋다. 
특히 이 트램은 우리나라 현대로템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하니 더욱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오래된 오스만 시대의 건물과 신식 트램,그리고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이 조화를 이루는 곳, 이스탄불이다. 
 


 너무나 화려한 가죽 제품들이 많이 걸린 가죽 전문점에 들어가 백과 구두를 구경하였다.
주인은 아주 영어가 유창하였고 이 가죽 전문점엔 한국인이 많이 온다고 하였다. 
  


 얼마 안 걸으니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사원)이 은은한 경관 조명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나타난다.
아야 소피아는 내일 밝을 때 돌아보기로 하고 토프카프 궁전 입구 쪽으로 가서 카펫과 기념품 가게들을 돌아보았다. 
한 기념품 가게 주인 청년은 나이가 스물 셋 밖에 안 됐는데 벌써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는 등 프라이드가 대단했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혀를 굴리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귀를 쫑긋하느라 혼이 났다.  



 아야 소피아의 맞은 편 블루 모스크 앞 광장에 다다르니 터키 대학생 두 명이 말을 걸어 왔다.
수줍게 말을 더듬으며 말을 걸어온 이 대학생들은 "자기들의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대화를 하고 싶단다. 
해양대 2학년생이라고 하는 이 학생들은 배를 타고 터키의 항구 도시를 순회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순진하고 예의바른 이 학생들은 비교적 또렷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무지 힘들게.....' 대화를  한참 하다보니 모두가 회화의 밑천도 떨어지고...^^;;
다른 곳도 구경하고 싶은지라 좋은 여행 되라고 손을 흔들고 주고 헤어졌다.


블루모스크는 건물 전체를 비추는 조명으로 인해 밤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요즈음은 유적지나 타워의 경관 조명이 잘 되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데
오래 된 유적에 비쳐진 경관 조명은 낮의 모습모다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야 소피아는 이제는 박물관이 되었으므로 밤에는 입장할 수 없지만
블루 모스크는 이슬람 사원이기 때문에 밤에도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문이 열려 있어 

관광객들과 기도하러 온 사람, 더위를 식히러 온 이스탄불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스크에서  만난 터키인 가족들은 아이가 '촉 규젤'하다니까 매우 좋아하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촉 규젤 = 매우 아름답다, 아주 예쁘다)
알고 있는 몇 마디 안 되는 터키어로 얘기를 걸었는데 너무나 좋아하며 환하게 웃어주던 터키인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몇 몇 한국인인 듯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을 다른 관광지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 일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반가와 하며 '어디서 오셨어요...'하면서 기분좋게 인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이스탄불에 오면 모두 마음이 너그러워 지고 행복해 지는걸까...


 '미나레(minaret,이슬람 사원의 첨탑,아랍어로 등대라는 뜻)' 에도 경관 조명이 이쁘게 비추인다.
블루 모스크는 미나레트가 여섯개 있는 터키 유일의 사원인데 미나레의 갯수에 따라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오일 램프가 까마득한 천정에서부터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는데
오래 된 수백개의 크리스탈 오일 램프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넓이의 바닥에는 실크 카페트가 깔려 있는데 카페트의 무늬는 일정하게 구획이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의 예배 광경을 보면 엎드려 절할 때 줄이 참 잘 맞춰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마다 앉는 자리가 구획지어진 이 카페트의 덕이라고 보면 된다.


오래 된 블루 모스크의 축대 아래에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시장 '아라스타 바자르'가 있다.



이 바자르는 블루 모스트의 운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방편으로 
오래 전에 지어졌는데


바자르 안의 많은 기념품 가게에는 주로 머리에 쓰는 히잡이나 스카프, 벨리 댄스 복장, 카펫, 도자기 등을 팔고 있다. 
 


바자르의 가게 앞에는 이렇듯 로마시대의 기둥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터키에는 수천년 된 유적들이 거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혹은 티 테이블로.혹은 의자로 쓰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터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놀라곤 하는데 왜 유적을 박물관에 두고 잘 보존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니...길에 널려 있는 것이 모두 다 유적인데 어떻게 다 유리 속에 넣어두나요?" 하고 이상하다는 듯 반문한단다.



바자르 안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갑자기 동행인 S양의 손목을 덥썩 잡더니 
"이 귀엽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낙타 몇 마리에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일순간 깜짝 놀랐지만 앞에 선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관용적 표현'이라는걸 눈치 채고
"음...낙타 천 마리...? 아니 아니 이천으로 합시다~!! 빨리 이 아가씨 데려가고 낙타 이천 마리 주세요~"
라고 했더니 이 터키 아저씨, 함께 폭소를 터뜨리며 가게에 들어와서 차이나 한잔 하고 놀다 가라고 한다.  


 사진은 동행인 K양, 초상권 보호를 위해 면상 비공임당...^^

하도 강권하는 바람에 카펫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엄청나게 좋은 카펫도 있었고 조그마한 킬림도 있었는데
주인은 카펫 장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차이를 권하더니 
자기의 '매직 카펫쇼'를 보여주고 싶단다.
의자에 우리를 앉히곤 길이 120cm정도 되는 붉은색의 카펫을 한장 들더니
"혹시 심장이 약하지는 않으신가요? 놀라서 기절하지 말고 카펫에 눈을 떼지 말고 똑바로 지켜 보세요~"
하며 카펫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가게 바닥에 휙 내던지는 것이다.

뭥미...? 뭐가 매직쇼야.... 카펫이 뭐가 달라지기나 했나...? 하고 자세히 보다가 순간 "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분명이 붉은색 카펫을 바닥으로 던졌는데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은 하얀색 카펫이었다.
우리는 "와아~~~와아~~팬태스틱~!"하면서 박수를 쳤더니 우리의 리액션에 신이 난 이 아저씨...다시 카펫을 들더니
"이번엔 하얀 카펫을 붉은 카펫으로 바꿉니다~" 하면서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다시 가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니 이번엔 카펫의 색상이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주인에게 "잠깐~!" 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반대편에 서서 보니 카펫은 요술처럼 하얀색이었는데 다시 앉아 있던 방향으로 와서 보니 붉은색이었다.
그렇다.....이 카펫은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도록 짜여 있는 '멋진 예술품'었던 것이다.
 '매직 카펫 쇼'라.....ㅋㅋㅋ
정말 환상적인 매직쇼를 보여준 카펫 가게 주인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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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왕국의 분열 이후, 아타루스 왕조인 필레타이로스가 기원전 281년에 건국했다는 페르가몬(Pergamon) 왕국.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이 남아있는 터키 베르가마(Bergama,버가모)를 찾아가 본다. 

페르가몬 왕국은 문화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그중에서도 도서관 수준은 세계 최대급이었다. 페르가몬에 질투심을 느낀 이집트는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는데  곤란해진 페르가몬은 양피지를 발명해내었다.
'페르가몬의 종이'란 뜻의 양피지(parchmen)는 책 한권에 드는 양의 가죽이 양 15 마리분이어서 제작 비용이 상당했으나 파피루스보다 튼튼하고 양면에 문자를 적을 수 있었던 덕분에 책은 '두루마리'에서 '책자'로 변했고 도서관의 책 보존은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양피지 발명으로 인해 페르가몬 도서관은 장서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당시 약 20 만권의 장서를 보유하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이어 세계 제 2의 도서관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페르가몬 왕국은 문화와 상업,의학의 중심지였고,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처럼 계속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 후 비잔틴, 아랍, 터키를 거쳐 오면서 왕국의 특색은 엷어지고 점점 몰락해가서 현재 남아 있는 페르가몬의 유적은 산상 도시 아크로폴리스(Akropolis)와 고대 의료시설인 아스클레피온(Asklepion)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버가모(베르가마)에서는 아크로폴리스와 아스클레피온 유적을 뒤로 한채 강을 걸쳐 세워져 있는 아주 당당한 건축물을 둘러 보았는데 바로 '크즐 아블루(Kizil Avlu)'이다.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인 2,3 세기에 건립된 이 건축물은 원래 고대 이집트 여신 사라피스를 모시는 거대한 신전이었지만 후일 비잔틴 시대부터는 로마 국교인 기독교 교회로 용도가 바뀌어 사용되었다. 

 

 

요한 계시록에 따르면 버가모는 소아시아에 있는 7대 교회중 한 곳이었다.



버가모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과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던 도시였기에 초대 교회 당시 신전에서 올리는 제사로 인해  도시 전역이 항상 연기로 자욱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버가모 교인들의 신앙 생활은 단지 입으로만 읊조리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삶이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터키어로 '크블 아블루(붉은 관)또는 '레드 바실리카(붉은 성당)'라고도 한다. 현재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붉은 외벽만 남아있을 뿐인 이 거대한 건물은 60*26 m 의 면적과 19 m 의 높이를 자랑한다.

 

 

본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대리석을 덧붙여 감추어지게 되었는데 이 곳의 대리석은 오랜 시일을 거쳐 떨어져 나가고 최근에는 마루를 덮고 있던 대리석 마감재만이 온전하게 붙어있다.  

 

 

 떨어져 나간 부분들은 일부 새 벽돌로 복원이 되고 있었는데

 

 

무너지지 않은 일부 문들은 정말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어 크즐 아블루의 전성기를 짐작케 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마을과 성채가 정말 액자 속의 그림 같다. 

 

 

이 건물 분수대 아래로는 셀리누스 강에서 물을 운반하는 지하 터널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거대한 크즐 아블루의 주변에는 당시 건물의 부서진 조각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터키는 지진이 많은 곳이라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유적이 크즐 아블루 주변에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다. 

 

 

이곳에는 유대인 회당도 있었던지라 대리석 기둥에 쓰인 히브리어도 발견할 수 있다.

 

 

깨어진 돌판들과 부서진 채로 맞춰진 조각들이 그 시대의 자취들을 무언으로 알려주었다. 

 

 

크즐 아블루의 문을 나서니 담 옆에는 무화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크즐 아블루 입구에는 술탄의 우아한 세탁소처럼 상점마다 굉장히 공교하게 짠 카펫들이 걸려있어 보기만해도 눈이 즐겁다. 버가모(베르가마) 에서는 염소 가죽과 신선한 백색 치즈, 과일과 튤립, 꿀, 요쿠르트, 피스타치오등의 특산품이 많이 생산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산품은 역시 버가모(베르가마) 카펫이다. 버가모(베르가마) 카펫은 아직도 손으로 짠 구식 방식으로 만들어지므로 최상급의 카페트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카펫을 구입하려고 돌아볼 때에는 너무나 말끔한 색상의 카펫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고. 



카펫 상점마다 다양한 사이즈와 길이의 카펫과 킬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킬림은 비단으로 짜거나 수를 놓거나 날실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평평하게 짠 여러가지 유형의 융단이나 자루를 말하며 카펫은 이러한 직물에 매듭으로 단단함과 부피감을 더한 직조 공예품을 말한다. 카펫과 킬림은 때로는 아주 길게 짜서 소비자가 원하는 길이로 잘라서 팔기도 한다.  

 

길 가에 카펫을 깔아 놓은 모습은 마치 우리 나라 추수기에 벼를 말리는 풍경을 연상케 하고 담장에 늘어놓은 다양한 색상의 카펫도 이채롭다.

 

 

 노상에서 카펫을 팔고 있던 부자의 포트레이트를 찍어보았다. 부자의 얼굴과 포즈가 똑 같은게 너무 재미있다. 

 



"원달라~~원달라~~~"를 외치며 엽서를 팔고 있던 아저씨는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You're so good~" "You're so beautiful~"을 남발하며 칭찬해 주더니 엽서를 안 사고 그냥 돌아서서 오니 따라와서 엽서를  공짜로 선물해 주었다. 차를 타고 출발하는데도 차창을 보고 계속 손을 흔들어줘 가슴이 찡했다. 

 

페르가몬의 산상 도시 유적 아크로폴리스(Akropolis)의 대극장은 해발 333 m 언덕의 급경사면을 이용해 만들어진 부채 모양의 야외 극장으로써 엄청난 높이와 규모를 자랑한다. 80 m나 되는 까마득한 관객석은 층계가 3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무려 일만명을 수용할 수 있고 아래쪽의 귀빈석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을 만큼 화려한 극장이다. 여기에서는 배우가 맨 아래의 무대 중앙에 서서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여도 가장 맨꼭대기의 관객의 귀에 편안하게 들리는데 이러한 구조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건축에 대한 견해에도 좋은 교훈을 준다. 이 언덕의 맨 위에서 보면 너무 높아서 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급경사면이지만 전망이 뛰어나서 버가모(베르가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푸른 하늘에 순백색의 기둥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페르가몬의 상징인 트리야누스 신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전인데 기둥이 늘어선 회랑이 신전의 세 방면을 에워싸고 있다. 트리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이 시작되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완성되었다.
현재 아름다운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 열주가 복원되어있다.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했던 고대 종합의료센터 아스클레피온(Asklep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서 유래한 아스클레피온에서는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건설된 기원전 4세기에 이 곳에서 의료가 실시되었다. 외부 공기로부터 영향을 차단하는 회랑,성스러운 물,극장,도서관,진료소,신전 등을 겸비한 당시 최대의 의료 진료소이자 역사상 최초의 완벽한 건강 온천이었다.
유명한 카라카라 황제도 이 곳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온에서도 '성스러운 길'은 당시에는 기둥이 아치 형태로 서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50 m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극장으로 이어지는 이오니아식 열주가 계속되는 북쪽의 콜로네이드(회랑)은 당시에는 지붕이 덮여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멋드러진 열주만 서 있다. 쭉쭉 뻗은 열주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버가모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했다.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아크로폴리스나 아스클레피온같은 유적을 두고 그냥 떠나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서머나로 가야할 시간이 임박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엽서 파는 아저씨와 카펫 장수 아저씨의 차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뒤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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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시겠지만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카파도키아에는 지하 도시가  400 여 곳이나 산재해있다.
이런 지하 도시는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이용해 왔는데 
이 지하 도시들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응회암과 용암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암 괴석에 동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상의 맹렬한 더위와 짐승의 습격을 피해 사람들이 이 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미 만들어져있던 지하도시를 이용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지하 도시 중 유명한 곳은 카이막클리, 데린구유, 오즈크낙 등인데
그 중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데린구유'는 가장 놀라운 도시다.
이 지하 도시는 1960 년대에야 발견되었는데 데린구유의 한 마을에 있는 닭이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생긴 주인이 당국에 신고를 한 것이 지하 도시를 발견한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찾아간 데린구유는 여느 관광지같이 북적대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그다지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동네 가게 앞 그늘에만 몇 사람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눌 뿐...... 광장 앞 풍경은 잠이 올 만큼 조용한 분위기다.



마을의 둥근 광장 주위에 자리잡은 관광 상품점은 들여다 보는 사람도 가게 주인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허물어지다 만 듯한 2층 건물의 옥상에 사다리가 심심하게 걸려있고 앞의 하얀 건물의 옥상에는 잡초만 무성한데
그런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카페트를 옥상에 척 걸쳐 놓기도 하고 빨래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기도 한다.
하얀 벽에 못을 쳐서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카페트들이 거의 다 그 지방에서 짠 수공품 카페트들인데
오랜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한 터키 카페트의 색감이 얼마나 화려하고 이쁜지 하나 사갖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가게 옆에는 허름한 천막이 쳐져 있는데 역시 천막 앞에도 카페트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가게 자리를  얻지 못한 상인의 소규모 점포일까.....?
도자기 공예품이나 작은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거기 또한 들여다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가게 주인들은......햇빛을 피해  건물의 그늘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킬림(평직 카페트) 조각을 땅에 깔고 둘러 앉아 신문지 위에 빵,포도,차이를 베풀어 놓고 둘러 앉아
계란을 까고 있는 모습은 우리 나라 아저씨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으니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을 거는데  "여기 와서 같이 차이나 한 잔 할려우...?"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카페트 뿐 아니라 저울이나 램프, 항아리같은 토산품등도 같이 팔고 있던 가게 안에 들어가서 매우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데린구유 발굴 현장에서 흘러나온 출토품인데 놀랍게도 히타이트 시대의 인장이었다.



왼쪽의 네모난 인장은 사자가 표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아랫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삼각형으로 된 뒷부분에도 길게 홈이 파여져 있어 간편하게 끈을 꿰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오른쪽 원형의 인장 역시 둥근 아랫부분에 끈을 꿸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여 많이 마모되기는 했으나 말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도시의 흙 속에서 잠자고 있던 4,000년 된 유물을 손에 넣으니 감격으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는데
이 인장들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손에 넣은 기념품 중에 가장 귀한 물건으로 남아 있다.



지하도시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아기를 안은 아줌마가 좌판에 인형 몇개를 팔고 있는데 완전 수공예품 인형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인형은 데린구유 지방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인형.
하얀 무명 옷에 무늬를 싸인펜으로 그리고 인형의 눈,코,입도 싸인펜으로 그려 놓은 너무나 소박한 인형이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고 단지 데린구유에서만 살 수 있는 이 인형은...단돈 2달러이다....^^



동네 구경을 다하였으니 이제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볼 차례.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미나레(이슬람 사원의 첨탑)가 하나 있는 작은 '자미(이슬람 사원)'의 바로 옆에 있는데
오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게 된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은 둥근 돌문인데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돌을 굴려 통로를 막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돌문은 안 쪽에서만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가이드의 도움없이는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어서 반드시 가이드를 앞장 세워서 들어가야 한다. 



이 곳의 지하는 방,부엌,곡물 저장소,동물 사육장,첩자들을 다루는 형틀, 교회,성찬이나 세례를 베풀던 장소,신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 묘지 등이 다 있어 지상의 생활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전한 도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하 도시는 총 20층으로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규모인데 현재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8층까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고  
데린구유의 터널은 이 곳에서 9km가 떨어진 카이막클리 지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어 
지상의 도시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하니 그 규모에 가히 입이 쩍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하 도시의 통로는 한 사람이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며 어떤 곳은 허리를 굽혀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



어둡고 좁은 이곳에서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호흡 곤란과 가슴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동굴 속의 방과 방들은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상당히 넓은 공간도 있는데 기둥도 세워져 있는 이런 넓은 공간은 대부분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했던 십자가 형태의 교회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신학교의 흔적도 있다. 



물이 흘러나와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는 이곳은 세례를 베풀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가이드가 후래쉬로 비추는 곳은 에어컨디셔너 기능을 하는 통기 구멍이다.
이 구멍은 지하도시의 각 층을 꿰줋고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지하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준다.



카파도키아 지방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고 하니 그 얼마나 답답했을까..
동굴 벽의 갈라진 틈에 손을 넣어보며 그 당시 사람들의 숨결을 함께 느껴 보았다. 



지하도시 데린구유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니 
다시 맞이하게 된 밝은 햇빛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길을 걸어가야 했다.
단 몇 시간 동안이지만 암흑의 지하도시를 체험하고 나오니 바깥 세상의 공기는 달콤하기 그지 없었고 
밝게 비춰주는 햇빛도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햇살인 것 처럼 감사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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