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 상의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점이 있겠지만
약 8,000km의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터키는 흡사한점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유사성을 들 수 있는데 터키어와 우리 말은
같은 우알타이어족에 속하여
문장 구성,문법,모음 조화 등이 우리말과 거의 비슷하고
리 말과 어순도 꼭 같이  S+O+V 의 순이다.

 터키와 우리나라 사람은 언어가 비슷하여서 그런지
사고 방식 면에서 일면 상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고 감정의 표현 방법도 비슷하며
전통적인 관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길거리에서 'SU'라고 쓰인 트럭을 보았는데 물어보니 놀랍게도  'SU'는 터키어로 "물(水)'이란 뜻이란다.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게 새삼 실감나는 부분이었다.

 

터키를 찾는 사람들은 상점이나 백화점마다 유명 브랜드가 쫙 깔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터키는 개방된 시장이어서 샤넬의 최신 디자인에서부터 각종 생활 용품까지 수입 안되는 것이 없는 곳이다.
우리들처럼 터키의 젊은이들도 나이키,아이다스,리바이스 등 
유명 상표의 옷을 입고 친구들 앞에 은근히 자랑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곳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짝퉁 브랜드가 판을 친다.
 

 

 

 터키 사람들의 청결 의식은 대단하여 여자들은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는데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해 열심히 자기 집을 쓸어서는 밖으로 휙...갖다 버리곤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터키의 거리에는 노점상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참으로 다양한 물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점상은 불법이지만 길에는 노점으로 넘쳐나고
아침부터 밤중까지 거리에서는 소리 높여 물건을 파는 여러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터키의 노점상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피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목청도 좋아야 한다고......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터키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 매우 친절하다.
필자가 탔던 차가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에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승용차 때문에
전진도 후진도 하지 못하고 난감하게 끼어 었었는데 어디선가 한 
청년이 나타나
양 옆에 있는 가게들을 이리저리 다니며 운전자를 불러내어 차를 빼내게 하고
차 앞에 서서 "앞으로...뒤로...좀 더..."를 크게 외치며 차를 빼내게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청년은 운전자가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유유자적 자기 갈 길을 가버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터키인들은 친절이 넘치는데
시골 같은데서 누가 길을 물으면
자기 하던 일을 다 제쳐 놓고 아예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본 트럭 위의 생수병이 너무나 친근하다.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선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돗물을 음료수로 먹지 않기 때문에  
물 배달 업체에 신청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커다란 물통을 배달해 주고 이렇게 빈 통을 수거해 간다.
신선한 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즉가하는 추세라서
이스탄불 곳곳에는 주유소와 비슷한 시설의 물 판매소도 등장했을 정도라고 한다. 

 

 

멀리 갈라타 타워가 보이고 그 앞에 샛노란 택시들이 지나가고 있다.
택시를 잡을 때에는 우리처럼 손을 들면 되고 요금은 미터기로 계산하며 야간 역시 할증료가 있다.
택시 요금을 바가지 씌우는 일은 거의 없으나 운전자가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지는 미리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고...... 

 

 

한국에 몇년 거주했던 한 미국인이 '한국에서 차를 몰면서 살아남는 재주'라는 글을 한 잡지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스위스의 어떤 자동차 경주 선수 또한 터키에서의 운전 경험은 '놀라운 일로 가득 찬 흥미진진한 경험'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다반사인 끼어들기, 추월, 급브레이크,경적 울리기......이런 것 또한 이스탄불에선 보통의 일과라고.....
 

 

 

이스탄불의 도로는 언제나 차로 가득 차서 차간 거리같은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운전자들은 모두들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서둘러 차를 몰며
엄지 손가락은 언제나 경적을 울릴 태세를 취하고 있다. 
경적을 울리는 방식도 우리와 비슷한데 짧게 한번 울리면 경고나 감사의 의미, 길고 끈질기게 울리는것은 강한 비난의 뜻이란다.
터키에서 운전하려면 이 모든 경고와 비난의 소음과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운전 습관에서 느낄 수 있듯이 터키 사람들은 한국사람처럼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편이라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핏대를 올리며 싸운다고 한다.
필자는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보딩을 기다리다가 항공사 직원과 승객이 다투는(!)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큰 소리로 말다툼을 하다가 심하게 흥
분한 항공사 직원이
갑자기 데스크를 발로 밟고 올라 붕~ 날아서 승객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구경 중에 최고가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둘러서서 보는데
항공사 직원이 승객을 때리며 싸우는 현장을 보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터키인들은 이렇게 주먹다짐을 하고 싸워도 술 한잔 마시고는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 부속 아라스타 바자르 옆 노천 카페에서 흥겨운 민속 음악이 흘러나오기에 가보니
남자들 여섯명이 서로 어깨를 잡고 일렬로 서서 즐거운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춤은
 중앙 아나톨리아의 민속춤으로 '할라이 댄스'라고 부른단다.
얼마나 신나고도 힘차게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아가는지
노천카페에 앉은 필자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같이 끼여 춤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터키 사람들은 우리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특히 터키의 젊은이들은 대중 음악에 열광하는데
터키 팝은 음악은 터키 풍이면서도 악기나 비트는 세련된 유럽식이다.
시장,레스토랑,버스 안 어디서나 노래를 틀어놓아 사방에서 열정적인 노래 소리가 들려오며
젊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지나가면 그 안에서 들려오는 강한 비트의 음악은 도로의 콘크리트 바닥이 울릴 정도이다.
 
  
                    터키의 뮤직 비디오에는 19금으로 분류해야하지 않나..생각될 만큼 야하고 섹시한 춤이 난무하는데 
           
 여자의 춤은 물론 남자의 춤도 섹시하게 허리를 돌리며 추는 춤이 대부분이어서 이 곳이 정말 국민의 95%가 무슬림인 나라가 맞나....하고 의심이 드는 신기한 나라이다. 

이슬람에선 음악과 춤을 금한다.
   하지만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세속주의 채택으로 인해
  터키는 법률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비교적 자유로운 이슬람국가이다.

                                           

오늘날 터키 지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종교적 억압과는 거리가 먼 나라를 발견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은 단체 관광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통로에서 춤을 추며 흥겹게 노래 부른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관광버스춤을 추는 나라>라니.....정말 형제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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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는 이방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한다.


이방인 혐오증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종족으로 섞인 터키 땅,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고


융화되는 변화 속에서 사는 튀르키쉬(터키 사람)들은

누가 토종인지...누가 이방인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터키 땅에서 터키 말만 하면 다 튀르키쉬라고 느낄 정도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이희철 지음 '터키' 참조)

현대 복장을 한 여성과 히잡을 쓴 여성이 성 소피아 사원 입장료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현대 복장을 한 여성이 히잡을 쓴 여성에게 이 줄이 입장표를 사는 줄인지 아닌지를 물어본다.

       히잡 여성:(놀라며)아니..터키 말을 아세요?

       현대 여성:(당황한 듯)예...터키 사람이에요.

       히잡 여성:아~~ 전혀 터키 사람같지 않네요..외국인인줄 알았어요.

       현대 여성:당신도 전혀 터키 사람 같지 않네요. 아랍 사람이줄 알았어요.

      히잡 여성:엠함둘라(신에 감사하다는 뜻) 우리는 다 무슬림이고 터키 사람이죠..뭐....

      현대 여성:맞아요.  



토종이 이방인이 될 수 있고 이방인이 토종이 될 수 있는 것이 터키다.



눈이 작고 골격이 작은 우리 나라 사람도 터키에 가서 터키 말을 구사하면서

투르키쉬와 가장 가까운 친족 관계에 있도 한국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타타르'라고 하면 의심들 하지 않고 믿는다고 한다. 
 


튀르키쉬의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방인이 '메르하바(안녕하세요)'란 말 한 마디만 해도 그들은 깜짝 놀라며

그들이 큰 일이라도해낸 것처럼 좋아하며 도와줄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와는 상관없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손님을 접대한다.



아나톨리아(터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 지역을 말한다.)에선

여행자가 아무 집에서나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면  묵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방문객을 그렇게나 반기는 것은 낯선 방문객이 신이 보낸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터키의 가정에서 손님이 물을 청하면 받침 접시 위에 예쁜 수가 놓인 천이나 레이스로 된 컵받침을 받쳐서 물을 내오며

손님이 물을 마시는 동안 안주인은 받침 접시를 들고 기다린다.

이런 일은 손님 접대에 대한 터키인의 정성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수년간의 인구 이동과 그에 따른 문제로 인해 도시에서는 이런 손님 접대를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지만
 
터키 제일의 도시 이스탄불의 구석 구석에서도 이방인을 환대하는 터키인의 따스한 정()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다. 



 'Dynamic Korea'처럼 터키를 상징하는 언어는 'Mosaic Turkey'이다.

 투르키쉬, 유러피안, 아메리칸, 아시안이 하나가 되는 곳.

분주함과 여유로움과 다양함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 터키.  

터키의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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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동굴교회가 있는 수리아(시리아, Syria) 안디옥(안티오크,Antakya)으로 가기 위해서는

터키에서 4번째로 큰 도시 아다나(Adana)에서

차로 번잡한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남쪽 해안 도로를 거쳐


이스켄데룸(Iskenderun)을 지나 하타이(Hatay)지역으로 가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승리를 기념하려고 마을을 건설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켄데룸이다.

고대 도시 이스켄데룸은 지금은 아쉽게도 제철소에서 뿜어내는 스모그가 가득한 현대 도시가 되었다. 



구비구비 먼 길을 걸어서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던 곳을 이제는 편하게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남쪽 시리아 관문으로 알려진 산고개를 올라가면 이곳에 성경에 등장하는 안디옥(안티오크)이 자리잡고 있다.

안디옥(안티오크,Antakya)은 현재 하타이(Hatay)지역의 도시로서 현재 인구는 10만 정도 된다.

지금은 비록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BC 2세기에는 급격히 발전하여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은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그 당시 50만 인구와 거주하고 있어서 '동방의 여왕'으로 불리워서 로마의 영광에 비견될 만한 도시였다. 



스데반의 순교 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곳으로 피신하여 큰 교회를 이루었는데

안디옥에서 믿는 자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후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은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다가 동역한 이후 바울의 1,2,3차 전도 여행의 출발지가 되었고

교회사적으론 AD 252~300년 사이에 10 여 차례 기독교 공의회가 열리는 등 아시아 교회의 대주교가 거하는 곳이 되었다.



안디옥에서도 베드로 동굴 교회(셴 피에르 킬리세시)는 쿠르툴루쉬 거리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산의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자리잡고 있어서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안디옥의 베드로 동굴 교회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8~9살 쯤 되어보이는 애들이 너댓명이 몰려온다.

낡은 옷에 새카맣게 그을려 눈만 반들반들한 애들이 몰려와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너무 이쁘게 핀 들꽃 묶음을 쥐어주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애들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들꽃을 받은 것이 고맙기도 해서 

애들을 안고 고맙다고 하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애들이 손을 내밀며 "머니,머니"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순간 약간 당황했지만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주려고 하니 안내를 해준 후세인 베이가 와서 절대 돈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애들에게 돈을 주면 나쁜 습관이 돼서 자꾸 구걸을 하려고 하니 안쓰러워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후세인 베이의 말이 타당하기도 하여 돈을 주려던 것을 다시 거두고 동굴교회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바라보고 있는 애들의 시선이 자꾸만 눈에 걸리며 미안스럽기만 했다.





안디옥 시가가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산허리에 자리한 베드로 동굴 교회는 기독교 박해 시대에 은신한 기독교인들이 모임을 갖고

여러 갈래 비밀 통로를 통해 동굴 바위산으로 피하는 도피처로 이용했다.

지금의 교회 건물은 12~13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의 일부이며 동굴 교회 내부에는 일부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동굴 안 제단 벽 위에는 천국의 열쇠와 두루마리 성서를 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 상이 있으며

제단의 오른쪽에는 치료 효능이 있다고 말하는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제단의 왼쪽에는 기독교인들의 도피처로 사용했던 굴이 있는데 

굴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위기의 때에 산으로 도피하는 통로가 되었다.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베드로 동굴 교회 앞에는 행인도 다니지 않고 기념품 가게도 없이

내리쬐이는 강렬한 햇빛 아래 모든 것이 그저 멈춰 버린 것 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내려가는 길 어귀의 뙤약볕 아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앉아서 스스로 돌을 깎아 만든 조그마한 기념품을 팔고 있을 뿐이다.






난 거기서 2달러를 주고 목에 달 수 있도록 만든 길이 4cm정도의 물고기 모양 펜던트를 하나 샀다.

왼쪽의 돌은 베드로 동굴 교회에서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고 오른쪽이 물고기 모양의 돌 팬던트이다.  


베드로 동굴 교회에서 나와 다소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니 애들이 다시 들꽃 묶음을 들고 따라오며  "머니~~머니~~~"하면서 외쳤다.

꽃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그 아이들에게 손을 오랫동안 흔들어 주었다.

아이들도 안 보일 때까지 차 뒤를 따라오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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