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매암매암 울어대던 여름날 오후, 직장 동료들과 토함산 자연휴양림으로 간단한 산책을 나섰어요.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은 토함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휴양림은 맑고 깨끗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랍니다.



 



휴양림 입장료 1,000원을 지불하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경주 시민은 입장료가 무료라고 하네요ㅠㅠ.


(숲 속의 집, 산림 휴양관, 야영장 등 숙박시설 이용은 사전 인터넷 예약이 필요하다니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토함산 자연휴양림 홈페이지 : http://rest.gyeongju.go.kr/index.jsp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간지라 숲이 조용하기만 하고 지저귀는 새소리조차 너무 청량하네요.





휴양림 전체를 차로 돌아본 후 차를 주차하고 야영장 위로 난 숲길 데크로드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숲길을 천천히 걸으니 맑고 깨끗한 자연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주는 듯 합니다.





한참을 걸으니 전망대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네요.





데크로드 끝에 높다란 정자가 날아갈 듯 올라 앉았습니다.





정자에 오르니 발 아래 토함산의 산줄기가 그대로 펼쳐집니다. 

이렇게 멋진 산이 근처에 있는데 그동안 너무 발길이 뜸했네요.





전망대에서 물도 마시고 한참 땀을 식힌 후 다시 데크로드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갑니다.





두어 시간 휴양림을 걷다보니 도심에서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간단하게 한바퀴 돌아보는데 그쳤지만 다음에는 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으며 산의 정기를 맘껏 받아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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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돌아보는 불국사.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단연 가을일 것이다.

가을철에 불국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사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단풍에 감탄하는데

돌어보면 경내는 물론 담장 주변과 토함산 등산로의 단풍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다.

불국사는 필자의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라 가끔 주변 산책로를 거닐곤 하는데

그때마다 집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에 새삼 자랑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11월 하고도 늦은 중순에 다시 토함산 불국사를 찾아 보았다.

중부 지방의 단풍은 이미 따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따스한 남쪽나라 경주 불국사의 단풍은 아직도  가지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지막까지 그 찬란한 자태를 붉게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마른 이파리가 되어 다 떨어져 버릴 단풍들.

가는 가을이 못내 아쉬워 몇장의 사진으로 마지막 남은 단풍을 소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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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매표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 
석굴암 주차장까지 펼쳐지는 토함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아흔아홉구비 차도가 생기기 전부터

옛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던 토함산 등산로는
여느 다른 산에 비해 비교적 길폭이 비교적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벼운 차림으로도 오르고 내릴 수 있어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멋진 산책길이다.
경주에 몇년 동안 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던 토함산 등산로를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에 찾아보았다.
 




벚나무 단풍은 많이 떨어졌지만 불국사 담장을 따라서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들은 아직 고운 빛깔이 여전하다.





토함산 석굴암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접어들면 바로 앞에 펼쳐지는 단풍나무 터널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단풍에 감탄하며 올라가다 보면 누구나 걸음이 거북이처럼 늦어진다.



 조금 걷다가 올려다 보고 조금 걷다가 사진 찍고......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은 이곳에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어떤 곳은 단풍나무 터널이 너무 무성해서 아래가 어두울 정도로 그늘이 짙어졌다.




단풍이 물드는 색깔도 상당히 다양하다.

 



이렇게 핏빛으로 물드는 단풍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노란 빛으로 물들어있는 단풍나무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붉게 물들었든, 노랗게 물들었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단풍들은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넓게 뻗은 등산로를 한참 올라가다 보면 길이 조금씩 좁아지고 경사도 가파른 곳이 서서히 나타난다.




한참 오르다 보면 토함산 등산로의 명물인 오동수가 눈 앞에 나타난다.
물맛이 좋고 깔끔하여 불국사 아랫 동네 주민들은 매주 이물을 뜨러 산에 오르곤 한다.


옛날 한 스님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이곳을 지나다가 이상히 여겨
지팡이로 바위를 젖혀보니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났다고 해서
그때부터 이 샘물을 '오동수'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동수로 마른 목을 축이고 다시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오르막을 한참이나 걸어 오른다.


 
소나무와 참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가을산은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었다.



등산로의 경사가 급해질수록 숨은 가빠오지만 
환하게 내려비추이는 빛은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석굴암 주차장에 가까웠음을 느끼게 한다.





이윽고 석굴암 주차장에 이르니 석굴암 통일대종루가 이고 있는 하늘이 오늘따라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다.




종루 바로 맞은편에도 단풍나무가 여러그루 있는데 마치 거대한 한그루의 단풍나무 같이 보이기도 한다.

 

석굴암 주차장 한켠에는 노점을 펴놓고 여러가지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늘어놓은 물건들은 다양하기 이를데 없다. 산수유, 고사리, 도라지,  쑥가루, 고추부각, 은행구이, 군밤......




동글동글한 감과 역전 번개시장에서 볼 수 있는 찐쌀도 있고



 

공해없는 곳에서 자란 국화잎을 말려 차를 끓여먹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제일 인기있는 것은 역시 군밤이다.  
"아지매요~~~ 군밤 하나 팔아주소~~"라는 할머니들의 강권에 못 이겨
그만 열개 삼천원 하는 군밤 한봉지를 받아들고야 말았다.
토함산에 올라 저 아래 펼쳐지는 경관을 내려다보며 먹는 군밤은...... 꿀맛이다!



오늘 등산의 목적지는 석굴암 주차장까지!
군밤도 먹고, 시원한 물도 마시고 한참을 앉아쉬다 다시 등산로를 통하여 불국사로 내려간다.



붉게 타는 단풍 터널이 너무나 아름다운 불국사 - 석굴암 등산로.
너무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데도 게으름으로 자주 찾지 않은 것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토함산으로 올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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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동리목월 문학관. 

 

  

석굴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곳에

우리 문학의 거두인 김동리,박목월 두 작가의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로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동리 문학관, 오른쪽엔 목월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지난 번 김동리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데 이어 이번에는 박목월에 대해 조명해 보기로 한다.  

 

 

1915년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에서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출생한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鐘)이다.

 

 

아버지 박준필은 당시 경주군 수리조합(토지개량조합)의 이사였고

대구로 나가 중학교를 졸업한 인텔리 유지였다.

어머니 박인재는 목월이 보통학교 4학년 되던 해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머니의 신앙은 이후 목월의 정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목월의 할아버지인 박훈식은 개화의식의 소유자였으며

그의 개화의식은 목월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 때까지 집안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젊은 며느리가 성경책과 찬송가를 옆에 끼고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놀라운 것은 며느리의 교회 출입을 허락해준 시아버지 박훈식의 관대함이다.

그의 선각자적인 개화의식이 거기 뚜렷이 투영되어 있다.

어린 목월은 그러한 집안에서 법도 있는 사랑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난 것이다. 

 

  

목월은 1923년에 건천 보통학교를 , 1930년엔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고

계성학교 재학 중인 1933년 동요 '통딱딱 통짝짝'과 '제비맞이'가

각각 '어린이'지와 '신가정'지의 현상에 당선되어 동요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1935년, 계성학교를 졸업한 목월은 경주군 동부 금융 조합에 취직하게 되는데

1940년에는 산그늘,가을 어스름,연륜 등의 글이 '문장'지에 추천됨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그 이후 1946년에는 '동시집' '초록별' '호랑나비''산새알 물새알'등의 창작 동시를

 

 

1948년에는 창작 동화집 '눈이 큰 아이'를 간행하는 등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한다.

 

 

그의 동시들은 유년지향의 시,생명 지향의 시,향수의 시,동시 언어의 확대가 특징이다.

 

 

목월 문학관의 전시관에는 그의 저서 및 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목월이 편집일을 보았던 '여학생'지와

 

 

1951년의 동시집 수제본에서부터

 

 

초기의 시집 청록집(1946), 산도화(1955)...

 

 

후기의 시집들......

 

 

그의 창작욕을 짐작할 수 있는 수많은 육필 원고들도 전시되어 있다.

 

 

또 목월의 이력서와.....

 

 

중앙대학교와 한양대학교 재직 시절의 월급 봉투도 보이는데

그는 1962년 한양대학교 교수로 취임해 1976년 문리대학 학장을 지냈다.

 

 

뻬곡하게 쓰여진 그의 강의 노트에선 반듯한 성격이 미루어 짐작되고....

 

 

 생전의 모습이 담긴 앨범들..

 

 

문인들과의 조우..

 

 

여러분의 친필이 담긴 부채.

 

 

문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

 

 

그의 집필에 도움을 주었던 연필, 만년필,파일롯트 잉크..

 

 

그가 수집했던 우표책 등 여러가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목월 문학관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그의 서재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원고가 이리저리 흩여져 있는 앉은뱅이 책상과 한쪽에 놓인 흔들의자는

선생이 방금 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만 같다.  

 

 

목월의 초기 시에 나타난 '향토적 정서'는

고향 경주의 문화재와 자연 환경을 통해 형상화된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붐난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 뿐이었다."

목월은 산문 '나와 청록집 시절'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목월의 글은 매우 서정적이고 자연지향적이다.

 

  

초기의 대표작인 '나그네', '윤사월','청노루','산도화'....

이런 작품들은 매우 절제된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였는데

짙은 서정성과 함께 우리말의 리듬을 아름답게 살려내었다.

 

 

또한 목월이 노래하는 자연들은 이전의 우리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가 노래하는 자연은 목월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연이요, 아름다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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