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파리 북역 (Gare du Nord)에 도착했다. 

어디서나 역 근처는 약간 어수선하고 너저분한데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것이 도리어 약간의 친근함마저 가져다 주었다.

 


기차를 타기에 앞서 역 주변 약간 허름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파리에서 먹는 달팽이 요리는 분명 최고의 것이어야 하는데

역 근처의 레스토랑이라서 그런지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도리어 경주의 현대 레스토랑 '피사'에서 먹은 것이 더 훌륭한 맛이었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꼭 화장실은 사용하고 나온다.

우리 나라에서 후한 것 중에 하나는 화장실 인심과 물 인심일 것이다. 어느 식당을 가든지 앉으면 먼저 물부터 주고 '뭘 드실래요...'하고 물어보지 않는가....


그런데 유럽이든 미국이든 가는 식당 마다 물은 절대 주지 않는다.


자기 물을 가지고 가서 먹든지 아니면 물을 주문해서 먹고 꼭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로 물을 주면 물을 남기게 되는데 돈 주고 산 물은 어찌 그리 빨리 병이 비워지는지....ㅠㅠ


물이 먹고 싶어도 꾹 참고 목이 마른채로 다니기가 일쑤였다.


 

 

 

 

 

 

거기다 유럽에는 화장실 인심이 어찌 그리 고약한지.....

 

 

 

다니는곳 마다 화장실 입장료를 치뤄야 하는 곳이 많았다.


이 화장실 인심은 이탈리아가 제일 지독한데


어디서든 화장실 앞에 관리인이 버티고 앉아 25센트나 50센트를 받는다.


 

제일 황당한 것은 잔돈이 없는 경우.....


거스름돈을 내주기도 하는데 어떨 땐 울며 겨자먹기로 1유로를 내고 볼일을 보기도 했다.


 

 

 

 

 

 

돈을 주고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가는 곳 마다 화장실은 어찌 그리 자주 가고 싶은지......^^


게다가 길거리에 있는 유료화장실중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이 저절로 열리는 화장실도 있다지 않는가.


6분이라던가?....지나면 스르르 문이 열려 지극히 황당했다는 사람의 얘기도 생각이 난다.

 

 

 

 

 

 


레스토랑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파리 북역으로 향했다.


파리에는 "파리'라는 이름이 붙은 역은 없고 북역,동역,생라자르역, 리옹역,몽빠르나스역.....이런 이름의 역들이 있는데


북역은 보통 프랑스 북쪽의 벨기에나 덴마크,네덜란드,독일,영국으로 가는 기차들을 탈 수 있는 곳이다.

 

 

 

 

 

 


역 앞에는 쓰레기도 널부러져 있고 노숙자들이 퀘퀘한 냄새를 풍기며 누워있기도 했다.
역 안은 매우 넓었으며 안은 현대식으로 되어있었다.


'아멜리에' 영화에서는 기차역 안의 즉석 사진을 찍는 부스에서 찢어진 사진들을 주워 앨범에 붙이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게 북역이었던가...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근한 건물이었다. 


 


 

 

 

 

 

 

 


기차표를 받아서 보니
파리 북역에서 런던 워터루역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제 유로스타를 타는 것이다! 

 

국경을 지나기 때문에 검색대도 지나서 플랫폼에 내려가니 수려한 모습의 유로스타가 서 있었다.
유로스타는 우리의 KTX랑 내부 구조나 시트가 거의 비슷하다.
좌석간 길이나 좌석의 넓이나 가운데 마주 보고 있는 것,입구의 짐칸까지 모두 닮은 꼴이다.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더니 이윽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창 뒤로 날아가는 전원의 풍경.....평화롭고 고즈녁한 프랑스 농촌의 풍경이다.


서서히 집들이 줄어들더니 갑자기 차창 밖이 시커매졌고 기차의 굉음이 우리의 귀에도 전해졌다.

 

 

 

터널로 들어선 것이다.

 

 

 

이제 도버 해협을 지하 터널로 건너는 것이다.

 

파리와 런던 간을 운행하는 유로스타는 이렇게 구간의 대부분을 해저 터널로 운행한다.

 

 

 

옛날 같으면 배로 오랜 시간을 풍랑과 싸우며 건너가야할 뱃길을 기차 안에 편안하게 앉아서 담소하며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유로스타는 이윽고 워터루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오니 모든 표지판의 글씨가 <영어>로 되어있었다. 영국이니 영어가 쓰인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리 신기한지...... 사실 독일,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를 거쳐오는 동안


영어는 구경도 못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만 봐왔던 터이다.

우리 나라는 모든 표지판이 한글,영어,심지어 중국어로 친절하게 표기되어있는데

 

 

 

독일엔 독일어로만, 프랑스엔 프랑스어로만,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어로만 표지판에 표기되어있었다.우리 나라 언어가 제일 우수하니 답답하면 너희가 배워서 와라....이렇게 말하는 듯이 보였다.
제각기 자기 민족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여행객으로써는 지독히 불편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표지판이나 다른 안내 문구를 볼 때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하고 영어와 비교해서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던게 사실이다.

 

 

 

 

 

 

이탈리아어는 그나마 영어가 유추되는 단어가 많았지만 불어란....@.@
학교 다닐 때 불어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생각나는건 "봉 쥬르 무슈~"와 "메르시 보꾸" 뿐이었으니....ㅋ

우리 나라 사람에게 영어는 거의 제2 국어라는 우스개 소리를 듣고 웬 희한한 소리가 다 있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워터루역에 내려 영어를 보는 순간 갑자기 모든 글자가 눈에 들어오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영어를 보면서 그렇게 눈이 시원했던 때는 그 때 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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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파리에 가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스럼없이 "루브르 미술관!"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인지라 책에 삽입된
명화의 사진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위로 오려내어

나만의 스크랩북을 만들어놓고는 혼자서 보면서 즐거워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루브르 미술관 관람은 내가 어릴 적 애지중지하며 간직하던 

스크랩북 속의 명화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나 마찬가지였다.




루브르( Musee du Louvre )의 정식 명칭은 Grand Louvre이다.

이 미술관은 12세기초에 성채로 건립이 된 왕궁의 일부인데
1682년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왕궁을 옮김으로 폐궁이 되고

공공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793년에 혁명정부에 의해 국립 박물관으로 정식 공개되었다.


이 곳에 수집된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수십 만점의 작품들은
고대 아시아관,고대 이집트관,그리스와 로마관,

고대오리엔트관,조각관,회화관,미술 공예품관등
7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있다.

전시품 중에서도  '승리의 여신상'과 미로의 '비너스',다빈치의 '모나리자', 드라끄로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들은
꼭 지나치지 말고 감상해야 할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입구으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루브르 가운데 유리 피라미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미술관과 큰 유리 피라미드,작은 피라미드가 겹쳐 전시실이 잘 안 보여서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유리 피라미드를 루브르에 세운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

 

중세 왕궁 건물 안에 유리 피라미드가 왠 일이냐고 코웃음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실제로 본 유리 피라미드는 의외로 주변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대루브르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계 미국인 이오밍 페이가 다자인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문화국민이라고 자부하는프랑스 사람을 젖히고 중국계 미국인이 다자인한 피라미드가 루브르에 서있다니.....

 

예술에 있어서는 어떤 나라의 작품이라도 안을 수 있는 프랑스인의 포용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의 입장 티켓을 받아 입구에서 티켓을 내미니 그냥 귀퉁이를 약간 쭉 찢고 다시 준다.

 



 

피라미드 안을 통하여 각 전시실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되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지하라 할 수 없을 만큼 햇빛이 잘 비치고 따스했고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드러나 보였다.

 

 


 

피라미드 안에서 본 전시실과 나선형 엘리베이터의 일부분이다.

 

 


 

피라미드 안 엘리베이터는 아주 재미있다.


나선형의 계단이 피라미드의 바깥과 지하를 연결해주는데
그 속을 원통형의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게 되어있다.


즉 엘리베이터를 끼고 나선형의 계단이 있는 특이한 설계의 구조였다.

 

루브르의 전시실은 자연채광으로 되어있었는데 높은 천정 아래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작품의 부분 채광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전시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펑펑 찍어대고 있었는데


플래쉬 사용한 사진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고 전부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컴컴한 전시실에 전시작품만 부분 채광으로 해놓고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미술관만 보아 왔던지라 쪼끔은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루브르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은 역시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모나리자'이다.

 

조그만 그림인 모나리자는 큰 전시실의 한 부분을 전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모나리자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서서 기념 사진을 찍느라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뒤에서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보이지도 않아서 할 수 없이
옆으로 파고 들어가서야 겨우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다른 전시 작품은 다 그냥 전시되어있는데 모나리자만 유일하게 방탄 유리속에 싸여 있었다.

 

남들이 다 찍는 모나리자를 안 찍고 넘어 갈 수가 없어서 밀리는 인파 속에서 한컷 담아 보았다.
 

정면에서 찍으면 유리로 인한 반사가 염려되어 살짝 옆으로 비껴서서 찍었는데 다행히도 반사되지 않고 잘 나왔다.

 

좋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오리지날 모나리자를 찍어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BC 150년 경 멘데레스 지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들었으며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발견되어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역시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1824 년의 작품이다.

 

그림 속의 여인의 시선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나도 눈을 맞추고 그녀를 응시해 보았다.

 

 


 

드라끄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7월 혁명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파리 시민이 샤를 10세의 전제적인 포고 법령에 반하여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이다.


 


 

미켈란제로의 '빈사의 노예'원래 '모세' 조각상의 주변의 있던 노예상이라고 한다. 





수만점의 루브르의 명화를 하루만에 주마간산으로 돌아 보았다.

파리에 오래 머물며 루브르나 오르세 등에서 더 많은 그림들을 감상하며 보낼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그러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의 꿈이었던 명화들을 루브르에서 만나보았던 기쁨으로 인해 그날 밤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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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전은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이다.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루이 14세는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살게 하였으므로 당시 이 궁전에는 약 5천 명이 살았다.


 

게란트가 쓴 <화장실 문화사〉에 의하면 프랑스의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루브르를 버리고 베르사유로 온것도 배설물로 가득찬 루브르를 피해서였다는 것이라는데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아찔해질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안에서 봉지 같은 곳에 변을 보고 창문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비라도 오게 되면 온 거리가 오물로 넘쳐 나니 남자나 여자나 오물이 묻지 않기 위해서는

높은 굽의 신발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창문에서 날아오는 변이 머리에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기 시작했으며

자기 몸에서 나는 배변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많은 향수를 몸에 뿌렸기 때문에 프랑스에는 향수가 발달되었다.
 


사람들이 정원에 와서 자꾸 볼일을 보는 것을 참다 못한 베르사유의 정원 관리인은

'에티켓(etiquette)이란 출입금지 표지판을 정원 입구에 세웠는데

예의 범절을 의미하는 '에티켓'이란 말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금빛으로 치장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엄청난 크기의 궁전이 사람을 압도하고


한가운데는 말탄 루이 14세의 동상이 버티고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궁전 앞의 바닥은 대리석 돌판으로 되어있는데 지하 1미터 이상 거대한 돌들을 층층이 깔아 단단히 다졌기 때문에

말과 마차에 의해 바닥이 패이지 않는다고 한다.

 

 




U자형 건물의 한 쪽 부분이다.


궁전 안에는 '헤라클레스방' '왕비의방' 그리고 '풍요의 방' '비너스방' 등 다양한 이름의 방들이 있는데 '거울의 방'은 그 중 인상 깊은방이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거울의 방 하나를 완성하는데만 8년이 걸렸을 정도로 호화로운 거울의 방은 화려하기가 그지없으며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과 순은으로 치장된 실내 장식품의 조화는 관람객을 꿈속으로 안내한
다 .


이 방은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벽지는 모두 비단으로 되어있고 크리스탈 샹들리에......대리석 바닥.......최고급 카페트들로 장식된 궁전의 방들은
 

그 당시 궁정의 호화로운 생활을 말해주는 듯 하다.





 


루이 14세가 신하들을 접견하던 방의 보좌는 높지 않았고 의자도 중국이나 우리의 옥좌보다 소박하게 느껴졌다.



 




루이 14세의 침실의 침대는 엄청나게 높이가 높아서 
저길 어떻게 기어올라가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궁전 내부를 비룻하여 정원 등 모든 구조가 당시 태양왕이라 불리우던 루이 14세의 이 침실을 중심으로하여 설계되었다.




 



왕비의 방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대형 초상이 벽에 걸려있었다.

 






왕비의 침실의 모습이다.

이 침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3명의 왕비가 거주하였다.


방의 모든 집기는 황금으로 되었으며 벽지는 아름다운 꽃무늬의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천정 또한 황금과 프레스코화로 치장한 후 크리스탈 상들리에가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베르사유의 모든 방은 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나
(심지어 회화 작품 조차도 플래쉬를 사용해서 찍어도 무방하다.)

이 왕비의 침실만큼은 플래쉬를 터뜨려서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당시 베르사유의 모든 사생활은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정문에서 빌려주는 칼과 모자만 있으면

궁전에 들어와 아름다운 정원과 왕을 볼 수 있었던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


그래서 그런지 모든 방의 한면에는 벽이나 문이 없이 다 오픈되어있어서 복도를 걸어가면서 방을 다 볼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침실조차도 한쪽 벽은 없이 복도를 지나며 방안을 다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수많은 귀족 부인들은 그녀들의 우상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장하는 모습, 옷갈아 입는 모습,식사하는 장면을 따라다니면서 보았다고 하는데

목욕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심지
어는 그녀의 출산하는 모습까지도 다 공개되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은 귀족 부인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아기를 출산했다고도 한다.






베르사유의 수많은 그림 중에 눈에 뜨이는 그림은 자끄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이란 그림이다.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대관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교황 피우스 7세가 참석했는데 그가 제관인 사를마뉴관을 씌우려 관을 들어올리자


나폴레옹은 그걸 두손으로 받아 들고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내빈들을 바라보며

꼿꼿이 선 채로 자신의 머리위에 관을 올려 놓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의 관이 아닌 월계관을 스스로 자기의 머리에 썼는데

그것은 자기가 로마 황제의 뒤를 이은 세계의 통치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황제 대관식 이후 황후 조세핀의 머리 위에 황후관을 씌워주는 모습과


그 당시 참석한 100 여명의 유력 인사와 친척들을 자세히 그림 세밀기록화인데


루브르 박물관에도 이 그림과 꼭 같은 그림이 있다.

당시에는 한 화가가 똑 같은 두개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흔하였다고 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져 있는 그림과 베르사유 궁전에 걸려 있는 그림에는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림 왼쪽에 일렬로 서있는조세핀의 딸 중 한명이 루브르에 걸린 원작과는 다르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루브르에 걸린 대관식 그림에는 여인들의 옷 색깔이 모두 같다)


그녀가 바로 자끄 루이 다비드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한다.


그녀를 너무 사랑한 다비드는 자기의 연인을 이런 방법으로 부각시켜 사랑을 표현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의 정원과 숲은 그 화려함과 더불어 광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경치로


대혁명전까지는 면적이 6000 ha에 이르렀으나 오늘날은 95 ha로 그 규모가 축소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


70년 통치기간 동안 전쟁으로 일관해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군주였던 그는
많은 문화 유산도 남겼지만


이곳에서 매일 밤 호사스런 사교 파티를 열었다한다.


이러한 사치와 전쟁으로 프랑스의 국운은 쇠퇴하였고 루이 16세가 20세에 즉위하였으나


무능과 시대의 변화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1789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1789년 시민들은 베르사유를 습격하기에 이르고


왕비 앙투아네트는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에게 도움을 청하여 탈출을 시도하지만 발각 되어


파리로 끌려와 옥에 갇히게 되니 1792년 왕정은 끝나고 공화국이 선포된다.




이로써 베르사유의 화려한 영광도 끝이 나고


이곳은 그 시절 자취를 보기 위해 모이는 관광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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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군신)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은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이다.

 

 

근처 길들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일방통행도로가 많다.

 


 

차에서 내려 몽마르트르로 가는 길은 약간 어수선하고 촌티나는 관광지 같은 모습이었다.

 

 

길 양 옆에 싸구려 관광 상품과 행운의 띠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의 중간 쯤에서 숨도 돌릴 겸 크레페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는데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이 축축해진다.

 

 


놀라 발 아래를 보니 인도와 차도의 경계지점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대부분의 길가에는 쓰레기통이 없고 사람들이 길에다 쓰레기를 그대로 내버린다.

 

 

 

그러면 정해진 시간에 물을 흘려 내보내는데 물살로 쓰레기를 아래로 쓸려내려가게 하고 있었다.

 

 

물살에 의해 아래로 모인 쓰레기나 개똥은 하수구로 모이고

 



쓰레기 처치장에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철저히 분리한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종이 쓰레기는 색깔조차도 분리해서 철저히 재활용한다고 한다. 

 

 

 

절대로 쓰레기를 바닥에 안된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몸에 배인 나였지만

 

 

 

파리에서는 나도 해방감에 젖어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시원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파리지엔느처럼....!

 

 

 

 

 

 

 

몽마르트르 언덕 앞에서 언덕 쪽을 보니 푸른 하늘과 성심성당,큰 시계,

 

 

 

그리고 아주 고전적인 회전 목마가 조화를 이루며 자리잡고 있었다.

 

 


 

회전 목마를 끼고 왼 쪽으로 돌아 언덕 위에 오르니 성심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프랑스어로는 샤크레퀴르 성당이라고 하는데
파리가 프러시아에게 정복당하고 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 이후

 

 

진정한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의 성심(聖心)에 바쳐진 교회당이라고 한다.

 

 


1876년에 기공하여 1910년 완성하였는데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t)이 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서니 장 피에르 주네가 감독한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가 눈 앞을 스쳐 간다.

 

 



아멜리에는 에펠탑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에게 깔려 어머니가 사망하고부터 

 

 



어릴 적부터 외부와 차단되어 자라면서 공상을 일삼아 왔던 소녀인데

 

 


대부분의 영화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비롯하여
기차역과 몽마르뜨르 언덕을 주 배경으로 전개된다.

 

유쾌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영화라서

 

 


한번 보았는데도 영화의 대부분의 내용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는데

 

 

 

이 언덕 앞에 서서 보니 아멜리에가 뛰어다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하였다.

 



몽마르트르를 오르는 분들은 '아멜리에'를 꼬옥 감상하신 후에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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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 무슈(Bateaux Mouches)는 세느강 유람선의 이름이다.

파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람선을 타러 세느강으로 향하는데


한강의 위용을 늘 보고 자란 한국 사람들은 세느강을 처음 다다라서는 '겨우...이 정도...?'하며 실망하곤 한다.

드넓디 넓은 한강에 비해서 세느강은 강폭이 좁고 물도 탁하다.

청계천보다야 조금 더 넓지만 한강의 지류천 정도의 폭이랄까.......


하지만 세느강을 빛나게 하는 것은 강의 규모가 아니라

제각기 모양도 다르게 걸쳐진 아름다운 다리들과

강 주변의 수백년 된 건물들......그리고 세느강변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랄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시떼섬까지 세느강을 한바퀴는 도는 바토무슈에 오르면 에펠탑을 비롯하여

금으로 치장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콩코르드 광장.....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고성같은 집들이 양쪽에 즐비하여

마치 프랑스 역사를 한 눈에 펼쳐놓은듯 하다. 

 


세느강의 다른 부분. 세느강에는 작은 섬들이 여럿 있는데 사진의 작은 섬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이다. 이섬에서 유람선이 다시 돌아서 가게 된다. 

 



세느강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다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만국박람회 기념으로 세워졌는데 

황금 조각상과 가로등이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다리 건너편에는 황제 나폴레옹이 잠들어있는 황금돔의 교회 앵발리드가 보인다.

루이 14세가 세운 퇴역 군인들을 위한 요양원이었으나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란다. 

 

 

 



일반적인 유람선 (바토무슈)은 8유로 정도에 탈 수 있는데 가다 보면 아주 고급인 유람선도 지나간다.

모두 정장을 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레스토랑 유람선인데 수준 높은 악단의 연주도 겸하여 들을 수 있다.

유람선은 보통 2층으로 되어있는데 대부분 2층에 올라가서 구경을 한다.

시원하기도 하고 전망도 좋아서 아주 일품이다.


유람선 내에선 여러 나라 말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말 방송도 나온다.

6개 국어로 방송을 한다는데 우리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나보다. 

낮에 돌아본 세느강변이 약간의 회색 빛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면

밤에 바토무슈를 타고 돌아본 세느강변은 새롭게 찬란한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 했다.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성당도 지나간다.  저 꼭대기에서 곱추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부르며 뛰어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메마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사랑과 낭만에 젖어들것만 같은 곳....파리.....그리고 세느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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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직접 보기전까지는 에펠탑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흥미도 없었다.

 

사진이나 TV에서 많은 사진으로 접해본 구조물이지만 그다지 아름답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오히려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건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하여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처음 본 순간.....



나의 지금까지의 생각은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파리의 어느 곳에서 보든지 에펠탑이 눈에 잘 뜨였는데 



생각보다 아름다웠고 안정감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건축물이었다.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이 300 미터의 철탑이다.

 

교량 건축학자 에펠의 설계로 세워졌는데 건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의 반대에 부딛혀야 했다.



당시에는 이런 건물의 예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 탑은



성베드로 성당의 돔이나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은 높이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 엄청나게 큰 철탑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탑은
그 당시의 싼 노동력으로  몇 달 만에 세워지게 되는데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자리를 지켰다.  



반대 가운데 건립되었던 에펠탑은 마침내 그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 되었다.



에펠탑 바로 아래에 가서 서보니..... 그 위용은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였다.



얼마나 크고 높은지.....새삼 그 크기와 높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펠탑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구불구불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네들......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인네.....동양인....유럽인......



이곳은 세계 각국의 인종 전시장이었다.

 

구불구불한 줄을 따라 기다리기 한시간 이상.....

 



마침내 바로 아래 입구에 도착.....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거기도 사람이 인산 인해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탑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사선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탑의 1/3 쯤 와서 또 직선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곳에서도 기다리는 줄이 탑 내부를 빙빙 돌아가며 줄지어 있다. 

 



미국의 오티스 엘리베이터회사에서 설계한 유리 엘리베이터는 이 건축물의 주요특색인데

 

에펠 탑을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키는데 일조를 했다고 한다.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가 한꺼번에 운행하는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리니 질서란건 하나도 없었고

 

완전 무질서의 현장 그 자체였다.



서로 먼저 타려고 밀고 당기고......우리나라 사람만 질서 없는건 아닌가 보다.

 

내 차례 쯤이 되었을 땐 엘리베이터를 걸어서 들어간게 아닌라 밀려서 겨우 끼어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백팩을 문에 세게 부딪히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나와서 보니 로마에서 샀던 선물용 시계의 케이스가 무참히도 부서져 있었다....ㅠㅠ

 

유리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에펠탑의 골조및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는 도르레도 훤하게 다 보였는데

 

움직이지 못할 만큼 끼어서 올라가는데도 마침 가장자리에 있었으므로 사진 한장 건질 수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원래 에디슨의 발명품인데 탑 꼭대기 방에는 에디슨과 그의 딸의
 밀랍인형도 전시되어 있다.

 

 

에펠탑 맨 위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쉽게도 철망이 쳐져있었다.

 

발밑은 아찔하게 느껴지는 낭떠러지......

 

자살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 철망을 쳐 놓았다고 하는데 약간은 아쉬움이 남았다.

 

 

에펠탑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주변은 녹지가 조성이 잘 되어 있었다.

 

탑 아래 잘 꾸며진 녹지대에서는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에 누워서 하늘과 함께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여유로와 보였다.

 



탑의 바로 아래에 세느강이 보이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와

 

세느강 유람선 바토무슈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인다.

 

 

 

세느강에는 작은 섬들이 여럿 있는데 사진의 보이는 작은 섬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이다.

 

유람선은 이 섬을 돌아서 다시 원위치로 가게 된다. 

 

 

황혼 무렵의 에펠탑의 모습은 더 아름답다.

 

하늘에는 아직 푸른 빛이 남아있는데 에펠탑에는 약한 조명이 들어오고 있는 상태라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밤에는 에펠탑의 조명은 더욱 환상적으로 변하고 

 

의 맨위에는 레이저 불빛이 어두운 파리의 밤하늘을 이리 저리 비춘다.



파리 어느 곳에서든 이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볼 수 있는데



이 사진은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다가 찍은 것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멋진 야경 사진을 원하시는 진사들이 이곳에 오신다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삼각대를 버텨 놓고 이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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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파리 드골 공항까지는 약 2시간.


비행기는 파리 상공으로 진입하더니 도시 위를 아주 낮게 날기 시작했다.


장난감 같은 집들이 쭈욱 펼쳐지고 눈에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방사선으로 쭈욱 뻗은 도로와 그 주변의 집들......개선문이었다!

 

파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도로가 뻗어 있다던


사회 공부 시간의 학습 내용을 
눈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에펠탑도 보이고 세느강도 눈에 바로 들어왔다.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가며 프랑스의 수도 파리 중심지를 훑어 볼 수 있다니.....

 

흥분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창에 매달려 파리를 살펴보고 있는데......  

 

 

도착한 곳은 파리의 관문 샤를 드골 공항.

 

공항의 모습도, 공항의 사무처리도 낭만적인 도시 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일처리 느리고 착오가 많기로 유럽에서도 악명 높은 드골 공항.....

 

여러 항공 편을 섞어 수속을 하다 보니 승객의 짐이 엉뚱하게 다른 항공기로 가는 경우도 많고

 

잦은 파업으로 짐이 한꺼번에 쌓여 짐찾는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프랑스인의 사무 처리는 이미 에어 프랑스에서 실감을 한지라
공항 일 처리도 그러려니 하고 아예 체념을 해버렸다.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짐을 찾고 차에 오르니 파리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텁텁하다.  

 

졸린 눈으로 공항을 지나 시내를 들어가니 조금씩 다가오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상가나 아파트로 쓰고 있는 건물들도 오래 된 듯 빛 바랜 색을 하고 있는 것이

 

이제야 파리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파리의 일반적인 길가의 건물들은
오래된 듯한 고풍 스러운 건물들이 많고 5층 이상의 건물이 잘 없었다.

보통 1층은 상가이고 2층 이상은 아파트로 쓰이는데

건물 외부는 개조를 하지 못하는 지역이 많지만 실내는 최첨단 시설로 개조한다고 한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지 거리에는 노점도 있고 횡단보도 건너는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 발견한 프랑스 월드컵 경기장이다.



생 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이름도 길다).....

 

프랑스 월드컵이 여기서 열렸고 이 때 프랑스는 우승의 영광을 안게되었으니

 

프랑스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기장이다.
 

 

 

 

 


생 마리 마들렌 교회의 뒷편으로 돌아가며 찍은 사진이다.

이 교회는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 방향으로 서면 오른 쪽으로 보이는 교회이다.

고대 그리스 신전 풍의 외관과(파리에 있는 유일한 그리스풍의 건축이다) 19세기 조각들로 유명한 교회라고 한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나가다가 건물이 이뻐서 담아 보았다.

 






시내의 평범한 건물도 벽에는 예술 작품과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거리 자체가 살아 있는 미술관인 파리에 이제 도착한 것이다...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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