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의 고향 경남 함안으로 떠난 한여름 여행. 

고요한 연못과 소박한 정자가 잘 어울리는 무진정을 떠나 또 다른 정자 '악양루(岳陽樓)'로 향한다.

무진정에서 악양루까지는 약 13km. 제법 가까운 곳이지만 초행길에 악양루를 찾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다.

 

 

 

 

네비의 인도를 받았지만 입구를 지나치기를 두어번. 한참을 돌다 악양루의 입구라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악양루의 입구가 맞는걸까? 악양루라고 써둔 조그만 안내문을 보니 맞기는 한 것 같은데 입구치곤 무언가 상당히 어설프다.

 

 

 

 

안내판을 따라 길을 나서니 이내 벽처럼 커다란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이곳이 악양루로 가는 길이라고?

도무지 아닌 것 같아 발걸음을 돌리려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바위 사이를 더듬거리며 올라 좁은 길을 계속 걸어가본다.

 

 

 

 

이곳을 찾는 이는 거의 없는 것일까?

아래로 남강이 흐르는 좁은 오솔길은 길게 자란 잡풀이 다리를 스치고 거미줄은 기분 나쁘게 눈앞을 가로막는다.

 

 

 

 

조금 가다하니 나무 데크로 된 계단이 나타난다. 오~! 이 길이 맞긴 맞는가 보다.

툭 튀어 나온 바위에 머리를 부딛힐라 조심해서 계단 위로 올라보니 발 아래 남강이 시원하게 옷자락을 드러낸다. 

 

 

 

 

벼랑 끝에 놓인 울타리를 잡으며 한참 올라가니 악양마을 벼랑 끝에 자리잡은 정자의 기와지붕이 빼꼼이 드러난다.

 

 

 

 

그런데 정자가 자리잡은 장소가 정말 너무 좁다. 정자 하나 들어앉은 것 외에는 발디딜 틈도 하나 없을 정도이다. 






절벽 위 작은 암반 위에 정자 하나 들어앉아 있을 뿐이다. 누가 이런 가파란 벼랑 위에다 정자를 지을 생각을 했는지......





정자의 규모도 지극히 작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무척이나 소박하고 장식도 배제된 정자이다.

찾는 이가 별로 없는지 정자 여기저기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고 천정에는 말벌마져 날아다닌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아차 발이라도 실수하게 되면 낭떠러지 아래 물속으로 다이빙할 것 같다.

지금은 목책이라도 세워놓았지만 그 예전 처음 정자가 지어졌을 땐 정자 마루에 앉으면 발바닥이 간질간질 했을 듯......

왜 이렇게 위험한 곳에 정자를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정자 위에 올라보면 저절로 풀리게 된다.





조선 철종 8(1857)에 세웠다니 악양루의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 하나는 정말 대박이다. 

중국 4대정자인 악양루는 산을 뒤로 두고 강을 굽어보는 자리에 세워져 두보를 비롯한 시인과 문장가들이 감탄사를 쏟아냈다던데 

함안 악양루에 올라 정자의 풍류와 경치를 보니 중국의 악양루에 못지 않는 비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물길이 두갈래가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함안 대산면을 굽이치는 남강의 물길이 함안천과 만나는 합수머리라고 한다.


 



악양루는 정자 안에서 바깥을 볼 때의 풍경 뿐 아니라 건너편에서 보는 풍경도 빼어나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서 악양루를 바라 보기 위해 정자에서 내려가 차를 몰고 강 건너편 제방 아래로 향했다. 





악양루 위에서 처마 아래로 펼쳐지는 남강의 물길과 끝없이 이어지는 제방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제방 아래에서 짙은 숲 속에 매달린 악양루의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나 근사한 풍경이다.





강 건너편에서 줌렌즈로 당겨서 보니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옛날에는 '기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악양루의 직벽 아래에는 남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나루에서 낙동강 강 바람에 치마폭을 적시며로 시작하는 노래 처녀뱃사공의 가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6·25전쟁이 막 끝난 1953년 9월,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부친인 윤부길씨가 함안 공연을 마치고 

나루터 주막에서 하룻밤을 머물 때에 군에 입대한 오빠를 기다리며 배를 젓던 뱃사공 처녀를 만났다고 한다. 

그날 윤부길씨는 처녀뱃사공을 주제로 한 노랫말을 품고 있다가 1959년 작곡가 한복남 씨에 의뢰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나룻터가 '처녀뱃사공'의 무대였다는 사실은 거의 40년 후에나 밝혀지게 되어 

나룻터가 있던 자리에는 지난 2000년에 노래비가 세워졌고 제막식에는 아들 윤항기씨가 참석했다고 한다. 

이때 처녀뱃사공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소식이 없던 '군인간 오라버니'는 23살이었는데 

기다리던 오빠는 한장의 전사 통지서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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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에 가보자는 필자의 말에 함께 한 지인은 "함안이 어디에 있는데?"라고 반문한다.

함안이 경남 어디쯤 있겠지라고 생각이 되긴 하지만 막상 위치를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느 도시를 말하면 즉시 떠올려지는 선명한 이미지도 함안에서는 찾기가 힘든다.

사람들을 몰려들게 만드는 화려한 비경도, 떠들석하게 하는 볼거리도 그다지 없는 함안.

하지만 북적거리는 도시를 떠나 차분한 여행을 떠나기 원하는 사람에겐 색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함안은 '정자의 고향'이라고......

낙동강과 남강이 감아 도는 함안 땅에는 강을 굽어보는 명당자리에 세워진 정자가 여럿이다.

무진정, 반구정, 합강정, 악양루......

정자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무더위를 이겨내던 옛사람들의 자취를 찾아 함안으로 떠난다..

 

 

 

 

남해고속도로 함안 IC를 빠져나와 우회전한 후 함안대로를 따라 달리니 길이 정말 한적하기도 하다.

앞에서 느릿느릿 가는 차가 있어도 경적 울리는 이 없이 모두 조용하게 앞사람의 뒤를 따라간다.

시가지를 지나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길이 끝나니 오른쪽에 무성한 숲이 보인다. 무진정이다.

 

 

 

 

무진정에 이르니 한아름 왕버드나무와 느티나무 거목들이 늘어선 아담한 연못이 먼저 눈에 뜨인다.

무진정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연못 이름은 충노담.

연못 전체를 뒤덮은 개구리밥으로 인해 자그마한 연못 충노담은 연둣빛 푸르름이 가득하다.

연둣빛 카페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누각, 멀리 보이는 무진정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충노담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이 하나 있다.

이 누각은 정유왜란 때 왜군들이 조상의 묘를 파헤치자 무진정에서 4배 절을 하고 자결한 조례 선생의 6세손 조준남과

정묘호란으로 전사한 그 아들 위 계선공, 두 부자를 기리는 부자쌍절각이란다.

이들의 충효를 가슴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 누각 문 앞에는 막걸리 두병이 얌전하게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건너편 높은 바위 위에 숨바꼭질 하듯 자리잡은 무진정으로 가기 위해선 충노담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서 가야 한다.

충노담에는 인공 섬이 셋 있는데 첫번째 섬 위에 놓인 누각은 무진정으로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영송루이다.

하얀 다리와 누각은 최근에 세운 것인지 모두 시멘트로 건설되었다. 좀 더 신경을 써서 복원했으면 좋으련만......

 

 

 

 

영송루를 지나 무진정을 잇는 작은 섬 위에는 커다란 거목이 문지기처럼 다리 가운데를 기키고 있다.

문지기 나무를 통과해 짧지만 운치있는 숲길을 지나면 무진정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계단이 나온다.

 

 

 

 

가파른 돌계단을 숨을 몰아쉬고 오르면 무진정의 정문이 나타난다.

이름은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그 이름이 같다.

 

 

 

 

정자가 들어앉은 자리는 그다지 넓지 않고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무진정(無盡亭)은 조선시대 여러 고을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조삼 선생이

후진 양성을 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지은 정자인데 자신의 호 '무진(無盡)'를 따서 무진정이라 이름했다.

 

 

 

 

없을 무(無), 다할 진(盡)을 사용하여 '다함이 없는 곳'이란 뜻을 지닌 무진정에서

다함이 없는 여생을 보내고 후진을 양성하는 조삼선생의 마음이 느껴진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인데

옆면의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은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이라 깔끔하고 세련미가 느껴진다.

 

 

 

 

정자는 모두 누마루로 되어서 창을 접어 올리면 사방으로 활개 치듯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밖에서 본 무진정도 아름답지만 정자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경치는 너무나 아름답다.  

 

 

 

 

들문을 모두 올려 놓으니 문틀 사이로 보이는 경치가 한폭의 그림이고 바람은 그대로 사통팔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무더위에 흘린 땀방울이 금방 식고 등줄기에는 시원한 기운마져 느껴진다.

 

 

 

 

우리 선조들은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 외에 방안에 큰 장식을 하지 않았다.

방문만 열면 이렇게 바깥의 자연을 방 안으로 들일 수 있었기에 실내에 장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정자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무진정의 뒷편 언덕 아래로 큰 기와집이 보이길래 내려가 보았다.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인 괴산재라고 하는데 이곳 또한 참으로 느낌이 고요하다.

 

 

 

 

무진정에서 내려와 괴산재를 돌아본 후 충노담 연못을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았다.

충노담에서는 해마다 4월 초파일에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데 호수 위로 떨어지는 화려한 꽃불이 장관이라고 한다.

올해 낙화놀이는 세월호 사고로 연기돼 9월쯤 열린다고 되니 가을에 정자의 고향 함안으로 다시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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