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오죽헌, 선교장......강릉여행에서 돌아보아야 할 곳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들려야 할 필수 코스를 들어보라면

세계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오디오 박물관 '참소리박물관'을 꼽을 수 있겠다.

 

십여년전인가 참소리박물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에

좁은 공간에 빼곡이 들어찬 희귀한 소장품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티맵에 참소리박물관을 입력하고  상냥하게 인도하는 아가씨의 고운목소리에 이끌려가니

예전에 있던 송정동 쪽이 아닌 경포 호수 옆으로 앞길을 인도한다.

송정동 솔밭 옆에 있던 예전의 참소리박물관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경포호 옆으로 옮겨진 박물관은 훨씬 더 커진 규모로 간만에 찾아온 여행객을 맞이한다.

 

 

 

 

1992년에 개관했다고 하니 올해로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참소리 박물관.

정확한 명칭은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박물관'이다.

 

 

 

 

입장권의 가격을 보니 성인이 7,000원. 상당히 센 가격이다.

입장료 가격을 본 일행 중 한명이 "뭐 볼거 있다고 이렇게 입장료가 비싸노..."하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일전의 경험으로 비추어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곳이라고 생각된 필자.

일행을 권유하여 입장권을 구입한 후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본다.

 

매년 50만명 이상의 내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는데 얼마전 1박2일 강릉편에서

은지원이 이곳을 다녀간 이후로는 찾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인산인해가 날 정도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몰려오는 통에

 큐레이터들 중에는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해 사표를 제출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박물관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박물관 두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두건물이 계단과 회랑 등으로 서로 이어져 있어 한쪽으로 입장하면 두 박물관을 구분없이 관람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관람해도 되지만 매시간 진행되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에디슨 최초의 축음기 틴포일(가운데)

 

 

이곳에는 축음기 발명전의 다양한 뮤직박스로부터 시작하여 에디슨 최초의 축음기인 틴포일,

세계에서 하나 뿐인 아메리칸 포노그래프(전세계 6대 중 유일하게 현존),

17개국에서 만든 축음기 4,000여 점 가운데 1,400여 점의 축음기와 음반 15만 장

 8,000여 점의 음악 관련 도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어 100년 소리의 역사를 한곳에서 볼 수 있고

탄소 전구, 전기 자동차, 영사기, 계산기, 커피포트, 재봉틀, 타자기, 선풍기, 다리미......등 

에디슨이 생전에 발명한 각종 생활 용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세계 오디오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대한 소장품은 모두 손성목씨 혼자 수집한 것이다.

손성목 관장은 여섯 살 때인 1948년 아버지로부터 컬럼비아 축음기 G241을 선물받았는데

1.4후퇴시에 월남할 때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축음기를 등에 짊어지고 월남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강릉에 정착한 그는 건설회사에 취직해 중동파견 근무를 하고

이어서 국내로 돌아와 아파트 건설과 임대사업을 해서 벌어들인 돈을

거의 몽땅 축음기, 백열전구, 영사기, 촬영기 등의 수집에 쏟아부었다.

2000년 1월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서 온 집안에 빨간 경매딱지가 붙었을 때에도

국제전화로 축음기 경매에 나섰을만큼 미친 사람처럼 축음기 수집에 열을 올린 그는

결국 수많은 축음기와 백열전구, 촬영기와 영사기 등을 수집하여

워싱턴에 있는 에디슨박물관보다도 더 많은 에디슨 축음기 진품들을 소장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헉 소리날 정도로 많은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어 슬쩍 돌아보는데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욕심으로는 하나하나 다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라 몇장의 사진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린다.

 

 

 

 

서커스 오르간

 

 

 

 

폴리폰 뮤직박스

 

 

 

 

스텔라 17인치 뮤직박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축음기 레코드(가운데 까만 동그라미 모양)

영국 동전 페니만 하다고 해서 '페니 레코드'이다.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king'이 20초간 수록되어 있는

세계에서 몇장 안 남아 있는 레코드라고.......

 

 

 

 

클링저

 

 

 

 

레지나 뮤직박스

 

 

 

 

모양이 너무 예쁜 나팔형 축음기들.

 

 

 

 

너무 귀여운 세계각국의 턴테이블 카트리지 박스

 

 

 

 

수많은 에디슨 전구들.

 

 

 

 

에디슨 포틀랜드 주식회사 주식 원부

1899~1931년까지 주식 발행, 이동 등등 회사의 주식 변동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에디슨 일렉트릭 배터리카(1913년) 1913년에 전기자동차를 만들어내었다니......

 

 

 

 

수많은 에디슨 영사기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써 다시 한번 에디슨에게 감사드리며.....^^

 

 

 

 

초창기 계산기(1905)

 

 

 

 

에디슨 전기 재봉틀(1910)

 

 

 

 

수동형 세탁기(1820)

 

 

 

 

수많은 재봉틀, 다리미. 전기 청소기.......

 

 

 

 

에디슨 전기 오븐

 

 

 

 

에디슨 헤어 컬링기

 

 

 

 

에디슨 커피 포트 및 토스터기

 

 

 

 

에디슨 녹음기(1930)

 

 

 

 

에디슨 등사기

 

 

 

 

에디슨 전화기(1930)

 

 

 

 

에디슨 전기 다리미(1910)

 

 

 

 

오일 선풍기(1878)

수공제작한 현대 선풍기의 전신으로 전셰계에 몇대밖에 없다.

 

 

 

 

에디슨 와플기(1915)

 

 

 

 

에디크래프트 오토매틱 토스터(1920)

 

 

 

 

휴대용 축음기들.

 

 

 

 

1920~80년대까지 다양한 라디오, TV가 전시된 본관 2층

 

 

 

 

전 세계에 단 2대 뿐인 세계 최초 텔레비젼  베어드 30라인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젼 금성사 VD-191(1966)

 

 

 

 

축음기 소리부터 CD, DVD 까지 소리 역사 100년의 발전을 수억원짜리 스피커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음악감상실.

 

 

 

 

휴게실에 전시된 수백대의 고급 카메라들. 카메라덕후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곳.

 

 

cnr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 박물관...... 5,000여점의 전시품을

 세세히 살펴보고 나니 머리가 띵해지고 방대한 규모에 살짝 멀미까지 나려고 한다.

들어갈 땐 입장료가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헉 소리나는 소장품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나니

전시품의 희귀성에 비하여 7,000원의 입장료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명을 위한, 발명에 의한, 발명의 삶을 살았던 에디슨은 무려 1,093종에 달하는 특허를 출원했다.

평생 동안 계산하면 보름에 한번 꼴로 특허를 낸 꼴이라고 하니 놀랄 정도이다.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된 전등, 오디오, 녹음기. 다리미, 계산기........등등

생각없이 쓰고 있던 문명의 이기들이 거의 에디슨의 발명품이었단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감사할 수 있었고

이 무수한 에디슨의 발명품을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손성목 관장의 집념 또한 놀라울 뿐이었다.

강릉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들려보아야 할 곳은

바로 세계 최고의 오디오 박물관, 강릉 참소리 박물관이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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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경북 예천 '추억의 타임머신 레이스'편에서

멤버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어주었던 순대국집.

말도 안 되는 가격과 맛으로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던 순대국집은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박달식당이다.

1박2일의 인기를 업어 유명해진 맛집인가 했더니

이집은 1박2일에 방영되기 전에도

용궁면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예천 택시 기사님들이 즐겨 추천하는 인기 맛집이라고 한다.

 

 

용궁역 바로 앞에 위치한 박달 식당에 이르니 식사를 마치고 나온 주민들로 식당 앞이 북적거린다.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입구부터 테이블이 놓여있어 내부가 상당히 협소해 보인다.

 

 

돌아보니 의외로 안에는 여기저기 방이 위치하고 있고 방마다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쪽 방에도 저쪽 방에도 방 마다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거주민도 많지 않은 면소재지 구석에 위치한 식당에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들어차 있다니.....!

 

 

1박2일 뿐 아니라 생방송 전국시대, KBS 무한지대 큐 등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파급 효과가 큰가 보다.

 

 

손님들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오픈된 주방 안에서는 많은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손길을 놀리고 있는데

주방 종사자들의 위생모 착용은 물론 주방 내부도 상당히 청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일 구석진 방의 빈 테이블을 간신히 하나 배정받아 앉아 메뉴판을 쭈욱 훑어보았다.

딸랑 순대만, 순대랑  수육이랑, 수육, 오징어 불고기는 7,000원선. 따로국밥은 5,000원이다.

2009년에 1박2일 팀이 와서 식사했을 때는 따로국밥이  3,500원 밖에 안 했다고 하는데

식자재 값이 미친 듯 인상되는 요즈음 3,500원 하던 국밥이

3년만에 5,000원으로 오른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순대랑 수육이랑, 따로국밥을 주문해본다.

 

 

주문하자마자 기본 반찬들이 후다닥 상 위에 베풀어진다.

김치, 깍두기, 마늘 절임 몇 쪽, 생마늘, 청량고추, 다대기, 된장, 그리고 새우젓 등이다.

 

 

기본 반찬이 나오고 금방 '순대랑 수육이랑'이 나왔다.

그런데 순대의 모양이 영 불품 사납다. 예쁘게 썰어지지 않고 속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왔다.

 

 

순대가 뭐 이래? 하고 자세히 보니 대창을 이용한 진짜 중의 진짜 순대이다.

순대피가 대창이다보니 써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안 썰어지는 모양이다.

순대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어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해본다.

대창을 써서 질길 줄 알았는데 전혀 질기지가 않고 적당히 꼬들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다.

거기다 피와 당면 등 순대 속과 조화를 제대로 이루어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수육도 그냥 대충대충 썰어져서 접시에 턱하니 올려져 있다.

 

 

수육도 아주 잘 삶아졌다. 새우젓에 콕 찍어 맛을 보니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퍽퍽하지 않고 목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 간다.

 

 

곧 이어 따로국밥이 나왔다. 밥 포함해서 5,000원 짜리 순대국밥이다.

그런데 국물이 진짜 뽀얗다.  마치 사골국물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건더기가 다 가라앉아 보이지 않길래 순대국밥 위에다 청량 고추 썬 것을 듬뿍 얹어 보았다.

이제야 비쥬얼이 좀 그럴싸하게 보인다.

 

 

숟가락을 국밥 그릇에 넣어 건더기 한 숟갈 건져 올려 본다.

 

 

숟가락 위에 올려진 속살이 오동통한 순대는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숟가락으로 푸욱 떠서 건져 올려보니 와! 건더기가 정말 많이도 들어있다.

순대 외에도 머릿고기 등 여러가지 부위의 건더기가 푸짐하기도 하다.

 

 

따로 나온 공기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필자는 유명 맛집 조건의 첫째를 밥 맛으로 꼽는데

영업이 잘 안 되는 식당은 밥을 해서 온장고에 보관하다가 내어놓기 때문에 밥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지만

유명 맛집은 식탁 회전이 그만큼 빠르기 때문에 손님이 올 때 마다 새밥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달 식당의 밥도 필자의 맛집 조건에 부합되게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합격이다!

 

 

순대국밥의 국물은 사골 육수처럼 맛이 진하고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밥을 반 정도 덜어 순대국밥에 투입하고 다대기를 넣은 후 허겁지겁 입 안으로 가져가니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준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국밥 그릇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가 끝이 안 난다.

아니.....5,000원 짜리 순대국밥에 도대체 순대와 건더기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있는 거야!

다 먹어가는데도 그릇 안을 휘저으면 계속 계속 올라오는 건더기 때문에 나중엔 그만 지쳐 버렸다.

 

 

식당에서 상을 받으면 밥과 국은 다 해치우는 것을 나름의 법칙으로 삼고 있던 필자.

이미 순대와 수육을 조금씩 맛보아서 그런지 밥도 국밥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1박2일의 인기를 업고 이름만 무성한 맛집인가 했던 예천 용궁 박달 식당.

특허까지 냈다는 진짜 순대와 푸짐한 순대국밥은 멀리 찾아간 여행자의 뱃속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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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출발하여 무작정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던 여정을 멈추게 한 도시, 강릉.

영동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강릉 구경은 하루만에 끝내기엔 너무나 볼거리가 많다.

사시사철 푸르른 동해를 품은 경포대 해수욕장과 함께 커다란 석호인 경포호,

관동팔경의 하나로 그 위에 오르면 절로 시 한수가 나올 것 같은 누각 경포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죽헌,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생가,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강릉 객사문,

에디슨의 세계 최초 축음기 등 수백억에 이르는 소장품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등등......

강릉에 소재한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멋과 풍류를 사랑하는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하룻밤 머물러 가고 싶은 집으로 꼽히는 곳은 단연 선교장(船橋莊)이다.

 

 

지난번 1박2일에 소개되어 출연진들이 하룻밤 머물러 가기도 했던 선교장은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경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오른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연지(蓮池).

연지 안에 날아갈 듯 자리잡은 아름다운 건물의 이름은 활래정(活來亭)이다.

소나무 숲을 뒷배경으로 하고 연못 가운데도 멋들어진 소나무를 거느린 활래정은 선교장에 딸린 외별당인데

이곳은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여름나절에 찾아왔더라면 연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연지를 볼 수 있을텐데.......

앙상한 가지만 남은 연지는 어쩐지 쓸쓸함만 더 해준다. 
 

 

활래정을 지나 선교장 앞에 서니 24간이나 되는 행랑이 시선을 압도한다.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처럼 길게 늘어선 행랑은 바로 하인들의 방.

그만큼 하인들의 수도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도망친다는 뜻의 '줄행랑'이란 용어가 이곳 행랑채에서 생겼다는 설도 전해 내려 오는 곳이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보존되어 온 집이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명칭은 예전에 지금의 경포호와 연결된 수로가 있어

배를 대는 선교(船橋)가 집 앞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경포호와 선교장사이에 논밭이 들어서서

선교장 앞에까지 배가 들어오던 예전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 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300여년전에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원래는 아흔아홉간이었다는 선교장은 일부가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안채 주옥, 열화당, 활래정, 서별당, 행랑채 등 84간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열화당은 남자주인이 전용하는 사랑채로 1815년(순조15년)에 이후가 건립한 건물이다.

 

 

 


 

 

 

열화당(悅話堂)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귀거래사(野去來離)'의 구절에서 연유한 이름으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열화당 툇마루 앞에는 이렇게 서양식의 테라스가 덧대어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다른 양반 살림집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물인 이 서양식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공사관 직원들이 영동지방 여행을 왔다가 선교장에 장시간 머무르다 간 후

 

그 답례로 러시아 공사가 러시아에서 구리판을 들여오고 목재와 목수를 보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테라스는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큰 구조물이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서별당은 이씨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별당은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페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안채는 1748년 처음 배다리를 전주이씨 가의 삶의 터전으로 삼을 때에 건립된 건물로서 

 

이씨가의 큰 살림을 맡은 여인들의 거처이다.

 



 

 

안채, 별당, 사랑채를 이어주는 대문들이 한줄로 늘어선 모습이 멋스러운데 선교장에는 이런 대문이 모두 12개가 있다.


 

 

만석꾼 곳간채에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베풀던 선교장.

300여년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 선교장.

뒷산의 노송 숲과 활래정의 연꽃, 경포 호수 등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후덕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공간인 선교장은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수상하기도 한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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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경북 예천편 '추억의 타임머신레이스'에서  제시된 한자를 받아 쓰는 '과거시험 미션'을 치를 때

 한자사전에도 없는 엉터리 한자를 써서 시청자들의 폭소와 쓴 웃음를 자아내던 곳을 기억하시는지?

       과거시험을 치르던 바로 그 장소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예천군 삼강 주막이다.

 삼강주막은 사극에서 보던 '주막'가운데서 실제로 남아 있는 최후의 주막이라고 하여 찾아 보았다. 

 

 

예천군 용궁면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삼강교를 지나 풍양면에 이르면

세개의 강이 흐르는 가운데 지점에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서 흘러오는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함께 만나는 마을의 이름은 삼강마을이라 하고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지어진 주막의 이름을 예로부터 삼강주막이라고 불렀다.

 

 

1900년대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10여년이 넘은 삼강주막은 아직도 주막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막 내에는 1900년대에 지어진 주막과 함께 사공 숙소, 보부상 숙소, 원두막과 평상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어 

주막을 찾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토리묵, 두부 등을 안주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예전에는 주모가 한상 차려서 손님 상에 일일이 가져다 주었던 삼강주막,

요즘은 손님이 직접 음식을 주문해서 가지고 가는 셀프 주막이 되었다는 점이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원래 이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사공 숙소와 보부상 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었는데

보부상과 길손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낯 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 숙소이며

 

 

보부상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들을 실어나르느라 기꺼이 노를 찹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 두 건물은 갑술년 (1934년) 대홍수로 멸실되었으나

2008년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현재 삼강주막 내의 대부분 건물들은 민박 체험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민박하는 사람들은

110여년 전 주막에서 하룻밤 묵던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어 좋다.

 

 

강둑을 따라 주막 바로 옆에는 이렇게 커다란 '들돌'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들이 장성하여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들돌은 상당히 커서 웬만한 장정들은 들어올리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큰 들돌로 힘을 측정한 것은 예전의 장정들이 힘이 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장정들이 힘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그점이 궁금하다.

 

 

삼강주막 내 많은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지만

다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건물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다.

 

 

경상북도 민속 자료 제 134호로 지정된 삼강주막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작고 다소 초라하기까지 하다.

 

 

건물은 방 2간, 부엌 1간, 마루 1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주막의 기능에는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삼강주막의 중심인 부엌 문으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안에는 소박한 찬장이 하나 놓여 있고 부엌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마솥 하나 가득 끓여진 국밥은 이 주막에 머물다 간 많은 사람들의 속을 따끈하게 덮여주었겠지......

 

 

부엌 흙벽에는 이렇게 주막 주인이었던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 장부로 그은 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렇게 금을 그어놓은 것만으로 누가 얼마나 외상으로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낼까?

아마도 유옥연 할머니 만이 풀 수 있는 신비로운 수수께끼인 듯 하다.

 

 

그런데 주막엔 외부, 내부 할것없이 수많은 낙서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장부였던 흙벽의 수많은 금들도 이렇게 유리를 씌워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훼손되어 없어졌을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 한다.

삼강나루의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로는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사용되던 삼강주막.

세월은 흘러 이곳을 기점으로 오가던 행인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이 스쳐간 흔적은 남아 오래된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의 평상에 걸터앉아 옛 행인들처럼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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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에서 예천읍 쪽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천 위에 놓인 산양교를 지나 924번 지방도로 접어 들면
시간이 멈춘 듯 거리마다 70년대의 풍경이 가득한 마을을 만나게 된다.

바로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1박2일에도 소개되었던 용궁로를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을 거슬러 올라 1970년대로 돌아간 듯
양 옆으로 펼쳐지는 오래 된 가게들과 간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용궁면의 메인 스트리트인 용궁로. 나름 번화가인 용궁 사거리가 지척이건만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들도 많지 않고 대로변에 위치한 주택 앞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무심한 듯 집 앞 청소를 하고 있다.



도시에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동물병원이 많지만 농촌인 용궁에 위치한 동물병원은 그야말로 '가축병원'일 뿐이다.
 


어렸을 적엔 동네 어디에서나 있었던 간판 '상회'.
요즘 어느 도시에 가든 '상회'라는 간판은 보기 힘든데 용궁 이곳저곳에는 '상회'라는 간판이 심심찮게 남아 있다.
용궁의 삼천리 상회는 운동화, 장화를 비롯하여 자전거, 농기구, 락카......등
농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이른바 '만물상'이다.

 


농촌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호스, 플라스틱 통, 삽, 괭이, 갈퀴.......등을 파는 철물점.
요즘 보기 힘드는 연탄 보일러도 눈에 뜨인다.


 

요즘은 거의 입지 않는 무스탕도 세탁한다는 세탁소. 2층 건물은 지은지 50년도 더 되어 보인다. 

 


이발소와 미용실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 장날이라 그런지 이발소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어 보인다.
대도시의 이발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미용실을 가지 않는 시골 할아버지들 덕에
이 조그만 마을의 이발소는 아직 살아남을 수 있었나 보다.


전화번호 국번이 두자리라니.....! 초원이발관의 간판은 대체 언제적 것일까?
간판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북향집인데도 불구하고 낡고 삭아버린 간판의 글자가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곳을 터전으로 미래를 점쳤던 용궁도사님은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제 미래를 점치는 일을 그만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호미, 곡괭이, 삽 등 여러가지 농기구를 만들어 팔던 철공소.
큰 공장에서 제작되어 나온 농기구가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요즈음
더 이상 철공소에서 농기구를 제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간간이 들어오는 경운기 등 농기구 수리에나 의존해야 하는 철공소.......



승용차가 없는 시골 노인들에게 오트바이는 최고의 멋진 교통수단.
장날을 틈타 오트바이 수리하러 온 손님들로 인해 오트바이 가게 주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닭도리탕, 오징어구이, 매운탕을 파는 통일식당 아줌마의 요리 솜씨에 반한 것일까?
문이 열렸을 때 본 식당 안에는 의외로 장을 돌아보러 나온 아저씨들로 그득하다.


60년 이상 한자리를 고수해왔다는 참기름집은 유리로 된 나무 문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박2일에서 은지원 등 YB팀이 참기름 짜는 미션을 실행했던 제유소 옆을 지나니 고소한 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한다.


강호동 등 OB팀이 찾아가 수공업으로 직접 제조한 막걸리를 맛보던 용궁양조장.
1958년에 지어졌다는 벽돌집 외부를 다 덮어버린 담쟁이 덩굴은 50여년이 넘은 건물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1박 2일 팀이 마지막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던 털보 사진관에는 다른 집처럼 1박2일 촬영을 했다는 플래카드도 붙어있지 않다.
집집마다 디지털 카메라가 한두대 쯤 있는 요즈음, 장날이 되어도 사진관을 찾는 발걸음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 사진관을 운영하시던 털보 아저씨는 아직도 계속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까?
사진관의 문을 밀고 들어가 확인해 못했던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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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6대 광역시를 하루에 다 돌아보아야 했던 1박2일 6대광역시 특집에서
울산에 갔던 김종민이 맛보고 쫄깃함이 살아있는 육질에 반했던 언양불고기.

울산시 언양읍은 인접한 봉계와 함께 2006년 한우불고기특구로 지정될만큼
불고기단지로 유명한 곳인데
언양시내의 어느집에 가던지
다른 도시와는 차별되는 형태의 언양석쇠불고기를 만날 수 있다.

1박2일에서 김종민이 찾아 석쇠불고기를 맛보았다는 삼거리불고기집은 찾지 못 하고
삼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언양전통불고기집에 들려보았다.


 



이곳도 역시 오래전부터 유명한 집인지 각종 표창장과 함께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싸인들이 걸려 있다.



꽃등심, 갈비살, 낙엽살....등 생고기 메뉴들이 있지만 언양 불고기특구의 대표적인 메뉴인 석쇠불고기를 주문했다.
석쇠불고기는 1인분 150g이 16,000원 정도이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 베풀어진 반찬들은 어느 고깃집에나 비슷한 그렇고 그런 반찬들이고.......



불고기단지 답게 간, 천엽이 한접시에 담겨져 나온 것이 눈에 뜨인다.



원래 고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피가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간은 보기만 해도 비릴 것 같아 거부해왔다.
몸에 좋은걸 왜 안 먹느냐고 권하는 일행들의 권유에 못이겨 시뻘건 간을 한점 집어서 입안에 넣어본다.
입 안에서 물커덩거리는 끔찍한 식감.....! 그런데 참고 한참을 씹으니 의외로 먹을만 하다.
예상외로 신선한 맛이 입안에 풍기고 눈까지 밝아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내친김에 천엽까지 한점 집어 먹어 본다.
걸레같이 생긴 혐오스런 모습 때문에 평소에는 젓가락 대기도 싫어했는데.......
기름소금을 약간 찍어 입안에 넣어 씹어보니 오돌도돌한 식감이 참 특이하다.

대체 이건 무슨 맛이지?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천엽이 소의 어느 부위인지 물어보니 윽.....! 소의 세번째 위를 천엽이라 한단다!




간, 천엽과 함께 희한한 부위도 나왔다. 무언가 했더니 소연골이란다!
사람들은 참 못 먹는게 없다. 다른 동물의 연골까지 빼어먹다니....ㅠㅠ



역시 기름소금에 찍어서 먹어보았다. 약간 비리면서도 상큼한 간에 비해서 이건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약간은 적응이 되지 않아서 하나만 맛보고 살포시 내려놓았다.





드디어 숯불 위에 석쇠불고기가 올려졌다.
국물이 있는 서울식 불고기에 비해 언양불고기는 석쇠에 구운 불고기인데
바깥 주방에서 초벌구이로 거의 익혀진채로 나오기 때문에 상 위에 올려지자마자 먹으면 된다.





언양의 특산물인 한우 갈비살을 얇게 썬 후에 달콤한 양념에 재워 두었다가 숯불에 구워먹는 언양불고기는
1960년대 이후 건설건로자들이 이곳의 고기맛을 보고 소문이 나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불고기 위에 자르르 흐르는 육즙만 보아도 저절로 침이 넘어가서 얼른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



한점 집어 보니 육즙이 자르르 흐르는게 정말로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상추, 깻잎, 당귀, 감초 등 푸성귀 위에 고기 한점과 마늘 한개를 얹고는 잘 싸서 입으로 가져가보니
달콤한 맛이 도는 불고기 특유의 맛과 향이 입안으로 싸아......하게 퍼진다.





배를 두드리며 고기를 먹었는데 또 밥을 먹어야 하나?
한국사람은 아무리 잘 먹어도 밥을 먹어야 하는 법.
고기를 먹은 후에 시원하고 달달한 된장찌개와 함께 먹는 밥은 위장 속을 교통정리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

1박2일에서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언양의 불고기특구에는 언제나 신선한 고기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부산, 울산 지역 나들이길에 들리면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석쇠불고기. 언양불고기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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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부산 국제시장 아리랑거리 먹자 골목.
지붕도 없고 가림막도 없이 길바닥에 다닥다닥 차려진 좌판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손짓히는 곳.

차가운 겨울 아침, 골목으로 들어서자 마자 좌판 아줌마들의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지매~ 팥죽 한그릇 묵고 가이소~!"
"아지매~ 떡볶이 맛있니데이~ 여기 와서 잡솨 보소~!"

좌판에 벌려진 어묵, 순대, 떡볶이, 팥죽, 잡채.....등 간식거리를 빠르게 스캔하며 지나가다 보니
"아지매~ 비당 한 그릇 묵고 가이소~!"
하는 소리가 필자의 발목을 붙든다.






좌판을 살펴보니 아주머니 앞에 차려진 메뉴는 말로만 듣던 비빔당면.
바로 이승기가 앉아서 먹었던 바로 그 비빔당면집이다.

"빨리 앉아보소~  비당(비빔당면) 한 그릇에 2,000원이시더~"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멈추고 아주머니 앞에 놓인 나즈막한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본다.
이 의자가 이승기가 앉았던 의자인가?
이승기의 체취가 아직도 배여있는 듯(?) 어쩐지 따스한 느낌이 든다.




놓여진 비빔당면 그릇을 보니 탱글탱글하게 잘 삶아진 당면 위에 고명이란건 시금치 한줌, 당근채 서너개가 전부이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 때문인가? 당면이 말라 시들시들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주머니는 당면을 뜨거운 다시 국물(육수)에 서너번 잘 말아서 따스하게 한 후 양념장을 한숟가락 끼얹어서 내놓는다.
자리에 앉고 비빔 당면 접시가 쟁반 앞에 놓여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초도 채 안 걸린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시들시들 말라있던 당면은 뜨거운 육수 안에 목욕하고 나오더니 순식간에 촉촉한 면발로 둔갑하고
빨갛게 양념장까지 끼얹으니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스윽 돈다.




나무 젓가락으로 양념장과 당면을 뒤섞어보니 어떻게 삶은건지 면발이 정말 탱글하다.
한 젓가락 집어서 입안에 살며시 넣어본다.
그런데......으윽......! 무지 짜다!
이렇게 짠게 부산 음식의 맛이란 말인가?
경상도 사람인 필자의 입에 이렇게 짠 맛이라면 타지 사람들은 더욱 짜게 느껴지지 않을까?




비빔당면의 맛은 심하게 짜지만 면발 하나는 정말 탱글탱글하다.
하도 탱글거리니 자꾸만 젓가락에서 미끌어져 아예
그릇을 들고 입에 가져다 댄 후 훌훌......마셔버리는게 쉽다.
비당 한그릇의 가격은 2,000원인데 당면의 양은 정말 무지 적다.
여자들이 먹어도 배에 기별이 안 오니 남자들이 먹으면 거의 두어 젓가락 집어먹으면 없어질 양이다.
한끼 식사라기보다는 간식거리나 별미로 알고 먹어야  먹는게 나을 듯....

국제 시장 먹자골목에는 이곳 말고도 비빔당면집이 많다고 하는데 필자가 먹은 비빔당면은 사실 너무 맛이 짰다. 
그러나 1박2일과 이승기의 명성때문일까?
다른 아주머니들의 음식 좌판보다 이 비빔당면 좌판 앞엔 유난히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이승기가 먹고 갔던 먹자 골목 비빔당면집을 일부러 찾아서 온 여성 손님들이 대부분.

하지만 영하 10여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시장 바닥에 앉아 장사하시는 분들을 둘러보니 
음식의 맛에 대해서 평론한다는게 도리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부산 광복동 먹자골목의 <이승기 비빔당면>을 한번 체험해 본 것으로 만족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혹 다음에 또 이 골목을 찾아오게 된다면 팥죽이나 순대 등 다른 메뉴에 한번 도전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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