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요즘 자주 보고 있는 드라마는 무엇인지......

필자가 요즘 빠져들어서 보고 있는 드라마는 송중기, 문채원, 박시원 주연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이하 착한 남자)'이다.

 

착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복수를 하기 위해

기억을 잃은 또 다른 여자를 이용하면서 갈등과 사랑이 증폭되어가는 정통 멜로드라마.

 

복수극이니, 기억상실증이니 하는 식상하고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성균관 스캔들'의 선비 구용하역을 비롯해서

언제나 밝고 샤방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송중기가

나쁜 남자로 변신해 선보일 치명적인 유혹에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너무 특이해서 방영전부터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어쩌다보니 첫회부터 보지 못했고

매주 방영되는 드라마조차 띄엄띄엄 건너뛰며 보다보니 스토리 연결이 제대로 안 되는지라 

휴일 하루 날을 잡고 집에 들어박혀 IPTV를 통해 드라마를 1회부터 재방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라마 여러편을 한꺼번에 몰아 폭풍 시청하고 있던 중, 8회에서

서은기(문채원)가 강마루(송중기)의 책상 서랍 속에서 찾아낸 한장의 사진에 눈길이 확 쏠렸다.

 

"우리들의 첫 여행, 꼭 가자. 재희♥마루"란 글이 뒷면에 쓰여진 그 사진은

푸른 바다와 기암 괴석의 멋진 풍경이 잘 어우러진 빛바랜 사진이었는데

보자마자 "어? 저긴 동해 추암 해변 아냐?"란 말이 절로 툭 튀어나왔다. 

 

 9회에서는 먼저 바닷가에 가 있던 서은기(문채원)를 찾아 강마루(송중기)가 찾아가게 되고

서은기는 "사진보다 훨씬 근사하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하고 말하며

"우리 도망가요.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우리 둘이 살아요."라고 강마루를 붙잡는데......

이후 "송중기, 문채원이 갔던 저 바다가 대체 어디에요?" 하는 질문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착한 남자에서 송중기, 문채원이 복잡한 감정을 안고 섰던 해변은 바로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의 '추암해변'이다.

 

 

 

 

바닥이 그대로 다 드러나 보일만큼 투명한 옥빛바다와 잘게 부서진 고운 백사장이 눈부신 추암해변은 

미묘한 해안절벽과 함께 그리움이 배인 촛대바위, 그리고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한국관광공사의 '겨울철 가볼만한 곳 10선'에 선정되기도 한 곳.

 

 

 

 

추암 해변의 자그마한 동산에 오르면 바다에서 로켓처럼 불쑥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TV 애국가의 일출 장면 배경으로 자주 나오던 '촛대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추암에 살던 한 남자가 소실을 얻은 후 본처와 소실간의 투기가 날로 심해졌는데

이에 하늘이 벼락을 내려 한 남자만 남겨 놓았고 이때 홀로 남은 남자의 형상이 바로 촛대바위라고 전해내려 온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촛대바위 뒤로 솟아오르는

오메가 일출을 찍기 위해 전국에서 진사들이 모여든다는데

촛대바위 위에 앉은 갈매기 사진 찍기를 미션으로 받았던 1박2일의 한장면처럼

 꼭대기에 갈매기가 앉은 사진을 담아보려고 한참 기다려 보았지만

이날따라 오래 기다려도 좀처럼 갈매기가 바위에 앉지 않아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촛대바위 주변으로 여기저기 솟아오른 크고 작은 기암괴석은

그 모양에 따라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형제바위, 코끼리 바위, 부부바위 등으로 불리우는데

이것은 석회암이 지하수의 작용으로 용해되어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바닷물에 노출되어 지금과 같은 절경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옥빛 바다와 우뚝우뚝 솟아난 기암 괴석들, 그 위에 자라난 소나무들이 보기힘드는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옛부터 뛰어난 경승지로 '동해안의 삼해금강'이라 불리우기도 했으며

 

 

 

 

조선 세조때 강원도 제찰사를 지낸 한명회는 이곳의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절경을 가리켜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凌派臺)'라 부르기도 했다. 

 

 

 

 

기암들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삼척심씨 시조인 심동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건립한 지방문화재 "해암정(海岩亭)"도 자리잡고 있어 잠시 볼거리를 전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찬바람이 초겨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요즈음,

기온이 내려갈수록 물빛이 더욱 푸르고 청명하게 빛나는 동해안 추암해변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빛바랜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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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추억의 타임머신레이스'편은 방영된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방송 중 하나이다.

 

70년대에서 시간이 오롯이 멈춘 듯한 경북 예천 용궁마을은  

가을동화에서 은서와 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낸 회룡포마을을 비롯해서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110년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예전에는 탄광촌을 오가는 사람들로 연일 붐비었던 역이었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 거의 없는 무배치 간이역인이 된 용궁역 또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한다.

 

용궁마을 양 옆으로 펼쳐지는 오래된 가게들과 빛바랜 간판들을 읽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걷다보니

어디선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겨나와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니 고소한 냄새의 근원지는 동부제유소.

바로 1박2일 제작진들이 OB팀과 YB팀에게 참깨를 주며 참기름을 짜 오라고 했던 바로 그 참기름집이다.

 

 

 

 

고소한 내음이 등천을 하는 동부제유소의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서니 주인 아주머니의 바쁜 손놀림이 먼저 눈에 뜨인다.

장날이라 집에서 수확한 참깨를 가지고 참기름을 만들러 온 손님들의 일거리가 밀린 듯 하여 돌아보기도 조심스럽다.

주인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일 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웃으면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신다.

 

 

 

 

1박2일 방송에서 YB팀은 시장제유소에서, OB팀은 동부제유소에서 참기름을 짜게 되는데

시장통에서 가까운 시장제유소보다 동부제유소가 유달리 시청자의 기억에 남은 것은

젊었을 때는 용궁에서 한인물 했음직한 주인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가 한몫했을 뿐 아니라

현대화된 기계를 쓰지 않고 아직도 수십년전 참기름 짜는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전으로 돌아간 듯 추억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갓짜낸 참기름을 조르르 부어 비벼낸 나물비빔밥은 강호동을 비롯한 1박2일 멤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가게를 돌아보니 오래된 물건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참깨나 들깨를 담아두었음직한 천 소쿠리는 도대체 그 언젯적 물건일까?

 

 

 

 

손님이 참기름을 짜달라고 맡긴 참깨 대야 옆에 놓인 성냥곽이 눈길을 끈다. 비사표 성냥이라니......!

바닥에 성냥이 놓여 있는 이유는 이 성냥이 참기름집에는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요긴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참깨를 볶으려면 화로의 열이 충분히 달구어진 후 참깨를 넣어 볶아야 하는데

 

 

 

 

적정 온도를 알려주지 않는 수동 시스템이므로 참깨를 볶을만한 적정한 온도를 가늠하기 위해

이렇게 파이프 위에 성냥개비 하나를 살짝 올려놓는데

 

 

 

 

파이프 위에 놓인 성냥에 갑자기 확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면 화로의 열이 충분히 달구어진 것이므로 

그때 바로 참깨를 부어 볶기 사작하면 되는 것이다.

 

 

 

 

뜨끈하게 달구어진 솥 안에서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아련한 추억도 맞물려 돌아가는 듯 하다. 

모든 것이 예전 방식 그대로의 수동 시스템이기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지켜보는데

 

 

 

 

 

참깨를 볶는 화덕에서 김이 뭉실뭉실 솟아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할 때 쯤이면

 

 

 

 

잘 볶아진 참깨를 화덕 아래 나무 상자에 내려 한김을 식히고

 

 

 

 

다시 커다란 체에다 참깨를 옮겨 붓는데 이렇게 참깨를 식힌 뒤에 참기름을 짜야 더 고소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넓다란 체에서 한김을 날려보내고 식혀진 참깨를 커다란 베보자기에 옮겨담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베보자기에 거두어진 참깨는 참기름틀에 꽁꽁 싸서 넣어지는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강철참기름틀에 밀어넣고 스위치만 켜면 참기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압착기에 스위치를 넣고 조금 기다리니 아! 동그란 구멍 사이 사이로 노란 참기름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수많은 시간 동안 참기름을 먹어 왔지만 정작 참기름이 짜지는 과정을 보는 건 처음인지라 너무 신기하게 느껴진다.

 

 

 

 

압착기에서 '진짜 참기름'이 조르르 흘러내리니 정말 고소한 내음이 천지를 진동한다.

 

 

 

 

필자도 오랜만에 정말로 고소한 '진짜 국산 참기름"을 한병 손에 넣었다.

이 참기름으로 산나물 팍팍 무쳐 저녁상에 올릴 생각을 하니 절로 신명이 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년전으로 돌아간 듯 여행자의 빛바랜 추억들을 되살려 주신

예천군 용궁면 동부제유소 아주머니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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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경북 예천 '추억의 타임머신 레이스'편에서

멤버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어주었던 순대국집.

말도 안 되는 가격과 맛으로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던 순대국집은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박달식당이다.

1박2일의 인기를 업어 유명해진 맛집인가 했더니

이집은 1박2일에 방영되기 전에도

용궁면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예천 택시 기사님들이 즐겨 추천하는 인기 맛집이라고 한다.

 

 

용궁역 바로 앞에 위치한 박달 식당에 이르니 식사를 마치고 나온 주민들로 식당 앞이 북적거린다.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입구부터 테이블이 놓여있어 내부가 상당히 협소해 보인다.

 

 

돌아보니 의외로 안에는 여기저기 방이 위치하고 있고 방마다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쪽 방에도 저쪽 방에도 방 마다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거주민도 많지 않은 면소재지 구석에 위치한 식당에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들어차 있다니.....!

 

 

1박2일 뿐 아니라 생방송 전국시대, KBS 무한지대 큐 등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파급 효과가 큰가 보다.

 

 

손님들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오픈된 주방 안에서는 많은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손길을 놀리고 있는데

주방 종사자들의 위생모 착용은 물론 주방 내부도 상당히 청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일 구석진 방의 빈 테이블을 간신히 하나 배정받아 앉아 메뉴판을 쭈욱 훑어보았다.

딸랑 순대만, 순대랑  수육이랑, 수육, 오징어 불고기는 7,000원선. 따로국밥은 5,000원이다.

2009년에 1박2일 팀이 와서 식사했을 때는 따로국밥이  3,500원 밖에 안 했다고 하는데

식자재 값이 미친 듯 인상되는 요즈음 3,500원 하던 국밥이

3년만에 5,000원으로 오른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순대랑 수육이랑, 따로국밥을 주문해본다.

 

 

주문하자마자 기본 반찬들이 후다닥 상 위에 베풀어진다.

김치, 깍두기, 마늘 절임 몇 쪽, 생마늘, 청량고추, 다대기, 된장, 그리고 새우젓 등이다.

 

 

기본 반찬이 나오고 금방 '순대랑 수육이랑'이 나왔다.

그런데 순대의 모양이 영 불품 사납다. 예쁘게 썰어지지 않고 속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왔다.

 

 

순대가 뭐 이래? 하고 자세히 보니 대창을 이용한 진짜 중의 진짜 순대이다.

순대피가 대창이다보니 써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안 썰어지는 모양이다.

순대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어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해본다.

대창을 써서 질길 줄 알았는데 전혀 질기지가 않고 적당히 꼬들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다.

거기다 피와 당면 등 순대 속과 조화를 제대로 이루어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수육도 그냥 대충대충 썰어져서 접시에 턱하니 올려져 있다.

 

 

수육도 아주 잘 삶아졌다. 새우젓에 콕 찍어 맛을 보니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퍽퍽하지 않고 목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 간다.

 

 

곧 이어 따로국밥이 나왔다. 밥 포함해서 5,000원 짜리 순대국밥이다.

그런데 국물이 진짜 뽀얗다.  마치 사골국물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건더기가 다 가라앉아 보이지 않길래 순대국밥 위에다 청량 고추 썬 것을 듬뿍 얹어 보았다.

이제야 비쥬얼이 좀 그럴싸하게 보인다.

 

 

숟가락을 국밥 그릇에 넣어 건더기 한 숟갈 건져 올려 본다.

 

 

숟가락 위에 올려진 속살이 오동통한 순대는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숟가락으로 푸욱 떠서 건져 올려보니 와! 건더기가 정말 많이도 들어있다.

순대 외에도 머릿고기 등 여러가지 부위의 건더기가 푸짐하기도 하다.

 

 

따로 나온 공기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필자는 유명 맛집 조건의 첫째를 밥 맛으로 꼽는데

영업이 잘 안 되는 식당은 밥을 해서 온장고에 보관하다가 내어놓기 때문에 밥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지만

유명 맛집은 식탁 회전이 그만큼 빠르기 때문에 손님이 올 때 마다 새밥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달 식당의 밥도 필자의 맛집 조건에 부합되게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합격이다!

 

 

순대국밥의 국물은 사골 육수처럼 맛이 진하고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밥을 반 정도 덜어 순대국밥에 투입하고 다대기를 넣은 후 허겁지겁 입 안으로 가져가니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준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국밥 그릇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가 끝이 안 난다.

아니.....5,000원 짜리 순대국밥에 도대체 순대와 건더기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있는 거야!

다 먹어가는데도 그릇 안을 휘저으면 계속 계속 올라오는 건더기 때문에 나중엔 그만 지쳐 버렸다.

 

 

식당에서 상을 받으면 밥과 국은 다 해치우는 것을 나름의 법칙으로 삼고 있던 필자.

이미 순대와 수육을 조금씩 맛보아서 그런지 밥도 국밥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1박2일의 인기를 업고 이름만 무성한 맛집인가 했던 예천 용궁 박달 식당.

특허까지 냈다는 진짜 순대와 푸짐한 순대국밥은 멀리 찾아간 여행자의 뱃속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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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출발하여 무작정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던 여정을 멈추게 한 도시, 강릉.

영동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강릉 구경은 하루만에 끝내기엔 너무나 볼거리가 많다.

사시사철 푸르른 동해를 품은 경포대 해수욕장과 함께 커다란 석호인 경포호,

관동팔경의 하나로 그 위에 오르면 절로 시 한수가 나올 것 같은 누각 경포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죽헌,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생가,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강릉 객사문,

에디슨의 세계 최초 축음기 등 수백억에 이르는 소장품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등등......

강릉에 소재한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멋과 풍류를 사랑하는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하룻밤 머물러 가고 싶은 집으로 꼽히는 곳은 단연 선교장(船橋莊)이다.

 

 

지난번 1박2일에 소개되어 출연진들이 하룻밤 머물러 가기도 했던 선교장은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경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오른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연지(蓮池).

연지 안에 날아갈 듯 자리잡은 아름다운 건물의 이름은 활래정(活來亭)이다.

소나무 숲을 뒷배경으로 하고 연못 가운데도 멋들어진 소나무를 거느린 활래정은 선교장에 딸린 외별당인데

이곳은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여름나절에 찾아왔더라면 연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연지를 볼 수 있을텐데.......

앙상한 가지만 남은 연지는 어쩐지 쓸쓸함만 더 해준다. 
 

 

활래정을 지나 선교장 앞에 서니 24간이나 되는 행랑이 시선을 압도한다.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처럼 길게 늘어선 행랑은 바로 하인들의 방.

그만큼 하인들의 수도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도망친다는 뜻의 '줄행랑'이란 용어가 이곳 행랑채에서 생겼다는 설도 전해 내려 오는 곳이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보존되어 온 집이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명칭은 예전에 지금의 경포호와 연결된 수로가 있어

배를 대는 선교(船橋)가 집 앞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경포호와 선교장사이에 논밭이 들어서서

선교장 앞에까지 배가 들어오던 예전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 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300여년전에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원래는 아흔아홉간이었다는 선교장은 일부가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안채 주옥, 열화당, 활래정, 서별당, 행랑채 등 84간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열화당은 남자주인이 전용하는 사랑채로 1815년(순조15년)에 이후가 건립한 건물이다.

 

 

 


 

 

 

열화당(悅話堂)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귀거래사(野去來離)'의 구절에서 연유한 이름으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열화당 툇마루 앞에는 이렇게 서양식의 테라스가 덧대어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다른 양반 살림집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물인 이 서양식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공사관 직원들이 영동지방 여행을 왔다가 선교장에 장시간 머무르다 간 후

 

그 답례로 러시아 공사가 러시아에서 구리판을 들여오고 목재와 목수를 보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테라스는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큰 구조물이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서별당은 이씨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별당은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페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안채는 1748년 처음 배다리를 전주이씨 가의 삶의 터전으로 삼을 때에 건립된 건물로서 

 

이씨가의 큰 살림을 맡은 여인들의 거처이다.

 



 

 

안채, 별당, 사랑채를 이어주는 대문들이 한줄로 늘어선 모습이 멋스러운데 선교장에는 이런 대문이 모두 12개가 있다.


 

 

만석꾼 곳간채에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베풀던 선교장.

300여년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 선교장.

뒷산의 노송 숲과 활래정의 연꽃, 경포 호수 등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후덕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공간인 선교장은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수상하기도 한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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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경북 예천편 '추억의 타임머신레이스'에서  제시된 한자를 받아 쓰는 '과거시험 미션'을 치를 때

 한자사전에도 없는 엉터리 한자를 써서 시청자들의 폭소와 쓴 웃음를 자아내던 곳을 기억하시는지?

       과거시험을 치르던 바로 그 장소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예천군 삼강 주막이다.

 삼강주막은 사극에서 보던 '주막'가운데서 실제로 남아 있는 최후의 주막이라고 하여 찾아 보았다. 

 

 

예천군 용궁면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삼강교를 지나 풍양면에 이르면

세개의 강이 흐르는 가운데 지점에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서 흘러오는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함께 만나는 마을의 이름은 삼강마을이라 하고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지어진 주막의 이름을 예로부터 삼강주막이라고 불렀다.

 

 

1900년대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10여년이 넘은 삼강주막은 아직도 주막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막 내에는 1900년대에 지어진 주막과 함께 사공 숙소, 보부상 숙소, 원두막과 평상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어 

주막을 찾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토리묵, 두부 등을 안주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예전에는 주모가 한상 차려서 손님 상에 일일이 가져다 주었던 삼강주막,

요즘은 손님이 직접 음식을 주문해서 가지고 가는 셀프 주막이 되었다는 점이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원래 이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사공 숙소와 보부상 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었는데

보부상과 길손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낯 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 숙소이며

 

 

보부상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들을 실어나르느라 기꺼이 노를 찹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 두 건물은 갑술년 (1934년) 대홍수로 멸실되었으나

2008년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현재 삼강주막 내의 대부분 건물들은 민박 체험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민박하는 사람들은

110여년 전 주막에서 하룻밤 묵던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어 좋다.

 

 

강둑을 따라 주막 바로 옆에는 이렇게 커다란 '들돌'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들이 장성하여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들돌은 상당히 커서 웬만한 장정들은 들어올리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큰 들돌로 힘을 측정한 것은 예전의 장정들이 힘이 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장정들이 힘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 그점이 궁금하다.

 

 

삼강주막 내 많은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지만

다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건물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주막이다.

 

 

경상북도 민속 자료 제 134호로 지정된 삼강주막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작고 다소 초라하기까지 하다.

 

 

건물은 방 2간, 부엌 1간, 마루 1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주막의 기능에는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삼강주막의 중심인 부엌 문으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안에는 소박한 찬장이 하나 놓여 있고 부엌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마솥 하나 가득 끓여진 국밥은 이 주막에 머물다 간 많은 사람들의 속을 따끈하게 덮여주었겠지......

 

 

부엌 흙벽에는 이렇게 주막 주인이었던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 장부로 그은 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렇게 금을 그어놓은 것만으로 누가 얼마나 외상으로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낼까?

아마도 유옥연 할머니 만이 풀 수 있는 신비로운 수수께끼인 듯 하다.

 

 

그런데 주막엔 외부, 내부 할것없이 수많은 낙서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유옥연 할머니의 외상장부였던 흙벽의 수많은 금들도 이렇게 유리를 씌워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훼손되어 없어졌을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 한다.

삼강나루의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로는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사용되던 삼강주막.

세월은 흘러 이곳을 기점으로 오가던 행인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이 스쳐간 흔적은 남아 오래된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의 평상에 걸터앉아 옛 행인들처럼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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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최고의 추억거리인 수학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디로 수학여행을 다녀 오셨는지?

학교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대구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중학교 시절에는 통영, 거제 등 남해안으로
고등학교 때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대구에서 밤 기차를 타고 아침 나절에 강릉에 내려서는 다시 전세 버스로 갈아타고 강릉 일원을 돌아본 후
낙산사를 거쳐 설악산을 한바퀴 도는 대략 그런 코스였던 것.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학여행에서 유적지를 제대로 돌아보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선생님이 눈여겨 보라는 유적지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맛있는거 사먹을 생각, 
밤에 숙소에서 친구에게 어떻게 장난을 칠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으니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어디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하나도 기억이 없는건 당연한 결과인 듯......



수학여행 때에는 아무런 의미없이 그냥 스쳐지나갔던 곳인 강릉 오죽헌을 새삼스럽게 다시 찾아 보았다.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 본 오죽헌은 마치 처음 찾아온 곳인 듯 새삼스럽고 생소하기까지 하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인 율곡 이이(1536∼1584)와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이 태어난 유서깊은 집 오죽헌.

매표소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율곡 이이의 동상이 먼저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매표소를 지나서도 오죽헌에 들어가는 입구인 입지문까지는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어릴적에는 "뭐 이렇게 많이 걸어가야 돼! 다리 아프게!"하고 불평이나 하곤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니 "오...경내가 상당히 넓고 쾌적한게 좋은데?"하는 정반대의 생각이 든다.




입지문을 들어서니 너른 마당 저 편에 구오천원권에서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좌우를 둘러보니 방문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발 아래 청동으로 된 발판들이 눈에 뜨인다.




바로 지난번 <1박2일 도시여행 강릉편>에서 이수근이 수행했던
구오천원권 뒷면과 꼭 같이 사진 찍기 미션을 수행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이 곳에서 발판을 밟고 서서 사진을 찍으면 구오천원권의 그림과 꼭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도 청동발판을 밟고 서서 구오천원권과 비슷한 시점으로 사진 한장 찍어보았다. 




지폐의 그림에 그려질 때엔 나무들이 담장에 미치지 못 할 정도로 키가 작았지만
이제는 훌쩍 자라 지붕을 넘을 정도가 되었으니 그간의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오천원권 지폐의 전경을 담은 후 계단으로 올라가 오죽헌 안으로 들어가 본다.




문을 들어서나 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단청이 된 건물은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어제각이 있었는데 1975년 정화 사업 때에 어제각을 서쪽으로 옮기고 이 자리에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사의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라고 하는데 날렵한 지붕선과 잘 어울리는 휘호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 이이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문성사 앞에 동쪽을 보고 앉은 건물이 바로 별당인 오죽헌.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인 오죽헌은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유서깊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강릉의 선비인 최치운이 처음 세웠는데 그 아들 응현은 사위인 이사온에게,
 이사온은 다시 사위인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그의 사위 권화에게 물려주면서 이후 후손들이 계속 관리해오고 있다.



오죽헌의 온돌방은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용꿈을 꾸고 율곡을 잉태했다는 몽룡실이다.





집 주변에는 이렇게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줄기는 손가락만 하고 검은 색을 띤 대나무가 바로 오죽(烏竹)이다.
율곡 이이의 이종사촌이었던 권처균은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에게서 이 아름다운 집을 물려받았는데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권처균은 자신의 호는 물론이고 집 이름도 검은 대나무에서 착안하여 ‘오죽헌’이라고 지었다고......

오죽헌의 상징인 검은 대나무인 오죽의 그림이 율곡 이이 초상, 오죽헌과 함께 오천원 신권 얖면에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율곡은 소나무를 좋아하여 소나무 예찬도 지었는데 오죽헌 마당에 있는 이 나무는 율곡송이라 명명되었다. 




마당에는 이렇게 수령이 600년이 넘은 배롱나무도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600년이 넘은 나이이니 오죽헌 마당을 뛰어다니는 율곡 선생의 모습도 지켜보았을 배롱나무이다.





안채에서 서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면 날아갈 듯한 처마를 머리에 인 사랑채가 그 날렵한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오죽헌 내의 건물들은 1505년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에 의해서 전승되어 오다가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별당인 오죽헌과 사랑채를 제외하고 다 철거되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 계획에 따라 옛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사랑채는 별당인 오죽헌과 함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건물이다.




툇마루에는 이렇게 하얀 주련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끄는데 이 주련의 글씨는 놀랍게도 추사 김정희의 필적이라고......!




사랑채를 지나 오죽헌의 가장 서쪽으로 가면 어제각이 자리잡고 있는데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그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여 놓은 집이다.




1788년 정조 임금은 율곡이 어렸을 때 사용하던 벼루와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벼루를 궁궐로 가져오게 하고 친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바로 어제각(御製閣)이다.
구 오천원 앞면에 율곡 이이의 초상과 함께 율곡이 쓰던 벼루가
도안 그림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귀중한 벼루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딩 시절 수학여행으로 와서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나갔던 강릉 오죽헌.
분명히 이곳을 다 돌아보고 돌아갔으련만 오죽헌 뒤의 대나무 외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돌아본 오죽헌은 처음 만나 본 듯 새롭기만 하다.
아무런 의욕없이 다만 선생님에게 등 떠밀려 돌아보았던 오죽헌이었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본 오죽헌은 새로운 추억의 수학여행지로 남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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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 용궁역은 하루 종일 있어도 찾는 사람 거의 없는 이른바 간이역이다.
1928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역무를 시작했던 용궁역.
바로 이웃한 문경이 탄광으로 호황을 누리던 70년대, 오가는 인파로 북적이던 이곳도 
탄광 산업의 내리막과 함께 이용객이 서서히 줄어들고
2004년부터는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어버렸다.

잠시 잊고 살아온 꿈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오롯이 추억과 벗하고 있는 용궁역.
오가는 사람의 흔적없이 적막감이 감도는 용궁역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문경시 산양면을 지나 예천읍 용궁면의 작은 지방도로 들어서 얼마 안 가니 금방 눈 앞에 용궁역이 나타난다.
여느 역 같으면 오가는 인파로 북적이겠지만 간이역인 이곳은 찾는 사람 없이 적막감만 감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니 매표구가 벽으로 막혀 있고 다른 역의 열차 운행 시간표가 매표구를 대신한다.

 

역 안쪽 문 옆에는 개찰구 대신 이렇게 표 넣는 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함 안을 들여다보니 언제적 것인지 모를 열차 승차권 몇장이 버려져 있고
쓰레기통인줄 오해한 승객들이 버리고 간 양심도 눈에 뜨인다.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은 역의 이름, 용궁역.
바다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이 곳의 이름을 왜 용궁(龍宮)이라고 했을까? 
바다가 먼 만큼 바다를 그리워했기 때문일까?
 


어떤 연유에서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나 용궁역 구내에는 커다란 용 장식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용궁을 상징하는 용이라지만 조용한 간이역에 서 있는 여의주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는 용 장식은 다소 뜬금없어 보인다.


인적 없는 기찻길 한가운데 서서 저 멀리 점으로 사라지는 기찻길을 바라 보고 있노라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찻길을 보면 왜 이리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기차로 떠나보낸 가슴 아픈 사연도 없는데.......



기찻길이 멀리 뻗어가 하나의 점이 되어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추억도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하나의 희미한 점으로 남기 때문에 애틋함을 더하는 것일까?

 
녹슬어 가는 철로와 함께 오랜 시간 이곳을 지키며 닳고 또 닳아 온 침목은 그 빛이 날로 희미해지고



멀리 공부하러 나갔던 아들을 기다리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이던 벤치도 세월의 수만큼 낡아서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다시 이 자리에 앉을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역무원도 없는 간이역, 이제는 이 적막한 역에 머물러 줄 기차가 있을까?



아......! 적막감이 감돌던 간이역에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온다. 혹시나 잠시라도 정차하지 않을까?

기차가 들어오는 설레임도 잠시, 잠시라도 머물러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기차는 무심한 듯 여행자를 스쳐 지나가 버린다.

또 다시 감도는 적막함. 기침 소리마져 크게 울리는 고요함이 사방을 감싼다.


이미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사방에 서서히 내려 깔리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살아왔던 어린 날의 추억과 그리움 때문에 쉽게 간이역을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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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경주 남산을 오르면 살아 있는 신라가 그대로 보인다.
혹자는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통일전 방면에서 시작하는 등산 코스를 통해 칠불암을 오른다.




조그만 암자 하나 달랑 있는 이곳을 칠불암이라 부르는 까닭은 바로 이곳에 국보 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있기때문....
동남쪽으로 향한 큰 바위에 삼존불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바로 앞에 솟은 사면 바위에 여래상이 한구씩 새겨져 삼존불과 사방불 등 7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관련 상세 포스트 : 경주 남산 7대보물 칠불암 마애조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초보 답사기





마애조상군을 자세히 돌아보고 한숨 돌리며 주위를 돌아보면
좁은 절 마당 울타리에 그림이 그려진 기왓장이 여러장 결쳐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들과 그림 옆에 쓰여진 영어.
절에 전시된 기왓장 그림에 영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다소 생뚱맞기까지 한데.......



칠불암 마당에 전시된 이 기왓장 그림들은 이 칠불암에서 몇년간 수행했던 헝가리 출신 외국인 효공 스님이 그린 것이다.

효공 스님은 한국 스님의 알선으로 불법에 귀의하였고 10년전 출가하여 한국에 온지는  8년 정도 되었는데

행자 생활을 거쳐 경기도 어느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칠불암으로 오게 된 것이다.

효공 스님은 한국말에 능통할 뿐 아니라 상냥하고 친절하여 칠불암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녀를 좋아했다고 한다.
늘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암자에 올릴 기와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그녀......

호기심 많은 등산객들이 한국에서의 스님 생활에 후회는 없는지.....고향의 가족들이 그립지 않느냐....이것저것 물으면
부끄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기만 하더라는 효공 스님.
모처럼 찾은 칠불암 산행에서 효공 스님이 안 보이기에 물어보니 이제 그녀는 다른 곳으로 수행하러 떠났다고 한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효공스님은 칠불암을 떠나고 없지만 그녀가 그린 그림은 지금도 칠불암 마당에 남아 그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효공 스님이 남기고 떠난 기왓장 그림을 소개해 올리자면.....







































기왓장 그림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녀가 가깝게 느껴진다.
훗날 남산을 오르다 혹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건네보고 싶다.
"어디로 가는가?(Where are w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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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1박 2일을 본방으로 보니 마침 경주 수학여행 특집을 방영하고 있는 중이다.
버스 안에서의 장기 자랑이나  교복을 입은 멤버들이
경주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스탬프를 찍는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빛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가던 수학여행에서의 추억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필자는 초, 중,고를 거치는 동안 경주, 설악산, 남해안.....등의 역사 문화 명소를 수학여행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에야 유적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지라
무엇을 보았는지는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거리며 노래 부르던 일,
장기 자랑 하던 일, 버스가 흔들리도록 쿵쿵거리며 춤 추고 놀던 일,

밤새 한잠도 자지 않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잠 자는 친구들 얼굴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발을 묶어 놓던 일,
선생님 신발을 감춰 놓고 밤에 몰래 놀러 나가서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던 일 등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는데......


오늘은 '어느 선생님의 수학 여행에서의 맺힌 한이 구구절절이 드러나 있는 학습지'를 소개할까 한다.

선생님의 다년간의 지도 경험과 수학 여행에서 골탕먹은 끔찍한 기억이 생생히 살아 있는 학습지를 받아 든 필자.
톡톡 튀는 질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그만 빵....터져버리고 말았는데......


차창 밖으로 손이나 머리를...? ( 내밀지 않는다, 내밀어 장애인이 된다. )
버스 안에서 멀미가 나면......? ( 옆 친구바지에 토한다, 비닐 주머니에 토한다. )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 할 때는......?
( 속히 제자리로 승차하여 인원점검을 받는다.
나 때문에 선생님께 욕먹고 우리 차가 제일 꼴찌로 가게 한다. )
위험한 곳은......? ( 가지 않는다. 가서 119를 부르는 등 선생님의 혼을 쏙 빼놓는다. )......등등

수학여행을 앞두고 성희롱, 성폭력, 안전 교육을 위해 만드셨다는
선생님의 장난기 가득한 '수학여행 사전 교육 학습지'를 풀어보면서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깔깔거리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학습지는 처음 풀어봐요~!!" 했다고 하니
'수학여행 가서 이런 행동은 절대 해서 안 됩니다...'하는 주입식 교육 보다는 몇 배 더 효과 있는 학습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서 입수한 수학여행 사전 교육 학습지를 이웃분들에게도 살짝 공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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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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