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랜드 마크, 비엔나의 살아 있는 역사,
비엔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심장으로 비유되는 슈테판 성당(Stephansdom).





12세기 중반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340년에 완성된 비엔나의 자랑 슈테판 성당의 외관과 상세한 내부 모습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포스트에서 상세하게 소개해 드렸으니  확인해 보시길 바라며.....





오늘은 슈테판 성당의 상징과도 같은 남쪽 첨탑에 헉헉거리며 올라가서 본 비엔나 전경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슈테판 성당의 남탑은 137m의 높이로 비엔나 어디서나 볼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남탑은 비엔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등대와 같아서 
시내에서 방향을 잃으면 슈테판성당의 남탑을 보고 길을 찾아오면 될 정도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멀리 나갔다가 다시 비엔나로 돌아올 때에 
슈테판성당의 남탑이 보이면 비로소 집에 돌아온듯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하면서 

남탑에 '슈테플(Steffl: Old Steve)'이라는 애칭을 붙여 부르며 사랑하고 있다.

비엔나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하는슈테플인지라 간혹 이 첨탑을 기어 올라가서 정복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브리엘 자츠버거라는 청년은 1658년 황제의 비엔나 개선입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남탑 꼭대기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며 황제를 환영코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황제의 입성 행렬은 지체가 되었고 날은 어두워 저녁이 되어버려
그 청년은 남탑 꼭대기에서 기다리다가 내려오기도 전에 어둠을 맞게 되었다.
청년은 두려움으로 밤새 남탑에 매달려 지내야 했는데 날이 샌 후에야 사람들이 사다리를 놓고 청년을 구출하러 올라갔다.
놀랍게도 겁에 질려 밤을 지샌 청년의 머리칼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부터 무모하게 남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은 머리칼이 하얗게 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슈테판성당의 남탑에 직접 올라보기 위해 성당 뒷편에 위치한 조그마한 문으로 들어선다.
슈테판 성당을 관람하는데는 입장료가 없지만 남탑에 올라가려면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3.50유로나......





북탑은 남탑보다 훨씬 낮은 60m의 높이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는데
137m나 되는 남탑은 순전히 계단을 통해서만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발 하나 겨우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본다. 하나.....둘....셋....... 





백 쉰 하나, 백 쉰 둘, 백 쉰 셋.......헥헥.......땀이 비오듯 오르기 시작한다.






군데 군데 낙서들과 조그마한 창틀들이 있으면 멈추어서 사진도 찍어보고......




 
이백 스물 일곱, 이백 스물 여덟......@.@ 아이고 다리야......계속 뱅글뱅글 올라가니 머리까지 아파 온다.





으음....이런 곳까지 와서 낙서를 휘갈기는 사람들이 있구나.





여기도 낙서....저기도 낙서.....성한 벽이 안 보일 정도로 낙서 일색이다. 그래도 한글 이름이 없어서 다행이다.





삼백 열 하나......삼백 열 둘.....
어.....! 정신이 혼미해서 계단 수를 얼마까지 세었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에라......! 계단 수 세는건 포기해 버리고 계속 올라간다......
헥헥헥헥헥헥.....땀 삐질 삐질 삐질 삐질.......흐른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빙글빙글 계단을 돌다보면 나타나는 문양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어둠을 뚫고 비추는 햇살도 너무나 반갑고......





한참이나 오르니 이렇게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다 왔나 보다...하고 좋아했더니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한다.





이제 다 와 가는건가? 평소에 운동 좀 해둘껄......어두운 계단을 하염없이 뱅글뱅글 오르자니 정말 정신이 혼미하다.





지상에서 72m 지점에 이르면 이렇게 넓은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한때 화재 감시를 위한 소방대가 주둔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곳에 근무하던 소방대원들도 모두 걸어서 올라갔다고.......





지금은 소방대원은 없고 텅빈 공간에 조각상들만 비치되어 있다.





히잡 쓴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길래 황망하게 한 컷......





드디어 전망대의 문이 보인다. 만세~~~!!!!


탑 위 전망대의 공간은 비교적 좁은 공간이다.  올라가면 사방이 확 트여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아서 약간은 실망이다.
첨탑 위인지라 조그마한 기념품 샵과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하나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다.





기념품들은 비엔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 가격은 비싼 편이다.





전망대의 벽에도 이곳을 왔다 간 세계 각국 사람들의 낙서가 잔뜩......손이 닿을 수 있는데까지 열심히 써놓았다.





훤하게 트여 있으면 좋으련만 안전을 위해서 창을 작게 내었나보다.
조그마한 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보려면 앞 사람이 물러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창을 통해 밖으로 내다보니 와아.....!
비엔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아래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25만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성당 지붕의 모자이크 타일도 손에 잡힐 듯 하다.
저멀리 왼쪽에 교회처럼 뽀족한 첨탑을 갖춘 건물은 비엔나 시청이 분명하다.
그리고 하얀 쌍둥이 첨탑은 보티프 교회(Votivkirche), 
가운데 초록색 돔을 갖춘 건물은 성 베드로 교회(Peterskirche)이다.





정문 양쪽에 서 있는 이교도의 탑을 줌인해서 보니 장식들이 너무나 생생하고 정교하다.
성당 바로 아래에서 올려볼 때에는 그 모습을 잘 파악할 수 없었는데......






멀리 보이는 보티프 교회(Votivkirche, 봉헌교회)를 향해 줌을 당겨보았다.

마치 하얀 레이스를 늘어뜨린 것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쌍둥이 첨탑이 너무나 아름답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암살 미수 사건을 감사하여 그 동생 멕시코 황제 페르디난도 막시밀리안이 세운 교회인데
1879년에 봉헌된 이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네오-고딕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비엔나에는 가끔 직사각형으로 된 건조한 빌딩들도 군데 군데 보이지만 대부분은 5층 이하의 건물들이 많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좁고 어두운 계단을 뱅글뱅글 돌아올라올 때는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발 아래 펼쳐지는 비엔나의 기품있는 건물들을 보니 왜 슈테판 성당이 비엔나의 랜드마크로 불리우며
비엔나 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지가 실감이 되었다.

오를 때는 정말 '개고생'이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성취감과 아울러 비엔나를 발 아래 두는 쾌감을 맛볼 수 있는 곳.
그곳은 바로 비엔나 슈테판 성당 남탑 전망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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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 궁전과 함께 비엔나의 랜드마크라 불리우는 슈테판 성당(Stephansdom)을 찾아 보았다.

비엔나 구시가지 중심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슈테판 성당 앞에 이르니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아래 성당의 위용이 정말 대단하다.




전체적으로 성당이 침침해 보인다. 야간 조명이 약해서 그런가? 
자세히 살펴보니 성당 전면과 남탑 일부가 공사중이라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아름다운 슈테판 성당의 완벽한 모습을 대할 수 없어 약간은 아쉬웠지만
유럽의 많은 유명 성당들이 대부분은 언제나 보수공사 중인걸 많이 보았던지라 여기서도 그런가 보다....할 수 밖에 없었다.





12세기 중반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340년에 완성된 슈테판 성당은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나,
1359년에 고딕양식으로 재건축되었고, 실내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비엔나 사람들은 이르기를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이 비엔나의 영혼이라면
슈테판성당(Stephansdom)은 비엔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라고 말한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전쟁의 포화도 견디어낸 슈테판 성당은 그야말로 비엔나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밤늦은 시간 도착하여 외부만 둘러보고 간지라 다음날 낮시간에 다시 성당으로 가보았다.
입을 다물지 못 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함께 밤시간에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지붕의 사라센 문양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남탑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앞에 선 남녀가 너무나 왜소하게 느껴질 만큼 성당의 규모가 크다.
멀리서 찍지 않으면 제대로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없는지라 성당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보이는데로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본다.

















성당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성당 정문으로 들어가 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 정문은 '
거인의 문'(리젠토르: Riesentor)이라고 부른다.
문의 이름은 '거인의 문'이지만 문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문으로 들어가니 성당 입구 벽의 문양이 참 특이하다.
돌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마치 노끈을 정교하게 엮어서 세워둔 것 같이 보인다.





슈테판성당은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장례 미사를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소년시절 성가대원으로 활약한 곳이기도 한 곳 답게 엄청나게 큰 파이트 오르간도 눈에 뜨인다.




중앙 제단 뒷편에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2차 대전의 포화 중에서도 손상을 입지 않고 온전히 보존이 되었다.





슈테판성당의 성직자들은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리창을 떼어 지하 카타콤(지하묘지)에 숨겨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중세 건축의 당시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당 천정을 줄 지어 떠받치는 큰 기둥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기둥은 망토를 걸친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석상이다.
특이한 것은 성모의 망토 안에 여러 사람의 얼굴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성모의 망토에 싸여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석상은 
'
보호의 망토를 입은 성모(Madonna with the Protective Cloak)'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조각품이다.




슈테판성당의 카타콤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내장을 비롯해서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트(씨씨)의 내장 등 합스부르크 왕조 인물들의 내장들이 귀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다시 성당 바깥으로 나와 이번에는 높이 솟아있는 탑들을 살펴본다.



늘 흐리고 잔뜩 찌푸린 비엔나의 겨울 오후에도 가끔 이렇게 파아란 하늘이 드러날 때가 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이고 있는 지붕 장식은 하나하나가 다 정교한 예술 작품이다.








정문 양쪽에 서 있는 두개의 탑은 모양이 이교도 사원의 탑과 흡사하게 생겨서 '이교도의 탑'이라 불리운다.





슈테판 성당의 뒷편에 있는 탑은 각각 남탑과 북탑이다.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남탑이 완성된 것은 1359년이었고
1450년, 프레데릭 3세 황제 때에 북탑의 건설이 착수되었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독수리탑이라고도 불리우는 북탑은
남탑의 장엄함에 비추어 규모면에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남탑과 대칭하여 세우려 했던 북탑은 1511년에 꼭대기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장식만 추가된채 공사가 중단되었다. 
137m인 남탑에 비해 북탑의 높이는 60m로 규모가 훨씬 작지만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남탑에 비해서 북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올라갈수 있다.
전망대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품메린(Die Pummerin,큰 종)가 있는데 무게는 21톤이나 된다고......




슈테판 성당의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137m 높이의 남탑이다.
비엔나의 사방 어디서나 볼수 있는 남탑은 마치 등대와 같아서 
시내에서 방향을 잃으면 슈테판성당의 남탑을 보고 찾아오면 될 정도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슈테판성당을 보고 이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듯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하며 
슈테판성당의 남탑을 '슈테플(Steffl: Old Steve)'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하고 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비엔나의 랜드마크 슈테판 성당.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137m 첨탑의 343개의 계단을 헐떡이며 올라가서 찍은 사진은
다음 포스트에서 소개해드리길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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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인가......분당에 장애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일이 기억난다.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유인즉 장애인 집단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이 주변에 많으면 아이들에게 정서적,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장애인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 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건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렇듯 전혀 위험하지도 피해를 주지도 않는 장애인 복지시설 건립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대단한데
만일 우리 지역 한복판에 화장장이나 공동묘지를 세운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결사항쟁하는 것도 모자라서
삭발을 하거나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열혈지사도 생길지도 모른다.
장례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는 것이 정서상으로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겠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기 동네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 듯 싶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비엔나(빈, Wien)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 공동묘지가 들어서는 것을 환영한다.
우리와 장묘 문화가 확연히 틀리는 이곳의 시민들은 자기 집 뒷마당에 공둉묘지가 있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23개구로 구성된 비엔나 시내에는 무려 46개소의 공동묘지가 있어
비엔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두군데 이상의 공동묘지를 찾아 돌아보고 간다고 한다.





46개소의 공동묘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뭐니 해도 1874년에 조성된 '비엔나 중앙묘지(Wiener Zentraltriedhof)'이다.
이곳은 빈 11구 짐머링에 위치한 시립묘지인데 시내 중심가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내외 거리이다.





묘지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아름답게 줄지어선 가로수길 저 뒤로 묘지들이 펼쳐지고 제일 가운데 뤼거 교회(Lueger Kirche)가 보인다.





중앙묘지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 교회는 중앙묘지 건립 추진 당시 시장이었던 칼 뤼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뤼거교회다.
이곳은 영화 '제3의 사나이'와 베토벤의 일생을 주제로 한 '불멸의 연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매년 200만 명의 순례자들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중앙묘지가 오늘날처럼 유명하게 된 것은 순전히 비엔나 시의회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건립 초창기에 묘지가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시장 칼 뤼거는
'유명인들의 젠트랄프리드호프 명예묘지 이장 추진법'을 통과시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예술인들의 묘지를 이장, 통합키로 하고
1881년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필두로 음악가, 학자, 정치인, 건축가 등과 역대 대통령들의 무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비엔나 시민들은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중앙묘지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장례식에도 참가하는 등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유명 인사들이 속속 이 중앙묘지에 묻히게 되자
시민들은 그들 자신도 죽은 후에 좋아하던 예술인들과 함께 묻히고자 묘지 구입이 쇄도하였고

중앙묘지는 늘어나는 주문으로 몇 번에 걸쳐 묘역을 확장하고 또 확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현재는 비엔나 시민들의 무덤까지 통합 5개의 공동묘지까지 추가되어 묘소가 약 33만기에 달하는데 
대부분 가족 묘지이므로 한 묘소에 4기까지 합장할 수 있으니 무려 120만기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묘지이다.





안내도를 보면 중앙묘지의 규모가 짐작이 되는데 
제일 가운데 1번이 뤼거교회, 2번이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 등 음악가들의 묘역인 32A 구역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묘지란 그리 유쾌한 곳이 못 되는데 
대부분의
묘지들이 깊은 산속에 위치한데다 밤이 되면 볼록볼록한 봉분 속에서 원혼들이 일어나 
머리를 풀고 피를 흘리며 쫒아올 것 같은 으시시함으로 인해 누구나 가기를 기피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묘소이다.

하지만 봉분 없이 평토장을 한 비엔나의 묘소들에는 예술작품 같은 묘비 조각들이 놓여 있어 보는 이들을 감탄케 한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비 조각으로부터 현대미가 우러나는 추상 조각까지.....
단순한 묘비명에 그치지 않고 고인들의 과거와 그들의 재주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묘비에 조각하여 고인을 그리며 회상하게 하며
묘비의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주위 경관으로 인해 묘지가 아
니고 마치 조각공원에 온 듯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많은 유명인사들의 묘소 가운데서도 제일 인기 있는 곳은 역시 32A구역에 위치한 음악가들의 묘소.
사진에서 가운데는 모차르트의 묘소, 왼쪽은 베토벤, 오른쪽은 슈베르트의 묘소이다.


 


사실 모차르트의 묘소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 묘비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가난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모차르트 사후 슈테판 대성당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공동묘지에 매장되었지만 돌보는 사람도 없던 묘지는 곧 잊혀지게 되었다.
후에 시 당국이 모차르트 무덤 자리를 조사했지만 확증을 잡지 못해 무덤이라 추정되는 자리에 1859년에 기념비를 세웠고
1891년에 이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기념비 위의 조각상은 그의 아내 콘스탄체의 모습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운 베토벤은 비엔나에 35년간 살았다.
말년에 귓병으로 거의 듣지 못하게 된 베토벤은 매우 신경질적이 되어 이웃과도 마찰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2만명이 넘는 비엔나 시민들이 몰려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생전에 베토벤을 몹시 존경하여 베토벤 사후 관을 운구하기도 했는데
베토벤 곁에 묻히길 원했던 그의 유언대로 그의 묘소는 지금도 베토벤의 바로 옆에 있다.




비엔나를 사랑하고 노래한 음악가들은 갔지만
그들의 묘소는 음악도들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놓고간 꽃들과 양초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누가 묘지를 혐오 시설이라고 했던가......
문화 명소이자 비엔나의 또다른 관광 상품으로 떠오른 비엔나 중앙묘지는
자기의 삶을 성찰하고 남은 인생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사색의 장소가 아닐까.....


역사를 주도한 명사들과 불멸의 음악가들의 흔적과 조우할 수 있는 곳,
죽음조차 아름다울 수 있는 그곳은 바로 비엔나 중앙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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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이상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비엔나(빈, Wien)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말러, 쇤베르크.......
수많은 서양 음악가들이 그들의 본거지로 삼은 품위있고 아름다운 도시 비엔나.

과거와 현대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 비엔나의 거리는 트램이 사통팔달로 다니고
벤츠 , 아우디 등의 고급 승용차를 비롯해 정류장에는 택시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지만 비엔나를 비엔나답게 해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부가 끄는 마차 휘아커(Fiaker)이다.






호프부르크 왕궁, 스테판 성당, 국립 오페라 극장.......비엔나 중심 거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분주히 오가는 마차들이 비엔나 여행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준다.





휘아커(Fiaker)라는 말은 프랑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 파리의 생 휘아커
(St Fiacre)호텔에 앞에는 요즘 택시처럼 마차들이 모여들어 손님들에게 서비스했는데 
파리의 유행이 비엔나로 흘러들러온 이후 돈을 내고 타는 마차나 그런 마차를 모는 마부을
휘아커라고 불렀다.




비엔나에 휘아커(Fiaker)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93년이라고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3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1800년대에 마차가 인기 절정일 때에는 비엔나에만 마차 800여대가 있었고 마부는 1,0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십대 정도가 호프부르크 영웅광장, 슈테판성당 옆, 그리고 국립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휘아커는 대체로 두마리의 말이 이끄는데 거기에 반해서 말 한마리가 끄는 마차나 마부는 아인슈패너라고 한단다.
우리나라에서 비엔나 커피라고 하는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 크림을 잔뜩 끼얹어 글라스에 담아주는 커피를 아인슈패너라고 하는데 

카페로 들어오기 어려운 마부들이 한손에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차위에서 마시게 된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아인슈페너는 혼자 있는 사람, 또는 별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는데
카페에 와서 갈데도 없는지 장시간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청승을 떠는 사람이 아인슈패너라나.....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겠지만 마부들 중에서는 여자 마부도 눈에 뜨인다.





까만 망또에 까만 중산모를 쓰고 마차를 모는 여마부들을 보니 남자 마부보다 더 멋져보이고 어쩐지 골라서 타고 싶은 마음도 든다.





비엔나 시내에서 휘아커(Fiaker)가 큰 길을 다닐 때에는 모든 차량에 우선하여 다닐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울 중심지 대로에 이런 마차가 느릿느릿 다닌다면 어떨까.....
택시, 버스들의 경적 소리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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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도 길게 느껴지는 유럽의 겨울 밤.
오후 2시만 되어도 마치 저녁 5시 해질녘 같은 느낌이 들고
저녁 5시 쯤 되면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시계를 보지 않으면 한밤중인가 생각될 정도인데
어두워져 춥고 스산한 느낌마져 드는 비엔나 거리에서도 유난히 따스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비엔나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린다는 전통 레스토랑 '호이리게'.
호이리게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는 그린칭 마을은 도심에서 좀 떨어진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비엔나의 고풍스런 맛을 한결 더해주고 있다.





'호이리게(Heuriger)'란 '그해 생산된 포도로 만든 햇와인(Heuriger Wein)' 이나 그런 '와인을 파는 선술집같은 레스토랑'을 이르는 말이다.

호이리게(Heuriger)는 올해의란 뜻을 가진 Heurig에서 기원되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산 보졸레누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듯.



그린칭 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한 호이리게는 단연 Bach & Hengl.
호이리게 Bach & Hengl로 들어서니 노란 불빛과 함께 오스트리아 전통 장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바깥에 탁자를 베풀어놓고 식사를 하며 호이리게를 즐기곤 한다는데
날이 추운지라 마당은 쓸쓸하기만 하여 레스토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독일 메르켈 총리와 클린턴도 왔다간 집이라고 알려진 Bach & Hengl의 벽에는
얼굴만 봐도 이름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빼곡이 붙어 있다.
사진이 깔끔하게 붙어 있으니 유명인들의 싸인이 붙은 우리나라 맛집보다는 어쩐지 품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음식은 주문하면 웨이터들이 테이블까지 가져다주는 부페식으로 
닭고기, 돼지고기, 소시지, 각종 샐러드와 피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 모듬 소시지, 감자, 샐러드 등의 모듬 세트는 1인당 12.5유로 정도인데
이렇게 큰 그릇에 담겨져 나오므로 개인 접시에 덜어먹으면 된다.





화이트 호이리게(Heuriger, weiB)를 시키면 이렇게 큰 유리병에 담아서 내어오는게 특이한데
맑고 투명한 호이리게의 빛은 보는 이들의 미각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주 약한 음주에도 '깨꼬닥'하고마는 필자이지만 비엔나 특산 호이리게를 맛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조금씩 맛을 보았는데 맛은 보졸레누보와 거의 비슷한거 같았다.(술맛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릴 수 없는 필자라 정확치 않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호이리게를 소다수와 섞어 마시기도 한다는데 대체 어떤 맛일지 그것 또한 궁금하다.





샐러드 후에는 스프가 나온다. 손잡이 달린 스프 컵에 담겨나온 스프는 보기에는 그냥 멀건 국물이다.





스푼으로 건더기를 떠보니 우리 소면같은 국수가락이 건져진다. 이것도 스파게티 종류인가....?
맛은 고기국에다 국수를 만 것 같은 맛이다. 거부감도 없고 맛도 제법 훌륭하다.





스프를 먹고 나니 감자와 함께 메인 요리가 나왔다.
본 고장 소시지와 정통 햄, 닭고기 등.....접시에 하나 가득 담긴 육류 들이 보기만 해도 침이 줄줄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줄줄이 비엔나'라는 CF로 유명해졌던 비엔나 소시지(vienna sausage)는
미리 조리한 원료육을 작은 창자 굵기로 성형하여 훈열, 가열한 제품으로
비엔나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해서 비엔나 소시지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4cm정도의 작은 소시지를 비엔나 소시지라고 말하는데
본 고장 비엔나 소시지는 사진에서와 같이 15cm 길이의 양 내장에 충전된 소시지로 독일어로는 Wienner라고 표기한다.




소시지, 햄, 닭고기, 감자.....등을 한 접시에 세팅해 보았다.
육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환상적인 음식이지만 채식을 주로 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왠지 약간은 느끼한 식단.....
그것도 바로 앞에 산더미 같이 쌓인 각종 햄, 소시지들을 보며 먹으니 몇개 못 먹고는 금방 질려 포크를 놓아야 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아코디언의 앙상블로 특징지어지는 슈라멜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호이리게를 찾는 사람도 많다는데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두 팀이나 와 있었던터라 
이들을 위해 비엔나 전통 음악 보다는 만남 등 한국 음악을 더 많이 연주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아....그리고 이 연주는 무료가 아니므로 반드시 팁을 준비해서 주어야 한다고 한다.





멋진 슈라멜 음악을 들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쳐가니 드디어 후식이 나왔다.





후식은 오스트리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사과 파이 아펠 스트루델(Apfelstrudel)이다.
아펠 스트루델은 크기가 보통 가로 30cm 정도 되는 두툼한 크기의 빵으로 
그 안에 사과를 통으로 썰어 넣고 말린 건포도를 함께 넣어 잘 구워낸 파이이다.





우리는 느끼한 육류를 먹고 난 후에 엄청나게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는 서양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서양인들은 속이 썩도록 달콤한 파이나 케이크가 육류의 느끼함을 없애준다고 생각한단다.
하긴....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 계란 후라이나 햄버거를 먹는다니......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아펠 스트루델.
하지만 속이 뒤집어지도록 달콤한 스트루델을 햄과 소시지, 닭고기등 육류를 잔뜩 먹은 후에 먹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뜨겁고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서도 "어...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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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에서 130km, 제 2의 도시인 그라쯔(Graz)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블루마우가 

오스트리아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가축들을 키우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 블루마우에 1997년 온천 리조트가 개장되면서부터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온천 리조트의 정식 명칭은 '로그너 바드 블루 마우 호텔 앤 스파(Rogner Bad Blumau Hotel & Spa)'.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트라이히 훈데르트바써(Frieden  streich Hundertwasser)가
건축주인 로버트 로그너의 제안을 받아들여 호텔과 온천 시설 계획에 참여하여 설계한 이 독특하고도 예술적인 휴양지는
찾는 사람들을 스트레스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특별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초대해준다.




1997년에는 오스트리아 관광 환경상을,
1998년 독일 여행 기자 협회에서 수여하는 관광 서비스 상을 받기도 한 
이 작은 마을 블루마우는 동화의 나라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랍다.





도시 건물의 주조색을 이루는 회색 건물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핑크, 블루, 화이트, 레드......보기만 해도 포근한 느낌이 들고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물들 뿐이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공존하는 건물은 땅에서 금방 솟아난 듯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있는 느낌을 전해주고
금방이라도 동화 속의 난장이가 집안에서 불쑥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마져 들게 한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를 그대로 살려서 지은 집들은 성냥갑처럼 반듯한 전형적인 집 모양을 거부하고
한쪽은 낮고 한쪽은 높으며 지붕은 유선형으로 물결치듯 서로 이어지다가 땅으로 연결되며 언덕으로 이어진다.



"자연에는 자로 잰 듯한 반듯한 곡선은 없다."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처럼 
건물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통해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준다.





블루마우의 건물은 찌겔 하우스, 스타인 하우스 등으로 구분되는데
찌겔 하우스는 재활용기와를 사용했고 스타인 하우스는 돌을 주워 쌓아서 환경 보호에도 일조를 했다.





블루마우의 모든 지붕은 1m이상 흙으로 덮고 옥상 정원을 만들었는데
지붕이 온통 잔디와 나무로 우거져 있어
언덕을 산책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붕 위로도 돌아다니게 된다.




이는 훈데르트바서가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 정원으로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무를 심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항상 주장하였다.




또 훈데르트바서는 집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생각하는 집은 획일화되고 지루한 전형적인 집 스타일에서 벗어나 높게, 길게, 둥글게, 각지게도 지을 수 있고
돌, 벽돌, 금속, 유리, 나무, 짚 등 건축 소재에도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인간의 공간을 자연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눈 구멍 집(Eye-slit house), 숲의 마당 (Forest-courtyard house), 롤링 힐(Rolling-hills)과 이동 언덕 집 (Shifted-hills house)과 같은

훈데르트바서의 다양한 건축 컨셉들은 모두 이곳 블루마우에서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훈데르트바서였기에 가능한 작업이었으리라.....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며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시 주택 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이곳 블루마우의 2,200개나 되는 창문은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데
블루마우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창문을 통하여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하고 자신의 동화의 성의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이다.





호텔 입구에는 이렇게 3가지 색깔의 돌에서 온천수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이는 물 온도가 제각기 다른 이 온천의 세가지 물줄기를 상징한다.
제일 뜨거운 온천수는 무려 100도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 뜨거운 물을 잘 활용치 못하고 그냥 내버렸다고 한다.





동화 마을 블루마우 리조트에는 온천수가 나오는 237개의 객실과 24개의 아파트, 다양한 스위트룸 등 총 312개의 객실이 있다.



앞으로 객실 수는 400개로 확장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객실 312개의 편의를 위한 종업원은 무려 320명이나 된다.




모든 객실과 온천욕을 즐기는 워터 월드와 사우나 시설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결 통로로 이어져 있는데
복도나 계단도 직선을 거부하는 곡선으로 물결치듯 이어져 있다.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의 객실은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없이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히게 된다.




객실에는 객실 번호가 쓰인 명찰이 붙은 가운이 준비되어 있는데 
투숙객들은 실내외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사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갈 때 이가운을 입고 리조트 안을 활보한다.




욕실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뜨이며 욕실 바닥조차도 직선을 거부하며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루마우 리조트의 자랑거리는 단연 스파 시설이다.
312실의 객실에는 모두 온천수가 공급될 뿐만 아니라 대형 워터 월드 시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넓은 워터월드는 실내외 수영장, 자쿠지, 어린이 수영장, 파도풀, 사우나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한겨울에도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방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mickeyeden

실내 온천에는 핀란드식 사우나, 로마식 욕조, 터키식 스팀 욕조, 아로마 룸 등 다양한 사우나 및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데 
실내 스파 시설은 너무나 넓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 마치 놀이 동산에 온 것처럼 여기저기 구경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완벽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심신의 회복을 꾀할 수 있으며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리조트의 다양한 시설을 섭렵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45홀의 골프코스가 있어 골프 마니아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가 진정한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는 꿈을 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를 통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이고 단란한 건축물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현실로 실현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훈데르트바서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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