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도시','동양의 베니스' 라고 불리는 소주에서 4대 명원과 대운하를 돌아보았으면
이제 서북쪽에 있는 '호구'에 올라 보아야 한다. 

 

송대 시인인 소동파는 "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 라고 했는데
이는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뜻인 만큼
호구의 경치는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오왕 합려의 무덤인 '호구'는 정상이 40m 정도 되는 작은 언덕에 조성되었는데 
이 호구산은 이 근방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호구의 주요 볼거리는 호구탑,단양전,감감천,시검석, 검지....등이 있는데
돌계단을 통해 호구를 올라 얼마 가지 않으면 조그만 샘이 나타난다. 

 

 

샘은 이름하여  감감천(憨憨泉).
이 샘물은 양대(梁代)의 고승인 감감(憨憨)이 샘물을 얻으려고 맨손으로 샘물을 파는
정성에 감동한 하늘이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을 내려 주었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단다. 

 

 

 

 

계절 마르지 않은 감감천 샘물은 수질이 아주 좋다고 하며
눈 먼 사람이 이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을 뜨게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 온다.

감감천 샘을 지나자 오른쪽에 '시검석(試劍石)'이라는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 나온다.
바위 덩어리는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중간이 쩍 갈라져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전한다.  

 

 

 

 

 

춘추전국시대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평소에 보검을 갖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라이벌이었던 이웃 월(越)나라에는 천하의 명검을 만들기로 유명한

구야자(歐冶子)가 살고 있었기에 더 더욱 합려의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러던 중 소주 성내에 간장(干將)이라고 하는 대장장이에게 천하 제일가는 가장 좋은 보검을 만들 것을 지시하게 된다.

간장은 왕명을 받들어 정선된 청동만으로 칼을 주조하기 시작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청동이 3년이지나도 녹지 않는 것이었다.

왕의 독촉은 매일 매일 계속되고, 청동은 녹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청동을 하루 속히 녹여 칼을 만들 수 있을까를 염려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 막야(莫耶)가 청동을 녹일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부부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용광로에 넣고 소녀 3백명이 풀무질을 하는 것이었다.
과연 막야의 말대로 하자 과연 청동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하의 보검이 만들어지자 한 자루에는 막야(莫耶)라는 이름을 새겼고, 또 다른 한 자루에는 간장(干將)이라고 새겼다. 

 

그러나 막야(莫耶)는 이 보검이 햡려의 손에 들어가면
이런 보검이 또 다시 만들어질 것을 두려워한
합려가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마침 임신을 하고 있던 부인에게 간장검(干將劍)을 주어 피신시키는 대신

합려에게는 간장검이 아닌 막야검(莫耶劍)을 바쳤다.
그때 마침 호구를 걷고 있던 합려는 천하의 명검을 얻었다는 기쁨에 그 칼로 옆에 있는 큰 돌을 치니

돌이 무우 베듯 갈라졌고 보검은 하나의 흠집도 없이 완전무결하였다.
이것이 호구산의 시검석(試劒石)의 유래이다.

 

 

 

그러나 간장(干將)이 우려했던대로 천하 명검을 얻은 오왕은
이와 같은 훌륭한 보검이 또 다시 세상에 만들어질 수 없도록 간장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간장막야(干將莫耶)'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만든 칼이란 뜻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명검 혹은 보검을 비유한다.  

 

결국 남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장이 비명횡사한 지 18년이 지난 어느 날,
합려는 복수를 위해 간장검을 차고 온 간장의 아들이 휘두른 간장검(干將劍)에 의해 죽고

간장검과 막야검은 청룡과 적룡으로 변해 청년은 청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만이 남아있다.
(이야기 출처:

http://cafe.daum.net/mhcc

 

 

과연 이 바윗덩어리가 오왕이 단칼에 내리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천하의 명검을 손에 얻기 위해 그 검을 만든 사람을 죽이고 다시 그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현장에 서니
단칼에 쪼개 버릴 것은 바위가 아니고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과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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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요석궁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로써
조선시대 이후로는 최부자가 터를 잡아 오늘까지 이어온 곳이다.




동방명주(東方明珠)라고 불리웠던 요석공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딸로써 원효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분이고

경주 최부자는 12대 300년 동안을 만석군으로써 이 일대를 지켜왔으니 
요석궁터는 천오백년 이상 동안 경주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석 지기 최부자의 일년 소작 수입은 삼천석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 일천석은  집 안에서 쓰고

일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데에, 나머지 일천석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에 썼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나라를 잃고 울분을 달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으며
최부자 형제들 또한 독립 운동의 주체가 되어
독립 자금을 대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본이 되었다.





최부잣집을 찾는 과객은 항상 백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과객들이 떠날 때에는 과메기와 하루 양식, 노잣돈을 꼭 챙겨보냈다고 하며

독립운동 당시 최부잣집을 은신처로 삼았던 인사들에 의해 최부잣집의 '가정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의 요석궁 식당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가정식을 선보이는 요석궁 식당은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동생 최윤의 집인데

건물은 이백년이 넘은 고택으로써 고가구나 서화는 모두 실제로 최부잣집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당시 요석궁의 사랑채에 은둔해 있던 신돌석 장군이 사랑채의 대들보를 혼자 들어올린 일화는 유명한 일화이며
영왕(英王) 이은 공과 의왕(義王) 이강 공도 최부잣집에서 머물며 음식과 바둑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최부잣집 관련 상세 포스트 : 경주 최부잣집의 화사한 봄날





지금도 요석궁은 전직 대통령, 각계 유명 인사, 각국 대사들이 즐겨찾는 경주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점으로 유명하며

경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라서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힘들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우러나는 요석궁의 '최부잣집 가정식'을 체험해 본다.





메뉴는 3만, 5만, 7만, 10만원 짜리 상차림이 있는데(부가세 별도) 제일 싼 3만원짜리 '계림정식'을 주문했다.

무늬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매우 소박한 식기는 직접 운영하고 있는 가마에서 구운 전통 도예가의 작품이다.





먼저 나온 전체는 새우 샐러드.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담백한 잡채.





소량의 광어회.....





삼계말이 두 점...





해파리 냉채.





수삼 떡갈비...





장어 구이...





파전...등이 전채로 나온다.





전체가 끝나면 식사가 나오는데 반찬에는 어느 상이든 빠지지 않는 김치...





일반 백김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최부잣집에서만 담아먹었던 전통 음식인 사인지.
일반 백김치에 비해 더욱 감칠맛이 나고 풍미가 있어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라 한다.





열무 물김치......





삼색 나물....





특히 최부잣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본 반찬인 집장이 눈에 뜨인다.

 다시마와 부추 등 여러가지 해조류와 채소등과 고기를 메주가루등과 함께 솥에서 16시간이상 달인 최부잣집 전통 음식이다.





그 외의 기본 반찬들을 살펴 보면.....
1. 돔베기(상어 고기 토막이란 뜻)  2. 북어 보푸라기  3. 소라 밥식혜  4. 멸장  5. 우엉 무침 6. 오이 소박이
특히 멸장은 일반 멸치볶음과는 다른 불을 지피고 8시간이상 정성껏 달여낸 반찬이다.





그리고 생선구이....





맛이 강하지 않은 된장 찌개...





그리고 밥과 쇠고기무국 등이 나오는데 깜빡하고 밥과 후식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열심히 먹느라고..^^)

후식으로 오미자차, 복분자차...등 직접 만든 차를 제공하는데 요석궁에서는 커피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요석궁 식당에서 제공되는 대부분의 야채나 채소는 직접 키운 것인데 심지어 쌀,콩도 직접 재배한 것이며
김치, 밑반찬, 된장, 간장, 각종 소스 등은 비용이 많이 들어도 요석궁에서 직접 제조한다고 한다.
재배하지 못하고 구입해야 하는 것은 산지에서 직접 선별하여 유기농이나 최상품을 구입한다고 하고
천일염은 2년 동안 간수를 뺀 후 사용하는 등 모든 식재료에서부터 '최부잣집 가정식'을 이어간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미지 출처: 요석궁 홈피

지금껏 '최부잣집 가정식'을 이어온 요석궁의 제일 싼 밥상을 소개해 드렸다.
 일인당 10만원이나 하는 '요석 정식'을 먹어봐야 제대로 된 요석궁의 음식을 평할 수 있겠지만
포스팅을 위해 지출하기에는 너무 심한 출혈인 듯 해서 요석궁 홈피에서 살짝 퍼온 그림으로 대신한다.
신선로, 자연산 송이, 전복 요리...보기만 해도 침넘어가는 요석 정식을 체험할 기회가 오면 그때 다시 포스팅하기로 하고......




경주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 '최부잣집 가정식'  3만원 짜리 밥상을 체험해본 필자의 소감을 말하자면.....

다른 한정식집 3만원짜리 화려한 식사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소박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300년 동안 한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을 그대로 선보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되며
경주를 방문해서 최부잣집도 둘러보고 요석궁에서 최부자의 밥상을 받아 본다면 더할 나위없이 멋진 여행이 될 것 같다.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300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 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면서도 소작인들의 형편을 돌보고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한 최부자가 
그 당시 받았을 밥상보다는 이곳에서 내가 받은 밥상이 더욱 화려한 밥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어두워진 요석궁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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