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도 우리의 인사동 거리와 같은 전통 고문화거리인 유리창 거리가 있다.

유리창 거리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아.....가게 문이 다 유리창으로 되어있나보다...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서 보니 가게 문이 유리창인 집도 많긴 했지만 그것에서 기원한 지명은 아니었다.

유리창(리우리창,琉璃倉)거리의 기원은 원나라 시기에 대도읍을 건설할때이곳에서 채색 유리기와를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 이후 명나라 때에는 은퇴한 관료들이 많은 도서와 골동품들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과거시험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서적을 빌려보거나 쓰던 붓등을 팔고 돌아가곤 하여 이곳 만의 독특한 문화분위기가 차차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천안문 주변에 있던 도서 시장과 골동품 시장이 점점 유리창 거리로 이전되니 이 때부터 유리창 거리는 고문화거리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인사동 거리는 고가옥은 별로 없고 상점만 있는데 비해 이 거리는 양쪽에 늘어선 가게들이 다 고가옥이다.

천진의 고문화거리나 북경의 유리창거리 모두 다 전통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우리의 인사동과 상당한 비교가 되었다. 

 

 

유리창 거리에는 특히 붓이나 종이,골동품을 파는 점포가 밀집되어있는데 예전에 과거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낙방하고 집에 돌아갈 때 노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문방구들을 이곳에서 많이 팔고 갔기 때문이다. 

 

 

길에는 특히 인력거가 많이 보이는데 유리창거리와 전통 골목인 '후통'을 잇는 관광객용 인력거이다. 

 

 

붉은 비단과 수술로 장식된 인력거는 왠지 세워서 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서 밤에 후통 거리를 돌아볼 때 타보기로 했다.

 


북경 중심가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여름인데도 우리나라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장식하는 거리의 장식들이
거리 전체를 가로질러서 끝도 없이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일반 서민들이 사는 집에는 전기가 부족하여 대부분 어두침침한 조명인데 반해
북경 시내 한복판의 전광판들은 엄청난 물량 공세로 북경 시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북경의 명동이라고 불리우는 왕부정(王府井) 거리는 특히 화려하기가 명동 못지 않은 곳인데 백화점과 화려한 점포들이 줄을 지어있는 곳이다.

왕부정거리의 자랑 중의 하나는 단연 길 옆에 끝없이 늘어선 포장마차.
중국인들의 음식 문화는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제외하고 다리가 있는 것은 책상을 제외하고 다 먹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반증이나 하듯 없는 것이 없는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다. 

특히 꼬치 요리가 많은데 상상을 초월한 꼬치 요리가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양고기 꼬치, 닭고기 꼬치.....뭐 이런 건 기본이고
뱀 꼬치, 귀뚜라미 튀김, 바퀴벌레 튀김, 전갈 튀김.......갖가지 기이한 음식은 다 있다.

그리고 번데기 꼬치도 포차마다 있는데
평소에 길거리에서 파는 번데기도 즐겨먹던 나는 중국 번데기 꼬치를 보곤 거의 기겁할 뻔 했다.

남자 엄지 손가락보다 더 굵은 번데기가 잔뜩 꿰어진 꼬치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쳐서
모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글로벌한 입맛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던 필자의 식욕마져도 싹 없어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왕부정 거리에서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공안 아가씨를 만났다.

진 찍자니까 얼굴이 빠알개지며 포즈를 취하는데 정말 순박하게 느껴졌다. 

얼마 가지 않아 재개발로 헐리게 되는 '후통(胡同)'은 좁은 골목이 끝도 없이 어이져 있는 북경의 민속 거리이다.

후통에서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장기를 두고 있거나 속이 든 만두 쟈오즈를 소쿠리에 담아 파는 등 서민들의 사는 모습 그대로를 후통에서는 한 눈에 볼 수 있다.



인력거(黃包車)에 사람을 태워 유명한 후통의 거리들을 돌아보는 관람 코스는
후통을 사진으로 즐겨찍던 사진 작가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밤중에 자전거로 페달을 밟는 인력거를 타고 '후통'을 한시간 남짓 돌아보았는데 외등조차 없는 
어두운 골목이라 사진을 전혀 남기지 못했고

그 고요하고 어둑어둑한 후통 골목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느낌만 내 가슴 속 깊이 새기고 돌아왔다.



이 후통은 오래지 않아 다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선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북경을 간다면 다른 곳은 들리지 않더라도 후통만큼은 며칠이라도 머물며 수백년 이어온 서민 가옥과 주민들의 때묻은 손자취를 사진으로 담아오고 싶다.

내가 다시 갈 때까지 부디 후통이 다 헐리지 않고 작은 부분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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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의 관광 명소  '고문화 거리'를 혼자 거닐다가 우연히 고문화 거리 한가운데 교회 건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기독교가 공인되지 않은 중국에도 교회가 있나....고 갸우뚱하실 분도 있으시겠지만

중국에도 공산당의 인가를 받고 모이는 교회가 있으니 이런 교회를 통틀어 '삼자교회(三自敎會)'라고 한다.





교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된 건물이었는데 건물의 앞면은 형태가 거의 흐트러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교회의 왼쪽편 벽은 좀 더 훼손되어 있어서 세월이 많이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교회의 오른쪽 벽면의 모습도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입구 문 위에 '기독교회'라고 써져 있었는데 교회 이름은 '창문교회'였다.
문 밖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서 보았다.

교회 문 안으로 들어서니 사택인지.....가정집 같은 2층 건물이 왼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가운데 가로질러 걸린 붉은 플래카드에는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적혀 있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예배실의 입구가 나왔다.
차림새로 보아 외국인 같아보이는 여자가 혼자서 교회당에 들어서니 웬 일인가...하여 몇 사람이 나와 말을 건다.
바디 랭귀지로 안에 들어가 봐도 되겠냐는 시늉을 했더니 금방 알아차리고 예배실로 안내를 해 주었다. 

안뜰에서 올려다 본 예배실 전면에 1934년이란 연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 창문교회는 네덜란드 선교사가 선교하여 세운 교회로 예배당은 유럽식 교회를 모방하여 지은 교회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예배실 강단에는 '利馬內利'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임마누엘'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인데  
마태복음 1장 21~23 절에
"주의 사자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라고 쓰여진 구절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예배당은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2층에서 강단을 내려다 햇빛을 쬐러간 화분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놓여있는 화분 받침들이 한가롭게 보였다. 예배당 곳곳에서 교회의 오랜 역사가 배어져 나오는 듯 했다. 

예배실 2층에는 접이식 의자와 나무 벤치가 함께 놓여있었는데 제일 앞 의자에 앉아 중국 땅을 위하여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실을 나서며 뒤돌아 보니 현판에는 성당(聖堂)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캐톨릭 교회당을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기독교회 건물도 성당이라고 하는가 보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예배당을 나서니 목사님(?)이 예배당 문을 자물쇠로 굳게 걸어 잠근다.
(중국 교회는 목회자의 기근으로 목사님이 없는 교회가 거의 대부분이니 목사님은 아닐 듯....)
예배가 없는 평일에는 예배당을 개방하지 않는 듯 한데 갑자기 방문한 나를 위해 특별히 예배당 문을 열었나 보다. 

교육관인 듯 한 예배당 옆 부속 건물 벽에 붙어있는 사랑 愛 자가 떠나는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부속건물들은 엄청 지저분해보이지만 중국의 집에서 이 정도 지저분한 정도는 아주 양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의 인가를 받고 모이는 창문교회와 같은 삼자교회(三自敎會)는 언제나 공산당의 감시와 간섭을 받고 있는데
공산당원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자의 설교나 교회 모임에서 공산당 지침에 어긋나는 설교 내용이 있는지 항상 감시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나 부활 사상같은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못 하고
도덕적인 설교 외에는 하지 못하는게 중국의 삼자교회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중국에서 공산당의 간섭 하에 모이는 이런 삼자교회는
공산당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 내가 들어가서 잠시 기도하고 나온 이런 삼자교회라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중국 전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펼쳐질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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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과 달리 천진은 관광할 곳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산업 경제 도시이다.

천진의 시장이나 상가, 일반 주택지는 돌아보았지만 딱히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둘러보질 못 해서

천진의 관광 명소를 소개해달라니까 천진에선 '고문화거리'외엔 달리 갈만한 곳이 없단다.

 

천진의 발상지로 '고향의 종적'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천진 고문화거리'는

중국의 전통 문물과 양식을 한 눈에 볼 수있는 문화의 거리로 '진문고리'라는 현판의 정문에서부터 시작해 1㎞ 남짓되는 구간에 펼쳐져 있다.
 


천진시는 1986년에 이 옛 거리를 청조 때의 전통적인 풍모로 복원했는데 1991년에는 천진 십대 명소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주로 문화용품. 고대 서적. 민속용품. 전통적인 수공업품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상점 안의 상품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이 많다.


비록 유리창 거리와 같은 고급품은 없더라도 한집 한집 살펴보다보면 재미있는 완구. 그림책 등을 진기한 물건들을 제법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국내외 손님들의 인기를 끌고 있어 '천진의 진주'라 불리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하지만 규모도 훨씬 크고 전통적인 청조의 건물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인사동 보다는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거리 좌우로 짙은 회색의 단층, 2층짜리 청조 건축양식의 선물가게가 정렬되어 있고 가운데는 각양각색의 노점이 들어차 있다. 


 

거리 중간 중간에는 민속놀이를 주제로 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조각상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 놀이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차나 음료수 등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각가지 먹을 거리도 늘어서 있어 구경하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진열되어 있는 팽이는 우리네 것과 모양이 꼭 같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팽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 각가지 화려한 모양의 연을 파는 가게도 있다.

 

 오래 된 듯한 천진시의 지도에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지만 너무나 귀중한 자료인 듯.
 

 
진열품의 대부분은 사실 이렇게 약간 조잡한 관광 상품이다.
 


각가지 동전,고서적,자물쇠등 옛날 물건이 진열되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나 진품보다 모조품이 판을 치고 있으니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진품처럼 포장을 한 모조품들이 대부분이어서 골동품인 줄 알고 사 온 물건들이
알고 보면 흔해빠진 관광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진흙 속의 진주 같은 물건을 건지기도 한단다.
 
여기서 팔리는 상품가격은 천차만별, 한마디로 부르는게 값이니 흥정은 기본......일반적으로 처음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절반 이하로 깎으면 된다고 한다.
옥 제품이나 돌제품도 많고 조그만 자연석에다 금방 도장을 새겨주는 가게도 성업 중이었다. 
 

 
고문화 거리 중간 쯤에 천진의 변천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천진민속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보니 박물관 입구를 막고  아저씨들의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민속 박물관 입구를 다 막고 앉아 대낮부터 술판이라니......정말 황당했지만 비키라고 할 수가 없어서 문 어귀에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고문화 거리 입구로 돌아나오는 길에 길의 좌판 옆에 표범 가죽이 카트에 걸려 있길래 처음으로 보는 신기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 근처에 있던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내게로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헉....!  위급한 상황을 몸으로 직감한 나.....완전 초고속으로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려서 군중 속으로 숨었다.
한참이나 도망 가다가 슬쩍 뒤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길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다시 고문화거리 쪽으로 가지 못 하고 골목 귀퉁이에 숨어 있다가 
만나기로 한 친지의 차가 고문화거리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걸 보고 얼른 달려가서 차에 올라타고 줄행랑을 놓았다.
휴.......십년 감수....라는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거겠지?

알고보니  표범 가죽 불법 거래 현장을 사진 찍은 것....여자 혼자인 줄 알고 만만하게 여긴 그들에게 붙들렸더라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카메라를 그 자리에서 빼앗겼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머나먼 천진 땅에서 인신매매꾼들에게 팔려갔을지도....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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