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박사는 그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서두에서

삼척에 갔을 때 죽서루를 보고나서 새삼 유열에 잠긴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병풍처럼 둘러선 푸르른 단애 위에 날아갈 듯 자리잡은 정자인 죽서루의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누대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덤벙주초의 희한한 조화미에 그 마음이 흥겹기까지 했다고 격찬하고 있는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을 즐기는 우리의 옛선비들의 풍류를 가장 잘 드러낸 곳.

관동팔경의 하나이자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삼척 제일의 자랑거리 죽서루(竹西樓)에 올라보기로 한다.

 

 

 

 

강원도 삼척시 임영로에 위치한 누각 죽서루. 입구에 들어서니 입장료도 무료인지라 더욱 감사하다.

 

 

 

 

정자의 규모가 꽤나 장대하다. 

정면 7칸, 측면 2칸이니 무려 14칸 규모의 2층 정자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고 남음이 있다.

 

 

 

 

정자 바로 아래 이르러 보니 누각을 받치는 17개의 기둥의 길이가 하나도 똑 같은게 없이 모두 제각각이다.

절벽 위 일정하지 않는 바닥을 그대로 살려 기둥의 일부는 주춧돌 위에 놓고 일부는 천연의 바위 위에 그대로 놓았다.

 

 

 

 

생긴 그대로의 절벽, 바위 둔덕 위에 울멍진 높고 낮은 자연암석들을 적당히 의지해서 주초로 삼고

불가피한 곳에만 자연석을 옮겨놓고 기둥 길이를 여기에 맞추어 길게 짧게 마름질한 것을 '덤벙주초'라고 하는데

집터가 가지런하지 않으면 불도저로 밀거나 깎아서 반듯하게 만들고야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서양식 건축 방법과는 달리

우리의 덤벙주초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깊은 외경에서 우러난 멋진 조형 예술임이 분명하다.

 

 

 

 

자연의 암석을 계단 삼아 이리저리 디디며 오르니 정자 옆은 온통 너른 암반이다.

 

 

 

 

크고 작은 자연 암반 위에 짧고 긴 기둥들을 놓고 그 위에 멋스럽게 들어앉힌 2층 누각.

살포시 들어올린 처마와 함께 모든 것이 원래부터 있었던양 너무나 자연스럽다.

 

 

 

 

오후 따가운 햇살도 거뜬히 막아주는 너른 정자 마루는 한여름 더위에도 옷자락 속으로 시원한 바람을 선사한다.

당일여행 중이 아니라면 한참을 머무르며 기둥에 기대앉아 잠시 낮잠이라도 청해보고 싶은 곳이다.

 

 

 

 

정자 난간 아래는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강물이 보인다.

나무들이 없으면 시원하게 경관을 조망할 수 있을텐데 역시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어 누각의 일부가 되었다. 

 

 

 

 

반대편에서 죽서루의 모습을 보기 위해 정문을 나와 건너편 삼척동굴엑스포 주자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옆에 위치한 조그만 정자 위에 오르니 푸른 강물을 안고 절벽 위에 서 있는 죽서루의 풍광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삼척 시내를 휘감고 동해로 흘러가는 하천인 오십천 위 절벽 위에 우뚝 솟은 죽서루.

호탕한 자연 풍광 속에 화룡점정하듯 멋지게 들어앉은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누각의 전체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다.

누각 앞을 가로막고 자라는 나무 몇 그루만 베어내면 누각의 전체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누각 위에서 보는 전경도 훨씬 시원할텐데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자연 암석들을 들어내거나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둔채로 주초를 세워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우리네 선조들의 자연사랑과 그 맥이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보일 듯 말 듯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수줍음이 때로는 다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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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 새해 새날이 밝아왔다.

부지런한 분들은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잠도 안 자고 기다리며
새해 첫 일출의 시간을 맞이하고 멋진 사진도 찍어 블로그의 탑을 장식하는데
난 편안하게 거실의 창문을 열고 '명활산성'위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했다.

 원래 번잡한 곳을 가는 것을 좀 안 좋아하는데다 예전에 동해안으로 해맞이를 가는 길에
엄청나게 밀려 있던 차 안에서 신랑이랑 사소한 일로 대판 싸우고 차를 되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해맞이 알러지가 좀 생겼기 때문....^^
그 이후론 1월 1일의 번잡합을 피해 그 다음날이나 다른 조용한 날에
동해안으로 가서 늦은 해맞이도 하며 여유를 즐기곤 한다. 


 동해안 7번 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국토를 종단하는 국도.
그 길이도 대단하지만 7번 국도길의 풍광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많은 구간의 도로가 바다와 나란히 뻗어있어서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함께 차를 모는 맛은 정말 운전의 피로를 잊게 해 줄 정도이다.
바닷길 어디든지 가다가 세우기만 하면 해맞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7번 국도의 장점.


 7번 국도의 수많은 해맞이 명소 중에서도 베스트에 꼽히는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울진군 근남면에서 왕피천을 옆으로 끼고 바다를 향해 해안도로를 달린다.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이곳으로 피난해 숨어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은 왕피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은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특히 은어의 서식지로 강태공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낚시 명소로
어느 지인은 여
름 휴가 때만 되면 왕피천에서 은어를 잡느라 휴가를 다 보낼 정도..
또 바로 근처에는 천년기념물 155호인 성류굴이 있어서 함께 돌아보면 금상첨화이다.



 해변에 위치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상가 뒤쪽으로 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바다 위로 날아갈 듯이 정자가 앉아 있다.


 이름하여 '망양정(望洋亭)'이니 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란 뜻이다.


망양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옆으로는 왕피천이 흐르고 앞으로는 푸르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드넓은 해변은 맑고 오염이 없는데다가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기떼를 전혀 볼 수 없는 곳이라
여름밤에 텐트를 치고 해변에서 밤을 새워도 모기에 물릴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이 이 곳의 장점이다.



 본래 강원도의 동해안지방에는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를 일컬어 관동팔경이라 부르는데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이 이에 해당하고 간혹은 월송정 대신 시중대를 넣기도 한다. 
 


특히 이들 팔경에는 정자나 누대가 있어 많은 한량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으며
이에 얽힌 전설과 문학등이 가사로 전해져오고있다.


 

망양정은 고려때는 현재의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었다고 하는데 1860년 철종11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그 이후 허물어 무너진 것을 1958년에 다시 중건하였고



 2005년에 심하게 낡은 것을 다시 해체하여 새로 지었으므로 아직도 단청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산뜻하다.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중 이 곳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여 손수 어제시(御製詩)를 지어 하사하기도 하였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글자를 써보내 정자에 걸도록 했으며



 정조대왕의 어제시(御製詩)의 흔적도 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외 망양정을 그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백납병(百納屛)' '망양정도(望洋亭圖)가 유명하다.


 

강호에 병이 깁퍼 듁님의 누엇더니  관동 팔백니에 방면을 맛디시니,  어와 셩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중략)

쳔근을 못내 보와 망양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무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은산을 것거 내여 뉵합의 나리난 닷,  오월 댱텬의 백셜은 므사 일고.

(하략)

각중에(갑자기) 왠 사설인고...하시겠지만
우리들이 고교 시절 국어 시간에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는 싯귀일 것이다. 

바로 송강 정철이 읊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에 대한 구절이다.


선조의 명을 받아 관찰사로 강원도에 가게 된 정철이 금강산과 관동 팔경의 아름다움을 연시조로 읊어쓰는데 이것이 바로 관동별곡.
시조에선 한양에서 출발하여 철원,금강산,총석정,삼일포,경포호,촉서루를 거쳐 망양정에서 달맞이를 하고 신선을 만나는 것으로 끝맺는데
관동 별곡에서 많은 구절이 망양정의 묘사에 치중된만큼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경관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아름답다.


망양정에  처음 오른 기억은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울진 성류굴을 돌아보고는
망양정 바로 아래 살던 선배 집에 무작정 찾아간 것이 망양정에 처음 오르게 된 때.
처음 보았던 망양정 앞 바다는 무서울 만큼 짙푸르고 맑았으며 바람이 불면 파도 또한 거세게 밀려와서
30분 정도 바닷물에서 놀아도 수영복 안에 모래가 가득 차 있었던 황당한 기억이 떠오른다.



망양정은 해맞이 뿐 아니라 보름날 달맞이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
바다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정자에서 보는 것은 해맞이보다 더 감동적인데
보름달이 떠오르면서 주변 바다가 금빛으로 반짝이며 파도치는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빛에 부서지는 금빛 바다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는데
새해 해맞이를 제대로 못 하신 분은 동해안 정자 위에서 대보름 달맞이를 해보심은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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