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는 청나라 말기 함풍제의 후궁이었던 자희황태후이다.

그녀를 일컫는 이름 서태후는 정식 명칭이 아닌데

태후(太后)는 황제의 모친을 일컫는 말로 황제 모친의 정실은 동(東)으로 후실은 서(西)로 표현한데서 이른 말이다.
 


서태후는 한 가난한 한족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서 4세 때 양녀로 팔려갔다가 12세 때 다시 혜징의 시녀로 팔려갔다.

그후에 궁녀로 뽑혀갔는데 우연히 경극을 좋아하던 왕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맘에 들어해 그녀를 품었고 

아들 재순(동치제)을 출산하여 비(妃)에 봉해졌다가, 그 이듬해에 귀비(貴妃)에 책봉되었다.

궁녀에서 귀비에 이르기까지 지위가 계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정권을 장악하고픈 욕망이 점점 커져 갔다.

 


함풍제가 죽고 아들인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일소하고 동치제의 섭정이 되는데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 된 아들을 다시 광서제로 옹립하고 섭정이 되어 황실을 한 손에 쥐고 흔들게 된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던 동태후와는 달리 국정의 실권은 여전히 서태후가 쥐고 있었는데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강유위등과 함께 신정을 실시하여 입헌군주제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들을 부추켜 다시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만에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시키는 등 무술정변을 일으킨다.

이후 의화단의 난을 이용하여 열강에 대한 선전 포고 이후 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서안으로 피신하였으나

북경 귀환 이후 정치는 대외적으로 굴욕적 외교로 돌아서게 되고 청왕조의 권위는 실추된다.




광서제가 죽고 마지막 황제 '푸이'를 왕위에 세운 후 그날 죽게 되는 서태후(1835~1908).

서태후의 초상을 보면 한눈에도 엄하고 강한 인상으로 중국을 쥐고 흔들만한 기상이 풍겨나오는데.....





북경 시민의 아름다운 휴식처 '이화원'은 바로 서태후의 여름 별장이다.

중국의 최대의 정원이며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황족 정원인 이화원의 규모는 실로 엄청난데

그 면적은 자금성의 4배, 천안문의 6배의 넓이라고 한다.



서태후는 피서와 요양을 위해 이화원에 각별한 관심을 두었는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하여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 역시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처럼 수많은 관광객들로 문전 성시를 이룬다.

중국은 어딜 가든지 내국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데
가는 곳 마다 중국의 인구 13억이 실감이 된다.





이화원을 둘러보기 위해서 인수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 본다.


 

전각들 중 용마루가 없는 전각이 눈에 뜨였다.

우리나라도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용은 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용이 자는 곳에는 용마루를 둘 수 없다는 등 여러가지 의견도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바 없다고...






서태후가 정무를 보았던 인수전 전각 앞에는 황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주작 등 여러가지 동물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고



 

정원에도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가지 석물들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이화원의 3/4를 차지하는 곤명호(昆明湖)는 원래 평지인 곳을 파내어 만든 호수인데

인공 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주위가 8km인 곤명호를 일주하는 멋진 모양의 유람선을 타고 곤명호를 한 바퀴 돌면

이화원을 구경하느라 힘들어 배인 땀방울이
시원한 호수 바람에 금방 말라 버리며 여행의 피로가 한순간 날아가 버린다.
 


 

호수 가장자리엔 군데 군데 조그마한 섬이 있고 그 섬을 아름다운 다리로 연결시켜 놓았다.

서태후는 밤이 되면 호수 안 작은 섬에 숨겨 놓았던 미남자들을 하나씩 자신의 궁궐로 불려들였다고 하는데

서태후와의 하룻밤을 보낸 미남자들은 소문이 퍼져나갈 것을 두려워한 서태후의 부하들에 의하여

그 다음날 아침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되었다고 한다.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萬壽山)은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불향각은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을 기대고 있어서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수산 아래 위치한 장랑(长)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회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회랑이다.

장랑에는 중국 각지의 화가의 그림 14,000 점이 장랑에 걸려있는데

중국 목조 건축물에 꾸며진 장식 예술인 이런 그림을 '소식채화'라고 한다.
 

그림의 주제는 자연과 동물, 인물 전기 등  중국 고전 문학의 내용에 등장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서태후의 한끼 식사는 주식이 60가지, 점심이 30가지 각종 산해진미가 128가지였다고 한다.

서태후의 하루 식사비는 백은으로 3kg 들었는데 그 당시 이돈으로 5000kg의 쌀을 살 수 있었으며 만명의 농민이 하루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옷만 해도 3000 여 상자가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입는 등 사치의 극을 달렸다.

또 이화원에 전화 설치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전화하는 사람이 무릎꿇고 전화하는지 앉아서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궁녀, 내시, 대신들은 서태후를 무척 무서워 했는데

광서제의 아버지는 광서제를 황제로 올려놓는다는 말에 기뻐하질 못하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시들이 서태후의 머리를 빗겨 주었는데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도 목이 달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련영이라는 내시는 머리를 빗을 때면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빗었는데

서태후의 빠진 머리카락이 모두 소매 안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서태후는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내시의 일기에 의하면 한번은 한 늙은 내시가 실수를 범했다 해서 인분을 억지로 먹였다고도 한다.
 


서태후 자신은 매일 저녁 애기 엄마의 젖을 먹는데 애기 엄마 두명은 목욕을 한 후

젖만 내놓고 몸을 붉은 천으로 감싼 후 다 감싸고 침대에 누운 서태후에게 무릎을 꿇고 젖을 먹였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중국어로 '쎈양'이라고 하는데

얼마전 인터넷에서 중국의 중학교 남학생 수십명이 미혼모 여학생을 협박하여

미혼모란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으면 모유를 달라고 협박하여 친구들이 공부하는 교실 안에서

여학생의 무릎에 누워 한가롭게 젖을 빠는 충격적인 사진을 본 일이 있다.

처음 여학생을 협박한 남학생은 다른 동료 남학생에게 젖을 빨게 해 주는 댓가로 돈까지 받아 챙겼다고.....ㅠㅠ
 
이런 인면수심의 흉악한 풍습이 아마도 서태후에게서 전해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태후의 생애에 가장 유감스러웠던 것은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의 중간문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 뜻인 즉 서태후가 비록 48년이나 중국을 통치했지만 황제도 아니었고 황후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환란의 청조 말기, 어떤 이에게는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었던 반면 어떤 이에게는 무시무시하고 매몰찬 이름이었던 서태후.

무소불위의 부귀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서태후가 백성들의 피와 땀을 밟고 서서 만든 아름다운 정원 '이화원'은

지금은 수많은 평범한 북경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북경을 찾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명소가 되어

중국의 관광 수익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으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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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溥儀)'의 <황제에서 시민으로 From Emperor to Citizen>이라는 영문 자서전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중국 북경(베이징)의 자금성에서 로케되어 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유럽적인 감각에서 그린 중국인의 드라마이다.

 3살의 어린 나이에 서태후의 지명으로 광서제의 뒤를 이어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던 '푸이'는 6살이었던 1912년에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하는 와중에 황제의 칭호와 궁전, 사유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하게 된다.

나중에는 일본의 속임에 빠져 만주국을 세웠지만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전범으로 공산 정권에 의하여 수용소에 억류되어 십오년의 재교육을 받고는 식물원 정원사가 되어 1959년에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대제국의 황제가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려 말년에는 식물원의 정원사로 인생을 마치게 되는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 영화는 자금성 경내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푸이가 황제에서 시민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로톨루치에 의하여 엑스트라만도 19,000명, 이탈리아,중국,영국인 스텝이 총 망라된 이 영화는 1987년 제작되어 제 6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9개 부문을 휩쓸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서방에는 Forbidden City라고 알려진 자금성(紫禁城,쯔진청)은 중국에서는 고궁(故宮,구궁)이라고 하는데 높이 11m, 사방 4㎞ 길이의 담으로 둘러싸인 이 성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옛 건축물로 동서 길이 753m, 남북 너비 961m, 면적 72만 이며, 궁궐 내에는 크고 작은 9,900여개의 방이 있다.

이 자금성은 명나라 때인 1406~20년(永樂 4~18)에 건축되어 570년이란 긴 세월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 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유물이 소장,전시되고 있으며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천안문 앞의 다리를 지나서 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고궁의 정문인 오문(午門)이다.

오문은 보통 황제가 칙서를 발표하거나 원정 명령을 내리는 곳이며,
대신들의 벌을 다스리는 곳이기도 하다.

중간 문은 황제의 전용문이고 왼쪽은 황족문, 오른쪽 문은 문무관원 출입문이다.
 

 

 

성문의 벽은 엄청나게 높아 바로 아래서 쳐다보면 목이 아플 지경인데 이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가 궁궐 안으로 입장하게 된다.  오문을 들어서면 금수하가 허리띠를 두르듯 서쪽에서 동쪽으로 궁궐을 감싸고 흐르며 중앙에는 다섯개의 대리석 다리가 놓여져 있다. 

 

 

자금성은 기능에 따라 외조(朝:궁정의 바깥채)와 내정(內廷)으로 나뉘는데 외조의 주요건물은 태화전(太和殿,타이허뎬)·중화전(中和殿,중허뎬)·보화전(保和殿,뱌오허뎬)으로 황제가 큰 제전을 거행하거나 신하를 만나고,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외조의 정문은 금수하를 건너면 나타나는 태화문이다. 

 

 

 

다리의 난간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새겨져있고 금수하(金水河)에는 다섯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3대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태화전을 꼽을 수 있는데 한백옥(漢白玉)에 조각하여 만든 높이 8m의 석대 위에 세워져 있다. 너비 64m, 길이 37m, 높이 27m로, 중국에 현존하는 것 중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가 즉위식을 하던 곳으로 태화전 앞에 서니 넓은 마당에 엎드린 수많은 대신들이 구령 소리에 맞춰 어린 푸이에게 연거푸 절을 하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태화전의 부속 건물의 모습들인데 앞의 조각상은 권력과 천하통일을 상징하는 구리로 만든 수사자이다. 태화전의 기와들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다. 

 

 
태화전의 내부에는 '푸이'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옥좌가 놓여있다. 

 

 

자금성의 궁전들은 나무가 별로 없이 썰렁하고 삭막한데 이는 자객들이 나무를 타고 와서 황제를 해칠까 두려워함이었다고 하며
또한 출입자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닥은 모두 7미터 이상을 파서 벽돌처럼 다듬은 돌을 15겹을 깔았는데 그 것 또한 땅을 파고 들어와 황제를 해칠까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자금성에는 9,900 개의 방이 있는데 한 왕자가 태어나서 매일 방을 바꾸어가며 잠을 잔다고 해도 한 바퀴 돌아 태어난 방에 이르면 27세가 되고, 두 바퀴를 돌고 나면 54세로 죽음을 준비할 때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의 방대함이 가히 짐작할 만 할 것이다.   

 

 

전각으로 오르는 계단의 중앙에 장식된 엄청나게 큰 한백옥(漢白玉)에는 어김없이 황제의 상징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 옥돌은 이은 것이 아니고 하나의 돌인데 산지로부터 엄청나게 먼 자금성까지 운반해 온 것이라고 한다. 수송 수단이 발달되지 못한 옛날에 겨울에 물을 뿌려 땅을 얼려 미끄럽게 만들어서 큰 옥돌을 밀어서 운반했다고 전해진다. 

 

 


중화전은 속칭 <가마>라고도 하는데 황제가 태화전에 나가기 전에 이 대전에서 휴식하고 내각 대신들의 예의를 받은후 8인용 가마를 타고 태화전으로 나간다. 

 

 

보화전은 황제가 과거 시험을 보고 시험을 추리하고 서예를 쓰고 황제의 인감도장을 보관하던 대전이다.

 

 

역시 옥돌 한 개로 용을 조각해서 만든 용무늬. 엄청나게 거대하다. 

 



역시 전각 앞에는 권력의 상징 사자상이 빠지지 않는다.

 

 


내정(內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건청궁, 교태전,곤녕전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구역은 황제가 일상의 정무를 집행하고 거주하던 곳, 그리고 황후,비,황실 가족이 생활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건청궁은 내정의 가장 중심되는 건물로써 황제의 침실인 동시에 일상정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건청궁 내부 중앙에는 보좌가 있고 그 위에 '정대광명'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황후의 침실로 들어가는 문을 보니 내부가 매우 궁금하였지만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운 점이었다.  

 

 

내정 뒤에는 어화원이란 정원이 있는데 어화원은 제한된 공간 안에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중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금성 안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심겨져 있는 공간이다.

그 중 도수산은 인공으로 돌을 쌓아 만든 산인데
서태후가 궐밖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9월 9일에는 왕과 왕비가 올라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자연의 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창덕궁 후원에 비해
매우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중국식의 정원이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서 자금성을 돌아보면 신무문으로 나오게 된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에는 현재의 자금성의 명칭인 '고궁박물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밖에서 본 자금성은 높이가 11m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장
벽의 사방 둘레는 인공으로 52m의 하천을 판 호성하(護城河)가 둘러져 있어서 외부로 부터 궁궐을 격리시켜 보호하였다고 한다.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맞은 편에 황실의 공원인 경산 공원(景山公園)이 있다.

원래 북경(베이징)은 평지인지라 
풍수지리학적으로 나쁜 기운(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자금성 북쪽으로 인공산을 쌓았다.

앞에 보이는 산이 경산공원을 이루는 해발 108m의 나지막한 산인데
궁궐 주위의 해자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은 산이라고 한다. 

 



경산공원의 꼭대기 만춘정에서 자금성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북경이란 도시가 맑은 날에도 시야가 좋지 못하니 경산 공원에 오르더라도 자금성의 전경을 또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흐릿한 연무 속에 보이는 자금성이 모습은 마치
운해 속에 떠 있는 천궁같았다. 

 

 
570년 동안 명,청조의 황제 24명이 기거하던 자금성.
고궁 박물관이 되어 버린 자금성 안에는 이제 마지막 황제 푸이도 완용 황후도 문연 황비도 찾을 수 없었다.

황제나 황후의 옷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가라고 손짓하는 중국 아가씨의 순박한 미소만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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