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백과 소백산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강원도 영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온다는 기약도 없어 

'편안하게 고개를 잘 넘으시라'는 뜻에서 영월(寧越)로 이름하였다 하는데...... 

영월군에는 최근에 특이한 이름으로 개명한 마을이 두군데나 있다. 

그중 하나는 영월군 서면. 한반도지형을 닮은 선암마을이 있어서  

마을의 이름을 '한반도면'으로 개명하였다.

 

  또 하나의 마을은 바로 '김삿갓면'이다. 

원래는 영월군 하동면이지만 방랑시인 김삿갓의 생가와 묘역이 있어서 

200910월에 이르러 마을 이름을 '김삿갓면'으로 개명하였다. 

 

마을 이름을 김산갓면으로 바꾸자 발길이 뚝 끊겼던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으며 

김삿갓문학관을 비롯한 김삿갓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 지난번 12일 여배우 특집에서는  

레이스미션의 최종목적지로 소개되기도 했던 영월 김삿갓 유적지를 찾아보았다.

   

 

 

 

영월 시내에 승용차로 40분 거리인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위치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

김삿갓 문학관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산 난고 김병연의 일대기를 모아놓은 곳이다.

평생을 삿갓을 쓰고 방랑하던 김삿갓의 문학관 답게 건물의 지붕이 삿갓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배산임수의 최적의 자리에 세워진  김삿갓 문학관 앞 광장에는

김삿갓 시비와 그의 시와 함께 한 조각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하여 반역자로 낙인 찍히고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는데

  안동김씨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오지 중의 오지인 영월에 정착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문장 솜씨가 뛰어나 신동으로 평가되기도한 김병연은 

이후 영월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20세의 나이로 급제를 받게 되었는데 

시제가 공교롭게도 자신의 조부인 김익순의 역적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을 쓰라는 시제였다.

 

  조부의 과거를 모른채 자란 김병연은 시제가 나오자 서슴지 않고 

김익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답글형식의 내용을 썼고 그것으로 인해 급제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머니로부터 신랄하게 비판한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이고

 자신이 그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아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인해

커다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되었고

  이 때부터 이름도 '병연' 이라는 본명 대신 '김삿갓'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김삿갓이 방랑 중에 지은 시는 약 1,000여편에 이른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는 456편의 시가 전해진다.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낙엽처럼 날려버린 시들을 이응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으고 정리하여 

그가 죽은 지 76년 만인 1939년에 김병연의 첫 시집인 김립 시집을 엮어 냈기 때문이다.

 

 

 

 

광장에 전시된 조형물과 그가 남긴 시들을 읽어본 후 김삿갓 문학관 내부를 돌아보기로 한다. 

김삿갓의 친필 시, 책자, 영상물, 조형물 등 520여점의 김삿갓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난고김삿갓문학관의 입장료는 일반 1,000, 어린이는 500원이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 영상실, 체험실 등이 있는데 전시실에는

김삿갓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 정암 박영국 선생의 연구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김삿갓의 생애를 상영하는 영상실에서는 영상을 통해 김삿갓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난고문학실, 일대기실, 자료실 등이 있는데  

난고 문학실에는 1938년 이응수 작의 김립시집 외 구한말에서 현대까지 각 서적, 간행물, 논문,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일대기실은 김삿갓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과정과 주거지를 복원한 모형들이 있으며 김삿갓 가계도도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자료실에는 김삿갓이 입고 신었을 법한 신발, , 삿갓 두루마기 등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김삿갓의 친필도 확인할 수 있다.

 

 

 

 

김삿갓문학관의 맞은편에는 김삿갓 시비동산과 김삿갓의 묘소가 있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생전에 김삿갓이 살던 이곳은 푸르른 산과 시비, 조형물과 야생화들이 잘 어우러져 고즈녁한 느낌을 준다.

 

 

 

 

묘소 앞에 있는 시비 동산에는 발랑 시선 김삿갓의 유적비와 함께

 

 

 

 

서예대가 김응현 선생과 서경보 스님이 세운 석비들이 자리잡고 있어 볼거리를 더해 준다.

 

 

 

 

시비 동산에는 여러 형태의 조형물들이 있는데 그중 '환갑'이라는 조형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지나가던 아이들은 이 조형물을 힐뜻 보더니 '아니......이건! 임재범이잖아!" 하고 낄낄거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임재범이 삿갓을 쓰고 저 먼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방랑기 다분한 임재범, 방랑 시인 김삿갓......어딘가 통해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바닥에 놓인 연자매 한짝도 어딘가 낯이 익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12일 여배우 특집 레이스 미션 때 12일 깃발을 꽂았던 곳이다. 

여기 왔던 누구도 그 장면을 기억했음일까? 나무 지팡이 하나를 기념으로 꽂아둔 것에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계곡에 걸쳐진 무지개 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가니 김삿갓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철종 14년에 전남 화순에서 세상을 떠난 김삿갓의 유해는 3년 뒤 그의 아들에 의해 영월로 옮겨졌는데 

묘소는 1982년 정암 박영국 선생에 의해 발견 되었고, 1984년에 안동 김씨 대종회에 의해서 잔디를 입힌 것이라고 한다. 

 

묘소를 본 사람들은 "아니, 묘소가 왜 이리 초라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초라한 묘소가 김삿갓의 외로웠던 인생 여정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고 

다듬지 않은 돌에 새겨진 묘비와 상석에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자유로움을 보는 것 같아 좋다.

 

 

 

 

김삿갓 묘소와 시비 동산 앞에는 이렇게 맑은 물이 흘러 청량감을 더해준다. 

망경대산, 마대산, 선달산, 형제봉 등 천m가 훌쩍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곳이라 산세도 너무 빼어나다. 

영월 여행에서 빠뜨리지 않고 들려보아야 할 곳, 바로 한평생을 유랑하며 살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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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처음 그곳을 들렸던 기억은 거의 10 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중 여러곳의 사찰을 방문하곤 하지만 부석사 같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빛 바랜 앨범 속 사진 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아스라이 남아 있던 부석사..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추위가 가셔지지 않은 어느 조용한 날에 다시 찾아본다.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서 부석사로 들어가는 길이 시작된다. 
 

 
 사과밭과 인삼밭 옆으로 길게 늘어선 가로숫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나목이 늘어서 있는데도 이렇듯 아름다운데 가을에 단풍이 물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회가 된다면 가을에 다시 찾아와 사진으로 꼭 담아보고 싶다.

 
 천왕문 들어가기 전 왼쪽 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가 눈에 뜨인다.
행사가 있을때 사찰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한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필자의 앞을 가방을 멘 여학생이 담담하게 스쳐 지나간다.
갸날프게 생긴 여학생이 홀로 사찰을 찾다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천왕문을 향해 걸어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어쩐지 고독하게 보인다.


천왕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 아...산자락 아래 단아하게 펼쳐진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서서 보니 수려한 산자락 아래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이 차례로 펼쳐져 있다. 


경내에서 제일 먼저 방문자를 맞아주는 건물은 범종루인데 이 건물의 전면은 동쪽을 향해 있고 측면이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고 적혀 있는데 범종루에는 태백산의 지맥인 '봉황산 부석사'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름은 범종루이지만 범종은 바로 옆에 있는 신범종각에 걸려 있고 범종각에는 큰 법고와 목어만이 걸려 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다시 높은 계단 위로 안양루가 그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무량수전 앞마당 긑에 놓인 안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이 건물은 앞과 뒤에 걸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 편액에는 안양루라고 되어 있으니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문을 통하여 위로 바라보니 시선에서 약간 어긋나게 국보 제 17호인 아름다운 석등이 위치하고 있다.
 


연화대 위 8각 화사석 사이로 난 창을 통해서 무량수전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곳인데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려서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하였으며 1916년에 해체, 수리 공사를 한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초인 무량수전은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 기둥인 것으로 유명하다.
배흘림기둥이란 기둥 중간 부분을 약간 튀어나오게 한 기둥인데
중간을 볼록하게 함으로 기둥 머리 부분이 넓어보이는 착시현상을 막아주고
건축물의 무게가 기둥의 중간 부분에 집중된다는 건축 구조 역학을 고려한 것이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이다. 
 

 
무량수전의 왼쪽 뒷편에는 부석사 이름의 유래가 된 부석(浮石)이 있다.
부석은 우리 말로 '뜬 돌'인데 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으니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이 부석에는 선묘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데 중국 여인인 선묘는 의상대사가 중국에 있을 때 그를 몹시 사모했다.
그러다 의상대사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게 되자 선묘는 그만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그 뒤 의상대사가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을 때 이 자리를 도적들이 차지하고 있어 애를 태웠는데
 죽은 선묘의 영이 돌을 띄우는 영험을 보여 도둑들이 도망가게 되어 그 자리에 부석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으로 올라 아래를 보니 안양루, 범종루를 비롯한 사찰 내의 건물들이 아담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도 보물 제249호로 지정된 단아한 석탑이 있는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1960년 석탑을 해체, 수리했을 때 3층 옥신에 있는 사리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기단부에서 철제탑, 불상파편, 구슬 등이 수습되었다.

 
3층 석탑을 지나 산기슭을 조금 올라가면 조사당이라는 고려시대의 목조건물이 있다.
국보 제19호인 조사당은 1377년(우왕 3)에 창건되었고 1490년(성종 21)에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전반적으로 규모가 작고 세부 표현이 간결한 모습이다.


정면 가운데에는 살문을, 그 좌우 옆칸에는 붙박이 살창을 달았는데  파스텔톤의 색감이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다. 

 
조사당 전면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골담초)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란 전설이 있는데
심하게 촘촘한 창살 속에서 자라고 있어 그 모습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기는 조금 난감한 일이다.
조사당은 부석사 제2의 목조 건물로 고려시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산에서 내려오며 안양루 아래 펼쳐진 경치를 내려다 보니 맞은편 산과 마을에 저녁 안개가 은은하게 펼쳐져 있다.
안양루에 걸린 김삿갓의 시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를 떠올리며
쉴새 없이 셔터를 누르던 손을 잠시 멈추고 깊은 상념에 빠져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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