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의 최종'병기 김춘추.
도대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모를 만큼 드라마에서 덕만보다 춘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한데
활짝 웃는 유승호가 클로즈업되며 드라마가 끝나면 보는 사람 또한 자신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 훈훈하게 자라준 유승호를 보면서 흐뭇하지 않은 여성 시청자는 별로 없을 듯 한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춘추는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로 말을 잘하였다'고 하니
춘추 역으로 유승호를 기용한 것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신라 제 29대 임금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아버지는 금륜태자의 아들 용수공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진평대제와 마야부인의 딸인 천명공주이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으며 사색이 깊은 아이였으나 권력 관계와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으므로 
춘추의 커다란 뜻을 간파한 유신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고 받들고 군(君)으로 받들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연대는 춘추가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결혼함으로 더욱 돈독해지게 되고 이어 두사람은 세력을 합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게 되는데...
 


그럼...춘추가 문희와 결혼하게 된다면 선덕여왕 37회에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는 보종의 딸 보량은 어떻게 된건가?
춘추와 보량 사이의 러브 라인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고 두사람의 애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던데 ....
그렇다. 쉽게 말하면 신라의 미소년 공자 김춘추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였으니 절묘한 '양다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다.



아끼던 명마의 목을 단 칼에 자를 정도로 결단력이 있던 김유신에게는 보희, 문희 두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유신의 동생 보희는 '서악(경주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온 서라벌이 오줌으로 가득 차는 꿈을 꾸게 된다.
보희는 참으로 망칙하고 불길스러운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문희는 즉석에서 보희가 꾼 꿈을 사겠다고 제안한다.
불길한 꿈을 팔게 되어 기뻐한 보희는 무엇을 주고 꿈을 사겠느냐고 물으니 보희는 '비단치마'를 주겠다고 답한다.
흡족한 거래가 성립되어 문희가 옷깃을 벌리자 보희는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말했고 문희는 보희의 꿈을 정식으로 사게 된다.

당시 비단치마는 국제 무역을 통해 수입되는 고가품이었는데 
'삼국유사'는 태종 무열대제 때의 포목 한 필 값이 벼로 30섬 혹은 50섬이라고 적고 있으니
지금 시가로 따져서 수백만원쯤 되는 포목보다 훨씬 비싼 비단치마를 꿈값으로 치룬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망칙하게 들릴 수 있고, 개꿈이라고 버릴 수도 있는 꿈을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문희는
보희가 꾼 꿈에 내재한 가능성을 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열흘 후 유신은 춘추와 함께 축국(蹴鞠,제기차기)를 하다가 일부러 춘추의 치마를 밟아 옷섶의 고름을 떨어지게 한다.
이에 유신은 자기 집에 가서 옷고름을 꿰매기를 청하며 춘추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유신은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 수선을 맡기고자 하나 보희가 병중이었으므로 이에 문희가 나아가 바느질을 해주게 된다.
유신은 문희가 춘추의 옷을 바느질할 때에 '일부러 피하고 보지 않았다'고 하니
여동생을 매개로 하여 춘추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려고 하는 유신의 전략이 잘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유신이 깔아준 멍석....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불붙게 되고 1년쯤 지나자 문희는 임신을 한다.


이때 이미 춘추는 보종의 딸 보량(보라궁주,宝羅宮主)와 결혼해서 딸 고타소를 낳은 상태였다.
보량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춘추와 매우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는데 당시 춘추는 보량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량으로 인해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할 뿐 아니라 문희를 멀리하게 된다.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재매정(財買井). 유신의 집터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선도산은 지난 5월 9일 일어난 산불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문희를 멀리하는 춘추의 태도에 다급해진 유신은 자신의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신라 최대의 불쇼'를 벌이게 되는데
사전 계획에 따라 자신의 집 마당에 장작을 높이 쌓아놓고 임신한 문희를 꿇어 앉히고는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
하며 크게 꾸짖으며 어름장을 놓아도 데 문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유신은 누이를 태워 죽이겠다고 온 서라벌에 소문을 퍼뜨린다.

그 때 춘추는 덕만을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는데 유신의 집에서 연기가 하늘로 자욱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공주가 유신의 집에서 나는 연기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좌우에서는 유신의 누이가 부모의 허락 없이 아이를 가져 화형에 처한다고 아뢴다.
이에 덕만은 누구의 아이냐고 되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춘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며 용서를 구한다.
덕만에게서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들은 춘추는 
황급히 유신의 집으로 가서 화형 당하려는 문희를 구하게 되고 이에 포사(鮑祠,포석정)에서 길례를 행하여 문희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얼마 안 있어 보량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문희는 보량의 뒤를 이어 정궁(正宮)이 되니 문명황후(文明皇后)이며
그녀의 장자인 법민은 바로 문무대제(文武大帝)이다.

김춘추의 정실 부인이 되었지만 유신과 문희는 춘추의 배신 행위에 대한 앙금이 오래 갔다고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진정으로 화해한 때는 선덕여왕 11년(642)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이 백제군에게 전사했을 때이다.
고구려 사신길을 자청한 춘추가 "이번에 내가 고구려에 가서 저들에게 해를 당한다면 공은 무심할 것인가?"라고 묻는데
매부가 죽어도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은 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님을 뜻한다.
이에 유신이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말발굽이 고구려, 백제 두 임금의 대궐 마당을 짓밟아버릴 것"이라고 답하여 
둘은 화해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신라 왕실의 핏줄과 가야계 군사력의 결합이기도 했다.
그 결과 김춘추는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 뒤를 이어 신라 29대 왕에 등극,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는다.


후일의 역사서에서는 남성들의 사적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춘추와 유신의 정치적 결속에는 문희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가의 비단치마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녀의 비젼은 훗날 김춘추와 그녀의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 왕실을 장악하는 위대한 유산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문희는 진정으로 멀리 내다 보는 혜안을 가진 슬기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찰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꾼 꿈을 비단치마와 바꿔버린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이에 춘추는 보희도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으니 김춘추는 문희,보희 두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아들인 셈이 되는데
유신, 춘추, 문희, 보희를 주축으로 벌어진 이 이야기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같은 신라 최대의 리얼 스캔들이다.

드라마에서 현재 보량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춘추.
41회에서 춘추는 보량을 납치하듯 자신의 근거지로 데려오고 보량과 춘추의 결혼 문제로 세종 측과 설원랑 측은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앞으로 드라마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른지는 작가의 펜끝에 달려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춘추와 보량, 문희의 삼각관계는 시청자에게 기다려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보량역의 박은빈은 성공적으로 시청자에게 얼굴을 선보였는데 문희역의 배우역에는 또 누가 캐스팅될른지...?
벌써부터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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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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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은 조연들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지는 드라마이다.
얼마전 백제군과의 아막성 전투씬에서 용맹함과 카리스마있는 지도력을 보여
단연 검색 순위상위에 랭크된 알천랑을 비롯해
샤방샤방한 풍월주 호재,
카리스마 호위 무사 대남보등의
10화랑이나 미실을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는 꽃중년 설원랑,
코믹 연기를 담당한 죽방, 고도 등 드라마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조연들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그 중에서도 미실의 동생으로 출연해서 매번 얄미운 <썩소>로 
시청자에게 각인된 미생(美生) 정웅인을 미실궁 세트장에서 만나 보았다.





원래 꽃미남으로 서라벌 일대를 주름잡았던 미생이 맡은 배역인지라 정웅인의 의상 또한 화려하고도 품위가 있는데
드라마에서 보기보다 실제 모습은 훨씬 멋지고 풍채도 당당하다.





이요원,고현정,엄태웅 같은 주연급 배우들은
일반인이나 기자는 물론 스텝들에게도 사진 찍히는걸 완강히 거부하는 통에 사진 찍기가 정말 어려운데 반해
정웅인은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요청에 기꺼이 허락하고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야간이라 조명이 너무 어두워 플래쉬를 터뜨리며 몇 장 눌렀더니 
"플래쉬 안 터뜨리면 더 잘 나오는데..."하고 코치까지 해 준다...ㅎㅎ





어설픈 사진 애호가인 필자의 셔터 세례에도 정웅인은 즐겁게 여러번 포즈를 바꾸며
카리스마있는 표정, 재미있는 표정, 귀여운 표정을 번갈아 지어 주어 진정한 연기자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톱스타들이 간혹 보여주기도 하는 폐쇄성 같은 것은 도무지 찾을 수도 없었고 
마치 자주 만난 옆집 아저씨같은 소탈함과 친근감을 그에게서 느낄 수가 있었다.





정웅인은 드라마 매회에서 코믹한 모습과 절제된 모습을 동시에 갖춘 미생의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는데
8년만에 재도전하는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안정된 연기력을 맘껏 발휘하여 
드라마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감초연기자로 더욱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여러가지 즐거운 표정과 포즈로
기꺼이 초보 사진사의 모델이 되어주신 멋진 정웅인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정웅인의 배역인 '라벌 최고의 꽃미남 플레이보이' 였던  '미생(美生)' 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화랑세기 10대 풍월주 十世 美生郞 (10세 미생랑) 편>에서 중략하고... 생략하여...  요약해 보았다.

서기 550년에 태어난 10세 풍월주 미생랑(美生郞) 은 미진부공의 아들이다.
아시다시피 미생의 손위 누이는 '미실궁주'인데 
진흥대제에게서 커다란 총애를 받은 까닭에 미생 또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진흥대제는 여러번 불러 입궁시켜 동륜태자,금륜태자 등과 더불어 토함공에게 함께 배우게 하였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아양을 잘 부려 두 태자 또한 총애하였고 만덕에게 춤을 배워 그 근본을 터득하였다.
사도황후가 여러 공주들에게 이를 배우도록 하였는데 공주들과 많이 사사로이 관계를 가졌다.
이에 진흥대제가 문초하려 하자 사도황후가 비호하였고
진흥대제 또한 미실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미생은 미실의 명을 받아 사다함을 따르는 낭도가 되었는데 당시 나이가 겨우 12살이라 말에 오를 수도 없었다. 
아버지인 미진부공이 그를 화랑에서 쫓아내려 했지만 미실의 비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자 문노는 "무릇 낭도란 자의 힘이 말에 오를 수 없고, 검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하루 아침에 일을 당할 때 어디에 쓸 것인가?"하며 내치려 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문노는 미생을 싫어했고 미생 또한 속으로 문노를 꺼려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았기에 사다함이 곤란하였다.

미실의 남편 세종이 풍월주의 대를 잇자 미생을 전방화랑으로 삼아 미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했지만 문노가 간하여 이룰 수 없었다.
미실은 이에 낭도들에게 뇌물을 주어 미생의 지위를 일으키니, 이해에 밝은 자들이 많이 따르게 되었다.

이에 이르러 서기 585년에 10세 풍월주가 되었는데, 미생의 나이는 이미 36살이었고
3년 동안 풍월주의 위에 있었는데 의론이 일치하지 않아 상선(上仙)이 많이 걱정하니 하종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미생은 부귀하게 나고 자라 아래 사람의 마음을 몰랐고
성품 또한 색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한 까닭에 뭇 사람들의 신망이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화랑도으로 있었기에 낭도들이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어(만여명이라 함) 모두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미생은 용모가 수려하고 말에 운치가 있었기에 유화((遊花)로서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는 자가 천백을 헤아렸고 
미생이 한번 눈길을 주면 따르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이 미생을 천간성(天奸星)이라고 하였다.
평상시에 거할 때도 시첩 수십인이 눈썹을 그리고 아름답게 화장을 하였다고 하니 그 향락함이 천자보다 더하였다고 하고
진(陳)나라의 사신은 이르기를 자기 나라에도 아직 이와 같은 재상이 없다고 하였다.
이른바 서라벌 최고의 플레이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은 처첩이 많았고 아들이 백 명이나 되었는데 미생의 아들인 백생(白生)·월생(月生)·발생(發生) 등은 모두 공주의 소생이고
드라마에서 미실의 호위무사로 등장하는 백호비도의 수장인 화랑 '대남보'도 미생의 아들이다.

미생이 백명이나 되는 아들을 사랑하는 정은 다른 사람의 배가 되었는데
비록 잘못이 있어도 나무라지 않고 그 성품에 맡길 따름이었다.
매번 명절에는 여러 아들을 거느리고 어머니 묘도부인을 뵈러 갔는데 묘도부인은 아이들의 어미를 다 구별하기 힘들었다.
미생과 닮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어디가 너와 닮았느냐?" 라고 물으면
미생은 번번이 닮은 바를 대답하여 감싸주었기 때문에 여러 아들이 미생을 사모하여 따랐다.
미생은 매번 수명의 아이를 거느리고 출근하여 종일 그 아이들과 더불어 즐겁게 놀다가 돌아왔으므로
사람들이 가리켜 말하기를 ‘호아령(護兒令)’이라 하였지만 한 사람의 관리도 책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리들 역시 미생이 좋은 재상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미생은 어머니와 손위 누이에게 효도하기를 감히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생의 노비가 미생의 옥배를 훔친 일이 있는데 미생이 처벌하려하자
노비는 담장을 넘어 도망하다가 다리를 다쳐 피를 흘렸다.
미생의 어머니 묘도부인이 미생을 보고 꾸짖어 
"노비는 수족이요, 그릇은 가지고 노는 것이다. 어찌 물건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느냐?
외척은 본래 사람들이 꺼리는 바인데 너는 어미와 손위 누이가 왕의 총애를 받은 덕분에 천하의 부를 가졌으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현사(賢士)를 높이고 무리를 사랑할 수 없으니 내가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더니
미생은 마루에서 내려가 종을 풀어 주고 친히 스스로 보살펴 친절하게 병을 고쳐 주었다.
그 후 무릇 도둑질하는 자가 있어도 모두 문제 삼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그 다리를 다치게 할까 걱정이다" 하였더니 도둑질은 이내 스스로 그쳤다.

또 미생은 일찍이 동륜태자와 더불어 여색을 탐하러 다녔는데
나마(奈麻) 당두(唐斗)의 처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태자와 함께 밤에 그 집을 찾아가 불러서 관계를 맺었다.
동륜태자가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의 담장을 넘다 개에 물려죽고 난 후 미생은 당두의 처를 첩으로 삼고자 하여 불러들였다.
당두는 이에 미실에게 호소하여 말하기를, "아이가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어미를 찾습니다. 색공만 하는 첩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하였다.
미실이 곧 미생에게 꾸짖어 말하기를 "태자의 사건이 있은 후 나 또한 두려워하는데, 어찌 다른 계집이 없어서 남의 처를 뺏느냐"고 꾸짖었다.
미실의 말을 들은 미생은 여자를 당두에게 돌려보냈다.
그러나 여자는 미생을 잊을 수 없어 혼자 스스로 도망하여 왔는데 미생은 좋은 말로 위로하여 돌려보냈다.

미생은 당두가 다시 호소할까 염려하여 여러 번 당두를 천거하여 발탁하였다.
당두는 그 은혜를 고맙게 여겨 아내를 바치려 하였다.
미생은 "손위 누이의 명령이라 감히 그럴 수 없다" 하였다.
당두가 물러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은 공이 색을 밝힌다고 말하지만 나는 공이 효도하고 우애가 있다고 생각한다"하였다.
이에 미생의 신하가 되기를 원하였다.
미생이 조부(調府)에 들어가자, 당두를 사부(司簿)로 하여 정치를 크게 바로 잡았다.
진평제가 이에 훌륭하게 여겨 술을 내리자 미생은 말하기를 "신의 능력이 아니라 당두의 공입니다"고 하였다.
당두의 처는 미생의 세 아들을 낳았는데 미생은 거두지 않고 당두의 아들로 삼을 것을 명하였다.
당두 또한 아들로 삼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일을 서라벌 사람들은 아름답게 여겼다고 한다.
미생은 오랫동안 조부에 있으며 누만금의 재물을 모은 것 또한 당두의 힘이었다. 


묘도부인은 사도 태후의 손위 언니로 얼굴이 근엄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서
미생을 비롯한 누이와 동생들에게 주의를 주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였다.
한 번은 미생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리 집은 대대로 '색공지신(色供之臣:색을 바치는 신하)로 총애와 사랑이 지극하였다.
아직 네가 누리는 부귀와 같은 것은 없었다. 너는 아직도 부러운 것이 있느냐?" 하였다.
미생이 말하기를 "제가 숙모에 대하여는 화문만 못하고, 누이에 대하여는 설원만 못하고,
낭도에 대하여는 문노만 못합니다. 어찌 부러운 것이 없겠습니까?" 하였다.
묘도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 세 사람 또한 너에게 부러운 것이 있다" 하였다.
대개 그 부유함과 첩이 많고 자녀가 많은 것을 말한 것인데, 풍자하여 훈계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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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기 60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나이가 6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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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하고 부귀로운 화류(花柳)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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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화랑세기'는 1989년에 발견되어 오랜동안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책.
원자는 김대문인데 그에 의해 화랑세기가 쓰여진 사실은 삼국사기에도 나와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고 보는 사람은 자기들이 알고있는 신라의 모습과 따르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
당시에 사용하지 않던 글자들이 있다는 점등을 들어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화랑세기를 인정하는 학자들은 삼국사기 자체가 신라인 후손에 의해
유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므로 신라사회를 미화했을 수 있으며
그밖의 다른 유물들을 볼때 화랑세기에 나타난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풍속등은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라사회의 자유로운 성풍속은 성행위를 묘사하는 각종 토우들이나 성적인 장난감, 삼국유사의 직접적인 성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조선 시대 이후 유교의식에 젖어 있던 우리네 상식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생각 외로 높았던 신라 사회와 
조선에 비해서 너무나 자유로웠던 신라사회의 성의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든 아니든 화랑세기에 그려져 있는 10대 풍월주 화랑 미생은
드라마에 비쳐지는 것처럼 그렇게 간사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여자와 돈을 밝히고 향락에 치우친 불성실한 인간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효성이 지극하고 의리 빼면 시체인 
전형적인
꽃미남 플레이보이 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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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 방영 이후 
시청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배우를 들라면 남지현과 이현우가 아닐까...

지난번 이현우 관련 기사를 포스팅한 후
필자의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중 단연 1위가 선덕여왕 이현우이다.

며칠 째 이현우라는 키워드 검색이 1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걸로 보아
새삼 떠오르는 별 이현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현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는 선덕여왕의 아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릴 적 부터 김유신의 친구처럼 따라다니며 보좌하는 용화향도의 이름은 곡사흔,대풍,시열이다.


그중 자그마한 친구는 대풍 역의 이석민,오른쪽은 곡사흔 정형민인데



그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낭도는 단연 시열 신태훈이다.
김유신 역 이현우 옆에 서 있는데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알맞게 살짝 쌍꺼풀진 눈, 도톰한 입술.....피부 또한 뽀샤시하기 이를데 없다.


 이현우도 귀티가 좔좔 흐르지만 시열 신태훈의 간지 또한 만만치 않다.


벌써 많이 자라 웬만한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바라보는 눈빛 또한 그윽하고 시선 처리 또한 어디를 두어도 심상치 않다.


아직 다크 호스에 지나지 않는 시열 신태훈. 
자세한 인적 사항도 나와 있지 않은데 여기저기 뒤져서 겨우 겨우 자료를 찾아보니

어릴 적에 비단향꽃무의 아역으로 처음 데뷔했었다고 하는데 SBS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내시 홍귀남의 아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고 하니 아역으론 벌써 경력이 한참 쌓인 친구였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화랑산채 촬영장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낭도 중에서 다시 신태훈을 발견했다.

선덕여왕 촬영장 '신라 밀레니엄 파크' 바로 가기


아니...! 이 친구는 훈련에 지쳐 쓰러져 있는 연기를 왜 이리 섹시한 포즈로 하는거냐.....!
완전 누나들을 떡실신을 시키는구나....@.@
전국 누나 팬들의 하앍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이 사진을 여기에 업뎃하기에 앞서 잠시 다른 여성 동료에게 메신저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 사진을 본 그 동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그저 날타만 연속 날릴 뿐이었다.
"#$%&;4)_&ㅍ츹ㅁ;ㅔ'ㅂ!#_++_(!#$&^)*&_(+ㅣㅠㅁ제앶해ㅗㅑ_(^*_(%&))&*)(*$!!*+_+~~~!!!"


차세대 유망주로 미리 예약해 두어도 부족함이 없을 신태훈.
잘 자라서 유승호나 이현우에 못지 않은 훈남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


선덕여왕의 귀엽기 짝이 없는 아역 낭도 F4의 시대는 이렇게 8회로써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시열은 이렇게 훌쩍 커 버렸구나...^^;;


성인 시열 역은 '일지매'에 나왔던 문지윤이 이어 받았다. 큰 키와 도톰한 입술이 얼추 비슷하게 닮았긴 한데......


일주일 사이에 훌쩍 커서 이제 성인이 되어 버린 용화향도의 낭도 F4.
귀여운 아역들 보는 맛에 선덕여왕 시청이 한동안 즐거웠는데
이제는 무슨 맛으로 선덕여왕을 보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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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에 나온 신태훈의 정보입니다.
생년월일 : 1994년 3월 22일
이메일 주소 : th94_0322@hanmail.net
드라마 - 유리구두,아버지처럼살기싫었어,비단향꽃무,저푸른초원위에,
황금물고기,러빙유(단역),코미디본부, 논스톱3, 왕과 나 등
CF - sk,신세기통신,테팔,아시아나항공,두산동아(브레인),웅진씽크빅,테리,fila지면촬영,
돈육,배스킨 라빈스 31,잉크테크,LG텔레콤,안성탕면,조청유과,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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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주인공의 일생을 그리는 사극 드라마는
극의 특성상 아역들이 출연하는 부분이 드라마의 전반부를 장식하게 되는데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아역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 또한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도 선덕여왕 덕만의 아역을 맡은 남지현의 똑 부러지는 당찬 연기와
천명공주 아역 신세경의 외유내강의 연기가 어울려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였는데
덕만 역의 남지현과 천명 역의 신세경 못지 않게 주목을 끄는 아역이 또 있으니 
바로 김유신 아역으로 출연한 이현우이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천년고도'를 걸어오는 한떼의 화랑들을 만났다.

화랑 김유신이 이끄는 용화향도.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뜨이는 앳된 용모의 화랑 김유신, 이현우다.



걸어오는  길목에 세우고 셔터를 눌렀다.
물기 머금은 눈, 귀티 나는 이목구비,  흠잡을데 없는 외모가 화랑 김유신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
 



수줍은 듯 잠시 포즈를 취하고는 촬영장으로 들어가는 이현우.
미소를 흘리며 고개 돌리는 옆모습은 흡사 유승호가 아닌가..
셔터를 누르는데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흔들린 사진이 되었지만 삭제해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사진이라 올려보았다.



이현우...

처음 등장했을 때 앳되고 풋풋한 인상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했더니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출연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돌아온 일지매에서는 차돌이 역, 태왕사신기에서는 이필립이 열연한 처로의 아역,

드라마 로비스트에선 송일국 아역, 대왕 세종에서는 충녕대군 아역 등 대부분 주인공의 아역을 독차지 했는데
이번 선덕여왕 덕만 역의 남지현과는 로비스트, 대왕 세종에 이어 세번째로 상대 아역을 맡게 되는 뗄래야 뗄수 없는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선덕여왕에서도 김유신의 아역을 꿰어참으로 인해 누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이현우.

너무 앳되어 보이는 용모 때문에 처음엔 중학생인 줄 알았더니 1993년생으로 현재 평촌고등학교에 재학중이란다.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본 이현우는 고집스러울 만큼 성실한 이미지의 김유신 아역 답게 호
소력 있는 눈빛 연기로 주위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비록 아역인지라 몇 회 나오지 않고 성인 김유신역인 엄태웅에게 대본을 넘겨주고 8회에서 하차했지만
앞으로 다른 드라마에서 또 다른 배역으로 이현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역으로 인기를 한몸에 모으다가 커서는 어릴적의 외모을 상실해서 팬들의 실망을 안겨주는 아역들이 종종 있지만

아역 출신 중에서도 '잘 자란 아역'을 꼽으라면 단연 유승호가 아닐까?
이제 아역이 아닌 성인 배역 김춘추의 역할을 맡아 곧 이어 등장할 유승호가 매우 기다려 지는 가운데
이현우 또한 유승호의 뒤를 이을 '내일의 꽃남'으로 '잘' 자라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수많은 누나 팬들의 선망의 대상인 유승호를 따라잡을 만한 재목 이현우,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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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나 월요일을 맞이하는 스트레스는 막중하기만 하다.

하지만 요즘 여학생들은 물론, 주부들까지 은근히 월요일 밤을 기다리곤 하는데

바로 '꽃보다 남자' 가 대한민국 누나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꽃남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인터넷은 물론, 어딜 가나 '꽃남'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데

 극중에서 F4 멤버가 살고 있는 호화 주택들 또한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금잔디를 놓고 구준표와 삼각 관계를 벌이는 윤지후의 

이색적인 한옥집이 대체 어디인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전대통령의 손자이기도 한 윤지후의 으리으리한 한옥집은 다름아닌 경주에 위치한 '라궁' 

 

 

무한도전 촬영 등을 비롯한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이미 여러번 소개되기도 한 곳이지만

꽃남 촬영을 계기로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라궁에서 숙박하거나

기념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이 때....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심(?)한 필자가 라궁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라궁 밀착 취재(?)를 위해 선약을 하고 신라밀레니엄파크로 향하니

담당 직원을 만나기도 전에 부푼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인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주차장에서 왼쪽 산 아래 한적한 길로 접어들면 라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라궁의 입구엔 방문객들이 서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기념 촬영에 빠지지 않는 것은 다름아닌 '구준표나무'이다.  

 

 

 꽃남  8회, 금잔디와의 정식 데이트에서 윤지후는 그녀를 바이크에 태워 자기 한옥집으로 데리고 가게 되는데 

 

 

 두 사람의 데이트를 미행한 구준표는 금잔디에 대해 접혀지지 않는 마음을 괴로워하며 윤지후의 집 앞에서 서성거린다. 

 

 

  질투심으로 괴로워하던 구준표, 급기야 담 옆에 서 있던 나무를 사정없이 발로 차며 화풀이를 하고는 

혼자 길길이 뛰다 돌아가는데 바로 그 장면에서 구준표에게 수난을 당하던 나무가 담 옆에 불쌍하게 서 있다.

내가 갔을 때에도 그 작은 나무는 구준표의 거친 발길질 때문에 지지대 하나가 살짝 뽑혀 있었는데 며칠 전 보수되었다. 

 

 

 8회 방영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구준표나무'는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오는 사람들마다 구준표나무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 나무가 부디 튼튼하게 잘 자라주어야 할텐데.... 

 

 

 구준표가 애태우며 왔다 갔다 하던 돌담길도 여학생들에겐 필수 사진 촬영 코스가 되었다.

 

 

 

  이렇듯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궁은 우리나라 유일의 한옥 호텔인데 

 

 

  '신라밀레니엄파크'의 한 부분인  '라궁(羅宮)'은 '신라의 궁궐'이란 뜻이다.  

 

 

 기존의 한옥들과 달리 전통 한옥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에 맞게 과거를 재해석하여, 새롭게 현대화한 기능을 담아 재탄생시켰다. 

 

 

 이것은 문화재 형태로만 존재해오던 과거 유산을 실용적 건축물로 재탄생시킨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5월 완공한 라궁은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목수 107명 ,석공 16명 등

전통 한옥 장인들이 모이는 유래없는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데

경복궁 증축 이래의 전문 목수 최대 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기도 했다. 

 

 

  처음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곳은 관리동.

로비, 리셉션데스크, 레스토랑이있는 관리동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라궁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화려함을 보여준다.   

 

 

 자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니 금잔디와 꽃남 F4들이 반겨 맞아 준다.

 

 

이어 중정(中庭)을 가운데 두고 ㅁ자 형의 로비가 이어지는데

2층 건물을 그대로 터놓은 서까래 천장과 이를 받치고 있는 육중한 대들보가 그대로 다보이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높은 천장과 독특한 조명등으로 인해 '라궁' 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는 위엄과 기품이 드러난다.  

 

 

 

천장 아래는 대형 노리개와 둥근 한지 조명등이 설치 미술작품처럼 걸려 있다.  

 

 

 그 외에도 물결치는 파도처럼 곡선을 그리는 조명등을 비롯해

모든 인테리어가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특별한 멋을 더해준다.  

 

 

  이 종이 공예 작품들은 공예 작가 차현림씨의 작품이다.  

 

 

 중정을 중심으로 사방을 돌아 리셉션 데스크로 연결되는 관리동의 1층에는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전통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다. 

 

 

 ㅁ자 형 로비에 둘러 싸인 중정에는 열린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서 있는 나무가 있는데 

어느 공간에서나 창을 통해 이 중정을 감상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한지로 된 문살 앞에 휴식하듯 놓인 화분과 토기,가구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후의 빛이 잘 비쳐드는 아담한 리셉션 데스크의 직원들은 예약차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해 보였다. 

 

 

 

 호텔 직원들은 다 이렇게 신라인 복장을 하고 근무를 하는데  

 

 

 꽃남 방영 이후 더욱 많이 알려진 라궁에는 평일에도 예약이 밀려들고 있다는 후문이....  

 

 

 

 관리동의 2층은 한식 레스토랑인데  여기에서 라궁을 찾은 이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된다. 

 

 

 녹두전, 제주생갈치구이, 소갈비찜 등으로 이어지는 한정식이 저녁 메뉴이며,

아침으로는 정성스럽게 끓인 죽도 제공된다는데 숙박 요금에는 석식과 조식이 다 포함되어 있다. 

 

 

 특히 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라궁의 운치있는 전경 덕분에 그 맛이 배가가 된다고....  

 

  

 

 전체 건물의 구조는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ㄴ자로 객실이 연속해있으며

로비가 있는 관리동과 함께 ㄷ자를 구성,

뒤쪽 산으로 이어지며 빙 둘러싸인 ㅁ자형을 구성한다.  

 

 

 라궁의 배치도를 보면 복잡한 이 건물의 구조 이해에 조금은 도움이 되실 듯....  

 

 

 호텔의 꽃은 객실....오천평이나 되는 대지 위에 세워진 라궁의 객실은 16개에 지나지 않는다.   

 

 

 길게 이어지는 지붕을 공유한채 독립된 각 객실이 회랑을 따라 이어지는 형태로 지어졌다. 

 

 

 객실의 형태는 앞쪽 호수로 돌출된 누마루형, ㄷ자형을 기본으로 하는 마당형,

그리고 스위트룸,로열 스위트룸 총 네가지 유형이다.  

 

 

  작은 연못이 있는 서쪽편에서 보면 객실은 누마루형과 마당형이 교차되면서 이어지고 있는데 

 

 

 누마루만 반복되면 외관상 모양이 좋지 않기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호수쪽으로 돌출된 누마루가 있는 누마루형과 상대적으로 마당이 더 넓은 마당형이 교차되도록 하고  

 

 

 양끝에 각각 스위트룸을 마련, 반복의 끝에서 약간의 변주를 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어떤 하루를 누릴 수 있을까?

리셉션 데스크에서 키를 받아든 직원의 안내를 받아 회랑 맨끝에 위치한 객실로 향했다. 

 

 

  라궁의 제일 가장자리인 이 방은 '로열 스위트룸'이다. 

 

 

 카드 키를 갖다 대면 열리는 현대식 호텔문 대신 삐거덕거리는 나무대문이 기다리고 있다.  

 

 

 대문을 열고 빼꼼이 들여다 보니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로 올라서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내부는 29평 정도인데 대청 마루, 안방, 침실, 미니바, 누마루 스파,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깔끔하게 마감된 대청마루에는 장지문을 뒤로 하고 전통미를 가미한 소파가 갖추어져 있다.



 

한옥이니까 당연히 방바닥에 이불을 펴는 좌식 구조이거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객실 내의 모든 가구는 입식인데 좌식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직 온돌이 도입되기 전인 신라 시대에는 침대, 의자등을 사용한 입식 생활을 했으므로

신라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대청 마루문은 유리 미다지로 되어 있어 창을 열지 않아도 툇마루가 달린 아늑한 마당이 다 보인다.

햇살이 따스한 봄날이면 마루 문을 열고 남서쪽에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에 느긋하게 몸을 맡기며

복잡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잊고 있었던 고요의 미덕을 오랜만에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날 수 있다.  

 

 

 대청마루 오른편에는 침실이 자리잡고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침실은 적막함 속에서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서인지 TV조차 비치해 놓지 않고 있었다. 

 

 

 침실의 모든 가구는 금빛 장식을 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는데  

 

 

 불꽃 모양 스탠드를 밝히고 붉은 빛에 금빛 수를 놓은 침구 속에 파묻히면 

마치 신라의 임금이 된 듯한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스파가 따로 있지만 객실에는 화장실 겸 욕실이 2개 더 있는데 여기는 침실 옆의 욕실이다. 

 

 

 대청 마루를 통해 거실의 구실을 하는 안방으로 들어가면

라궁 특유의 금장식이 더해진 전통가구들이 양쪽에 놓여 있다. 

 

 

 대형 TV가 자리잡고 있는 화사한 문갑.  

 

 

불꽃 모양 금관 장식과 드리개 장식을 인용한 옷장. 

 

 

 금관 달개의 모양을 응용한 문고리. 

 

 

다양한 종류의 화려한 문갑이며 장식장들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전화기도 방 안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안방 맞은 편 왼쪽은 미니바인데 

 

 

 차를 마실 수 있는 용품들과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다.

 

 

 이 객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누마루에 있는 '스파'이다.

 

 

 

사방이 장지문으로 둘러싸인 이 스파는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임금님의 욕실 같지 않은가. 

 

  

 욕조의 크기는 제법 커서 2~3명이 들어 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경주는 수돗물조차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온천수의 수질이야 더 설명할 것도 없다.  

 

 

 더욱 기억에 남는 온천욕을 즐기려면 장지문을 활짝 열어도 될 듯.... 

  

 

로열 스위트룸에선 누마루 밖에 선 대나무가 살짝 시선을 가려주니  

 

 

  장지문을 열어둔 채로 햇살 비치는 누마루에서 스파를 즐기는 짜릿함도 체험해 보면 좋을 듯... 

 

 

 

 로열 스위트룸을 나와 마당형 일반 디럭스룸의 대문도 열어보았다. 

 

 

 한옥 마당 가운데에 특이하게도 노천 스파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일반 호텔에서도, 기존 한옥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경험이다. 

 

 

 ㅁ자형 한옥으로 둘러싸인 노천 스파는 대문만 닫으면 바로 은밀한 공간이 되어

낮에는 환한 햇살 아래, 밤에는 달빛 아래서 환상적인 온천 체험을 하게 해 준다. 

 

 

 이 디럭스룸의 면적은 23평 정도라고 한다. 

 

 

 

객실 동쪽 언덕에는 세 채의 오래 된 한옥이 날아갈 듯 앉아 있다. 

 

 

 '숙재헌'이라 불리는 이 고가들은 댐공사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한 건물을 옮겨 놓은 것이다. 

 

 

 

 라궁이 현대화된 최신 한옥이라면 숙재헌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낡은 한옥이다. 

 

 

 시대를 초월해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두 한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아이들에겐 충분한 체험 학습이 될 것 같다.

  

 

 

 하루종일 필자와 함께 라궁을 둘러보신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의문이 생기실 것 같다.

아니...그럼.....윤지후의 방은 대체.....어딘데.....?? 

 

 

 라궁의 외부는 윤지후의 한옥집이 분명하나 윤지후의 잘 꾸며진 거실이며 침실은 이곳에 없다.

우리가 '꽃남'에서 만나게 되는 윤지후 한옥집의 실내는 단지 드라마 세트일 뿐이다.  

 

 

  라궁 방문객 중 운이 좋은 분은 드라마 출연진들을 불시에 만날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갈 때마다 방송국 스텝들과 마주치곤 했으니....

 

하지만 이곳에서 준표나 지후를 못 만나더라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를 마시길 바란다.

박태환을 닮은 '신라 꽃남'이 여러분들을 신라 천년의 향기 어린 '라궁'으로 인도해 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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