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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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에 위치한 하회마을은 '하회(河回)'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마을 전체를 감싸 돌아 '물도리마을'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인데
하회마을에서도 가장 안쪽인 소나무 숲 맞은 편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부용대(芙蓉臺)'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화회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부용대는 강변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이용해 건너갈 수 있는데
불어난 강물로 인해 나룻배가 운행치 않아 하회마을에서 벗어나 승용차를 이용해 먼길을 돌아 부용대로 향한다.


부용대 입구엔 화천서원(花川書院)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사원이 자리잡고 있는 이 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맏형인 류운용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유도문, 누각인 지산루, 강당인 숭교당이 좌우에 동서재를 거느리고 있어서 병산서원과 거의 같은 배치를 보이고 있는 점이 눈에 뜨이는데 
100 여년 동안 이어 내려오던 화천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96년에야 복원되었다.


화천서원 앞에 차를 주차하고 좀 걸어가니 서애 유성룡 선생이 건립한 옥연정사(玉淵精舍)가 그 모습을 나타낸다.


정사(精舍)란 학식 높은 유학자가 학문을 강의하고 정신을 수양하던 곳을 이름인데


옥연정사는 류성용 선생이 만년에 임진왜란 때의 일을 추억한 징비록을 저술한 곳이니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옥연정사의 문을 지나 부용대로 오르니 아침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긴 했지만 심한 안개가 끼어 시야가 분명치 않고 뿌옇게 흐려기만 하다.


64m 높이의 절벽인 부용대 정상에 오르니 햐아.....하회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바로 아래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하회마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방금 앉아서 쉬다 온 소나무 숲도 발을 디디면 사뿐히 내려설 수 있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부용대 정상에 서서 하회마을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니 아하.....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차 트렁크에 삼각대를 넣어두고 그냥 온 것이다. 좀 무겁더라도 삼각대를 가져와야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는데....
삼각대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선 자리에서 몸을 비틀어 화회마을의 전경을 이리저리 마구 담아본다.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손각대로 찍은 사진 4장을 붙여 억지로 파노라마를 만들어 보았다.
이어지는 부분을 자세히 보면 이미지가 많이 틀어진 것을 보실 수 있는데 부디 너그럽게 보아 주시길....

집에서 출발할 때 "모처럼 출사인데 웬 비...."이렇게 생각하며 궂은 날씨를 원망하며 나섰는데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회마을을 둘러싼 강과 산에서 신비로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정경 앞에 서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카메라를 든 손마져 떨릴 정도로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절벽 끝으로 조심스럽게 더 다가서서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헉....64m 라고는 하지만 체감되는 엄청난 높이로 인해 발바닥이 짜릿짜릿하다.


강물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물내음을 맡으며 부용대의 시원한 경관에 취해 멍 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맞은편 산에서 피어오르던 물안개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회마을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당황하며 어....어.....하는 동안 순식간에 하회마을은 물론이고 발 아래 강물과 숲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뿌옇게 흐려지고
부용대 정상으로도 물안개가 자욱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채 5분도 안 되어 발 아래 강물이 안 보일 정도로 주변이 안개로 가득해진다.
이미 4시를 넘어 5시가 가까워지는데 안개가 몰려오며 주변이 어두워지니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서둘러 부용대를 내려온다.


부용대 아래로 내려와 절벽 위를 바라보는데 바위가 꿈속의 장면처럼 희미하게 보이니 갑자기 머리와 눈 앞이 몽롱해지며
지금 이 자리에 선 나는 현실의 나일까....꿈 속의 나일까.....하는 착각마져 들기도 한다.


안개로 인해 부용대를 내려왔지만 그냥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나 아쉬워 인적 하나 없는 강변을 거닐어 본다.


절벽 바로 아래에는 이렇게 수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그림같은 바위도 있는데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강변 모래톱에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너무나 몽환적이다.


발길을 옮기지 못 하고 가만히 물안개를 바라보고 있으니 구름 낀 하늘, 물안개, 건너편 마을의 불빛이 모두 강물에 그대로 어린다.
하늘의 구름, 물 속의 구름.....땅 위의 물안개, 물 속의 물안개.....모두가 그대로 한폭의 멋진 데칼코마니다. 


처음 오른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의 정겨운 파노라마, 뭉실뭉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건너편 산의 장엄한 모습,
저녁 무렵 강물에 어리는 산과 구름, 물안개......꿈인지 현실인지 모든 것이 너무나 몽환적이다.
해지기 전에 하회를 벗어나리라 생각했던 발걸음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떼어지지 않고
하염없이 건너편을 응시하다 그만 그 자리에 털석.....주저 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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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머무는 동안 밤의 몽골을 느껴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다운타운 한가운데 엄청나게 큰 게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골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식 이동주택인 게르가 시내 한복판에도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민의 거의 반 정도가 게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전 포스트  아파트와 섞여 있는 몽골 천막집 게르 에서 자세히 말씀드린바 있다.



가까이 가보니 이 엄청난 규모의 게르는 다름아닌 갤러리였다.


'Welcome to our Gallery' 라고 쓰여진 게르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았다.


아.....! 소박하기 그지없는 외관에 비해 내부는 엄청나게 넓었고 분위기 또한 아주 아늑했다.


넓기만 한게 아니라 유니(uni,나무기둥 윗부분)가 2중으로 되어 있고
보통은 2개 뿐인 게르의 중심 기둥 바가나(bagana)도 4개로써  
천정까지의 높이도 엄청 높은 거의 호화 주택 수준의 게르였다. 


지붕의 둥근 천정인 터너(toono)도 엄청나게 큰 사이즈인데 한쪽 부분은 열어두어서 컴컴한 밤 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벽에는 소품을 비롯해서 상당한 크기까지 많은 미술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몽골의 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림 아래에 쓰여진 글자에 눈이 갔는데 이 글자는  위구르 문자를 개량한 몽골의 전통 문자로서 한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쓰는게 특징이다.
몽골은 이렇게 몽골 전통 글자를 쓰다가 공산화 이후 현재는 키릴문자(Cyrillic=러시아어 표기에 쓰임)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그림 중에는 말을 형상화한 추상적인 그림으로부터  


사실적인 그림까지 말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데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다고 할만큼 몽골인들의 삶은 말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교통 수단이다.


몽골의 파란 하늘 아래 낙타의 무리가 떼지어가는 아주 시원한 그림도 있는데 


아라비아 낙타가 혹이 하나인데 반해 고비사막의 낙타는 혹이 두개이라서 혹 속의 지방질로 열악한 환경을 잘 견딜 수 있다.


 '루브즈'라는 방한모를 쓴 남자가 연주하는 악기는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 '모린호르(morin khuur)로써
 악기의 머리에 말머리를 조각했을 뿐 아니라 말총을 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두금(馬頭琴)이라고 부른다.
모습과 소리는 우리나라 해금과 흡사하여 애절한 느낌이 든다.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양털을 두들겨 손질하고 있는데 양털은 옷은 물론이고 양탄자에서 게르를 덮는 직물까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는 필수품이다.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말을 달리는 그림에서는 유라시아를 평정한 몽골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몽골의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사진을 찍는 경험도 해볼 수가 있다.


아주 큰 사이즈로 그려진 몽골 씨름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체급 구분과 경기 시간 제한이 없는 몽골 씨름은 상대방의 무릎이나 팔꿈치등을 먼저 땅에 닿게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데
최후의 승자는 나담 축제(7월 11~13일)기간 중 시합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몽골 대통령에게 푸짐한 선물을 받는다.

 선수들은 시합이 개시되기 전이나 승리하고 나서는 이와 같이 '잔진 말드가이'라는 모자를 쓰고
'가루다(전설 속의 동쪽 새)' 모형 주위를 돌며 날갯짓을 흉내낸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칭호는 매, 코끼리, 사자,거인인데 '거인'은 나담 축제 연승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이다.


아이는 몽골인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이다.
태아숭배사상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는 귀하게 대접받으며 임산부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용서받는다.
교육열도 엄청 높아서 교육을 국가 정책의 우선 과제로 생각하며 
몽골인의 가장 큰 소망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몽골 민속의상은 지금도 남녀 구분이 없이 언제나 애용되는 옷이다.
 델(deel)이라고 부르는 이 옷은 위아래가 하나로 된 소매가 달린 헐렁한 가운인데
칼라가 있고 앞부분이 크게 겹쳐져 허리띠로 졸라매게 되어 있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말드가이(모자)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갤러리 안의 그림을 다 돌아본 후 몽골 전통 의상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몽골 소녀 앞에 서서 눈을 맞추어 보았다.
눈이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크롭한 구도로 인해 그녀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드러내 표현한 것보다 더 과감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소녀의 모습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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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꼭 관람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공연이 있는데
바로 토르고(Torgo) 패션쇼이다.
몽골 전통 민속 음악과 민속 퍼포먼스와 함께 아름다운 몽골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이 패션쇼는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몽골 전통 의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를 알게 해 준다.

매일 6시에 공연이 열리는 토르고의 일층에는 각가지 민속 의상과 민속 원단을 전시해 두었는데
토르고(Torgo)라는 몽골어가 '비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옷이 실크 원단으로 되어 극도로 화려하다.



함께 공연되는 몽골 전통 음악과 공연은 다음에 다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전통적인 몽골 의상과 더불어 현대에 맞게 디자인한 신개념 퓨전 의상까지...멋진 몽골의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플래쉬가 없어서 ISO를 1600으로 올려서 찍다 보니 사진 상태가 좋지 않군요.....이해하시길 바라며....)

남녀가 입고나온 이런 몽골 전통 의상은 델(deel)이라고 한다.
부스라는 허리띠로 졸라매어 옷의 길이와 폭을 조절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비단천에 화려하게 수놓은 허리띠를 매기도 한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남자 모델이 신은 고무신처럼 코가 살짝 들려진 신발은 고탈(Gutul)이라고 한다 .


이 커플은 마치 칸(Khan) 부부처럼 당당하고 화려한데 몽골에서 모든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모자(말드가이)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보통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모자는 지금도 도시 사람에게 많은 인기가 있으며 


검은 담비로 만들어진 모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가 끝나면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한 퓨전 의상들을 선보인다.


지극히 몽골스러우면서도 아주 화려하기 이를데 없고 감각적인 의상들을 해설없이 눈요기 하시길.....























패션쇼가 끝난 후에 잠시 모델들과 기념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다....하고 모델들의 포트레이트를 몇 장 찍었다.


모델들은 아주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으므로 짧은 시간이나마 정신없이 몇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그리고 미인 모델만 보아서 눈이 심드렁해진 여성 팬들을 위하여......


카리스마 돋보이는 남성 모델샷도 서비스로 함께 올려드린다.


패션쇼의 제일 마지막에 가면을 쓰고 나왔던 칸(khan).


가면을 벗으니.....185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 어울리는 멋진 훈남이다.


이 훈남이랑 기념 사진 한번 찍으려고 여성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는 전설이.....^^;;


전통 의상 패션쇼 소개를 간략하게(?) 마치면서.....개인적으로 모델 중 베스트를 꼽아 보았는데
3위에는 정열적인 의상에 어울리게 환한 미소를 띄어주던 이 모델....


2위에는 특히 오묘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던 모델.


하리수를 살포시 닮은 미녀 모델은 그 세련된 무대 매너가 가장 기억에 남아서 베스트 1위로 선정해 보았다.

여러분, 몽골 전통 의상과 몽골 모델들이 맘에 드셨나요?
사진으로나마 함께 패션쇼를 감상하신 여러분들의 눈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즐거우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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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게 개인 날,
버스에 올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nnbataar)의 남쪽 외곽지역으로 향한다.




울란바타르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 지부(Khan -Uul District Red Cross Branch)'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칸-울 지역은 14개 구역에 약 9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달동네와 같은 지역이다.



수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가옥 또한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나 대충 지어진 판잣집이 많고 도시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매우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4일 나담 축제 기간에는 화재가 일어나서 게르 14채가 불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7월 21일 ,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해 게르 1,000여채가 떠내려 가고 사상자도 났으며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칸-울 지구에 물이 차 올라 사람들이 걷거나 차가 운행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길 곳곳에는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어서 길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칸-울지구의 건강과 구호 활동을 위해 봉사하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를 찾아가는데 거리에 고인 흙탕물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걸어 가야 했다.



조그만 판자문을 통해 들어간 좁은 공간에는 벽돌집 한동과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Ger) 두채가 있었다.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는 2001년도에 적십자사에서 건립했는데 우리를 맞아준 게르는 EU에서 지어준 것이다.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몇 분이 먼저 오셔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 RCY 일행들은 준비해 간 우정의 선물 일부를 칸-울 지역에 전달했는데 우정의 선물은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들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이 이분들에게 귀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어 복지 센터로 쓰이는 게르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는데



밝은 외부에서 게르의 실내로 처음 들어가면 갑자기 너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게르의 둥근 천정(터너)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살로 인해 곧 눈이 밝아지고 모든게 익숙해진다.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칭기즈 칸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역대 칸-울지구 적십자 책임자인 듯한(?)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게르의 중앙에는 귀한 생수와 사탕이 전통식 탁자 위에 베풀어져 있었고



 몽골 전통 우유과자인 '아롤(aaruul)' 도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몽골에서 한국을 이르는 말)'에서 온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칸-울지구 적십자 지부장과  자원봉사자 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한국측 대표의 인사와
가지고 간 우정의 선물 및 대한 적십자사 총재의 선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환영해 주신 분들 중에서 녹색 '델(Deel,몽골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1955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자원봉사를 하셨다는데
가슴에는 여러개의 기념 뱃지와 훈장이 빛나고 있어 할머니의 활동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내어주는 자원 봉사를 하셨기 때문일까?
올해 86세라고 하시는데 그 태도는 배우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주색 델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70년 동안 적십자 자원 봉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몽골 적십자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면 이 할머니는 거의 몽골 적십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 델을 입으신 라마승은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통 예절을 교욱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이 지역 노인들이 나와서 멀리서 온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장기 자랑 공연'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을 하러 갔는데 노인들에게 도리어 '위문 공연'을 받은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치는 이 노인들에게는
멀리서 온 방문자들에게 자기들의 숨어 있던 실력을 보여준다는게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생각하며 기분좋게 들으면서 박수도 신나게 칠 수 있었다.



노래의 반주로 아코디언과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는 이어서 기타 독주, 하모니카 독주까지 한다.
한곡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지고......^^
젊었을 때에 한가락 날리고도 남았을 이 할아버지의 끼는 이날 완전 날개를 달았다.



칸-울지부 적십자사 복지센터에서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과 식사 등을 제공하는 등의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날 한국에서 방문한 일행은 노인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는 외에 몽골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마사지 봉사를 했다.



라마승 또한 한국에서 온 사이비 마사지사(?)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함을 즐겼다.
발에 신은 특이한 부츠는 '고탈(Gutul)'이라고 하는데 가죽으로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무신처럼 앞코가 살짝 들리고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마사지 후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이쁘게 문신 스티커를 붙여 드리니 너도 나도 와서 팔뚝을 내미셨다.



살며시 스티커를 떼어 문신이 나타나면 "오~~!" 하면서 너무 즐거워 하셨다.



화장을 곱게 하고 몽골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던 이분도 문신이 아주 맘에 드셨나 보다.



요술 풍선으로 만든 꽃 한 송이를 흔들며 웃으시기도 하고....



풍선 왕관에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이쁜 손길로 주물러주는 마사지까지 받으니 만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별 것 아닌 봉사에도 너무나 좋아하고 기분 좋아 하시던 어르신들은 우리의 마사지 봉사를 다 받고 나시더니 
이번엔 수고한 한국 방문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놀라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손사레를 치고 여러번 거절한 후에야 간신히 그분들의 마사지 시도를 막을 수가 있었다. 




몽골 어르신들은 특히 사진 찍히기를 즐거워 하셨는데....



적십자 뱃지를 단 라마 승려는 최고의 모델이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들에 뺨에 연신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하시는 할머니는 오늘의 히로인이다.



필자는 우리를 환영해 주신 분들의 사진을 한분 한분 다 찍어 드렸는데



특히 이 멋쟁이 할머니는 사진 찍는걸 너무나 좋아해서 수십컷의 사진을 찍었다.



포라로이드 카메라가 있다면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서 드렸으련만.....
미쳐 가져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사진을 인화지로 현상해서 몽골 적십자사로 우송해 주려고 한다.



선물 전달과 마사지 봉사를 마치고 나니 칸-울 지사에서는 방문한 일행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내놓는다.
아니...이런....
봉사받는 분들이 선물을 준비하다니....이런 경우도 있나....ㅠㅠ
우리는 극구 만류했지만 이분들은 자신들이 정성이라며 조그만 민속 악기 모형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몽골을 대표하는 민속 악기의 이름은 '모린호르(morin khuur,馬頭琴)'인데



모린호르의 음색이나 연주하는 영상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몇 시간 머무르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은 헤어짐을 너무나 서운해 하셨다.
초원의 거친 삶 속에서 한번 헤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었던 것처럼 솔롱고스의 방문객들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계속 손을 흔들며....



'바야르태(Баяртай, 안녕히 가세요)'! 를 말하면서도 손을 쉽게 놓지 못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은 모두를 찡하게 했다.



할머니는 들어가시라는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귀 도로까지 따라 나오며 손을 계속 흔드셨다.



어렵게 사는 몽골의 달동네에 가서 건네 주고 온 선물은 별 것 아닌 생활 필수품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관심과 사랑은 전해 준 선물보다 더욱 크고 귀한 것이었다.
힘들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준 그 어르신들을 보니
우리가 과연 그들을 도와주러 갔던건가.....생각되어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졌다.

몽골 가서 무엇을 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주러 갔다가 더 많이 받고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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