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몽골 음식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징기스칸(칭기즈칸) 요리?"라고 대답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몽골 음식으로 알고 있는 '징기스칸 요리'는 사실 몽골 요리가 아니다 

몽골에는 양고기를 삶아서는 먹어도 끓이거나 구워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징기스칸 요릿집에서는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먹었던 방식이라며  

부족한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고기와 야채를 함께 끓여 먹었다 하고  

징기스칸이 전쟁 중 철모에 양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은 데서 유래했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채를 먹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몽골 전통요리처럼 소개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징기스칸요리는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서 유래한 양고기 요리로  

몽골이나 역사적 인물 징기스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퓨전 일본 요리이다. 

징기스칸 요리의 기원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구 일본군의 군복을 만들기 위해  

홋카이도에 양목장을 설치하면서 양털 자급을 했던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

   

본래 육식하는 습관이 없었던 일본은 육식을 해야 유럽인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메이지 유신이후로 일본화한 육식 요리를 속속 개발하고 있었는데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는 대량의 양고기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은 양고기는 일본전통요리인 나베와 결합하여 요나베가 되었는데  

이 요나베((羊鍋))가 징기스칸 요리(일본어: ジンギスカン)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것은  

기마민족인 몽골의 식량인 양과 유럽까지 진격해 들어간 정복군주 징기스칸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당시 일본의 만주 침략등 대륙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몽골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전통적인 형태로 나오는 몽골 음식도 맛보긴 했지만  

도시에서는 전통 음식이 현대식으로 변모된 음식을 많이 대할 수 있었다 

여행 중 몽골에서 맛본 음식 몇가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해 드리자면...... 

 

 

 

 

 

  몽골에서 자주 먹은 음식은 '코릴타슐'인데 이것은 국물 있는 양고기 칼국수이다 

양고기와 국수를 넣고 끓이는 코릴테슬은 우리네 칼국수 미는 방법과 비슷하다 

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밀어낸 다음 반죽을 난로에 살짝 구운 후 칼로 썰어 면발을 만드는데  

물을 끓으면 양고기를 넣고 다 익을 때쯤 국수를 넣어 끓이는 간단한 요리이다. 

 

 

 

 

  

'초이방'은 넓적하게 썰어낸 손칼국수와 고기, 야채를 함께 볶아 양념을 쳐서 먹는 볶음국수이다. 

코릴타슐보다 다소 느끼하고 국물이 없어서 먹기에 상당히 뻑뻑하지만  

고기 삶은 국인 하르슐과 같이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하르슐(Har shul)은 양고기만 넣고 끓인 국이다. 

야채는 양파 몇 조각 들어갔을 뿐인데 약간 느끼하지만 후춧가루를 뿌려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몽골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은 '호쇼르''보츠'이다. 

'호쇼르'는 한국의 튀김만두와 비슷한 형태로 속은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만두호쇼르, 김치호쇼르 등 다양한 종류의 호쇼르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몽골인들이 점심에 차와 함께 먹는 종요한 음식인 호쇼르는 한국인들의 입에도 제법 잘 맞다. 

 

우리나라 고기만두와 비슷한 '보츠'도 속에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기름기가 굉장히 많아 한번 베어물면 기름이 주르르 떨어질 정도이다. 

보츠는 몽골에서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이 되면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몽골의 설날인 차강사르에는 보츠를 1,500~3,000개 정도 빚기도 한다고....... 

 

 

 

 

   

언뜻 보면 피자 조각같이 생긴 이것은 '감비르'라고 하는데 한국식 호떡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속에는 기름, 설탕, 소금을 넣거나 아니면 따로 양념해서 밀가루를 치대어 양념을 한다 

패스츄리처럼 따로 따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인데 고소하고 제법 맛나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유명 음식점 '알타이'에서는 '몽골리안 바베큐'를 맛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고기와 야채를 접시에 담아가면 둥글고 넓적한 철판 위에서 순식간에 볶아서 내어주는데 

볶는 동안 뒤집개를 위로 던지거나 빙글 돌면서 볶는 등 여러가지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름은 몽골리안 바베큐이지만 몽골 전통 요리라기 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요리인데  

울란바타르 현지에서 아주 인기있는 음식이다.

 

 

 

 

 

몽골 요리 중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허르헉'이다. 

허르헉은 양 한마리를 통째로 잡아 내장은 순대로 만들고 고기는 잘라  

뜨겁게 달구어진 돌과 함께 압력솥 안에 넣고 끓이는 몽골의 대표적인 요리. 

야채를 거의 넣지 않고 만들어낸 허르헉은 상당히 느끼하고 고기도 질기지만 

몽골의 전통 음식을 체험하기에는 허르헉 만큼 좋은 음식이 없을 것 같다.

 

  

 

 

  몽골의 휴양지에서는 아저씨들이 모여 염소를 잡아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염소의 털을 가스불로 그을린 다음에 고기를 하나 하나 분해하여 요리하는데 

불에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염소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던 현장이었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은 서구인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대신 유제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몽골인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우유나 양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물기가 빠진 우유덩어리를 눌러서 잘라낸 우유과자를 '아롤'이라고 한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수테차(Suteychai)'는 발효차를 끓여서 우유와 소금을 넣은 것으로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밀크티라고 할 수 있다. 

수테차는 물 5~6리터에 마른 찻잎 한 국자 정도를 넣어 차를 끓이는데 찻잎을 건져내는 시기는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고 떫은 맛을 좋아하는 집안에서는 찻잎을 건져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마유나 우유를 국자에 담아 눈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끓고 있는 찻물에 서서히 쏟아 붓는데 

한꺼번에 부으면 찻물이 갑자기 차가와져 맛이 변하기 때문이고 또 우유가 엉겨 멍울이 생기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에는 소금을 넣는데 몽골 초원에서는 염분 보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수테차는 짭쪼롬하고 비릿한 맛이 나긴 하지만 입안의 누린내와 뱃속의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슬퍼도 술, 기뻐도 술인 몽골인들은 국민 1인당 연간 26리터 이상의 보드카를 마신다고 한다. 

몽골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만취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꼭지가 돌도록 마시는 것이 몽골의 음주 풍습이고 

알코올 농도 39도 이상의 보드카를 마셔대다 보니 늘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거리에는 만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양고기만 먹을 것 같은 몽골에도 인스턴트 음식이 엄연히 존재한다 

미스터 치킨을 테이크 아웃하면 이렇게 몽골판 맥심같은 남성전문잡지도 끼워서주는 것이 재미있다. 

맛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편인데 몽골에서 닭고기 값은 쇠고기의 무려 5배나 된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비싼 고기는 닭고기이고 그 다음으로 돼지고기, 쇠고기, 양고기, 염소고기, 낙타고기 순이다.

생닭 한마리에 한국돈으로 무려 18,5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몽골에서 치킨은 한번 먹으려면 엄청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고급 음식이다.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곡식이 들어간 음식을 장만해준다. 

농산물 생산이 거의 없어 유목 생활을 햐야만 했던 몽골에서는 곡물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야채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야채는 가축들이 먹는 초원의 풀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울란바타르의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는 각가지 채소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걸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야채는 중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상당히 비싼 음식이다. 

비싸고 귀한 야채를 흔쾌히 대접해주었던 몽골의 친구들에게 감사드리며

간략하게나마 몽골 음식 소개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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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는 몽골 초원.

푸른 초원과 함께 몽골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파란 하늘이다.

'뭉크 탱그린'이라 부르는 파란 하늘은 몽골인들에게는 단순한 창공의 의미가 아니라

하늘 그 자체가 초월적인 힘, 즉 신성을 가지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 몽골인들은 나무, , 바위 등 모든 사물에 정령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정령의 심기를 거스르면 큰 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자연 환경과 함께 갈등이 심했던 종족 역사 속에서 살아 남았던

몽골인들이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신(神) 뿐이었으므로

전통이 말살되었던 사회주의 시기에도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히 지켜왔다.

 

 

 

 

 

16C에 라마불교가 전파된 이후 정령을 섬기던 많은 몽골 사람들은 불교를 믿게 되었는데  

일반 불교와 마찬가지로 환생과 고통으로부터 각 개인을 구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라마불교(티벳불교)오늘날 몽골 국민의 90% 이상이 믿고 있는 종교이다.

 

 

 

 

20C 초 몽골에는 수백개에 이르는 불교 사원이 있고 남자의 30%가 수도승일만큼 번성했다는데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공산주의가 반 종교 캠페인을 벌인 이후

사원의 연계적인 체계가 무너지고 많은 수도원들이 문을 닫게 되어 

1990년까지 오직 간단사원(Gandan in Ulaanbaatar)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에 이르러 민주주의가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자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 

100개 이상의 수도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도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90%가 라마불교를 믿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몽골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종교는

수천년 동안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종교였던 샤머니즘이다.

 칭기즈칸도 무당에게 전쟁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샤머니즘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오늘날에도 몽골 북쪽 지역에서는 샤머니즘이 불교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당들이 신을 몸안으로 불러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몽골 무당은 자신의 영혼을 몸밖으로 내어보낸다.

몽골 무당은 혼수 상태와 비슷한 탈자아 상태에서 무당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

하늘과 땅 속, 물 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초원을 다니다보면 돌이나 흙무덤 위에 버드나무 가지를 꽂고 푸른 천을 둘러놓은 것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한국의 성황당과 비슷한 '어버(어워, Ovoo)'이다.

 

 

 

 

 

어버는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의 이정표이자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데

몽골인들은 학식,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어버 앞에서 재난 방지와 가축의 번성을 위해 기도한다 

과거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말머리를 베어 성황당에 바치고 승전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몽골에서는 먼길을 떠나기 전 성황당을 들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성황당의 유래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은 들판의 이정표 대신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보이는 초원에서 방향을 잃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다가 어버를 만나면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가움에 환호를 지르게 된다.

지금도 구역의 경계에는 어버가 서 있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은  말이나 차에서 내려

어버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바퀴 돌고 흩어진 돌이 있으면 모아서 다시 쌓아 올리며 소중히 다룬다.

 

 

 

 

나담축제 때는 성황당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어버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던 동제와도 비슷한 의식이라고 한다.

 

 

 

 

최근 몽골 정부는 문화재 보호정책을 펴면서 어버를 복원하기도 하면서 관광용 어버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몽골의 사원이나 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 선돌과 흡사한 모미가 서 있는 것도 눈에 뜨인다.

 

 

 

 

모미는 말뚝 모양의 바위에다 얼굴 형태를 그려놓은 것이나 사람의 모습을 본따 만든 것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모미를 만나는 사람들은 둘러친 파란 천에다 몽골의 화폐인 투그릭을 꽂으며 가족의 평안을 빈다.  

현재 몽골의 국교는 라마불교(티벳불교)지만 헌법상 종교 및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나머지 5%는 이슬람교도가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4만 명 추산)이고, 나머지 3%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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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향한다.

수도 울란바타르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날라이흐 지구로 가기 위함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을 한시간 이상 달려가니 저 멀리 넓게 펼쳐진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난다. 날라이흐 지구다.

 

 

 

 

울란바타르의 한 구(區)에 속하는 날라이흐는 인구 3만명 정도로 주로 도시 빈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들어가기도 전에 인부들이 앞길을 막는다. 진입로를 막고 도로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 공사가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라 도로를 운행하던 모든 차량은 임시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제대로 닦여지지 않은 임시도로로 인해 차량들이 지날 때 마다 모래 먼지가 뽀얗게 사방으로 날린다.

차창을 닫아도 스며드는 미세한 먼지로 인해 목안이 간질간질해진 승객들은 얕은 기침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마을 어귀 주유소까지 이르니 맞은 편에 엄청나게 큰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몽골어인지라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날라이흐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라는 표식이란다.

 

 

 

 

날라이흐의 풍경은 초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많이 삭막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탄광마을이었던 이곳은 몽골에서 석탄 산업이 제일 먼저 이루어진 곳인데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어 탄광은 거의 버려진 상태이라고......

 

 

 

 

이 마을은 이제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새마을운동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날라이흐는 한국 새마을 운동 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새마을 운동 시범 마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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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건 지난 2004년.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여 경제 성장을 준비하는 몽골은 지역 사회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방 정부들은 한국과 새마을운동 협약을 맺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경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이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길이 넓어지고 구불구불하던 논길이 반듯하게 바뀐 것처럼

새마을 운동을 받아들인 날라이흐 지구도 우물이 없던 마을 입구에 우물이 생기고

콘크리트 벽돌 공장이 세워져서 천막집 게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현대식 주택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날라이흐 여러 마을에는 회의를 위한 새마을회관도 지어지고 어린이를 위한 독서실도 마련될 뿐만 아니라

 외곽에도 가로등이 설치되어 지역내 야간 교통사고와 범죄도 크게 줄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많이 바뀐 것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주민들의 의식인데

추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잘 살아 보자'는 의식이 몸에 배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나 학교 등지에서 친선 봉사 활동을 오기도 하는 날라이흐는 

대전광역시 서구와도 자매 결연을 맺는 등 한국과는 여러 방면으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관공서와 은행, 상점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날라이흐의 메인 스트리트는 울란바타르 못지 않은 분위기이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빠르고 무엇보다 활기가 넘쳐 보인다.

 

 

 

 

공산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을 받아 키릴문자(Cyllilic Alphabet)을 쓰는 몽골이라

간판만 보면 러시아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불러 일으킨다.

 

 

 

 

거리에는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한데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메인스트리트 한가운데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주택 앞이든 가게 앞이든 풀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소들이 점령하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심지어 구청사나 구민회관 같이 보이는 크고 번듯한 건물 앞 잔디에도

털석 주저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들에게 점령을 당했다. 역시 이곳은 몽골임이 분명하다. 

 

날라이흐 시내를 한바퀴 돌아 본 후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잠시 멈춘 버스를 향해 V자를 그려주는 사람들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다.

나아진 생활로 인해 옷차림도 깨끗한 이곳 주민들.

순박한 그들의 얼굴에도 남다른 여유가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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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올려드린 포스트에서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1시간 만에 게르(Ger) 한채를 후딱 짓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다.

그러면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투브(Tov)아이막의 초원에서

양과 말을 방목하고 있는 한 가정의 게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초원에서 살던 몽골인들은 기후 여건에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므로

이동이 간편하고 보온이 잘 되는 게르를 전통적인 주거수단으로 삼아 왔는데

영구성이나 외적  보호기능보다는 일시적인 추위와 햇빛, 그리고 비바람을 차단하는 차양이 주목적이다.

 

비교적 간단하고 어설퍼 보이는 이 게르도 의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하는데

몽골에서 제대로 된 게르 하나를 세우러면 우리 돈으로 150~2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게르 하나를 새로 만들려면 온 가족이 몇년전부터 틈틈이 재료를 다듬고 모아서 준비한다고.......

 

 

 

 

몽골의 게르에 들어가려면 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게르에서 멀리 떨어져서 주인을 불러야 하는데 무작정 집 가까이 다가가면 오해받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약탈이나 습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르에 개를 카우지 않더라도고 손님은 멀리서 "개를 불러들이시오." 또는 "날씨가 참 좋군요."등

아무말이나 혼자 크게 지껄이면 주인이 게르 안에서 옷을 차려입고 나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손님이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은 여름에는 아이락을, 그외의 계절에는 수테차를 권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받쳐들어 손님에게 권한다.

차와 동시에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권하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는데 

"건강하세요~(에롤 벵흐 바이가라)",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며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 엄지 손톱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바퀴 씩 돌려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게르는 난로를 중심으로 남성구역, 여성구역, 그리고 신성구역......이렇게  세구역으로 나뉜다.

좁은 공간에서 웬 남녀칠세부동석이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게르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가 어느 곳에 앉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한다.

남성은 게르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여성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남성구역은 하늘이 보호하고 여성 구역은 태양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남쪽으로 난 게르 문의 반대쪽인 북쪽은 신성한 구역인데 

가문의 최고 연장자가 사용하는 무기와 모린호르(마두금), 말재갈 등을 놓아두는 곳이다.

옷이나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옷장인 밝은 오렌지색의 아브다르도 이곳에 자리잡는데

가족사진이나 정부로 받은 훈장, 불상, 라디오 등이 그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칭기즈칸의 초상도 신성구역에 걸려 있는데

칭기즈칸의 초상은 어느 집 어느 게르를 가더라도 빠짐없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의 서쪽인 왼쪽은 남성구역으로 이곳에는 말안장과 고삐, 아이락 주머니 등

남자주인의 소지품들이 걸리게 되고 손님용 침대나 카페트도 이곳에 놓이게 된다.

 

 

 

 

주인 내외의 침대는 오른쪽인 여성구역의 벽에 붙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으면

침대가 거의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모의 발치 바닥에 양탄자나 양가죽을 깔고 잠을 잔다고 한다.

사진에서 게르의 천막 아랫부분이 살짝 들어올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바깥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상당히 시원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르의 동쪽인 오른쪽에는 안주인의 주방용구와 생활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집의 안주인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자수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주방용구가 비치되어 있는 게르의 오른쪽 문 입구에는 이렇게 고기를 줄에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는데

 이렇게 실내에서 고기를 말리는 이유는 밖에 두면 야생짐승들이 언제 물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린 고기는 갈거나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미숫가루같은 이 고깃가루를 '보르츠'라고 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영양도 만점인 비상식량 보르츠는 뜨거운 물에 서너 숟가락 퍼 넣고

 2~3분 기다리면 금방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고.....

 

 

 

 

원형의 게르의 제일 가운데에는 이렇게 난로가 놓여 있는데 취사는 물론 게르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나무가 자라는 지역에서는 난로에 나무를 때지만 그 외의 지방에서는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게르의 난로에 불을 지피면 게르 내부는 금방 더워지고 그 열기는 비교적 오랫동안 간직된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난로를 신성시여기는데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는 것과

난로를 타 넘는 것은 물론 난로에 발을 쪼이는 것도 금기시된다.

난로를 모독하는 모든 행동은 최악이며 주인을 모독하는 것으므로 조심해야 할 일......

 

 

 

 

멀리 한국에서 몽골의 초원까지 온 이방인을 위해 안주인이 몽골 전통 의상 델을 입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어 우리나라의 두루마기와 모양새가 비슷한 델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

단추의 숫자가 많고 화려하면 여성용, 모양이 단순하면 남성용이라고 한다.

남성용 델은 장식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는데

일하거나 말을 탈 때에는 몸을 보호하고 밤에는 담요대용으로 보온에 한몫을 했다.

변화의 물결이 빌어닥친 요즈음 델은 오리털 파커로 바뀌었고

긴 소매의 델로 감추었던 손에는 두툼한 스키 장갑이 끼워지게 되었다.

 

 

 

 

게르를 방문한 기념으로 투브 초원의 이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한장 찍어주기로 했다.

게르의 문 앞에 서서 두 아이를 안고 선 부부의 얼굴에는 순박하고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갔더라면 즉석에서 사진을 출력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점 아쉬운 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진을 출력해서 게르 주인의 이름을 적은 메모와 함께 투브 아이막으로 부쳐 주었다.

가축들이 먹을 풀이 다 없어지면 게르를 분해하여 또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초원의 유목민 가족에게 이 사진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부디 이 사진도 게르의 신성구역의 액자 안에 함께 걸리게 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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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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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에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가 있다.
몽골의 복드 칸이기도 했던 자나바자르는 
세속의 삶은 물론 영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장했는데

몽골에는 자나바자르부터 마지막 8대까지 8명의 자나바자르가 있었다.

마지막 자나바자르이자 8대 복드 칸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몽골 사회주의 직전까지 20년간 왕비와 함께 거주했던 곳이 바로 복드 칸 궁전이다.
정교합일을 추구하는 몽골 복드 칸들은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기 때문에
복드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1채의 왕의 거처로 이루어져 있다.





복드 칸 궁전 앞에 이르러 보니 궁전의 정문은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개의 열린 문 뒤로 화려한 모습의 문은 평화의 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들은 8대 복드 칸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1912~ 1919년 사이에 지어진 문으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단청도 산뜻하고 진한 색감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내부의 소박하고 퇴락한 궁전 건물과 비교하면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근래에 와서 단청을 새롭게 입힌 것 같이 보인다.





평화의 문이라 불리우는 세개의 문에 그려진 그림은 복드 칸 시절 몽골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제일 가운데 문은 왕과 왕비가 출입하던 문이지만 지금은 세 문 다 사용하지 않아 출입할 수 없다.





안쪽에서 자세히 살펴보아도 궁전의 문은 정말 화려하고 단청도 정교하기 그지없다.






관광객을 비롯해서 모든 방문객은 옆에 위치한 쪽문을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복드 칸 궁전의 입장료는 2,500 투그릭(한화 2,500원 정도)인데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내부 촬영은 물론 외부 촬영을 하는데도 반드시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는데
카메라 한대 당 사진 촬영료는 10,000투그릭, 비디오 촬영은 15,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한다.
궁전 입장료의 4배에 달하는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니 배 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넓은 곳을 관람하며 몰래 카메라를 찍을 수도 없는 일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했다.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료 뿐 아니라 궁전 안내 브로슈어조차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필자는 몽골어와 영어로 된 보잘 것 없는 브로슈어를 5달러나 주고 구입해야했다.





복드 칸 궁전은 궁전이라 하기는 규모가 다소 작아 보인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궁전은 왕의 거처와 7채의 라마 사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의 유품이나 진귀한 수공예품, 각종 왕실 용품을 볼 수 있도록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7채의 사원 건물 중 남북으로 자리잡은 사원 건물은 2층, 혹은 3층으로 되어 있고

동서로 자리잡은 부속 건물들은 1층으로 되어 있는게 특징인데 안에는 건물 안에는 불상과 탱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라마 사원 오른쪽에 위치한 하얀 서양식 건물은 복드 칸이 왕비와 함께 살던 겨울궁전이다.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이 서양식 목조 건물에는 복드 칸과 왕비의 유품을 비롯하여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겨울궁전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상세히 소개해드릴까 한다.





제일 안쪽의 3층 건물은 사원의 주가 되는 곳이라(메인 템플) 지붕이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 문을 지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은 Maharaja(위대한 왕) 사원이다.  





사원은 1893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퇴락한 단청으로 인하여 연륜이 더 오래 된 건물같이 보인다.





첫번째 건물 문을 통과해서 나가니 자그마한 마당과 함께 Naidan 사원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아랫층 기와 지붕에는 전혀 채색을이 되어 있지 않고 2층 누각 지붕에만 진한 초록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다.
무슨 뜻이 있어서 누각 지붕에만 채색을 한건지 아니면 현재 복원하는 과정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건물 역시 지붕은 전혀 채색이 되어 있지 않고 단청도 빛 바래인 채 그대로인데





어떤 부속 건물은 촌스러울 만큼 진한 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어서 건물들 간에 통일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도 단계적으로 복원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생각해 보지만 신빙성은 없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사원은 각가 탱화의 사원, 아플리케 사원, 장서의 사원, 만신전 등인데
건물의 내부는 의외로 많이 화려하고 탱화와 불상을 비롯하여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원과 사원 사이의 안 마당에는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마치 관리를 안 하고 버려진 폐허같은 느낌도 든다.
왜 잔디를 깎지 않지?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몽골에 있는 동안 잔디를 깎아둔 건물은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몽골에서 목초는 짐승의 귀한 먹이이니 잔디를 깎는다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제일 안쪽 건물은 궁전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다. 
주 사원인지라 건물은 3층으로 지어 위압감을 더 해주고 건물 지붕도 황금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지붕만 황금색으로 채색되었나 했더니 가까이 가서 보니 세밀하게 조각한 문양 마다 황금이 입혀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단청과 퇴락한 황금빛은 서로 어우러져 묘하고도 신비한 느낌마져 가져다 준다.
"왕이 거처했다는 사원이라더니.....뭐 이리 초라하나......단청도 색이 다 바래고 관리를 전혀 안 하고 있구만.....쯧쯔쯔......."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산뜻하게 채색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 정문 보다는 
퇴락하고 희미해진 단청이 더욱 기품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붉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잘 이루고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다.





방과 방을 구별하는 문도 화려하기 그지없고 천정도 화려한 무늬로 꾸며져 있다.





한쪽에 놓여진 화려한 흑단의 가구에는 몽골 사람들이 생각하는 극락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궁전이라지만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내부의 전시품들은 라마 불교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있다.  


 



궁전을 다 돌아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출입문 옆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 들려봐도 되겠지만
특별한 기념품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의 고색창연한 라마 사원의 아름다움을 손에서 놓치 못하고 한참을 방황하다
왕과 왕비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겨울궁전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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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 아이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투브 적십자 여성 지도자와 자원 봉사자들은 
한국에서 찾아간 봉사대원들을 형제와 같이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투브  아이막의 주민 현황과 적십자사 활동 현황에 대한 브리핑이 있은 후에는
중학생 두명이 마두금이라고 알려져 있는 모린호르를 아주 멋진 솜씨로 연주해 주었고
배, 가슴, 머리까지 사용하여 발성하는 몽골 특유의 노래 '흐미'도 들려 주었다.
이 학생들은 우리나라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한 몽골 전통음악의 유망주들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의 모린호르 연주 동영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하시기 바라며....

한국에서 가져온 우정의 선물 상자를 전달과 양국 대원들과의 친교 시간 후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니
투브 적십자 지도자의 절친인 인근 중학교 학교장이 한국 봉사대원들을 초청했다고 하며 방문하기를 강권한다.
학교 방문으로 인해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일정이 다소 늦추어질 우려는 있었지만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인근의 중학교로 향했다.




중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주변 초원의 낮은 구릉에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학교 옆에도 벽돌로 지어진 연립 주택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학교의 사정도 일반 주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담장도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었다.




ㅁ자로 지어진 학교는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쌓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엉성한 모습이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외부 치장하는 부분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며 
보온과 단열을 위해 벽의 두께는 거의 1m 정도로 만들어 겨울 추위에 대비한다고 한다.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학교 현관 앞에 서니 교패와 학교의 현판이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곧이어 적십자 지도자의 친구인 학교장이 나와서 일행을 반겨주었는데 역시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사회주의 교육을 받은 몽골에서는 각 기관에서 여성 우두머리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몽골 또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편인데
울란바타르에선 물론이고 유목민들 조차도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만약 아이들이 많아 모두 대학 교육을 시킬 형편이 못 되면 맏딸만 대학에 보낸다고 하는데
이는 딸만이라도 힘든 유목민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방학 중인지라 학교는 직원들만 근무하고 학생들은 하나도 없이 너무나 조용하기만 했다.





학교 복도는 어떤 부분은 돌이나 시멘트로, 어떤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는데




학교의 오랜 연륜을 말하는 듯 나무 복도도 많이 낡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장의 설명을 들으니 몽골에는 초등학교가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없고 초등학교 과정이 포함된 중학교부터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등 과정 6년과 중등 과정 2년이 함께 들어있는 몽골의 중학교 과정은 8년이 되는데 
7세 때 중학교에 입학해서 중학교 8년, 고등학교 3년 , 대학교 4년의 과정을 거치게 되니 
대학 졸업 때까지의 기간은 우리나라보다 단축되는 셈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영향을 받은 몽골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몽골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설 유치원도 있지만 유치원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수업료는 전혀 받지 않는다.
몽골 유치원 관련 포스트 : 너무나 귀여운 몽골 유치원 아이들





복도의 벽에는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의 작품이나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간행물들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고....




시원하고 활달한 필치로 쓰인 음표와 글씨들도 한눈에 확 들어왔다.




환경 게시물에는 아이들이 삐뚤빼뚤 써놓은 낙서가 여기저기 눈에 뜨였는데




손이 근질근질한 아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가 보다.




복도 한쪽 벽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초원에 뛰어노는 대형 말 그림을 보니  보니 "역시 몽골!"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교실로 들어가 보았더니 세상에! 교실이 온통 파란색 일색이다.
벽도 파랑, 천정도 파랑, 책상과 걸상도 온통 파랑.....역시 파란 하늘의 나라 몽골이다.




교실 넓이는 우리나라 교실 반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책걸상 또한 너무나 작고 낮았다.
그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이 이 책걸상을 거쳐 갔는지 낡아빠질대로 낡은 모습이었다.




컴퓨터, TV, 사물함....등 우리나라엔 보편적인 교실 집기들은 전혀 없고 달랑 칠판 하나 뿐인데
칠판에 쓰인 글씨를 자세히 보니 <금강 칠판> !
한국 자동차, 한국 물건이 몽골 전체를 평정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학교 교실에서 한국 물건을 만나니 그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교실 뒤 환경판에는 알쏭달쏭한 몽골 고유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몽골 고유 문자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로쓰기이다.




오늘날 몽골에서는 몽골 전통 문자와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를 병행해서 쓰는데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몽골인지라 일상 생활 전반에서는 전통 문자 보다는 키릴 문자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보니 칸마다 문이 없었고 작은 변기와 보통 변기가 바로 옆에 함께 있는 것이 눈에 뜨였는데
이는 초등에서 중등 과정이 한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인 듯....

학교장의 인도를 받아 도서실도 둘러보았는데 방학 중인데도 사서 교사가 나와 있었다.





열람실 없이 교실 반칸 정도인 도서실에는 책장 몇개 정도의 장서가 전부였고




도서실 가운데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교과서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설명을 들어본 즉,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학교에 책을 맡겨 두고 가는데 이 책은 다음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된다고 한다.




몽골의 여름 방학은 6, 7, 8월 세달이나 되는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도와 양을 치거나 말을 훈련시키거나 하며 자신들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낸다.
새학기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9월에 시작되며 9월 1일이면 모든 학교가 입학식을 거행한다고.....




교실과 도서실 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건물 내에 위치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농구대, 탁구대, 평균대, 늑목 등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체육관에서 내려다 보니 우리나라 운동장 정도의 너른 공간은 보이지 않았고 농구장 하나가 갖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학교만 나서면 다 초원이라 언제든지 달리고 뛸 수 있는 환경이라 운동장이 필요없었던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안내를 받아 둘러 본 학교의 교육 환경은 많이 열악해 보였고
컴퓨터는 물론 참고 도서도 너무 부족하여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부모는 어렵게 살아도 아이들만은 이런 환경을 벗어나 살기를 원하는 
몽골 가정의 높은 교육열로 보아 몽골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전해져 왔다.
비록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더라도 앞으로 몽골을 한걸음 앞으로 인도할 귀한 인재들이
이 학교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보며 튜브 중학교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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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 동안에 머물렀던 울란바타르 미카 호텔 주변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우리나라 변두리 모텔 같은 느낌의 이 호텔은 별 3개 짜리 호텔이다.



아직 도시는 아침 잠에서 덜 깨어난 듯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구름 낀 하늘 아래 건물들도 스산해 보인다.



이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고 대사관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중심 지역이다.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뒤로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 의사당의 깃발이 보인다.



호텔 바로 앞에는 스위스, 불가리아,일본, 한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고 (관련 포스트 : 초라해 보이는 몽골의 한국 대사관)
호텔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Soyol Erdem University 가 자리잡고 있다.



University치고는 규모가 무척이나 소박하다. 우리나라이 거대 University와는 차원이 틀리다.

역시 같은 대학의 부속 건물인데 원목으로 지어져 있다.



대학 건물 치곤 참 요상하게 생긴 건물이다.



몽골의 스파는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처럼 24시간 영업은 아닌 듯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호텔 바로 옆에는 병원인 듯한 건물이 있고.... 



한국 대사관 맞은 편에는 제법 큰 일본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 내걸린 안젤리나 졸리는 밤새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몽골의 구급 전화 번호는 103인가 보다. 환자 이송이라고 쓰인 한국산 중고 앰뷸런스가 눈에 뜨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아가씨가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한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창살 장식을 해둔 것이 특징이다.



건물 신축 현장.  통나무를 그대로 버팀목으로 쓰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거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영업을 하다 망해 버렸는지 아예 문에다 못질을 해둔 흔적이 보인다.



울란바타르 중심부인데도 방치된 듯한 건물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한쪽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건축되어 새로운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88028809....다 전화 번호다. 울란마타르 전역에는 이렇게 전화번호를 대문짝만하게 걸어두고 임대나 매매를 기다리고 있는 건물이 아주 많이 보인다.



울란바타르에는 이렇게 궁전 스타일로 지은 건물들이 참 많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식장들을 보는 듯한 건물이다.



아주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몽골의 아줌마들은 의외로 살집이 있으신 분들이 많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식습관 때문에 고지혈증을 가지신 분이 많다는 후문...



때론 이렇게 코스모스를 이쁘게 가꾸어 놓은 정원도 볼 수 있지만...



거리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양이나 말이 와서 뜯어먹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풀이 무성하다.



휴지통 옆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휴지통을 덮으려고 한다.



몽골 적십자 바로 뒤의 건물인데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마당을 바라 보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근처에 국립의과대학이 있던데 기숙사일까....?



아니...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이 무슨 낯 뜨거운 연출이란 말인가...
몽골의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성적으로는 많이 개방적인 편이다.


또 몽골은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술을 마시는데 술의 도수도 높지만 우리네 보다 더 심한 '마시고 죽자' 스타일이다.
이렇게 술 소비가 심한데도 연구에 의하면 몽골인들의 알콜 분해 능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음주에 대한 통제력 또한 부족하여 모든 범죄의 80% 이상이 음주로 인한 범죄라고...



우리보다 더 도수가 높은 술(39도 정도) 때문에 아침까지 술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실제로 아침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거리를 구경하던 일행에게 술 취한 남자가 소리 지르면서 쫒아오는 바람에 모두 다 기겁을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필자 또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오른쪽의 술 취한 남자가 필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는 바람에
얼른 한 컷 누르고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아나느라 사진이 심히 흔들렸다....^^
이처럼 아침에도 외국인 여자들이 산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곳이니 여행 가시는 분들은 그점을 조심하기 바란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일본 대사관 앞으로 오니 남자 세명이 열심히 차를 밀고 있다. 아마 엔진이 서 버린 듯...



우리도 예전에는 이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애니카를 부르면 신속히 달려오니 고맙기만 하다.



어...그런데 고장난 차는 다름아닌 한국차...
자동차 관계자님들은 만든 차가 몽골에 중고차로 팔려와서도 고장 안 나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차 좀 잘 만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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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돌아왔어요~!
돌아올 때면 지리한 장마가 끝났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비 내리고 꾸물럭한 날씨가 계속되네요.

아시아 전체를 커다란 구름이 감싸고 있는건가요?
눈이 아프도록 하늘이 푸르다는 몽골도 제가 있는 동안엔 흐린 날이 더 많았고
천둥 치고 비오고, 우박이 떨어졌다가 무지개 뜨는 등 '몽골은 비가 안 온다'는 상식을 뒤엎는 날씨가 계속되더군요.



몽골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체험하고 돌아왔어요.
몽골 적십자 중앙 본부를 방문하여 몽골 적십자 활동과 RCY(Red Cross Youth) 활동을 돌아보았구요.
울란바토르 인근의 칸-울 지역, 투브 지역,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 날라이 지역의 취약 계층과 소외 계층 아동들을 방문하여
준비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43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수많은 게르(몽골 전통 가옥)가 떠내려가고 다수의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한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우정의 선물과 함께 성금도 전달하고 돌아왔답니다.

우리가 준비했던 우정의 선물은 사실 소박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는데도
몽골 적십자 관계자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방문한 저희들에게 도리어 장기자랑으로 즐겁게 해 주는 등
관심과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도움을 주러 갔다가 사랑의 빚을 더욱 많이 지고 돌아온' 방문이 되었구요.
특히 몽골 RCY 친구들이 베풀어주신 귀한 사랑은 제 가슴에 언제까지나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몽골에 가 있는 동안에 인터넷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정원에 남겨 놓으신 여러 이웃분들의 축하글을 보고서야 황금펜이 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답니다.



이제껏 너무 즐겁고 편하게 블로깅했는데 얼떨결에 '베스트 View 블로거'란 칭호를 받으니
기쁨의 환호도 잠시...방문하시는 분들께 실망드리지 않도록 더 잘해야하는데.....하는 부담감이 밀려 드네요...^^
베스트 블로거 선정을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몽골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오리라는 계획은 
이틀 정도 맑은 하늘을 본 후 계속 흐린 날씨로 인해 약간의 차질이 생겼고 
특히 오기 전날 간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는 종일 비가 내려 거의 사진을 찍지 못했구요.
뿌옇게 안개가 뒤덮이고 비 내리는 몽골의 멋진 초원, 태초의 장소인 것처럼 신비스러운 강물과 숲길을
눈에...마음에.... 담아 왔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외의 '무차별적으로 마구 마구' 담아온 사진들은 한숨 돌린 후 정리하여 천천히 올려드리기로 하고....
곧 방문해서 인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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