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 생활을 컴퓨터 부팅으로 시작하는 분이 많다.
부팅하면 서서히 떠오르는 모니터의 화면..
컴퓨터 바탕 화면이다.



컴퓨터 바탕 화면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바탕 화면 이미지 '초원'은 바로 '몽골의 초원'이다.
몽골을 여행하시는 분들은 여행 내내 수많은 컴퓨터 바탕 화면을 접할 수 있다.
여기도 바탕 화면...
저기도 바탕 화면...
가는 곳 마다 온통 바탕화면 언덕의 천국이다.

여러분을 컴퓨터 바탕 화면 같은 몽골 초원으로 인도해본다.



나이람달 캠프에서 울란바타르로 가는 길목에서 찍은 언덕은 마치 바탕 화면 이미지를 이곳에서 찍은 것이 아닌가...착각할 만큼 비슷하다.



울란바타르 인근 날라이 지역의 말박물관 앞의 초원의 빛은 하늘 빛과 어우러져 한층 신비감을 더한다.



폭풍같은 구름이 낮고 두껍게 깔려 있던 날의 바탕 화면 언덕이다.



이런 바탕 화면 언덕에서는 어김없이 소들이 풀을 뜯거나...



말들도 편안히 서로를 의지하거나 누워서 잠자고...



또는 주인을 저 멀리 초원으로 인도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초원에 사는 아이의 하루는 말 돌보기로 시작해서 말 돌보기로 끝나고.....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우는 곳, 바로 몽골의 초원이다.



요즘은 말 대신 자동차로 초원의 100 차선 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몽골 사람은 시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온 사방이 초원이다 보니 항상 먼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력이 나빠질 수가 없을 듯.....
거기다 예로부터 초원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육안으로 식별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시력이 발달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초원에 사는 어떤 사람은 2 km 떨어진 사람의 옷을 보고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맞혔다고 한다.
우리의 시력 측정표는 2.0 이 맥시멈일 뿐더러 측정 결과가 1.0 만 넘어도 눈이 좋은 편에 속하게 되는데
몽골 초원에 사는 사람의 시력은 4.0 혹은 5.0 인 사람도 있고 7.0인 사람도 있다니.....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느라고 눈이 혹사당하는 분들은 이 바탕 화면 언덕으로 올라가서 끝도 없이 펼쳐진 주변 초원을 바라보거나



또는 바탕 화면 언덕 바로 아래로 내려가 뭉게 뭉게 피어오느는 구름과 파아란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본다면
늘 피로에 지친 우리의 눈을 최고의 상태로 돌릴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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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이 기타를 치며
'에델바이스'를 부르던 장면은 누구나 기억하실 것이다.

필자 또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볼 때마다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함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곤 했으니...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인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인 '에델바이스'
유럽의 알프스와 히말라야에서 자생한다는 '에델바이스(edelweiss)'는 스위스의 국화인데
고산 식물인 에델바이스를 우리 주변에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델바이스와 비슷한 솜다리꽃이 설악산이나 한라산의 고산 지역에서 자라나기도 하는데
일부 등산객들이 설악산에서 자라는 솜다리나 산솜다리를 에델바이스로 잘못 알고 마구 뽑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솜다리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희귀 식물로 에델바이스와는 다르다고....


알프스에서만 만나리라 생각했던 에델바이스를 몽골 초원에서 만났다.
울란바타르에서 약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가면 나오는 만쉬르 수도원은
몽골에서도 보기 드물게 초원과 침엽수림이 한데 어울린 곳인데
인적없는 만쉬르 수도원 입구에는 에델바이스가 지천으로 피어 찾는 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중한 추억'이 꽃말인 에델바이스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눈으로 뒤덮인 스위스의 알프스 산에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얼음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에델바이스'는 천사였는데 변덕스러운 신이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어 산꼭대기로 내려보낸 것이었지요.

어느 날 우연히 그곳을 발견한 등산가가 그녀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매혹되었답니다.
산을 내려온 등산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이를 전해들은 젊은이들은
'에델바이스'를 보려고 앞을 다투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델바이스'를 보지도 못한 채 등산 도중에 목숨을 잃어 갔죠.
이 사실은 안 '에델바이스'는 몹시 슬퍼 신에게 자신을 멀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은 한줄기 빛을 보내 '에델바이스'를 다시 천사로 만들어 하늘로 올라오게 했죠.
그녀가 가버린 뒤 그 집에는 새하얀 꽃이 피었는데..사람들은 그 꽃을 '에델바이스'라고 불렀답니다.


그 이름과 자태처럼 아름다운 전설을 가진 에델바이스.
초원에서 만난 귀한 에델바이스는 눈과 사진으로만 담아 가지고 왔는데
몽골을 떠나던 날 뜻하지 않게도  책갈피에 곱게 말린 에델바이스를 진주라는 아가씨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지금도 필자의 수첩 갈피에 곱게 끼워져 있는 에델바이스.
만쉬르 초원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몽골의 '소중한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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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차로 약 20분정도 떨어져있는 
'손기노-카이르칸(Songino-Khairkhan)'지역을 방문하는 날이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야산에는 산중턱까지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곳이 많은데 이 지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손기노-카이르칸 지구 입구로 들어서니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이고 여기저기에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쌓여 있는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혀 포장되지 않은 넓은 도로는 여기저기에 물이 고여 있어 악취가 나고 사람들은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 걸어다니고 있었다.



좀 더 가니 판자로 구획되어진 집들 사이로 울퉁불퉁한 골목길이 보이는데 바닥이 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물웅덩이가 있는 도로를 우리와 꼭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도 눈에 뜨였다.



짓다가 만 집인지....아님 다 부서져 가는 집인지....출입구에 판자로 가로질러 놓은 집이 보였는데 그 뒤의 집도 형편이 비슷했다.



마을 중간쯤 길에는 아예 큰 웅덩이가 생겨서 사람들은 가장자리로 피해서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물웅덩이 옆에 앉아서 놀고 있기도 했다.



동네 중심 지역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차들은 택시 영업을 하는 차.
몽골에서는 개인 승용차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사진의 차들은 대부분 한국 중고차이다.



70년대의 우리나라 달동네처럼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울란바타르 지역의 인구의 거의 1/5에 해당되는 52,770 가구에 232,326명의 인구가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이 건물에서 지역 적십자사 직원을 차에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간 흔적이 있어서 궁금해 했더니 바로 7월 21일에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에 이 마을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둥그렇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은 게르(몽골 전통 주택)가 있던 곳인데 단 30분 정도 내린 집중호우에 갑자기 물이 불어 넘쳐 많은 게르가 떠내려 간 것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단 30분 내린 비에도 물은 넘쳐 흘러 도로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이 지역에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게르를 휩쓸어 그들의 전 재산을 날려 버렸다.


 
마을 옆에 위치하고 있던 군부대의 강당으로 인도되어 자세한 그 당시의 홍수 상황을 사진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7월 21일 갑자기 내린 집중 호우는 울란바타르에 내린 43년만의 최악의 홍수였는데
몽골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1,000여채 이상의 게르가 물에 떠내려가고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상황을 브리핑하던 적십자 책임자는 호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선처를 해줄 것을 호소하며 또한 이 지역에 사는 
편부모이거나 고아인 아이들
중에서는 쓰레기나 비닐봉지를 모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으며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으로 이사온 가정이 많아서 주민등록이 없는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 또한 교육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말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원래  우리 단원들은 손기노 지역 어린이들에게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을 비롯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러 간 것이었는데
현장에 가서 몽골에 내린 최악의 홍수에 대해서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작은 힘이나마 성금을 모아 선물과 함께 손기노 카이르칸 적십자사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혹자는 말한다.
거기까지 가는 그 돈으로 선물이나 성금을 부쳐 주면 되지
별거 아닌 봉사를 하러 비싼 항공료 물어가며 거기까지 가느냐고...
별로 보탬이 되지도 않는 선물 나부랑이를 들고 가서 생색만 내고 사진 찍고 오는게 아니냐고...

단원들이 전달하고 돌아온 얼마 되지 않는 정성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6.25 이후 우리가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다른 세계로 되돌려줄 때는.....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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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볼 수 있는 곳은...?

정답은 '민속촌'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옥은 이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라고 말하는게 더 합당할 듯 하다.

그럼 몽골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집은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
학교다닐 때 사회책에선 '파오'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은 중국어 'bao(包)'에서 기인된 말이고
영어로는 유르트(Yurt), 몽골어로는 게르(Ger)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도시에 초가집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로
아무리 몽골이라도 도시에는 현대식 건물이 있고 멀리 떨어진 초원에 가면 게르를 볼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 어긋나버렸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시내 한복판에 게르가 즐비하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선 나즈막한 야산에 온통 게르 천지다.
현대적인 아파트 앞에도 게르, 차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길가에도 게르, 심지어는 빌딩의 옥상에도 게르가 올라 앉아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주민의 반이 게르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몽골은 온통 게르천지여서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은 울란바타르 인근에서 돌아다니며 찍은 <게르 풍경>을 소개해 드린다.
게르 짓는 과정과 게르의 내부 구조....등 게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회에 다시 자세히 설명드리기로 하고...



울란바타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에 올라서 시내를 본 풍경이다.
저 멀리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산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찬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집들의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당겨 자세히 보니 헉...울란바타르 산중턱에 있는 건물의 반이 게르다.



판자로 울타리를 친 구역 안에 게르가 한두채 씩 자리잡고 있다.



자이승 전망대의 남쪽에는 이렇게 게르 집단촌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나 캠프촌이 아닐까...추측을 해 본다.



손기노-카이르칸 지역의 주택들. 2층 양옥과 게르가 한 동네에 섞여 있다.



게르는 초원에 가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건 완전 오산. 아파트 앞에 게르가 있다.



이렇게 관공서 앞 마당에도 버젓히 게르가 있고



공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게르가 빠지지 않는다.



달동네의 앞의 게르...



가게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게르 앞에 간판이 있는 걸로 보아 상점의 용도로 쓰이는 듯 하다.



때로는 옥상 위에 이렇게 버젓이 올라앉아 게스트 하우스로 쓰이기도 한다.



다운 타운의 고급 아파트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런 게르는 대부분 영업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게르 갤러리도 있는데 엄청나게 규모가 큰 게르 갤러리의 안에는 수준 높은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게르의 모양과 게르를 둘러싼 울타리는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모습이다.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게르나...



민가가 별로 없는 길가에 자리잡은 게르나 다 판자로 담을 둘렀다.



담장은 판자로 , 대문은 함석으로 된 곳이 많이 보인다.



때로는 이렇게 컬러풀하게 담을 장식한 집도 보인다.



물론 초원 한가운데서 사는 유목민들에게야 구역을 정하는 담이야 필요조차 필요가 없겠지만
도시 변두리에 사는 주민들의 게르 주변은 담을 판자로 둘러친 모습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울란바타르의 휴양지구인 나이람달로 가는 길목에도 별장들과 게르가 섞여 있다.
몽골 사람들은 조금만 살만 하면 누구나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부자들은 여름 별장, 겨울 별장도 따로 있다고 한다.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 본 풍경. 웅장한 산 아래 게르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나이람달 캠프장의 게르. 몽골에도 이렇게 멋진 숲이 있고 이런 곳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개울도 있다.



이런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별도.... 달도....은하수도 고스란히 게르 위로 쏟아진다.



몽골에는  울란바타르와 테를지 단 2곳에 골프장이 있다는데.......골프장의 게스트 하우스도 게르다.



부족의 깃발이 나부끼는 이렇게 멋진 게르 안에서는 당장이라도 칭기즈칸이 칼을 차고 나올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게르라면 역시 이렇게 초원의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제격이다.
파아란 하늘과 눈부신 초원의 푸르름 속에 있는 게르의 하얀 색은 초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게르 앞에 이렇게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몽골의 초원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초원의 게르 주변 풍경들은 몽골을 떠나온 여행자의 마음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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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 바로 '수흐바토르 광장'이다.




울란바타르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가장 번화한 거리 피스 애비뉴(평화의 거리)를 건너면 눈 앞에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울란바타르의 어느 지역이든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인데
광장을 중심으로 국회 의사당, 역사 박물관, 중앙 우체국, 외무부 청사, 국립 오페라 하우스, 자연사 박물관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국의 대사관, 사원, 대학 등의 교육 기관 또한 이 광장과 가까운 곳에 밀집해 있다.



이 광장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광장 중앙에 몽골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수흐바토르가 1921년 7월 11일 혁명을 선포하고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1925년부터 이곳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흐바토르(Damdinï Suhbator )는 가난한 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 역전 마차의 마부가 되었고
1911년 몽골 독립 후 건군된 자치 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하여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1918년에 정부 인쇄소의 식자공이 되었는데 그 동안 중국과 무능한 몽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은 수흐바토르는 1920년 6월 초이발산 등과 몽골인민당을 결성하고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레닌과의 회담을 통하여 몽골 혁명의 성공과 그 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 지도를 받고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총사령관이 되어 적군()과 함께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우르가(현재 울란바타르)에 인민 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는 장소는 1921년 몽골군이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개선 환영식이 열렸던 장소이며
7월 11일, 수흐바토르 장군이 혁명을 선포할 때 말을 타고 서 있었던 곳이다.
당시 그가 탄 말이 오줌을 쌌는데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를 길조라고 생각하여 그곳에 말뚝을 박아놓았고
나중에 동상을 세울 때에 그 말뚝을 찾아내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동상 밑에는 1,865kg의 금과 수흐바토르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입었던 옷 한벌, 그리고 장군 부인이 눈물을 닦은 손수건을 넣어 두었다.



원래의 동상은 1931년에 만들어졌는데 1946년에 혁명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새 동상으로 다시 만들어 세우고 이전 동상은 현재 몽골 대학교에 있다.
영웅은 단명이라던가....그는 30세 때 결핵으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수흐바토르 장군상 뒤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은 몽골 국회의사당이다.



국회 의사당 정면에는 몽골을 상징하는 세명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가운데는 칭기즈 칸, 왼쪽은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두번째 칸인 오고타이 칸,
오른쪽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에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이다.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친 칭기즈 칸은 몽골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건물 중앙에는 수흐바토르 장군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2005년에 몽골 국립 묘지로 이전했으며
국회 의사당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완전한 새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몽골의 영웅들이 있는 계단으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올라가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국회의사당과 수흐바토르 동상 사이에는 이곳이 울란바타르의 중심이며 기점이라는 표식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8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수흐바토르 동상을 중심축으로 하여 광장에는 울란바타르의 중요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국회의사당 바로 서쪽 건물은 몽골 역사 박물관이며 그 뒤편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몽골의 대부분의 궁전이나 사원,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고
5,000~ 10,000(우리와 돈 가치가 비슷하다) 투그룩 정도의 사진 촬영비를 내면 촬영이 가능하다.
몰래 사진 찍다가 들키면 몽골 관리인이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당장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



광장 입구 서쪽에 있는 건물은 중앙우체국인데 건물 벽에 코카 콜라 광고판이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이 우체국이라는데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광장의 동쪽엔 민주당 당사, 몽골 중앙 문화원,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자라잡고 있다.
 


뒤의 건물이 몽골 중앙 문화원이다.



몽골 국립 오페라 하우스는 아주 밝은 핑크색으로 칠해진 것이 이색적으로 보이며 바로 뒤의 건물은 샹그리라 호텔이다.



수흐바토르 광장의 남쪽 피스 에비뉴 건너편에는 반달 모양의 특이한 고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보이는 유명한 건물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건축한 건물이라는데 울란바타르 친구의 말로는 부실 공사라고 한다. 
외국에 짓는 건룸이라도 좀 더 견고하고 내실있게 지어서 국가 위상을 실추시키기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몽골의 중요한 혁명 기념일이나 국경일에 수흐바토르 광장에서는 국가 차원의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그 때는 광장 가운데 있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며
결혼식을 끝낸 신랑 신부들이 웨딩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가히 울란바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몽골인들에게는 울란바타르의 상징이며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몽골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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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 동안에 머물렀던 울란바타르 미카 호텔 주변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우리나라 변두리 모텔 같은 느낌의 이 호텔은 별 3개 짜리 호텔이다.



아직 도시는 아침 잠에서 덜 깨어난 듯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구름 낀 하늘 아래 건물들도 스산해 보인다.



이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고 대사관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중심 지역이다.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뒤로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 의사당의 깃발이 보인다.



호텔 바로 앞에는 스위스, 불가리아,일본, 한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고 (관련 포스트 : 초라해 보이는 몽골의 한국 대사관)
호텔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Soyol Erdem University 가 자리잡고 있다.



University치고는 규모가 무척이나 소박하다. 우리나라이 거대 University와는 차원이 틀리다.

역시 같은 대학의 부속 건물인데 원목으로 지어져 있다.



대학 건물 치곤 참 요상하게 생긴 건물이다.



몽골의 스파는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처럼 24시간 영업은 아닌 듯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호텔 바로 옆에는 병원인 듯한 건물이 있고.... 



한국 대사관 맞은 편에는 제법 큰 일본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 내걸린 안젤리나 졸리는 밤새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몽골의 구급 전화 번호는 103인가 보다. 환자 이송이라고 쓰인 한국산 중고 앰뷸런스가 눈에 뜨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아가씨가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한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창살 장식을 해둔 것이 특징이다.



건물 신축 현장.  통나무를 그대로 버팀목으로 쓰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거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영업을 하다 망해 버렸는지 아예 문에다 못질을 해둔 흔적이 보인다.



울란바타르 중심부인데도 방치된 듯한 건물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한쪽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건축되어 새로운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88028809....다 전화 번호다. 울란마타르 전역에는 이렇게 전화번호를 대문짝만하게 걸어두고 임대나 매매를 기다리고 있는 건물이 아주 많이 보인다.



울란바타르에는 이렇게 궁전 스타일로 지은 건물들이 참 많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식장들을 보는 듯한 건물이다.



아주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몽골의 아줌마들은 의외로 살집이 있으신 분들이 많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식습관 때문에 고지혈증을 가지신 분이 많다는 후문...



때론 이렇게 코스모스를 이쁘게 가꾸어 놓은 정원도 볼 수 있지만...



거리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양이나 말이 와서 뜯어먹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풀이 무성하다.



휴지통 옆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휴지통을 덮으려고 한다.



몽골 적십자 바로 뒤의 건물인데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마당을 바라 보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근처에 국립의과대학이 있던데 기숙사일까....?



아니...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이 무슨 낯 뜨거운 연출이란 말인가...
몽골의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성적으로는 많이 개방적인 편이다.


또 몽골은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술을 마시는데 술의 도수도 높지만 우리네 보다 더 심한 '마시고 죽자' 스타일이다.
이렇게 술 소비가 심한데도 연구에 의하면 몽골인들의 알콜 분해 능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음주에 대한 통제력 또한 부족하여 모든 범죄의 80% 이상이 음주로 인한 범죄라고...



우리보다 더 도수가 높은 술(39도 정도) 때문에 아침까지 술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실제로 아침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거리를 구경하던 일행에게 술 취한 남자가 소리 지르면서 쫒아오는 바람에 모두 다 기겁을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필자 또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오른쪽의 술 취한 남자가 필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는 바람에
얼른 한 컷 누르고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아나느라 사진이 심히 흔들렸다....^^
이처럼 아침에도 외국인 여자들이 산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곳이니 여행 가시는 분들은 그점을 조심하기 바란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일본 대사관 앞으로 오니 남자 세명이 열심히 차를 밀고 있다. 아마 엔진이 서 버린 듯...



우리도 예전에는 이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애니카를 부르면 신속히 달려오니 고맙기만 하다.



어...그런데 고장난 차는 다름아닌 한국차...
자동차 관계자님들은 만든 차가 몽골에 중고차로 팔려와서도 고장 안 나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차 좀 잘 만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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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게 개인 날,
버스에 올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nnbataar)의 남쪽 외곽지역으로 향한다.




울란바타르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 지부(Khan -Uul District Red Cross Branch)'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칸-울 지역은 14개 구역에 약 9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달동네와 같은 지역이다.



수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가옥 또한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나 대충 지어진 판잣집이 많고 도시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매우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4일 나담 축제 기간에는 화재가 일어나서 게르 14채가 불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7월 21일 ,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해 게르 1,000여채가 떠내려 가고 사상자도 났으며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칸-울 지구에 물이 차 올라 사람들이 걷거나 차가 운행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길 곳곳에는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어서 길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칸-울지구의 건강과 구호 활동을 위해 봉사하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를 찾아가는데 거리에 고인 흙탕물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걸어 가야 했다.



조그만 판자문을 통해 들어간 좁은 공간에는 벽돌집 한동과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Ger) 두채가 있었다.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는 2001년도에 적십자사에서 건립했는데 우리를 맞아준 게르는 EU에서 지어준 것이다.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몇 분이 먼저 오셔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 RCY 일행들은 준비해 간 우정의 선물 일부를 칸-울 지역에 전달했는데 우정의 선물은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들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이 이분들에게 귀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어 복지 센터로 쓰이는 게르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는데



밝은 외부에서 게르의 실내로 처음 들어가면 갑자기 너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게르의 둥근 천정(터너)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살로 인해 곧 눈이 밝아지고 모든게 익숙해진다.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칭기즈 칸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역대 칸-울지구 적십자 책임자인 듯한(?)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게르의 중앙에는 귀한 생수와 사탕이 전통식 탁자 위에 베풀어져 있었고



 몽골 전통 우유과자인 '아롤(aaruul)' 도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몽골에서 한국을 이르는 말)'에서 온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칸-울지구 적십자 지부장과  자원봉사자 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한국측 대표의 인사와
가지고 간 우정의 선물 및 대한 적십자사 총재의 선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환영해 주신 분들 중에서 녹색 '델(Deel,몽골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1955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자원봉사를 하셨다는데
가슴에는 여러개의 기념 뱃지와 훈장이 빛나고 있어 할머니의 활동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내어주는 자원 봉사를 하셨기 때문일까?
올해 86세라고 하시는데 그 태도는 배우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주색 델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70년 동안 적십자 자원 봉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몽골 적십자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면 이 할머니는 거의 몽골 적십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 델을 입으신 라마승은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통 예절을 교욱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이 지역 노인들이 나와서 멀리서 온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장기 자랑 공연'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을 하러 갔는데 노인들에게 도리어 '위문 공연'을 받은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치는 이 노인들에게는
멀리서 온 방문자들에게 자기들의 숨어 있던 실력을 보여준다는게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생각하며 기분좋게 들으면서 박수도 신나게 칠 수 있었다.



노래의 반주로 아코디언과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는 이어서 기타 독주, 하모니카 독주까지 한다.
한곡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지고......^^
젊었을 때에 한가락 날리고도 남았을 이 할아버지의 끼는 이날 완전 날개를 달았다.



칸-울지부 적십자사 복지센터에서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과 식사 등을 제공하는 등의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날 한국에서 방문한 일행은 노인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는 외에 몽골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마사지 봉사를 했다.



라마승 또한 한국에서 온 사이비 마사지사(?)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함을 즐겼다.
발에 신은 특이한 부츠는 '고탈(Gutul)'이라고 하는데 가죽으로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무신처럼 앞코가 살짝 들리고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마사지 후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이쁘게 문신 스티커를 붙여 드리니 너도 나도 와서 팔뚝을 내미셨다.



살며시 스티커를 떼어 문신이 나타나면 "오~~!" 하면서 너무 즐거워 하셨다.



화장을 곱게 하고 몽골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던 이분도 문신이 아주 맘에 드셨나 보다.



요술 풍선으로 만든 꽃 한 송이를 흔들며 웃으시기도 하고....



풍선 왕관에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이쁜 손길로 주물러주는 마사지까지 받으니 만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별 것 아닌 봉사에도 너무나 좋아하고 기분 좋아 하시던 어르신들은 우리의 마사지 봉사를 다 받고 나시더니 
이번엔 수고한 한국 방문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놀라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손사레를 치고 여러번 거절한 후에야 간신히 그분들의 마사지 시도를 막을 수가 있었다. 




몽골 어르신들은 특히 사진 찍히기를 즐거워 하셨는데....



적십자 뱃지를 단 라마 승려는 최고의 모델이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들에 뺨에 연신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하시는 할머니는 오늘의 히로인이다.



필자는 우리를 환영해 주신 분들의 사진을 한분 한분 다 찍어 드렸는데



특히 이 멋쟁이 할머니는 사진 찍는걸 너무나 좋아해서 수십컷의 사진을 찍었다.



포라로이드 카메라가 있다면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서 드렸으련만.....
미쳐 가져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사진을 인화지로 현상해서 몽골 적십자사로 우송해 주려고 한다.



선물 전달과 마사지 봉사를 마치고 나니 칸-울 지사에서는 방문한 일행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내놓는다.
아니...이런....
봉사받는 분들이 선물을 준비하다니....이런 경우도 있나....ㅠㅠ
우리는 극구 만류했지만 이분들은 자신들이 정성이라며 조그만 민속 악기 모형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몽골을 대표하는 민속 악기의 이름은 '모린호르(morin khuur,馬頭琴)'인데



모린호르의 음색이나 연주하는 영상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몇 시간 머무르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은 헤어짐을 너무나 서운해 하셨다.
초원의 거친 삶 속에서 한번 헤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었던 것처럼 솔롱고스의 방문객들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계속 손을 흔들며....



'바야르태(Баяртай, 안녕히 가세요)'! 를 말하면서도 손을 쉽게 놓지 못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은 모두를 찡하게 했다.



할머니는 들어가시라는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귀 도로까지 따라 나오며 손을 계속 흔드셨다.



어렵게 사는 몽골의 달동네에 가서 건네 주고 온 선물은 별 것 아닌 생활 필수품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관심과 사랑은 전해 준 선물보다 더욱 크고 귀한 것이었다.
힘들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준 그 어르신들을 보니
우리가 과연 그들을 도와주러 갔던건가.....생각되어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졌다.

몽골 가서 무엇을 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주러 갔다가 더 많이 받고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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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침.

지난 밤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뜨인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햇살은 비치기 시작하는데 하늘이 아직 환하지가 않다.




조식 시간인 8시까지는 시간이 좀 있는지라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이쁜 S양과 함께 호텔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울란바타르에 머무는 동안 계속 MIKA라는 호텔에 머물렀는데 보시다 시피 외관 및 내부가 매우 소박하다.
한밤중에 울란바타르에 내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당도하니 

주변과 호텔 방에 불빛이 거의 없고 으시시하기만 해서 모두가 경악했다는....^^

왜 이런 허름한 곳으로 숙소를 정했나 하고 실망했는데 의아했던 부분은 아침에 되어서야 풀리게 되었다.



몽골 적십자 건물이 호텔과 바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었던 것이 호텔 선정의 가장 큰 이유였고
주변 대부분이 건물이 관공서와 학교였기 때문에 낮에는 차와 사람이 왕래하나 밤중에는 암흑 천지일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실 울란바타르 다운 타운도 밤이 되면 많이 어두워서 다니기가 매우 위험하다.)



호텔 정문 앞에 넓은 대지를 차지하고 잘 지어진 건물이 있기에 현판을 살펴보니 스위스 대사관이다. 



이른 아침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창살 사이로 보니 정원에 풀이 더부룩하게 자라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같으면 잔디를 깨끗하게 다듬었을텐데.... 몽골에 머무르면서 보니 시내 중심부에도 잔디를 다듬으며 관리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몽골에서 풀의 의미는 우리처럼 조경을 위한 것이라기 보단 가축들의 사료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일까....?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도 시내 한복판 길거리에서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어 먹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스위스 대사관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경비 초소에 붙은 국기를 보아하니 이 건물은 불가리아 대사관이다.



불가리아 대사관의 바로 맞은 편에는 일본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건물도 깨끗하고 입구 또한 외관이 훌륭하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문 앞에 꽃도 심겨져 있고 잔디도 잘 다듬어져 있으며 주변 또한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다.



다시 호텔 반대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몽골 양식이 살짝 가미된 재미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Soyol Erdem University 라고 하는데 일본과 결연한 대학인 것 같다.



대학 건물 옆의 차 한대 다닐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어....! 살짝 후미진 곳에 한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대사관이라는 한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라더니.....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태극기도 몽골에서 만나니 너무나 반갑다.



경비 초소 안에 경찰이 있기에 손짓하여 불러내어 대사관 정문 앞에 세우고 포즈를 취하게 했다.
밤새 근무를 해서 그런가.....삐딱하게 쓴 모자 아래 눈이 약간 피로해 보인다.  
외모로 보면 몽골 경찰이 아니라 완전 한국 경찰같이 보이는데 몽골 경찰도 복장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 대사관은 위치도 일본 대사관이나 다른 대사관에 비해 후미진 곳에 있거니와 건물 또한 약간 초라한 느낌이 든다.
살짝 행랑채 같은 느낌의 한국 대사관을 보니 여행자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대사관의 외관이나 규모만 보고 그 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수야 없겠지만
번듯한 일본이나 스위스 대사관에 비해 약간 초라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몽골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물인데....!
요즘 국내 자치 단체의 으리으리한 청사와는 너무 비교가 된다.
국내 기관 청사 신축에 너무 많은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해외 공관 건물에도 지원을 좀 늘렸으면....하는 개인적인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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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근래 몇개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인천 공항 만큼 시설이 좋은 공항도 찾아보기 힘든다는 것이다.
너무 넓어서 출입국시에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정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웰빙 공항이다.





출국시에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으면 

공항 4층에 위치한 공항전망대(Airstar Terrace)에서 차를 마시거나 인터넷을 즐기곤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편한 릴렉스 의자에 몸을 한번 맡겨보면 비행기 탑승을 미루고 

그곳에서 한숨 푸욱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들기도 한다.





인천에서 몽골 울란바타르로 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몽골 항공, 두편이 있는데
대한항공편은 몽골 항공보다 약 7만원 정도 비싼 항공 요금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한항공편을 이용하고 있다.

인천 발 울란바타르 항공편은 운항은 매일 1회,
인천 발은 저녁 8시 10분이고 울란바타르 발은 무려 새벽 12시 20분에 출발한다.
몽골에 도착하면 이미 한밤중이 되거나 돌아올 때도 깊은 밤중에 출발해야 하는 다소 무리인 항공편이다.

밤중에 도착하고 한밤중에 출발하는 항공편이기는 하지만
몽골 여행에 최고의 적기는 바로 여름인지라 커다란 에어버스는 완전 만석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여행의 묘미 중에서 기내식을 먹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한번도 이용해 보지 못한지라 내겐 이코노미 클래스의 기내식도 즐겁기만 하다.






팔도 못 제대로 못 펴는 좁은 공간에서 조그만 포크,나이프,스푼등을 사용해서 

코딱지만한 기내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어릴 떄 소꿉놀이하던 기억. 

그래서 기내식은 여행을 시작한다는 설레임과 함께 여행자를 한동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기도 한다.






인천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한 항공기는 현지 시각 10시 40분(서울 11시 40분)에 도착하니 3시간 30분이 걸리고
울란바타르에서 새벽 12시 20분(서울 1시 20분)에 출발하면 인천공항에 4시 20분에 도착하게 되니
기내식 한번 먹고 양치질하고 책 몇 줄 읽지 않아서 금방 도착하게 된다.
정말 몽골 울란바타르는 서울에서 북경, 도쿄, 타이빼이 다음으로 가깝다는게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울란바타르 시각 10시 40분,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헉.... 몇 걸음 안 걸으니 바로 입국 수속장이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여행의 피로가 엄습할 때 공항의 규모가 작다는건 때로는 아주 도움이 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내려 오니 바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짐들이 빙빙 돌아간다.
이것도 공항에서 단 한군데 뿐이니 어디서 짐을 찾아야 하나....하고 헛갈리지 않으니 좋다.






수하물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헉.....! 이럴 수가...ㅠㅠ 울란바타르에 비가 온다.
보슬비도 아니고 "우르릉~~~ 꽝꽝~~!!" 천둥이 치면서 비가 주룩 주룩 내린다.

오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한 사전 지식으로는 몽골에는 거의 비가 안 오니 우산은 필요없고
우산이 필요한 경우는 다만 초원에서 볼 일 볼 때 가리개 대용으로 필요하다던데.....
한국의 장마를 피해 몽골에 오면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만 볼 걸 기대하고 왔는데 첫날부터 의외의 날씨가 우리를 반기더니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비에 우박까지 다양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틀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늘이 꾸물럭하게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계속되어서 나의 사랑스런 카메라를 울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파아란 하늘을 찍으러 몽골에 다시 가라는 계시..??)





골로 입국할 때는 비도 오고 해서 공항을 제대로 돌아볼 수 없었으므로  

몽골에서 출국시에 돌아본 울란바타르 공항을 살짝 소개해 드리자면.....

공항 앞에 내려서 맞은 편 주차장을 보니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한국의 대형 마트 주차장 정도의 크기보다 약간 적다고 생각하면 된다.






울란바타르 공항의 명칭은 '칭기즈 칸 국제 공항'인데 영어 표기 양 옆에 쓰인 글자는 '몽골 전통 문자'이다.






'칭기즈 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공항의 벽에는 칭기즈 칸과 티무르 칸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고






공항의 벽면 장식에도 칭기즈 칸은 위엄있는 모습으로 여행자를 환영해 준다.






한밤중의 출국이라 이미 몽골 항공은 휑하니 빈 데스크만 공항을 지키고 있고






밤 늦은 시간이라서 공항은 조용하기만 하고 여기저기 앉아 있는 승객과 승무원은 다 한국 사람이다.






일행의 남자 팀원이 아내의 선물을 아직 못 샀는데 무엇을 사면 좋겠냐고 물어본다.
"여자들에겐 그저 파우더 컴팩트 같은 화장품이 최고죠~! 안에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하나 사다드리면 좋아하실거에요...!"하고 말하니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수하물을 부치고 공항 검색을 통과해서 들어가니
헉....이게 웬 일..... 공항 안에 면세점이.....! 면세점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조그마한 공항 라운지에는 커피숍 한군데와 조그만  관광 상품점 세군데가 전부일 뿐 눈 씻고 보아도 면세점이 없는 것이다.
샤넬, 구찌.....등의 명품 샵이 즐비한 인천 공항에는 견주지 못하더라도 조그만 복합 면세점이라도 있겠지 생각한게 오산이었다.
(2층에 가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보드카 및 캐시미어, 향수, 시계를 파는 면세점이 있다는 걸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몰라서 들리지 못한 것이다.)






관광 상품점 또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샵인지 영어로 가격을 물으니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한다...ㅎ






심심해서 관광 상품점을 여기 저기 둘러보니 진열된 상품은 퀄리티가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비싼 가격이다.
(몽골의 공산품 가격은 한국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매우 비싼 편이다.)






몽골의 전통 복장을 담은 사진 책자에 관심이 가서 물어보니 한화로 거의 7만원.....우리나라 책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할 수 없어 주인 몰래 뒤적이며 구경하고 사진만 살짝 찍었다.






라운지의 벽에는 최근에 불어온 몽골의 한류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한국 병원의 대형 광고가 붙어 있고 






벽에 걸린 삼성 TV에서는 한국 위성 방송이 방송되고 있어서 몽골에 거세게 불어온 한류가 다시 한번 실감이 되었다.




울란바타르 공항.....
우리의 골리앗 같은 규모의 인천 공항에 비하면야 정말 소박하기 그지 없는 공항이다.
하지만 공항의 크기나 부대 시설로 어떤 나라의 공항이 좋다...나쁘다...라는 표현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데는 공항의 크기나 시설이란건 그다지 중요한건 아니니까.....
나를 '파아란 초원의 나라 몽골'로 인도해준 울란바타르 '칭기즈 칸' 공항.
나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로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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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돌아왔어요~!
돌아올 때면 지리한 장마가 끝났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비 내리고 꾸물럭한 날씨가 계속되네요.

아시아 전체를 커다란 구름이 감싸고 있는건가요?
눈이 아프도록 하늘이 푸르다는 몽골도 제가 있는 동안엔 흐린 날이 더 많았고
천둥 치고 비오고, 우박이 떨어졌다가 무지개 뜨는 등 '몽골은 비가 안 온다'는 상식을 뒤엎는 날씨가 계속되더군요.



몽골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체험하고 돌아왔어요.
몽골 적십자 중앙 본부를 방문하여 몽골 적십자 활동과 RCY(Red Cross Youth) 활동을 돌아보았구요.
울란바토르 인근의 칸-울 지역, 투브 지역,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 날라이 지역의 취약 계층과 소외 계층 아동들을 방문하여
준비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43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수많은 게르(몽골 전통 가옥)가 떠내려가고 다수의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한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우정의 선물과 함께 성금도 전달하고 돌아왔답니다.

우리가 준비했던 우정의 선물은 사실 소박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는데도
몽골 적십자 관계자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방문한 저희들에게 도리어 장기자랑으로 즐겁게 해 주는 등
관심과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도움을 주러 갔다가 사랑의 빚을 더욱 많이 지고 돌아온' 방문이 되었구요.
특히 몽골 RCY 친구들이 베풀어주신 귀한 사랑은 제 가슴에 언제까지나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몽골에 가 있는 동안에 인터넷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정원에 남겨 놓으신 여러 이웃분들의 축하글을 보고서야 황금펜이 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답니다.



이제껏 너무 즐겁고 편하게 블로깅했는데 얼떨결에 '베스트 View 블로거'란 칭호를 받으니
기쁨의 환호도 잠시...방문하시는 분들께 실망드리지 않도록 더 잘해야하는데.....하는 부담감이 밀려 드네요...^^
베스트 블로거 선정을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몽골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오리라는 계획은 
이틀 정도 맑은 하늘을 본 후 계속 흐린 날씨로 인해 약간의 차질이 생겼고 
특히 오기 전날 간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는 종일 비가 내려 거의 사진을 찍지 못했구요.
뿌옇게 안개가 뒤덮이고 비 내리는 몽골의 멋진 초원, 태초의 장소인 것처럼 신비스러운 강물과 숲길을
눈에...마음에.... 담아 왔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외의 '무차별적으로 마구 마구' 담아온 사진들은 한숨 돌린 후 정리하여 천천히 올려드리기로 하고....
곧 방문해서 인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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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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