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골로새를 지나 라오디게아(지금의 데니즐리)로 가다보면 청옥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게 되는데 이 호수는 바로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에이르디르 호수다. (터키에서 제일 큰 호수는 반 고양이로 유명한 '반'호수이다.)  

 

 


마치 바다처럼 넓디 넓은 에이리디르 호수의 물빛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답다.

 


보통 빙하 호수의 물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빛깔을 띄곤 하는데 에이르디르 호수는 빙하호도 아닌데도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터키의 하늘색을 그 가슴에 담아서 그런지 터키석 같은 물빛을 지니고 있다. 


호수가를 빙 둘러 한 바퀴 도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가는 곳 마다 천혜의 관광지이다.
터키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바다나 호수가에 여름철을 지나기 위한 별장들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렇게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아름다운 호텔 ,팬션 ,빌라들이 즐비하다. 


에이르디로 호숫가에는 가도가도 끝없는 올리브 농원이 펼쳐져있고 과일을 재배하는 과수원도 많다.
사시 사철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터키의 과일은 당도가 높아서 아주 맛있다. 터키에서는 과일 값이 아주 싸기 때문에 터키 사람들은 웬만하면 과일을 박스채 산다.


 

너른 호수를 옆으로 끼고 한바퀴 돌다보니 호수와 꼭 같이 '에이르디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이 나온다. 에이르디르는 비록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BC500년에 이미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을 만큼 역사가 오래 된 도시이다. 호반도시 에이르디르는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주변에는 에이르디르 호수 뿐만 아니라 찬드르라는 유명한 계곡과 코바다 국립 공원등이 자리잡고 있어서 찾는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오래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매력을 가진 도시라고 한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에이르디르의 점심 시간, 케밥집 앞에도 밖에 나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점심을 먹으러 들린 호숫가의 호텔에는 건물  5~6층 높이의 자작나무 군락이 호텔 1층 천정을 뚫고 자라고 있다.
원래 나무가 자라고 있던 곳에 호텔을 증축하여 지은 둣 한데 나무를 베지 않고 건물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호텔 내의 카페에 들어가 보니 카페의 주방 한가운데 아름드리 나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에이르디르의 중심부는 매우 작은데 성벽에서 보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처 예실섬에는 휴양도시답게 팬션이 밀집되어 있는데 섬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매립되어 돌무쉬(조그만 합승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마을에 있는 오래 된 셀주크 성채 부근에는 15세기에 건설된 '흐르즈베이 자미'라는 사원이 있는데건물 뒷편에 미나레(첨탑)가 보이는 건물이 흐르즈베이 자미다.

 


흐르베이 자미 앞에 '된다르베이 마르마사(된바르베이 신학교)'라는 유적이 있는데 얼마전 복구되어 현재 쇼핑 몰로 사용되고 있다.
유적을 복구해서 쇼핑몰로 쓰다니.....정말 놀랍지 않은가?

에베소 바로 근처의 쿠샤다스라는 도시에도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둘기섬(귀베르진 아다스)'이라 불리우는 섬이 있는데
섬 전체가 아름다운 꽃으로 잘 가꾸어져 낙원 같은 이 섬에는 14,5세기의 아름다운 성채가 있다. 그런데 이 성채는 지금 복구되어 터키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이트 클럽이 되었단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터키에서는 기원전의 신전 기둥이 동네 아저씨들의 체스판이 되어 있고 로마 시대의 석관이 카페의 테이블로 쓰여 손님을 받으며 파묵칼레의 온천 수영장의 바닥에는 신전 기둥이 그대로 누워있는 정도이다.

놀란 외국인들이 터키 사람들에게 왜 이런 귀한 유적들을 박물관에 넣어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냐고 물으면 터키 사람들은 참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라 전체에 유물이 천지삐가리이고(널려있고) 온 나라가 박물관인데 왜 유리 상자 안에 그것을 가두어 두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고.....실제로 이스탄불의 박물관에 가보면 유물이 하도 많아서 마구잡이로 쌓여있다는 느낌마져 든다고 한다.  

터키 사람들에게 유적이나 유물은 박물관의 유리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잠자면서 것이 아니고 동네 한가운데서 위치해서 그 곳을 드나들도 그곳에서 쉬며 사람들과 같이 숨을 쉬고 있었다. 터키의 유적은 이른바 죽은 유적이 아니고 살아있는 유적인 것이다.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놀라시겠지만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카파도키아에는 지하 도시가  400 여 곳이나 산재해있다.
이런 지하 도시는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이용해 왔는데 
이 지하 도시들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응회암과 용암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암 괴석에 동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상의 맹렬한 더위와 짐승의 습격을 피해 사람들이 이 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미 만들어져있던 지하도시를 이용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지하 도시 중 유명한 곳은 카이막클리, 데린구유, 오즈크낙 등인데
그 중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데린구유'는 가장 놀라운 도시다.
이 지하 도시는 1960 년대에야 발견되었는데 데린구유의 한 마을에 있는 닭이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생긴 주인이 당국에 신고를 한 것이 지하 도시를 발견한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찾아간 데린구유는 여느 관광지같이 북적대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그다지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동네 가게 앞 그늘에만 몇 사람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눌 뿐...... 광장 앞 풍경은 잠이 올 만큼 조용한 분위기다.



마을의 둥근 광장 주위에 자리잡은 관광 상품점은 들여다 보는 사람도 가게 주인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허물어지다 만 듯한 2층 건물의 옥상에 사다리가 심심하게 걸려있고 앞의 하얀 건물의 옥상에는 잡초만 무성한데
그런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카페트를 옥상에 척 걸쳐 놓기도 하고 빨래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기도 한다.
하얀 벽에 못을 쳐서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카페트들이 거의 다 그 지방에서 짠 수공품 카페트들인데
오랜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한 터키 카페트의 색감이 얼마나 화려하고 이쁜지 하나 사갖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가게 옆에는 허름한 천막이 쳐져 있는데 역시 천막 앞에도 카페트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가게 자리를  얻지 못한 상인의 소규모 점포일까.....?
도자기 공예품이나 작은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거기 또한 들여다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가게 주인들은......햇빛을 피해  건물의 그늘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킬림(평직 카페트) 조각을 땅에 깔고 둘러 앉아 신문지 위에 빵,포도,차이를 베풀어 놓고 둘러 앉아
계란을 까고 있는 모습은 우리 나라 아저씨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으니 다정하게 쳐다보며 말을 거는데  "여기 와서 같이 차이나 한 잔 할려우...?"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카페트 뿐 아니라 저울이나 램프, 항아리같은 토산품등도 같이 팔고 있던 가게 안에 들어가서 매우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데린구유 발굴 현장에서 흘러나온 출토품인데 놀랍게도 히타이트 시대의 인장이었다.



왼쪽의 네모난 인장은 사자가 표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아랫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삼각형으로 된 뒷부분에도 길게 홈이 파여져 있어 간편하게 끈을 꿰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오른쪽 원형의 인장 역시 둥근 아랫부분에 끈을 꿸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여 많이 마모되기는 했으나 말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도시의 흙 속에서 잠자고 있던 4,000년 된 유물을 손에 넣으니 감격으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는데
이 인장들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손에 넣은 기념품 중에 가장 귀한 물건으로 남아 있다.



지하도시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아기를 안은 아줌마가 좌판에 인형 몇개를 팔고 있는데 완전 수공예품 인형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인형은 데린구유 지방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인형.
하얀 무명 옷에 무늬를 싸인펜으로 그리고 인형의 눈,코,입도 싸인펜으로 그려 놓은 너무나 소박한 인형이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고 단지 데린구유에서만 살 수 있는 이 인형은...단돈 2달러이다....^^



동네 구경을 다하였으니 이제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볼 차례.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미나레(이슬람 사원의 첨탑)가 하나 있는 작은 '자미(이슬람 사원)'의 바로 옆에 있는데
오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내려가게 된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은 둥근 돌문인데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돌을 굴려 통로를 막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돌문은 안 쪽에서만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가이드의 도움없이는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어서 반드시 가이드를 앞장 세워서 들어가야 한다. 



이 곳의 지하는 방,부엌,곡물 저장소,동물 사육장,첩자들을 다루는 형틀, 교회,성찬이나 세례를 베풀던 장소,신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 묘지 등이 다 있어 지상의 생활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전한 도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하 도시는 총 20층으로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규모인데 현재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8층까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고  
데린구유의 터널은 이 곳에서 9km가 떨어진 카이막클리 지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어 
지상의 도시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하니 그 규모에 가히 입이 쩍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하 도시의 통로는 한 사람이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며 어떤 곳은 허리를 굽혀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



어둡고 좁은 이곳에서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호흡 곤란과 가슴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동굴 속의 방과 방들은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상당히 넓은 공간도 있는데 기둥도 세워져 있는 이런 넓은 공간은 대부분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했던 십자가 형태의 교회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신학교의 흔적도 있다. 



물이 흘러나와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는 이곳은 세례를 베풀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가이드가 후래쉬로 비추는 곳은 에어컨디셔너 기능을 하는 통기 구멍이다.
이 구멍은 지하도시의 각 층을 꿰줋고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지하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준다.



카파도키아 지방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바깥으로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고 하니 그 얼마나 답답했을까..
동굴 벽의 갈라진 틈에 손을 넣어보며 그 당시 사람들의 숨결을 함께 느껴 보았다. 



지하도시 데린구유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니 
다시 맞이하게 된 밝은 햇빛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길을 걸어가야 했다.
단 몇 시간 동안이지만 암흑의 지하도시를 체험하고 나오니 바깥 세상의 공기는 달콤하기 그지 없었고 
밝게 비춰주는 햇빛도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햇살인 것 처럼 감사하기만 하였다.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